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콜로서스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뭐……. 당연히 화가 나겠지.’
시현은 콜로서스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덩치가 작아 한 끼 식사로도 쓸 수 없으며, 기껏해야 간식거리로나 사용하던 인간이.
먹잇감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덤벼든 것으로도 모자라, 굴욕까지 맛보게 하지 않았던가.
아마 동면 상태에 빠진 동안에도 끊임없이 시현을 향한 분노를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머맨들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을 일으킨 부하들을 사정없이 짓밟으면서 말이다.
거구에 짓눌린 늪개구리나 머맨들이 내장을 쏟으며 터져 나가는데도 콜로서스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콜로서스의 오감은 이미 시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일단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고……. 남은 건 저놈을 어떻게 잡느냐는 건데.”
지금까지 시현은 총 세 마리의 대형과 한 마리의 초대형을 토벌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본인의 힘으로 처치한 악마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현무를 토벌할 때는 인천연합의 구원자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그드라실을 토벌할 때는 정훈의 이름에 꼬인 파리들을 이용했고.
히드라와 아르베니아의 경우 두 대형 악마를 싸움 붙여 놓고 서로가 피폐해진 틈을 노렸다.
순수하게 본인의 무력을 이용해 토벌한 경우는 없다 봐도 무방하다.
‘보통이라면 그런 무식한 짓은 하지 않지만…… 이제 5레벨이 됐으니 한 번 도전해 볼 가치는 있지 않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움,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벌써 많은 희생을 치른 교회의 구원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돼서 조금은 반갑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형 악마와 정면으로 맞부딪칠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시현의 신체 능력은 일반적인 5레벨 구원자를 초월해 있다.
패널티로 인해 아르하의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지만, 아르하의 축복으로 상승한 신체 능력까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 시현의 신체 능력은 거의 6레벨에 필적해 있다 봐도 무방했다.
6레벨.
네임드나 군주가 머무르고 있던 영역이다.
‘원작의 이나연은 5레벨에 단신으로 대형을 토벌했어.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어느덧 콜로서스의 주먹이 시현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시현은 검을 늘어뜨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늘어뜨린 검을 두 손으로 붙잡고 권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휘두른다.
콰앙!
검과 주먹.
단어만 늘어놓고 본다면 검이 우세해 보이지만 실상은 주먹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무려 대형 악마 콜로서스의 주먹이다.
그 크기는 미터 단위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렇기에 검은 거대한 주먹의 피부조차 베어 내지 못한 채 짓눌려 패배했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그림을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버틸 만하네.”
시현은 웃고 있었다.
다소 버겁기는 하지만 충분히 버틸 만한 힘이었다.
두 다리로 딛고 있는 대지가 움푹 파이고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발생했지만, 시현의 육신은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크르르르…….]
자신의 공격이 정면에서 막힐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콜로서스는 크게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번으로 안 된다면 여러 번 공격하면 될 일이다.
콜로서스는 두 팔을 이용해 마구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현은 온 정신을 집중해 콜로서스의 공격을 쳐냈다.
쾅! 콰앙!
검과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무우우움!]
[무움?!]
주변에 있던 머맨들은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날려지기까지 했다.
“와 씨…… 저게 뭐냐?”
“저거 알고 보니 시현 님의 탈을 쓴 괴물 아니야?”
생존자들도 얼이 빠져 되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대형 악마와 힘겨루기를 하다니.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지금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꿈이라 생각된 것이다.
모두가 한 인간과 대형 악마의 싸움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시현 님께서 콜로서스를 상대하고 계신 지금이 기회입니다!”
임태연은 목청껏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구원자들은 무기를 쥐고 머맨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목재 건축물이라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로서스가 깨어나 버린 지금.
더 이상 목재 건축물에 가치는 없다.
그렇기에 구원자들은 각자 가장 자신 있는 싸움 방법을 채택해 머맨 무리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캬아아악!]
