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목적지를 알았으니 무작정 달려오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한울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고 시현의 힘을 늘려 줄 뿐인 루에드의 맹세를 한강에 던져 버렸다.
심지어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것도 아니다.
한강에 서식하고 그 일대에서 활약하는 악마, 머맨의 둥지에 던져 넣은 것이다.
소형 악마인 머맨 자체는 시현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
검은 늑대에게 그런 것처럼 대충 내지른 발길질 한 번이면 머맨의 뱃가죽이 척추를 뚫고 등가죽과 접착하게 만들어 주는 것조차 가능하다.
하지만 싸움의 무대가 물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속에서는 호흡조차 자유롭지 못한 인간과 달리 머맨은 물갈퀴와 아가미를 가지고 있다.
뭍에는 좀비만큼이나 약해 빠진 놈이지만 물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서 산소통이라도 챙겨 와야 하나? 아니, 그보다 생각해 보니까 이 넓은 한강에 머맨의 둥지가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지금이라도 하루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던 거 취소해야 하나.”
심지어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무전기조차 가져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또 리더가 행방불명이 됐다며 본진의 구원자들이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병원으로 귀환했다가는 붙잡혀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고, 팀을 꾸리고, 물자를 포함한 준비를 철저하게 한 다음, 한강으로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 자명했다.
그런 식으로 시간과 물자를 낭비하느니 혼자 하는 편이 속 편하다.
“일단 주변에서 산소통을 구해 봐야겠어.”
“시현 님!”
궁상맞게 강가에 쪼그려 앉아 방법을 구상하기를 수십여 분.
잠시 자리를 비운 임태연이 달려왔다.
그는 낑낑거리며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여기, 필요하실 거 같아서요.”
힘겹게 바닥에 내려놓은 상자 안에는 스노클링, 산소통, 물갈퀴 등.
수중 활동을 위한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물건들이기에 시현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이런 건 언제 구비하신 겁니까?”
“일단 교회는 물가에 위치한 세력이잖아요. 그러니까 만약의 사태에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대량으로 준비해 뒀죠. 말씀만 하시면 산소는 무한 리필 가능합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을. 이렇게라도 시현 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임태연은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마냥 좋다고 웃었다.
준비성이 철저한 임태연 덕분에 수중 장비를 구하러 다닐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된 시현은 들뜬 마음으로 산소통을 들쳐 맸다.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었지만, 5레벨 구원자인 시현에게는 사실상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부력이 존재하는 물속으로 들어가니 아예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물속은 의외로 깨끗하네.’
쏟아지는 비도 문제고, 애초에 한강물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때문에 시야가 상당히 제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물속은 깨끗하고 투명했다.
아마 물을 오염시키는 가장 큰 원인인 인간의 태반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 문명이 멸망하고 악마의 시대가 도래한 게 오히려 행운이었겠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현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무오오오오!]
멀리서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렁차기보다는 웅장하다는 느낌이 드는 울음소리는 멀리, 두 개의 작은 뿔이 달린 고래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고래의 크기는 약 5∼6미터 정도였으며 악마 치고는 다소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놈이었다.
고래는 빠른 속도로 헤엄쳐 오더니 시현의 주위를 돌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건……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무해한 놈이었던 거 같은데. 건드리면 조금 귀찮아지기는 하지만.’
눈앞의 고래는 일단 중형 악마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온순하고 공격성이 적어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악마다.
다만 이쪽에서 먼저 건드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위험을 느끼면 동료를 불러 모아 떼를 지어 달려드는데, 원체 공격력이 약한 놈이라 수가 모여도 위협이 되진 않는다.
문제는 압도적인 체력 때문에 물리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구원자들은 때리다 지쳐 탈진으로 기절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정도.
그러나 5레벨 구원자인 시현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 드롭 아이템으로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장비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시현은 씨익 웃었다.
눈이 마주친 고래도 좋다며 방긋 웃는다.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악마.
이 땅에서 지워 없애야 할 끔찍한 생물이다.
촤악!
시현의 검이 고래의 몸을 갈랐다.
중형 악마 치고는 드물게 외피가 존재하지 않는 놈이지만, 피부와 지방층이 워낙 두꺼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물의 저항력도 시현의 공격력을 줄이는 원인이었다.
[무오?!]
고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시현을 쳐다봤다.
마치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호소하는 듯한 눈동자다.
다소 죄책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구원자이고 고래는 악마인 것을.
시현은 처형의 권능을 사용해 고래를 찔렀다.
고래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파란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무오오오오!]
고래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무리의 고래들이 시현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 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 때까지도 시현에게 공격을 받은 고래는 살아 있었다.
두 개의 짧은 뿔을 이용해 시현을 들이받거나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방어력 빼고는 별 볼일 없는 고래 아니던가.
시현의 외피에는 흠집조차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단단하네. 수도 많고.’
다소 계산에 오류가 생겼으나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시현은 몰려드는 고래들을 향해 미친 듯이 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푸하!”
약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시현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준비한 산소통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에 흠뻑 젖어서 뭍으로 올라온 시현의 손에는 고래의 가죽 세 장이 들려 있었다.
“두 시간을 꼬박 사냥하고도 겨우 세 장이라니…….”
심지어 가죽의 사이즈가 손바닥만 하다.
이 정도로는 방어구 한 벌조차 만들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뒤를 돌아보면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민 고래 수십 마리가 매섭게 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내일 다시 와도 저들은 기꺼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시현을 반겨 줄 것이다.
“……괜히 건드렸나?”
가만 생각해 보면 당장의 목표는 루에드의 맹세 아니던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괜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번 검을 뽑아 들었으니 끝을 봐야지.
