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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76화 (176/225)

[176화]

김영운의 죽음.

이는 결코 쉽게 받아들여도 될 문제가 아니었다.

덩달아 시현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김영운은 예언가야. 그렇기에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불확실한 미래에 뛰어들지 않아. 그런 김영운이 죽었다는 건 하나겠군.’

미래를 알고 있어도 대처할 수 없는 죽음.

시현은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아랫입술을 씹었다.

혀끝에 미미한 피의 맛이 느껴졌다.

그 죽음이 김영운을 콕 찍어서 노릴 리도 없다.

아마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미래를 엿본 김영운이 헐레벌떡 달려온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영운 씨, 첫 번째가 원인이고 두 번째가 결과라면 세 번째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세 번째 예언은 지금 본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적절한 예시를 찾으며 김영운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이전에 인천 검은 수해. 그 때는 첫 번째 예언에서 결과를 봤고, 두 번째 예언에서 시현 씨의 죽음을 봤죠. 그 때는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특이 케이스였습니다만, 어찌되었건 시현 씨를 구한 덕에 미래를 바꿀 수 있었죠.”

“그렇다면 이번에 본 세 번째 예언을 통해 미래를 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확인할 수 있겠군요.”

“붉은 비가 내리는 장소. 그곳에 복수에 눈이 돌아간 남성 구원자가 있습니다. 그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겁니다.”

“그렇군요.”

시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비가 내리는 지역은 광범위하다.

그 넓은 곳에서 고작 복수에 눈이 돌아간 남성 구원자를 찾아야 한다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힌트를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현이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붉은 비가 갖는 속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붉은 비에 닿으면 생존자건 구원자건 구분 없이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사망한 인간은 붉은 촉수의 숙주가 되고.

아마 현 시점에 붉은 비가 내리는 장소에서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대부분은 비가 닿지 않는 곳에 숨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복수에 미쳐 날뛰는 남성 구원자 하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제가 가진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영운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보는 끝났다.

이제는 시현이 가진 정보를 넘길 차례다.

“말씀드리기 전에, 얼마 전 교단과 호텔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네.”

김영운의 대답은 담담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단이 호텔과 전쟁을 벌인 것부터 시작해 호텔이 완파된 것.

그러나 본진에서 퇴각한 호텔의 생존자들이 교단의 본진인 병원을 점령해 끝내 승리를 거둔 것까지.

사전에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교단의 본진이었던 병원으로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태연한 자세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산에 있으면서 서울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다니……. 역시 등대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역시 한소현이 부동의 1위를 고수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쟁에서 교단의 리더인 이한울의 동생, 이설아를 죽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조금 출혈이 크기는 했지만…….”

루에드의 맹세를 떠올린 시현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설아가 남긴 일지 및 자료를 통해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설아의 Re write에서 얻은 정보이지만 참가자가 아닌 김영운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늘 그랬듯 시현은 진실에 가벼운 양념을 쳤다.

“이상하게도 리더인 이한울이 교단의 명운을 건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더군요. 이유가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일지에 그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호기심이 동했는지 김영운이 눈을 빛냈다.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측근 중 한 명과 대전의 수목원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아무리 등대의 정보력이 우수하다 한들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었다.

수목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김영운은 허리를 굽히고 상체를 쭉 내민 채, 보다 심각하게 시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천리안을 바탕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초기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교단은 근처에 있는 다른 경쟁 세력을 찍어 누르는 대신, 전국 각지에서 귀한 보물들을 탐색해 수중에 넣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보물은 원래 인류를 위해 쓰여야 했지만, 이한울은 다른 곳에 사용했죠.”

“……혹시 인천의 검은 수해에 있던 그놈과 비슷한 놈이 대전의 수목원에 있는 겁니까?”

역시 김영운은 감이 예리한 사람이었다.

이제 막 도입부를 설명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결론을 유추해 버렸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추측에 긍정을 표했다.

“수목원에도 외신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한울은 그 외신을 이용하려 했죠. 그동안 모은 보물, 그리고 외신이 원하는 재물, 그것들을 바쳐 외신의 봉인을 깨웠습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참가자가 아니기에, 원작에 대해 모르기에.

김영운은 이한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유추해 내지 못했다.

외신과 악마는 인간의 적.

결코 공존할 수 없으며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처치해야만 하는 존재.

그런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랭킹에 진입하는 것.

그와 동시에 배드 엔딩이건 해피 엔딩이건 소설을 완결지어 Re write에서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참가자들의 궁극적 목표다.

그 과정에서 이 세계의 주민들이 어찌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참가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이한울이었다.

“자세한 건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악마도, 외신도 이용할 수 있으며 동족 따위는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존재가 이한울이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보니 교단의 리더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군요. 그렇다면 외신의 봉인은 완전히 깨진 겁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이설아의 Re write에 기입되어 있는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한울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외신의 봉인을 100% 완전하게 깨뜨릴 수 없다.

이한울의 목표는 50% 이상 봉인을 깨뜨리는 것.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시작되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이라면,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멸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는 참가자들이 666명이나 존재한다 해도 외신에 대처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니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한울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가 이설아를 죽였거든요.”

이한울이 Re write에 참가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설아를 위해서였다.

그런 이설아가 죽은 지금, 이한울은 굳이 더러운 수를 써가면서 Re write에서 승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시현을 향한 증오와 복수심 뿐.

