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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84화 (184/225)

[184화]

진우혁의 외침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설마 완전히 죽지 않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여기 모인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시현은 언제든 칼을 휘두를 수 있게끔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 상태에서 리퍼의 상태를 확인했다.

“……?”

시현의 예상은 빗나갔다.

리퍼의 몸을 장악한 촉수 괴물은 확실하게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 증거로 리퍼의 몸이 붉은 고깃덩이가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혁이 무엇을 보고 소리를 지른 건지는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지?”

시현은 녹아내린 고깃덩이를 검으로 파헤쳤다.

그 중심부에서 요사스럽게 빛을 발하는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현은 칼끝으로 그것을 건져 올렸다.

그것의 정체는 붉은색의 결정이었다.

쿵.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저것을 갖고 싶다는, 삼키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생겨났다.

그런 감정을 느낀 게 시현만은 아닌지 모두가 멍한 눈으로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가 멍하고 짙은 안개가 낀 것 같았다.

― 원하고 갈망하라.

어디선가 끔찍하고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듯 했다.

그 순간.

화악!

시현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현은 빛의 근원을 확인했다.

얼마 전 인과율을 무시하고 지상에 강림해 멋대로 싸돌아다니던 아르하가 준 반지가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음, 음? 어라?”

“이상하다. 제가 왜 저 이상한 결정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을까요?”

제정신으로 되돌아온 일행들 사이에서 의문이 피어났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무슨 행동과 사고를 한 건지 이하해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역시 리더! 이런 상황이 있을 줄 알고 철저하게 준비하셨군요.”

진우혁이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시현의 준비성을 찬양했다.

사정을 모르는 일행은 시현 덕분에 살았다며 그를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그러나 시현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대전에서 이게 도움이 될 거야.”

아르하가 남긴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

만약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르하를 의심하고 반지를 챙겨오지 않았더라면, 시현을 포함한 일행 전원이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마 인천의 검은 수해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에 굴복한 구원자들과 같은 결말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뭘까요?”

민서라는 마치 닿으면 죽는 독극물이라도 대하는 눈으로 결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글쎄요.”

당연하지만 시현이라 해서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아르하의 반지 없이 접촉하면 제대로 사고가 터질 거라는 짐작뿐이었다.

가지고 다니기에도,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기에도 난감한 물건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위험해 보이니 어디 봉인해 두도록 하죠.”

* * *

“리더! 정신 차려요!”

김영운의 외침에 한소현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겨우 몸을 일으킨 한소현은 한 순간이지만 자신의 정신을 날려 버린 상대를 응시했다.

“권수용…….”

한소현의 고운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크하하하하!”

놀랍게도 한소현을 공격한 이의 정체는 권수용이었다.

잘려 나간 두 팔의 단면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촉수를 이용해서 공격을 해 온 권수용은 약 10미터 전방에서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평소 말투는 사나워도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선한 남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붉게 물든 눈동자를 광기로 빛내며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동생들에게 주저 없이 살수를 선보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가 반이나 날아가서 그런지 기억이 애매해.”

그녀의 질문에 누군가 답했다.

“중형 악마인 머리지네를 숙주로 삼은 촉수 괴물, 그것을 토벌한 직후 몸에서 붉은색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리더와 저를 포함해 여기 있는 전원이 그 결정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러곤 가장 선두에 있던 권수용이 그것을 삼켰습니다. 그 결과 나머지 인원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권수용은 저 상태로 변했습니다.”

“……이해했어.”

여전히 기억은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피아 구분을 못하고 무작정 살수를 행하는 권수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소현은 단검을 손에 쥐었다.

“다들 뒤로 물려.”

권수용은 등대의 설립 초창기부터 늘 함께해 왔던 사람이다.

비록 두 사람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 정도로 거리감이 있었지만, 권수용 역시 그녀가 아끼는 인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쩔 생각이세요?”

“생포할 거야. 그리고 윤시현에게 정화를 의뢰하겠어.”

정화가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김영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다른 이들을 물리라고 했는지, 한소현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편이 몇 배는 힘든 법이다.

당연히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자고 다른 수십 명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한소현은 권능으로 인해 쉽게 죽지 않는 자신 혼자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또 다시 기억이 애매해졌다.

촉수 괴물로 변해버린 권수용과 싸운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드문드문하다.

아마 몇 번이고 머리가 날려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끝내 한소현은 승리했다.

권수용이 가진 모든 촉수를 끊어 냈고, 마지막 일격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소현은 망설였다.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회복의 권능에 의존해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결과가 하필이면 지금 발생했다.

어째서 자신이 권수용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기억을 떠올리는 그 잠깐의 틈을 노려 권수용이 달아난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쫓을게. 적당히 거리 두고 따라와.”

그녀는 도망가는 권수용의 뒤를 쫓았다.

망설임은 한 번이면 족했다.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속도를 높였고, 권수용을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그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텅!

“……!”