마침 뭍에는 임태연이 준비해 둔 산소통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산소통을 새것으로 교체한 시현은 다시 한번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결국 시현이 고래를 전부 소탕하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괜히 건드린 건가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무려 스무 장에 가까운 가죽을 얻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래의 피 냄새를 맡고 머맨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고래의 사체는 재가 되어 물살에 흘러간 지 오래.
크게 실망한 머맨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마침 잘 됐어. 이 넓은 한강에서 머맨을 찾아 하염없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다행이도 머맨들은 강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는 시현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시현은 조심스럽게 머맨들의 뒤를 쫓았다.
머맨의 둥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성수대교 중심부로부터 약 10여 미터 떨어진 곳의 강바닥에 머맨의 둥지가 있었다.
머맨의 둥지는 누가 봐도 ‘아, 저기에 뭔가 있구나’ 싶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머맨들은 인근에서 구해온 나무, 돌 등을 이용해 나름대로 건축물을 지은 것이다.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은 건 대단한 일이지만, 역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허술해 보였다.
‘폭풍 한 방이면 무너질 거 같은데. 아쉽네.’
막상 손발이 묶이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아르하의 권능에 의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없으면 없는 대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시현은 곧장 머맨의 둥지로 향했다.
그리고 막 둥지의 벽에 도착했을 때.
[무우우움!]
둥지 안에서부터 커다란 괴성이 들려왔다.
‘설마 들킨 건가? 하긴, 애초에 들키지 않을 거라고는 기대조차 안 했어.’
존재가 발각 당했으니 곧 둥지에 접근한 시현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머맨들이 달려들 것이다.
시현은 핏빛 칼날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악마들이 둥지에서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우우! 우우움!]
쿵. 쿵.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마치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묘한 진동이 물을 타고 전해져 왔다.
호기심이 생긴 시현은 둥지의 빈틈으로 내부를 살폈다.
‘……저게 뭐야.’
안에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머맨보다 덩치가 배는 크고 붉은 비늘을 가진 놈이 자갈을 쌓아 만든 연설대에 올라가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는 머맨들이 창으로 강바닥을 내리친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듯한……. 어?’
조심스레 머맨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시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붉은 비늘의 머맨이 가진 지팡이의 끝에 은은하게 빛나는 구슬이 수초로 대충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저게 루에드의 맹세인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 시현은 먼저 산소통의 잔량을 확인했다.
‘대략 40분 정도인가.’
이 정도면 안에 있는 머맨 전부를 학살하고도 시간이 남을 것이라 판단한 시현은 곧장 둥지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하지만 시현의 진입보다 먼저 붉은 머맨의 연설이 끝났다.
[우우움!]
머맨의 포효가 있은 후 둥지의 깊은 곳에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약 4미터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개구리는 붉은 머맨을 포함, 총 세 마리의 머맨을 등에 태우더니 둥지를 빠져나갔다.
뒷다리로 물을 차내며 헤엄치는 개구리의 속도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빨랐다.
심지어 개구리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창을 들고 포효하던 머맨들을 등에 태운 수십 마리의 개구리가 일제히 둥지를 벗어나더니 같은 방향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황급히 그들의 뒤를 쫓으려 했으나 인간의 헤엄 속도로는 엄연한 한계가 있었다.
‘저쪽 방향은 설마…….’
좋지 않은 느낌이 드는 시현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 사이에도 머맨을 태운 개구리의 수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다.
하나의 둥지가 아니라 한강에 있는 모든 머맨의 둥지에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얼추 알 것 같았다.
‘대장인 콜로서스를 해방시키려는 거야. 어째 얌전하다 싶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날을 노리고 있었구나.’
개구리들의 수영 속도는 경이로웠다.
선두는 이미 뭍에 도달한 상황.
지금쯤 지상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점점 멀어지는 머맨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시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우우움!]
심지어 시현을 발견한 머맨 몇 마리가 개구리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달려들었다.
칼질 몇 번이면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는 놈들이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마당에 발목을 잡혔다는 사실이 시현을 분노하게끔 만들었다.
시현은 달라붙은 머맨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수중만 아니었어도 이까짓 소형 악마들은 상대도 아니었을 텐데, 아쉬움을 토로하며 고개를 든 시현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 위를 헤엄치고 있던 악마들이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모든 악마들이 상륙했다는 뜻이다.
* * *
“리더! 리더! 어디 있는 거야? 임태연!”
한 남자가 임태연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
물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시현을 위해 몸소 산소통에 산소를 채워 넣던 임태연은 무슨 일인가 싶어 손을 털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자신의 집무실 앞 복도.
한 남자가 집무실 안에 임태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리더! 이런 긴급 상황에 대체 어디에 있던 거예요?”
“그게 중요한가요? 그 긴급 상황이 어떤 건지부터 설명해 주세요.”
임태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남성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제는 제법 리더다운 티를 내는 임태연이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진정한 남자는 조금 전 자신이 목격한 것을 보고했다.
“한강에서 머맨들이 올라오고 있어.”
“머맨들이 낚시꾼들이 잡아 놓은 고기를 노리고 뭍에 올라오는 게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수가 너무 많아.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은 된다고!”
“수백이요?!”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임태연은 교회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망원경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한강 둔치에 개미떼처럼 머맨들이 몰려들어 있었으니까.
“이런 미친.”
욕설이 절로 나왔다.
머맨들은 목표가 있는 것처럼 동일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대형 악마 콜로서스를 물리적으로 봉인해 둔 목재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머맨들이 콜로서스에게 가는 걸 막아야 해요!”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