그렇기에 이한울은 마지막 순간에 기존의 계획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이한울은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나요?”

김영운의 질문에 시현은 남산 타워의 지하에서 촉수 악마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이자프의 권능을 이용해 촉수 악마를 베었을 때, 시현의 눈앞에는 이런 문구가 나타났었다.

<이자프는 구루벨보다 상위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능이 힘을 잃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워낙 상황이 긴박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되고 생각해 보니 결코 가벼이 넘길만한 문구가 아니었다.

어째서 외신의 일부인 촉수 악마를 공격했는데, 구루벨의 이름이 등장한단 말인가.

답은 하나였다.

“김영운 씨는 레벨 서포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죠. 교단이 자랑하는 약물형 병기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구원자의 레벨을 강제적으로 끌어올리는 사기적인 물건이지요.”

“레벨 서포터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혈입니다.”

김영운은 즉답했다.

마치 예습을 철저하게 해 온 학생을 가르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신혈을 가진 구원자가 자신에게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십니까?”

“…….”

여기까지는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영운은 고개를 저었다.

시현은 언젠가 인천의 요새에서 마주친 여성 참가자를 떠올렸다.

“신혈을 가진 구원자가 스스로에게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면 구루벨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1주에서 최대 2주까지 결코 죽지 않으며 고통을 받게 되는 저주죠. 아마 이한울도 자신에게 레벨 서포터를 투약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대답하고 나서야 김영운은 깨달았다.

저주를 받을 걸 알면서 굳이 자신에게 레벨 서포터를 투약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궁금증은 이어지는 시현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붉은 기둥이 구원자의 심장을 관통하게 되는데, 이 붉은 기둥은 순수한 신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한울이 레벨 서포터를 투약한 상태로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다면…… 대량의 신혈 역시 함께 제물로 바쳐졌겠군요.”

신혈은 보통의 피가 아니다.

구루벨의 축복이 가득 담긴 피다.

바꿔 말하자면 구루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힘이 담겨 있다.

즉, 대전의 수목원에 봉인되어 있는 외신은 절반가량의 봉인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구루벨의 힘까지 일부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머리가 아프네요. 솔직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습니다.”

김영운은 머리를 싸맸다.

그만큼 시현이 말한 정보가 김영운에게 혼란을 준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본 미래를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죽음뿐이다.

정신을 차린 김영운은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연히 시현도 같은 심정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또 주머니 탈탈 털리겠네.”

뭐라 중얼거리는 시현의 얼굴에서 짜증이 엿보일지언정, 포기나 공포 따위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뭐가 되었던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을 확인한 김영운의 떨림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역시…….’

그는 웃었다.

시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쉬도록 하죠. 내일 소속 구원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대전으로 향할 인원을 추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혹시 지내시는데 불편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별 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웃는 시현을 보며 김영운은 확신했다.

‘리더에게는 죄송하지만, 제 생각에는 당신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무이한 구원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 * *

한소현은 Re write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쭉 영웅적 행보를 이어 왔다.

사도였기에 각성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생략할 수 있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다른 참가자들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원작의 지식을 살려 예언자, 천리안을 확보.

그를 토대로 부산을 장악했다.

부산에도 참가자라는 이름의 경쟁자는 다수 존재했다.

그러나 무력한 인간의 몸으로 악마와 맞서 싸우며 각성을 해야 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사도인 한소현은 출발선부터가 달랐다.

그들이 각성을 마쳤을 때.

이미 한소현은 부산 전체를 장악하고 난 후였다.

그녀가 보여 준 폭발적인 성장력은 당연히 독자들의 흥미를 샀다.

그녀의 랭킹 또한 천청부지로 솟구치더니 압도적인 차이로 랭킹 1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부동의 1위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윤시현…….”

그녀는 그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강하기도 하며, 본인은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정의로운 구석도 있다.

원하는 소설의 엔딩도 한소현과 거의 흡사하다.

손을 잡으면 분명히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이기에,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시현과는 어느 정도 선을 그어 두고 행동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정상에 서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가 시현이라도 그것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랭킹 1위 한소현.

랭킹 2위 윤시현.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강한 확신이 생긴 것은 얼마 전 교단과의 전쟁에서 호텔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였다.

‘겨우 그 정도 전력으로 교단을 제압하다니……. 바꿔 말하자면 등대와도 대등한 수준으로 싸울 수 있다는 소리잖아.’

즉, 휘하에 있는 세력 간의 전투력 차이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한소현의 레벨이 시현보다 높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참 뒤떨어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시현은 본인의 권능 외에 아르하의 권능까지 손에 넣지 않았던가.

‘만약 내가 사도가 아니었다면…….’

단언컨대 부동의 랭킹 1위는 자신이 아닌 시현이 되었을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무언가 행동을 해야만 한다.

따라잡힐 것 같으면서도 겨우 몇 걸음 앞서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치고 나가 시현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달아나야 했다.

다행히도 이를 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걸 누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랭킹이 뒤바뀔 것이다.

“김영운은 위험하니까 본진에 처박혀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지.”

한소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에 수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 한소현이 취할 행동은 간단했다.

“대전으로 가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고 의구심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절대적인 복종.

그것이 등대의 구원자들이 한소현에게 바치는 절대적인 충성심이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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