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바선생.
정식 명칭은 바퀴벌레.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혐오스러운 존재다.
마주치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그 끔찍한 존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이 되며 무려 사람의 머리통만한 크기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흉측한 외관은 그대로인 채 사람을 보면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흉포함마저 생겼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악마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 한 번이라도 바선생을 만나본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 이름을 꼽을 것이다.
“이제 어쩐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시현은 고민했다.
아무리 5레벨 구원자가 됐다지만, 시현도 결국은 인간.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
바퀴벌레는 시현이 싫어하는 생물군 중 당당하게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놈이고.
“저 지네랑 나방 때문에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건 어려울 거 같고. 결국은 정면 돌파밖에 없다는 뜻인데.”
그것만은 싫었다.
가능하다면 저 우글거리는 대형 바퀴벌레 틈새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시현은 전에 없을 만큼 맹렬한 기세로 두뇌를 회전시켰다.
그 결과, 나쁘지 않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불을 질러 버릴까?”
서울의 상징 중 하나인 남산 타워에 불을 지른다니.
누가 들으면 천인공노할 짓이라며 온갖 욕을 퍼부었을 테지만, 지금의 남산타워는 서울의 상징이 아니라 악마의 집결지다.
불태워도 문제될 게 없는 상황.
더군다나 주변에 땔감이 가득하고 타워를 덮고 있는 것들도 굉장히 불에 타기 쉽다.
심지어 주변 주차장에는 버려진 차들이 가득하다.
거기에서 휘발유를 확보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남산타워라도 금방 불타 버릴 것이다.
“좋아, 불 지르자. 대형 악마의 공격에도 멀쩡한 라디아턴트의 맹세가 고작 불 따위로 타서 없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남산타워와 함께 그 끔찍한 생물들을 싹 다 태워 버리는 거야.”
시현의 눈이 의욕으로 타올랐다.
먼저 주변의 폐차들을 뜯어 휘발유를 확보한 시현은 최대한 손이 닿는 부분까지 골고루 뿌렸다.
그러곤 마른 나무들을 주워서 주변에 설치했다.
운이 좋게도 주차장에 있는 차량 중 담배와 라이터가 구비되어 있는 차량이 한 대 존재했다.
시현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남산타워에 불을 질렀다.
화륵!
라이터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엄청난 속도로 번져 나갔다.
휘발유를 잔뜩 머금은 마른 가지부터 시작해 타워를 덮고 있는 붉은 고깃덩어리, 그리고 지네 형태 악마의 등에 불이 번져 붙었다.
갖은 물질들을 태우며 발생한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타워 위를 비행하던 나방들은 연기로 인해 추락해 비틀거렸다.
“쉽네.”
화공을 이용해 수많은 벌레들을 간단하게 청소한 시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 남산타워는 바퀴벌레가 끔찍이도 싫었던 어느 구원자의 손에 의해 완전히 타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지자 불길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시현은 문을 열었다.
“윽…….”
뜨거운 열기가 피부에 확 와 닿았다.
대부분의 불길은 사라졌지만, 안쪽에는 아직도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 외에 보이는 것은 벌레들이 타 죽으며 생긴 잿더미 뿐.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끔찍한 생물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이네.”
진심으로 안도한 시현은 타워 어딘가에 있을 라디아턴트의 맹세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내부를 살폈다.
참기 힘든 열기와 연기가 탐색을 방해했지만, 구원자인 시현에겐 심각한 수준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시현은 곧바로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당연히 전망대 어딘가에 구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현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망대는 무안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거하게 허탕을 친 시현은 한 계단씩 내려오며 구슬이 있을 법한 장소는 기본이요, 저 안에 과연 구슬이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작은 틈새까지 빠뜨리지 않고 모두 탐색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라디아턴트의 맹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사기당한 건가?”
한순간 울컥하기는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상대는 발푸르기스.
일단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이기에 늘 인과율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침묵했으면 침묵하지, 무의미한 말, 혹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실행한 탐색에서 허탕을 친 시현의 표정은 한 층 더 심각해졌다.