한소현의 손은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보이지 않는 벽까지 도착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한소현은 그 벽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권수용은 벽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어? 어…… 이러면 굉장히 골치 아파지는데.”

한소현을 뒤따라 온 김영운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짧은 사이에 권수용은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 달아났다.

설사 무언가의 이유로 눈앞의 벽이 사라진다 해도 이제 와서 권수용의 뒤를 쫓는 건 불가능하다.

“…….”

한소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없이 무표정한 한소현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한 김영운은 그녀가 전에 없을 만큼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분노가 엄한 곳에서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김영운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중형 악마에 기생한 촉수 괴물을 찾도록 하죠.”

“어째서?”

“놈이 가진 그 핏빛의 결정. 그게 벽을 통과하게끔 해 주는 열쇠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걸 손에 넣어야 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이렇다 할 방법은 없는 것도 현실이었다.

“물론 무작정 부딪치면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겁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찾도록 하죠.”

“방법이라면 있어. 내 두 손에 작은 폭탄을 달아.”

“네?”

그녀의 제안에 김영운은 크게 당황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마주 본 한소현의 눈은 농담기 하나 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핏빛 결정은 나 혼자 구하겠어. 너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내 상태를 체크해. 만약 결정을 손에 넣은 내가 그것을 삼키려 하면 폭탄을 폭발시켜.”

“…….”

“아니다. 아예 입을 막아 버릴까? 내 의지와 능력으로는 벗을 수 없는 구속구 같은 게 있으면 준비해 줘. 그게 낫겠다.”

“…….”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한소현의 선택은 극단적인 자기희생이었다.

* * *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현 일행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혔다.

절대 일행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두지 않겠다는 듯 다수의 촉수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촉수 악마들의 싸움 방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행이었으나,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상황을 반전시킬 만큼 실력이 확 뛴 것은 아니었다.

“시현 씨! 슬슬 한계에요!”

민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함이 섞인 비명.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부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촉수 괴물의 공격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아차 하는 사이 부상자는 사상자가 될 것이다.

“퇴각합니다.”

오늘도 방법은커녕 힌트조차 찾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퇴각을 명령한 그 순간이었다.

“어어? 중형! 중형 출현!”

가장 후미에서 싸우고 있던 신호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중형 악마에 기생한 촉수 괴물이라면 일행의 힘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시현은 곧장 해당 장소로 달려갔다.

신호석의 말대로 각각 리퍼와 거대 괴물 쥐에 기생한 촉수 괴물 두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퇴각하세요. 저놈들을 처치하고 합류하겠습니다.”

시현은 놈들이 일행에게 달라붙기 전에 처치하기로 결정하곤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퍽!

“……망할.”

힘차게 첫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벽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벽의 위치는 머릿속에 잘 파악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전투에 집중하다보니 놓쳐 버린 모양이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벽이 있으면 중형이고 뭐고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벽 앞에 서서 애달프게 벽이나 두드리다가 힘없이 돌아갈 놈들인 것을.

괜히 신호석에게 시선을 한 번 준 시현은 먼저 퇴각하고 있는 일행들의 뒤를 따랐다.

화악!

강렬한 빛과 함께 무언가가 시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민서라가 사용하는 권능이었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몸집을 부풀린 빛이 시현을 감쌌다.

콰앙!

“크악!”

강한 충격과 함께 시현은 바닥을 굴렀다.

“시현 씨! 정신 차려요!”

민서라의 질책이 있은 후 그를 향해 촉수가 날아들었다.

시현은 검으로 촉수를 쳐낸 다음 자신을 공격한 놈들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어떻게 된 거야?”

놀랍게도 시현을 공격한 놈의 정체는 거대 괴물 쥐에게 기생하고 있는 중형 악마였다.

거대 괴물 쥐가 네 개의 다리로 열심히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히는 동안 그 입과 귀, 눈에서 빠져나온 촉수들이 시현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설마…….”

시현은 거대 괴물 쥐의 배후에 자리한 리퍼에게 시선을 줬다.

리퍼는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 나왔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촉수 괴물은 보이지 않는 벽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건가? 아니, 분명 다른 촉수 괴물들을 이용해 실험해 봤을 때, 놈들은 벽을 통과하지 못했어. 중형에 기생한 놈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가?’

그러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소형 악마나 인간에게 기생한 촉수 괴물을 처치했을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중형에 기생한 놈을 처치했을 때는 핏빛 결정이 남아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밀폐된 통에 넣은 후 땅에 묻어 버렸던 물건.

어쩌면 그게 벽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열쇠가 아닐까 싶었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 퇴각은 중지입니다!”

시현의 외침에 달아나던 일행은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간절함을 담아 시현을 응시했다.

“오빠, 제발…….”

누구보다 가장 격하게 싸웠기에 피로가 컸던 이나연이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시현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종일 거리를 돌아다녀도 중형에 기생한 촉수 괴물과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음 기회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 않는가.

“지금부터 이 두 놈을 사냥할 테니 방해가 없게끔 해 주세요.”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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