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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83화 (183/225)

[183화]

촉수 괴물들의 공세는 굉장히 거셌다.

괴물의 수는 어림잡아도 2∼30은 되어 보였다.

단순히 머릿수만 놓고 보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괴물 하나가 수십 가닥의 촉수를 사용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숫자가 아니다.

“큭!”

시현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촉수를 검으로 쳐냈다.

그대로 잘라 버리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수십 가닥의 촉수를 방어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5레벨 구원자이자 두 개의 권능을 가진 시현조차 그 지경이다.

다른 일행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곡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살아서 다시 보자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어! 이러다 진짜 죽겠어!”

“나연아! 뒤!”

“지금 정면에서 오는 걸 쳐내기도 급급하…… 와악!”

그나마 서로 협력을 통해 잘 싸우고 있는 민서라나 이나연도 상황은 최악이었다.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폭풍으로도 촉수를 끊어 내지는 못했고, 애초에 타격을 주로 사용하는 민서라에게는 상성부터가 글러 먹었다.

상성에서 막힌 이는 비단 민서라만이 아니었다.

“피…… 피가 모자라!”

흡혈귀 같은 대사를 쏟아 내던 강소하는 사실상 여기 있는 모든 구원자 중 가장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강소하의 권능은 피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촉수 괴물은 베고 찌르고 잘라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

쏟아지는 붉은 비는 순수한 피가 아니기 때문에 권능으로도 조작할 수 없다.

한마디로 권능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상황.

심지어 근접전엔 재능조차 없는 강소하가 아니던가.

결국 강소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몸을 피의 안개로 바꿔 공격을 회피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시현은 혀를 찼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려 봐야 무의미하게 희생자를 낳을 뿐이다.

시현은 일방통행으로 촉수들의 공격을 막았다.

덕분에 짧은 휴식을 얻게 된 일행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위험하다고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 그냥 인천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박여래가 우는 소리를 했다.

인천연합 최강이라는 자존심은 실시간으로 목숨이 오가는 경험 속에서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다들 저한테 붙어 주세요. 더 이상 싸워 봤자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 여기에서 이탈하겠습니다.”

“네!”

시현의 말에 일행은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어 시현의 팔이나 어깨 따위를 붙잡았다.

그 상태에서 시현은 포탈을 생성, 일행 모두를 데리고 공간을 도약했다.

장소는 붉은 하늘과 푸른 하늘의 경계 지점이었다.

“병원까지 복귀해서 쉬면 좋겠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정신력의 소모가 커지니까요. 오늘은 여기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죠.”

“드디어…….”

“진짜 지옥이었어. 차라리 병원에서 악마를 상대로 한 공방전이 더 쉬웠을 정도야.”

일행은 우는 소리를 하며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얼마나 지쳤는지 신호석의 경우, 딱딱한 맨바닥에 머리를 대는 것과 동시에 곯아떨어졌을 정도다.

피곤한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일행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전방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현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모자는 쓰지 않았다.

이곳까지 비가 쏟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수 시간 정도면 이곳 역시 붉은 지역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왜 갑자기 혼자 옥상으로 올라오고 그래요?”

그런 시현을 뒤따라 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민서라였다.

“보이지 않는 벽을 어떻게 하면 통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음…… 아무래도 원작에는 없던 전개니까요. 이렇게 벽에 막히고 나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원작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네요.”

“그래도 분명 방법은 있을 겁니다.”

시현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강한 긍정에 오히려 민서라가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김영운 씨의 예언에 등장한 어느 구원자가 있습니다. 그 구원자는 현재 벽 너머, 붉은 지역의 심층부에 있고요.”

시현 역시 김영운과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음…… 하지만 시현 씨, 그 주장에 빈틈이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기껏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민서라의 빈틈을 꼬집는 지적에 시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시현의 주장에는 커다란 빈틈이 있었다.

“그 구원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전부터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며,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네, 민서라 씨가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정말 두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이고.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짧게 대꾸하는 시현의 시선은 쭉 보이지 않는 장벽에 못 박혀 있었다.

* * *

다음 날도 시현은 여지없이 붉은 지역으로 발을 디뎠다.

정확하게는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붉은 지역에 들어와 있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밤사이에 붉은 하늘이 또 푸른 하늘을 잡아먹은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새빨간 하늘만 보여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일어나셨어요?”

마지막 불침번이던 진우혁이 가장 먼저 기상한 시현을 반겨 주었다.

“네. 불침번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오히려 가장 쉬운 타임에 들어갈 수 있어서 여러분께 죄송할 뿐이죠.”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니었는지 진우혁은 가장 약한 자신을 배려해 준 일행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몽롱함에 취해 있을 수는 없기에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앙!

아래층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굉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적습인가?”

깊이 잠을 청하고 있던 일행 전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문이 찌그러지며 경첩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힘없이 넘어가는 문 너머에서 등장한 것은 당연하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촉수 가닥이었다.

시현은 수십 가닥의 촉수 중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을 잘라 버렸다.

‘이 정도라면 습격해온 촉수 괴물은 하나. 본체는…… 바깥에 있군.’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시현은 곧장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어어? 리더!”

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진우혁이 그를 말리려 했으나, 이미 시현의 신형은 창문 너머로 넘어간 후였다.

멀리 보이는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던 시현의 눈에 촉수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숙주로 삼고 있는 것은 20대 중반 정도쯤 될 법한 여성이었다.

“무방비하네.”

상대는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촉수를 건물 내부로 밀어 넣은 상황.

뼈만 남은 몸을 지킬 방어 기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은 심장.”

낙하 가속도를 더한 일격이 심장을 꿰뚫었다.

단단한 무언가를 꿰뚫는 감각은 없었다.