시현을 압박하던 콜로서스가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높이 치켜든 손등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콜로서스를 지켜 주던 두꺼운 외피가 파괴되고 만 것이다.
“멍청하긴.”
그런 콜로서스를 시현은 조롱했다.
콜로서스의 공격을 막을 때, 시현은 검의 면 부분이 아니라 날 부분을 이용해 막았다.
정확하게는 막았다기보다는 쳐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심지어 시현의 권능은 성장을 거듭하며 상처를 덧내는 것뿐만 아니라 거슬리는 외피를 깎아 내는데도 최적화 되어 있다.
제 아무리 대형이라도 검 날에 대고 몇 번이나 주먹질을 반복했는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촤악!
콜로서스의 손등에 난 상처가 덧나며 추가로 출혈이 발생했다.
그제야 콜로서스의 안에서 신중함과 경계심이 분노를 뛰어넘었다.
시현을 건방진 사냥감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적으로 분류한 콜로서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입을 크게 벌리고 목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냈다.
촤르르르륵!
콜로서스의 입 안에서 빠져나온 것은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붙어 있는 척추뼈였다.
“……아, 그러고 보니 콜로서스는 제 위장 속에 자신이 사용할 무기를 저장해 놓는 놈이었지. 사망한 제 부모의 척추를 무기로 만들었다……. 라는 미친 설정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은데.”
듣기만 해도 섬뜩한 설정에 시현이 기가 막혀 하는 사이.
무기의 점검을 마친 콜로서스가 본격적으로 채찍질을 가했다.
척추뼈의 크기가 워낙 커서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일정 지역이 초토화됐다.
가장 피해를 입은 건 머맨이었다.
[무우우우움!]
[무움! 무움!]
머맨들은 자신들의 대장에게 호소했으나, 이미 분노에 미친 콜로서스의 귀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물론 시현이라 해서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큭!”
콜로서스의 공격을 막은 시현은 작게 신음했다.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먹을 쓸 때보다 공격력이 한 단계는 오른 느낌이었다.
“오래 끌어서 좋을 건 없겠네.”
속전속결.
체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싸움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시현은 조금 더 과감하게 행동했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척추뼈를 막아내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며 회피를 선택했다.
콰앙!
공격 범위가 말도 안 되다 보니까 완전 회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비껴 맞았는데도 외피가 상당 부분 깎여 나간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4∼5번 정도는 버텨 주겠네.’
시현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채찍의 장점이라 하면 강한 공격력과 넓은 범위, 그리고 변화무쌍한 공격 방식이다.
하지만 모든 게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장점이 뛰어난 만큼 단점 또한 명확하다.
다른 병장기에 비해 다루기 힘들며, 공격 후 회수에 시간이 걸린다.
그뿐이랴.
공격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콰앙!
다시 한번 콜로서스의 공격이 시현에게 꽂혔다.
이번에는 회피가 늦어 제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콜로서스와 거리가 가까워진 덕에 위력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제야 시현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콜로서스가 머뭇거렸다.
채찍의 최대 공격력을 발휘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느냐, 아니면 자존심을 세우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콜로서스의 결단을 빨랐다.
[캬하하하하!]
놈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뒤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채찍을 짧게 잡고 더 난폭하게, 강하게 휘둘러 댔다.
제 딴에는 공격 범위를 줄이고 공격력을 높이겠다는 심산이었겠지만, 시현의 입장에서는 사거리와 함께 채찍 특유의 변화무쌍함이 사라져 오히려 반갑기만 했다.
덕분에 시현은 콜로서스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 봤는데.”
시현은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콜로서스가 어느덧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자리해 있었다.
“네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질 것 같지가 않아.”
그건 오만방자함 같은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콜로서스가 보여 준 전투력과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고 내놓은 결론이었다.
대형 악마.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압도적인 재앙과도 같은 존재.
그러나 지금의 시현에겐 대형 악마 콜로서스는 재앙 같은 게 아니었다.
