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이런 불안한 느낌은 대게 맞아 떨어졌다.
이찬열은 황급히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마트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도 주유소에서 마트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휘발유와 경유를 네 통이나 들고 있었지만, 4레벨 구원자인 이찬열은 금방 마트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도로의 교차로에 일행이 타고 있을 차량 세 대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이찬열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 비…….”
마트의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붉게 물든 하늘에서 피처럼 붉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고작 비 아닌가.
별 일 있겠는가 싶어 붉은 하늘 아래로 진입하려는 순간.
툭.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앵무새였다.
“하, 하늘아?!”
이찬열은 크게 당황했다.
앵무새의 정체는 리더인 정아윤이 기르는 애완 앵무새 하늘이였다.
새장에 얌전히 있어야 할 놈이 어째서 하늘을 날고 있었으며, 그 건강하던 놈이 어째서 바닥으로 추락해 이런 기괴한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꾸에에에엑!”
앵무새는 비명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며 기괴하게 몸을 뒤틀고 있었다.
몹시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어떻게든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밀려는 순간이었다.
“리더 명령…… 도망…….”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겨우 한 마디를 토한 앵무새가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아끼던 애완 앵무새의 죽음에 이찬열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옥과도 같은 세상은 이찬열이 애완 앵무새의 죽음을 애도할 짧은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앵무새의 뼈가 뒤틀렸다.
입이 쩍 벌어지며 촉수 다발 여러 개가 빠져나와 멋대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앵무새의 눈이 돌아가더니 흰자위 부분에 핏줄이 과도하게 도드라졌다.
몸을 일으킨 앵무새는 촉수를 앞세워 이찬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이찬열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공격을 회피했다.
공격에 실패한 앵무새는 축 늘어졌다.
꿈틀거리던 촉수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대체 뭐냐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붉은 영역이 조금 더 넓어졌다.
이찬열을 공격하느라 붉은 영역 밖으로 빠져나간 앵무새 역시 붉은 영역에 다시 진입하게 되었다.
촉수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이찬열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설마…… 저 하늘과 비 때문인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붉은 비는 이찬열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는 입고 있는 겉옷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어떻게든 붉은 비가 몸에 직접 닿는 것만큼은 막을 생각이었다.
그는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마트를 향해 달려갔다.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차 안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이찬열은 곧장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수석에는 정아윤이 앉아 있었다.
“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붉은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 벗어나야 해. 다른 사람은?”
“……재민이 언니랑 종석 오빠는 멀리서 내리는 붉은 하늘에 대해 조사해 보겠다면서 그쪽으로 간 후 소식이 끊겼어.”
“…….”
이찬열은 침묵했다.
붉은 비에 맞은 앵무새가 어떤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는지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는가.
그 두 사람은 가망이 없다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진혁이 아저씨는…… 죽었어. 붉은 비가 신기하다면서 맞고 다니다가 이상한 촉수 괴물이 돼서 공격해 오는 바람에…… 내가 죽였어.”
정아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에 침울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는 정아윤을 위로했다.
그 역시 동료의 죽음이 안타까웠지만,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우선이었다.
일단 붉은 비가 내리는 구역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 사항이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자.”
“그 전에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가 되었건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나서 이야기하자.”
“나 좀 죽여 줘.”
“……뭐?”
막 시동을 걸고 있던 이찬열은 당황해서 정아윤을 바라봤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정아윤의 피부에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눈에도 마찬가지다.
“진혁이 아저씨가 촉수 괴물로 변할 때, 지금의 나와 비슷한 전조 증상을 보였어. 정말 조금이기는 한데 나도 비를 맞았거든. 너도 조심해. 저 비엔 뭔가가 있어.”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사실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해했다.
그러나 이찬열은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저 받아들이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작 비 때문에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들 전부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어리광을 받아 주지 않았다.
정아윤은 눈을 감았다.
그러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그걸로 끝.
영원한 안식에 접어들었겠지만 붉은 비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안식을 맞이하지 못했다.
심장이 멈춰 있는데도 정아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붉은 핏줄이 가득한 흰자뿐이다.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힌 정아윤의 입에서 붉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붉은 촉수는 이찬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찬열은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머리로는 정아윤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검에 손을 가져갔지만, 그럴 때마다 활짝 웃는 정아윤의 얼굴이 생각났다.
[우어어어!]
[캬아아아!]
후드를 눌러쓰고 빗속을 달리는 이찬열을 향해 악마들이 달려들었다.
악마들 역시 붉은 촉수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찬열은 그저 도로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망가져서 바닥에 떨어진 도로 표지판에는 수목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 * *
수많은 바퀴벌레 앞에서 시현은 결국 도망을 선택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나약함을 애써 견뎌 내며 검은 기운을 모아 바닥을 때렸지만, 시현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 버렸다.
<대상이 돌연변이 개체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공포가 무력화됩니다.>
현 시점에서 시현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광역 기술이 막혀 버렸다.
상대는 고작 소형 악마.
그러나 직접적으로 적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공포심을 극한까지 자극할 뿐인 처형의 권능으로는 공포에 면역을 가진 적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다.
물론 맹세의 확보를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현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곧장 본진으로 귀환했다.
“그러니까 벌레 퇴치를 도와달라 이 말인가요?”