“또 꽝인가? 한 번에 되는 경우가 없네.”

위기를 느낀 촉수 괴물이 건물 안쪽으로 들여보낸 촉수 전부를 꺼내 와 시현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시현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콰직!

흑색의 검이 촉수 괴물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러자 괴물의 팔과 다리, 그리고 수십 개의 촉수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심장이 꿰뚫린 촉수 괴물은 붉은 빗물을 맞고 녹아내려 형체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한 줌의 핏물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시현은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30분! 그 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청껏 소리친 시현의 외침에 화답한 것은 빌딩의 상층에 자리한 일행이 아니었다.

촤르르륵!

골목 어귀에서 나타난 촉수가 시현을 노리고 쏘아졌다.

침착하게 맞대응할 생각이었는데, 촉수와 검이 얽히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퍽!

놀랍게도 촉수는 시현의 검을 쳐내더니 그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이런 미친!”

시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혔다.

촉수는 시현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밤새 회복한 외피 따위는 무용지물이었다.

압도적인 공격력에 외피는 파괴되었고, 스친 상처에서 쏟아진 피가 옷자락을 적셨다.

스스로에게 치유의 권능을 건 시현은 촉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상처는 금방 회복되었지만, 놀란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했으면 목이 뚫렸을 거야.’

치유의 권능은 회복의 권능과 다르다.

소모가 적고 광범위하게 걸칠 수 있지만, 치유의 권능처럼 한순간에 상처를 낫게 하지는 못한다.

목이 뚫려도 금방 치료할 수 있는 한소현과 달리, 시현의 경우에는 목이 뚫리면 죽는다.

심장이 마구 뛰고 식은땀이 줄기차게 쏟아졌다.

쿵, 쿵.

땅울림과 함께 촉수의 숙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평범한 숙주는 아니었다.

“악마…… 그것도 중형 악마를 숙주로 삼은 건가?”

골목 어귀에서 등장한 놈은 중형 악마인 리퍼였다.

그러나 붉은 하늘 아래에서는 인간이건, 짐승이건, 악마건 공평하게 목숨을 바쳐야 한다.

리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눈과 쩍 벌어진 입, 그리고 귀에서 빠져나온 대량의 촉수가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양분을 빨린 몸은 삐쩍 말라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약점이 정해져 있다는 건데.”

시현의 시선이 리퍼의 머리로 향했다.

무언가 사고라도 당한 것인지 리퍼 머리의 절반이 함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리퍼에 기생한 촉수 괴물의 약점이 심장이라는 뜻이다.

늘 적을 만나면 포효부터 내지르고 보던 리퍼이지만, 기생당한 상태의 리퍼는 소리 없이 조용하게 공격을 시작했다.

촉수가 여러 갈래로 펼쳐지며 사방에서 시현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시현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촉수를 쳐냈다.

역시 잘리지 않았다.

‘기생하는 대상에 비례해서 내구도가 강해지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대전에도 엄연히 대형 악마가 존재하며, 놈들이라 해서 붉은 비에 내성이 있는 건 아니다.

중형 악마에 기생한 촉수 괴물조차 이 정도로 강한데, 만약 대형 악마에게 촉수가 기생한다면 어떤 괴물이 탄생하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시현 씨!”

“으악! 저건 또 뭐야! 겁나 징그러워!”

그새 준비를 마친 일행들이 전투에 합류했다.

촉수 괴물은 시현뿐 아니라 일행을 향해서도 공격을 퍼부었다.

덕분에 동시에 상대해야 할 촉수의 개수가 확 줄어들었다.

“처형.”

시현은 권능을 사용해 촉수를 공격했다.

이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이도 그 정도로 내구도가 뛰어나지는 않았다.

촤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촉수 한 가닥이 잘려 나갔다.

푸화악!

권능의 효과로 인해 추가 타격을 입은 촉수 괴물은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었기에 큰 위협을 느낀 것이다.

위협은 곧 분노가 되었다.

일행의 머릿수만큼 공평하게 분배하던 촉수를 최대한 모아 시현에게로 집중한 것이다.

“오빠!”

시현이 위기상황이라 판단한 이나연이 폭풍을 사용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기생한 촉수 괴물조차 처리하지 못하던 폭풍이 리퍼에 기생한 촉수 괴물을 처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흩날리듯 촉수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멋대로 춤을 췄다.

그 틈을 놓칠 시현이 아니었다.

시현은 폭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외피를 모두 잃은 시현이 인간의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폭풍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폭풍 속으로 뛰어든 것은, 그만큼 이나연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기 깜빡이 좀!”

그녀는 시현의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했지만, 제때 맞춰 폭풍을 회수했다.

폭풍에 멋대로 흩날리던 촉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시현에게 날아들었지만, 이미 시현은 리퍼의 품속에 파고든 후였다.

처형의 권능을 듬뿍 담은 찌르기가 리퍼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까드득!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약점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더럽게 단단하네.”

시현은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온 힘을 다해 검을 밀어 넣었다.

게다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판단하고 승리의 영광까지 사용했다.

여러 가닥의 촉수가 시현의 등을 공격했으나, 민서라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빛의 방패가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결국 시현의 검은 단단한 심장을 꿰뚫었다.

퍼석!

단단한 심장이 깨지고, 미쳐 날뛰던 촉수는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리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촉수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축 늘어진 촉수로 인해 주변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오빠, 수고했어요.”

“나연아, 아까 타이밍 좋았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 좀 해 줘요. 저 심장 떨어질 뻔했다니까요.”

시현이 이나연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던 그 때였다.

“어? 리더! 저기 뭐가 있어요!”

진우혁이 리퍼의 사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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