“빠뜨린 부분은 없는 거 같은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샤샤샤샥.
“……?”
무언가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가 시현의 귀에 포착되었다.
불길이 모든 것을 태워 버렸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장소.
따라서 시현이 중얼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는 게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끔찍한 소리에 시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소리는 시현의 발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가 최하층인데……. 밑에 뭐가 더 있나?”
혹시나 싶어 주변을 살피던 시현은 무너진 잔해에 감춰져 있던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구덩이의 크기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정도로 작았다.
그 구덩이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좋지 않은 예감이 든 시현은 나뭇가지와 천, 휘발유를 이용해 임시 횃불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고는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사사삭!
검은 무언가가 빛을 감지하고는 사방으로 도망가는 게 시현의 눈에 보였다.
“……신이시여.”
눈을 질끈 감은 시현은 믿지도 않는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시현을 배신했다.
파다다다닥!
우렁찬 날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구덩이로부터 검은색의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거대한 바선생의 등장이었다.
시현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려 달아났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 출구를 향해 달렸으나, 너무 힘을 낸 게 문제였다.
와르르!
“……어?”
화재로 인해 약해져 있던 지면은 5레벨 구원자인 시현이 전력을 다해 찍어 누르는 힘을 견뎌 내지 못했다.
바닥은 붕괴했고, 시현은 뭔가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밑으로 추락했다.
시현의 착지 지점에 있던 검은 무언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현은 급하게 스마트 폰의 빛을 이용해 어둠을 밝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기다란 더듬이를 흔들며 시현을 경계하고 있는, 헤아리는 것조차 어려운 거대한 바퀴벌레 무리였다.
“…….”
그것들을 응시하는 시현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미친 듯 흔들렸다.
지상에 강림한 발푸르기스의 위압감을 몸으로 받아 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량의 땀이 흘러내렸다.
* * *
“아…… 드디어 끝났다.”
할 일을 모두 마친 한천식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더니 곧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는 짓이나 외형으로만 보면 게으른 나무늘보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그는 이틀 밤을 새워 가며 작업에 매진했다.
그에게는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
때문에 이한울은 굳이 그를 흔들어 깨우거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천식의 역할은 끝났어. 더 이상 한천식에게는 가치가 없어.’
그를 방치해 둔 이한울은 긴 복도를 지나 밖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꺾으면 높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는 바람을 타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구름을 그저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손으로는 망가진 귀걸이를 쉬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주변에 들어 주는 이 하나 없건만.
이한울은 마치 누군가에게 전하기라도 하듯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혼잣말을 시작했다.
“게임 오버된 참가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되살릴 수 없단 말이지. Re write에서 승리해 아무리 시간을 되돌리고 역사를 수정해 봤자 거기에 너는 없을 거야.”
이한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면, 새어머니의 모진 학대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설아를 모른 척한 과거가 떠올랐다.
수십, 수백 번을 참다가 단 한 번 용기를 내서 행한 반항 때문에 범죄자가 되어야만 했던 이설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때문에 이한울은 목숨을 걸고 Re write에 참가했다.
사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가 굳이 Re write에 참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이설아를 위해.
그녀의 불행한 인생을 바꿔 주기 위해.
그것만을 위해 Re write에 참가했다.
하지만 정작 이설아는 죽고 없었다.
“역시 너를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참가자 목록을 쭉 훑어봐도 이설아의 Re write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한 죽음.
두 번 다시 이한울은 이설아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랭킹 3위 이한울.
그 단어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이한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떻게든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지막 피날레를 앞두고 3이라는 숫자를 1로 바꿔 놓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승리를 향한 욕망은 깨끗하게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제 이한울에게 남은 것은 윤시현을 향한 끝을 모르는 분노뿐이었다.
이한울은 몸을 일으켰다.
망가진 귀걸이를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은 이한울은 수목원의 중심부로 향했다.
마른 가지가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수목원의 중심부에는 정체불명의 구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의 직경은 적게 잡아도 100여 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끝에 선 이한울은 가방에서 주사를 꺼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붉은 액체가 담긴 주사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이한울은 그것을 자신의 팔뚝에 꽂았다.