시현이 도움을 요청한 인물은 자타공인 최고의 광역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나연이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시현의 부탁이 무엇이 되었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나연은 달랐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인지 팔짱을 끼고 매섭게 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전에 오빠, 저희랑 약속했죠? 상의도 없이 어디 싸돌아다니면서 사고 치고 다니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거라고.”
“음…… 상의했잖아.”
“그건 상의라고 하지 않아요. 일방적인 통보라고 하지.”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시현은 시선을 피했다.
시간 절약을 위해 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이나연과의 약속을 어긴 것은 분명했으니까.
결국 이나연은 한숨을 토했다.
“알겠어요, 도와드릴게요.”
“고맙다.”
“그 대신 다음에는 어디 갈 때 꼭 저한테 말해 줘요. 저희도 욕심은 안 부릴게요. 구원자 중 딱 한 명만 데려가요. 정말 위험한 순간, 오빠 대신 고기 방패로 쓸 수 있게.”
“……어, 응.”
한순간 드러난 이나연의 어두운 면모에서 시현은 애써 눈을 돌렸다.
그렇게 시현은 이나연과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불탄 타워를 목격한 이나연의 두 눈동자가 미친듯 떨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눈동자는 불탄 타워의 주변을 날아다니거나 외벽에 달라붙어 있는 대량의 바퀴벌레에 향해 있었다.
“우와…… 무슨 바퀴벌레가 저렇게 커? 게다가 징그럽게도 많네.”
“바퀴벌레 싫어해?”
“그러면 세상에 바퀴벌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징그럽고 더러운데. 어쨌거나 저거 청소하면 되는 거죠?”
다행히도 이나연은 시현만큼 바퀴벌레를 혐오하지 않았다.
조금 미간을 찡그릴 뿐, 그녀는 손을 쉽게 뻗었다.
무언가를 감지한 건지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러곤 손끝에 강렬한 기운을 모으고 있는 이나연을 향해 일제히 달려든다.
“으아아아아! 폭풍! 폭풍!”
아무리 그래도 수백 마리에 달하는 바퀴벌레가 일제히 날아드는 건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폭풍을 연사했다.
콰아아아!
강렬한 바람이 날아드는 바퀴벌레들을 덮쳤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찢긴 것처럼 바퀴벌레의 잘려진 날개, 다리, 그리고 체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광경에 낮에 먹은 무언가가 올라올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생리적 혐오감을 부추기는 것 외엔 특별한 능력은 없었는지, 폭풍에 직격당하고 살아남은 바퀴벌레는 없었다.
“이제 끝난 거죠?”
“아니, 아직 더 있어.”
“젠장…….”
의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이나연을 강제로 이끌고 시현은 타워 안으로 향했다.
바닥이 무너지며 생긴 구멍은 붉은 고깃덩이로 막혀 있었다.
아직 타워가 완전히 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악마들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자연스레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현은 지하로 향하는 작은 구멍 앞에 섰다.
예상했던 대로, 아직 구멍 아래에서는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서로 날개나 더듬이를 비비고 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이나연은 사색이 되었다.
“설마 여기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니죠.”
“굳이 그럴 필요야 없지 않을까? 여기 구멍에 대고 권능을 사용하면 자연히 폭풍은 이 아래에 있는 공간을 쑥대밭으로 만들 텐데.”
“……아!”
기발한 생각이라고 좋아하며, 이나연은 곧장 구멍에 손을 뻗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공간에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기뻤던 모양이다.
그녀는 곧장 권능을 사용했다.
폭풍은 시현 발아래의 공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딛고 있는 바닥이 격하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타워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 머리 위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이 아래에서는 지상에서 봤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쓸고 지나간 후.
더 이상 아래쪽에선 혐오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한 번 내려가 볼까?”
“네. 그게 좋을 거 같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 중 솔선수범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가위바위보를 시작했고, 패배한 시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지하로 내려갔다.
다행히도 두 사람이 눈치를 보는 사이, 바퀴벌레의 시체는 재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곳곳에 검은 재만 쌓여있을 뿐, 바퀴벌레의 뜯겨진 다리나 날개가 나뒹구는 끔찍한 광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깔끔하게 잘 정리됐네.”
역시 이나연을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잿더미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구슬을 찾는 것뿐이다.
밀폐된 공간이라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지 잿더미는 자연히 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이 많은 잿더미를 하나하나 살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파다다닥!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끔찍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한 마리.
살아 있는 놈이 있었다.
하필이면 몸에 라디아턴트의 맹세를 박고 있는 그놈이었다.
“저놈이 돌연변이였구나.”
“저거 잡아 오면 되죠?”
바퀴벌레 떼는 무섭지만 단일 개체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시현을 뒤따라 온 이나연은 검에 소형화 한 폭풍을 휘감은 채, 바퀴벌레를 도륙내기 위해 내달렸다.
위기를 감지한 바퀴벌레는 어둠속으로 달아났고, 이나연 역시 그 뒤를 쫓아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돌연변이 개체라 해도 기껏해야 소형.
3레벨 구원자인 이나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시현은 여유롭게 그녀가 맹세를 회수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쿵. 쿵.
“……고작 소형 상대로 너무 요란하게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 천장이라도 무너지면 어쩌려고.”
안쪽에서 들려온 소음을 이나연이 날뛰는 것이라 판단한 시현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아아아!”
저 멀리서 이나연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빈손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어둠 속에서 뻗어나온 촉수 하나가 이나연의 발목을 붙잡았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