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교회는 상대적으로 덩치에 비해 약한 세력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네크로맨서 사건으로 많은 수의 구원자들을 잃어버렸고,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게다가 구원자들의 평균 레벨은 다른 세력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소형 악마인 머맨과 중형 악마인 늪개구리로 구성된 군세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세력이라면 사전에 만들어 놓은 바리케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세를 막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머맨들이 노리는 건 교회를 습격해 자신들의 먹이창고를 채우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이자 왕인 대형 악마 콜로서스를 구하기 위해 목재 건축물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임태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대형 악마 콜로서스가 동면 상태로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호흡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면 콜로서스는 동면 상태에서 벗어나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목재 건축물을 지켜야 했다.
“리더,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한강 둔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몰려드는 머맨의 숫자에 겁을 먹은 구원자가 임태연의 지시에 반박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 구원자들도 생각하는 건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임태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놈들을 막지 못하면 동면 상태의 콜로서스가 깨어날 겁니다. 머맨과 싸운다면 구원자 중 일부가 죽겠지만, 콜로서스가 깨어나면 교회를 포기해야 할 겁니다.”
교회를 포기한다.
즉,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모든 인프라를 버리고 새로운 생존지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떠돌이 생활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여러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가족들이 죽어 나갈 겁니다. 모든 인원을 수용할 새로운 생존지를 찾아낼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어쩌면 여기 있는 모두가 새로운 터전을 찾아내지 못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일부를 잃느냐, 모두를 잃느냐.
선택을 하라면 누구라도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목숨은 똑같이 고귀한 거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현실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임태연의 설득에 구원자들은 못마땅한 듯하면서도 전장으로 나섰다.
그 희생되어야 할 일부가 자신들인데 기꺼울 리가 없다.
임태연과 구원자들은 목재 건축물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방패조가 선두에 서고 강한 공격력을 가진 구원자가 뒤에 서는 가장 기초적인 진형이다.
워낙 시간이 없어 이 정도밖에 준비하지 못했다.
물론 생존자들이라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총, 그게 없으면 아쉬운 대로 활로 무장한 생존자들은 교회 주변에 쌓아 놓은 목재 울타리 위로 올라가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 듯했다.
그리고.
[캬아아아!]
전투가 시작되었다.
족히 3미터 이상 뛰어오른 머맨은 창을 역수로 쥐고 앞에 보이는 구원자를 향해 내리꽂았다.
경험이 많은 구원자였다면 방패로 막거나 회피하겠지만, 해당 구원자는 아니었다.
“으어아악!”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구원자의 정수리에 창이 꽂히려는 순간.
“정신 차려!”
옆에 있던 경험 많은 구원자가 검으로 머맨의 심장을 찔렀다.
펄떡거리는 머맨의 창은 정수리로부터 약 2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파르르 떨리다가 바닥으로 향했다.
“진짜 정신 똑바로 차려라, 죽기 싫으면.”
“……네.”
고개를 끄덕인 구원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늪개구리가 높이 뛰어오르더니 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구원자들을 손쉽게 뛰어넘었다.
늪개구리의 등 위에 있던 머맨들은 뛰어내려 방패조의 뒤를 노렸고, 늪개구리는 그대로 몸을 던져 공격조를 노린다.
“끄아아악!”
안 그래도 덩치가 있는 놈이 높은 점프력을 이용해 위에서부터 몸으로 깔아뭉개니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생겼어도 늪개구리는 나름 중형 악마 아닌가.
아래에 깔려 있는 구원자를 구하려 해도 외피가 방해였다.
심지어 채찍과도 같은 위력을 가진 혓바닥을 이용해 구원자들의 접근을 막기까지.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공격조 뭐 하고 있어? 앞에! 앞에 몰려온다고!”
공격조가 늪개구리와 씨름하고 있는 사이, 방패조의 비명이 높아졌다.
그들은 개미 떼처럼 몰려온 머맨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전투원들이 활과 총을 이용해 지원해 주고 있었지만, 한참 부족하다.
역시 악마를 효율적으로 처치하기 위해서는 구원자가 나설 필요가 있었다.
“중형 악마에게 데미지를 주기 힘든 1레벨 구원자는 방패조를 지원하고 2레벨 구원자는 늪개구리를 집중적으로 퇴치, 그리고 3레벨 구원자는 사이에서 양쪽 모두를 지원해 주세요!”
임태연의 적절한 지시가 있었으나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머맨들은 점점 밀고 들어왔고, 방패조는 밀려났으며, 늪개구리에게 통째로 삼켜지는 구원자가 발생하는 등.
하나 둘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휘하는 임태연도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임태연의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목재 건축물의 벽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곳까지 밀려나고 만 것이다.
“제길…….”
임태연은 이를 갈았다.
[크르르르…….]
배후에서 섬뜩한 숨소리가 들린다.
콜로서스.
교회의 전력으로는 대적 불가능한 대형 악마.
언제 들어도 소름끼치는 놈의 숨소리는 임태연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콜로서스가 깨어나려 하고 있어…….’
동면 상태의 콜로서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간들의 같잖은 수에 감금되어 있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부하들이 몰려왔다는 것을.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시현 님께 부탁을 드리면…….’
자연히 시선이 한강으로 향했다.
지금쯤 물속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찾고 있을 시현의 도움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임태연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현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세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촐랑촐랑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다니.