싸워 보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시현에게 대형 악마란 경험치를 많이 주고 좋은 드롭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그런 형편 좋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캬하하하학!]
코앞에 있는 시현에게 채찍을 휘두를 방법이 없었던 콜로서스는 결국 원시적으로 회귀해 주먹을 휘둘렀다.
시현은 날아오는 주먹을 칼로 쳐냈다.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콜로서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현은 안으로 파고들어 검을 내질렀다.
핏빛 칼날은 정확하게 콜로서스의 가슴을, 심장이 있는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콜로서스는 죽지 않았다.
[카아아아아!]
오히려 더욱 분개할 뿐이었다.
제법 날이 긴 검이었지만, 대형 악마의 가죽과 근육을 찢고 들어가 심장까지 닿기에는 한참 길이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차피 시현의 공격이 자신에게 치명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콜로서스는 들고 있던 척추뼈를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시현을 붙잡으려 했다.
양쪽에서 짓눌러 압사시키려는 심산이 틀림없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손바닥을 보면서도 시현은 태연하게 웃었다.
“대형도 생각만큼 강하지는 않네.”
뿌리까지 삼켜진 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푸확!
콜로서스의 등을 뚫고 빛의 검이 빠져나왔다.
콜로서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현은 검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어 뽑아냈다.
승리의 영광으로 인해 세 배는 길어진 검에 콜로서스의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콜로서스는 뻥 뚫린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터진 강둑이었다.
손 틈 사이로 계속해서 피가 쏟아졌고, 콜로서스는 버티다 못해 완전히 쓰러지고 말았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시현을 한참이나 응시하던 콜로서스는 결국 숨이 끊어졌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던 시현은 웃었다.
“이제 대형 정도는 아르하의 권능이 없더라도 잡을 수 있게 됐구나.”
벅차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재앙이라 불리는 대형 악마를 단신으로, 그것도 아르하의 권능이 봉해진 상태에서 토벌하는데 성공했다.
시현이 아직 0년차 구원자임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업적이다.
“그토록 귀찮았던 댓글이 이럴 때는 좀 그립네. 미운 정이라도 든 건가?”
시현이 뭔가 경이로운 업적을 세울 때마다 호들갑을 떨어 대던 댓글들.
처음 눈에 안 보이게 됐을 때는 그저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없으니 아쉬운 것으로 보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생각됐다.
[무움! 무움!]
[무우우우!]
믿었던 대장을 잃은 머맨들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면 구원자들은 무기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질렀다.
“우오아아아아!”
“윤시현! 윤시현!”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머맨들을 밀어붙이는 구원자들의 사기는 이미 한계를 뚫고 나간 것처럼 보였다.
호기롭게 뭍으로 올라온 머맨들은 머지않아 청소될 것이고, 교회는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시현 님, 고생하셨습니다. 0년차에 대형 악마를 단신으로 처치하다니, 역시 시현 님!”
구원자이자 동시에 참가자이기에 시현이 세운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는 임태연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태연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시현 님에 비하면 별거 아니죠. 뒷정리는 저희가 할 테니 시현 님은 푹 쉬세요. 연락해서 따뜻한 물이라도 준비하게 할까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
시현의 목적은 콜로서스를 토벌하는 게 아니다.
붉은 머맨을 토벌하고 놈이 가지고 있는 맹세를 확보하는 것.
그렇기에 아직은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시현은 붉은 머맨을 찾았다.
혼자만 튀는 색상을 하고 있었기에 놈을 찾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우우움!]
콜로서스가 심장을 찔렸을 때부터 붉은 머맨은 휘하 머맨들을 이끌고 한강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지금 놓치면 상당히 귀찮아질 거야.’
한강은 넓고 물속은 머맨을 위한 무대다.
더군다나 천리안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놈이 작정하고 도주하기라도 하면 굉장히 일이 귀찮아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놈이 뭍에 있을 때 일을 끝낼 필요가 있었다.
시현은 몸을 날렸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