두근.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 같이 죽자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이한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덩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얼마 후.
콰아아아아!
구덩이로부터 붉은 액체가 솟구쳐 올랐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액체는 구름을 뚫고 오르더니 둥근 달을 빚어냈다.
달이 떠 있는 곳을 중심으로 푸르고 깨끗하던 하늘이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고 불길한 암적색의 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부터 붉은 액체가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이 지배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비가 내리는 범위도 점점 증가했다.
“이런 미친!”
수목원의 지하로 이어지는 구덩이로부터 빠져나온 한천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한울 이 미친 새끼!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 뒤통수를 후려쳐? 아니, 이설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저 정신 나간 놈이 무슨 일을 저지를 거란 걸 예상했어야 하는데. 망할, 망할! 그 새끼는 충분히 제 목숨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정신병자란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분개한 한천식은 주먹으로 강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검은 흙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그의 분노를 표현했다.
툭.
어느덧 영역은 한천식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붉은 비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것을 확인한 한천식은 황급히 신발을 벗어 던지고 통로 안쪽의 복도로 피신했다.
어느덧 붉은 비는 수목원 전체를 뒤덮었다.
“랭커는 물 건너갔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고, 아주 제대로 망했네.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믿은 내 죄지 뭐.”
헛웃음을 흘리던 한천식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붉은 비 아래로 걸어 나갔다.
* * *
최초로 붉은 하늘과 달을 발견한 이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구원자 이찬열이었다.
“어?”
막 마트를 탐색하고 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 붉은 달과 하늘이 비춰졌다.
“노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붉은데. 다들 이쪽으로 와 봐요!”
그는 마트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주변 악마들은 싹 다 정리했기 때문에 다소 목소리를 높인다 해서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뭔데? 무슨 일인데?”
“갑자기 왜 그래? 괜찮은 모포 발견했는데 너 때문에 잠깐 시선 돌렸다가 진규한테 빼앗겼잖아.”
“개꿀.”
마트 안에서 몇 명인가 사람들이 나왔다.
인원은 총 다섯.
딱히 정착지를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구원자들이다.
이찬열의 부름에 따라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마찬가지로 붉은 하늘을 발견하고는 입을 쩍 벌렸다.
“와우, 저게 대체 뭐다냐.”
“요즘 들어 수도권에서 대형 악마가 판을 친다던데. 대전에도 대형 악마가 등장하려는 거 아니야?”
“음…… 그러면 또 대전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네. 대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편의점이 많이 있어서 조금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는데.”
일행 중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를 맡고 있는 정아윤의 말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윤은 마트에서 챙겨 온 물자들을 차량에 실었다.
“출발은 세 시간 후로 하자. 그 때까지 챙길 수 있는 물자는 최대한 챙겨. 아, 찬열이는 기름 좀 부탁해. 3번 차량에 기름 모자라더라.”
“맨날 귀찮은 건 나 시키더라.”
“어쩌겠어. 네가 우리 중 유일한 4레벨 구원자인데.”
“하긴,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까불지 말고. 늘 말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알았다니까. 누가 보면 네가 내 엄마인 줄 알겠어.”
“엄마였으면 등짝이라도 때려서 말 좀 잘 듣게 만드는 건데.”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이대로는 언제까지고 잡담이 늘어질 것 같았기에 적당히 말을 끊은 이찬열은 기름이 있을 주유소로 향했다.
일행 중 레벨은 이찬열이 가장 높지만 지도자로서의 면모는 정아윤이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모두의 존경을 사고 있었고, 이찬열 역시 마찬가지로 그녀를 존경했다.
가끔 참가자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삐딱한 척 하면서도 순순히 그녀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단 네 통이면 되겠지?”
기름통 네 개에 휘발유와 경유를 가득 채운 이찬열이 허리를 폈다.
스트레칭을 하던 그는 멀리 보이던 붉은 하늘이 상당히 가까워졌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번지는 건가?”
일행이 있을 마트의 하늘 또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