수치를 안다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어느새 임태연은 정면이 아니라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해결을…….’
[무우우움! 무움!]
돌연 머맨 사이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임태연의 눈에 보인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있는 머맨이었다.
그 중심에는 핏빛의 검을 들고 있는 구원자가 있었다.
“시, 시현 님!”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구원자들 사이에서도 함성이 올라왔다.
희망의 강림이었다.
* * *
“진짜 더럽게 많네!”
뭍으로 올라와서 본 머맨의 수는 시현이 당초 예상한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이미 몇 마리를 베었는지 헤아리는 게 힘들 정도.
그런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 폭풍만 있었어도…….”
처형의 권능은 강한 힘을 가진 단일 개체를 상대로 뛰어난 위력을 보인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수의 약한 개체를 상대로는 그리 효용성이 좋은 권능은 아니다.
결국 무작정 검으로 하나하나 베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안에 이놈들을 청소할 수 있을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쪽의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시현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콜로서스가 봉인되어 있는 목재 건축물.
임태연을 필두로 한 교회의 구원자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보아하니 그리 오래 버텨 줄 것 같지는 않네. 기껏해야 10분? 일단 임태연 씨랑 합류를 해서…….”
화륵.
“음?”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태양이 떠 있었다.
정확하게는 태양이라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불덩어리가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태양의 아래에는 아까 본 적색 비늘의 머맨이 있었다.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좌우로 흔들고 있는 머맨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목책이 있었다.
“망할.”
저 불덩어리에 적중당하면 목재 건축물 따위는 아무리 튼튼해 봤자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전에 막아야 했다.
시현은 놈의 캐스팅을 막으려 했지만, 그 사이에 있는 머맨이 너무 많았다.
이미 수많은 머맨의 피를 먹고 한계까지 강해진 핏빛 칼날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최소 둘, 많게는 넷의 머맨들이 죽어 나갔다.
그러나 하나가 죽으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놈이 끼어드니 도통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어느덧 캐스팅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시현은 분실을 각오하고 검은 가시를 투척했다.
사실상 시현이 쓸 수 있는 마지막 한 수였다.
이게 성공한다면 캐스팅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우우우움!]
호위로 추정되는 머맨 하나가 몸을 던져 공격을 막았다.
온 몸에서 검은색의 가시가 솟아나 죽어 가는 도중에도 머맨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붉은 머맨의 캐스팅이 완료됐다.
붉은 화염의 덩어리가 날아오는데 제 아무리 구원자라 한들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피해!”
임태연의 지시가 있자, 구원자들은 일제히 좌우로 산개했다.
그러나 방패를 든 한 구원자는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저 불꽃을 막지 못했을 때 발생할 사건이 두렵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방어에 특화된 자신의 권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그는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방패를 앞세워 권능을 사용했다.
청색의 빛이 나선을 그리며 방패의 중앙 부분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으아아아아!”
그의 입이 열리고 아까와 같은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내지른 것은 기합이 아닌 비명이다.
그의 방패는 균열을 일으키더니 깨져 버렸고, 고열의 불덩어리는 남자를 집어삼켰다.
뼈나 남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걸로 끝났으면 다행이지만, 불덩어리는 기세를 잃지 않고 나아가 목제 건축물을 덮쳤다.
콰앙!
폭발이 발생하고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인간, 악마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장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온갖 소음이 난무하던 전장에 침묵이 깔렸다.
들려오는 소리는 떨어지는 빗줄기의 소리 뿐.
그 속에 하나의 소음이 섞여들었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
소리의 주인은 자신을 덮고 있는 끈적이는 점액을 빗물에 씻어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반쯤 망가졌던 목책이 완전히 파괴되며 거대한 몸집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코, 콜로서스……!”
그 날의 악몽을 떠올린 누군가가 절규했다.
[캬하하하하!]
콜로서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부활에 대한 기쁨.
그리고 분노를 가득 담은 포효였다.
감히 비겁한 수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얄팍한 수로 오랜 시간 봉인해 두었던 인간을 향한 끝없는 분노 말이다.
굳었던 몸을 푼 콜로서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교회의 구원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노려봤다.
그들을 향해 콜로서스의 끝을 모르는 분노가 쏟아졌다.
“끄윽…….”
대형 악마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짓눌린 구원자들이 하나 둘 뒷걸음질 쳤다.
콜로서스는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대로 내리쳐 앞에 있는 젊은 구원자를 압사시킬 작정이었을 것이다.
목표가 된 구원자는 공포심에 다리마저 굳은 건지 몸을 떨며 콜로서스의 주먹을 응시하기만 할 뿐, 피하려는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멍청하긴.”
작게 혀를 찬 시현은 옆에 있는 머맨의 복부를 찔렀다.
[우우우움!]
머맨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수 있게 일부러 즉사할 수 있는 급소는 회피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소를 노린 것이다.
머맨의 비명은 잠깐이지만 콜로서스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자연히 머맨을 찌르고 있는 시현과 콜로서스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덩치에 비해 귀여울 정도로 조그마한 콜로서스의 동공이 한계까지 확장되었다.
시현이 누구던가.
콜로서스를 몰아치고 물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해 동면 상태에 빠뜨린 장본인 아니던가.
[캬하하하!]
콜로서스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시현에게로 집중되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