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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68화 (168/225)

[168화]

호텔의 생존자들은 교단의 본진인 병원에 빠른 속도로 정착했다.

다행이도 병원은 기존 호텔에 있던 시설을 대부분 구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생존자들을 위한 시설이 많았고, 그 중에는 호텔에 없던 것도 다수 존재했다.

생활이 오히려 편하면 편해졌지 불편해지지는 않은 상황.

그러다 보니 생존자들은 빠르게 병원 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병원 생활에 익숙해진 구원자들은 세력의 이름을 정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세력 이름이 건물의 이름을 따라가는 게 국룰인 거 아시죠? 병원에 거주하고 있는데 호텔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래도 병원으로 바꾸는 건 좀 그래. 병원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서 테크노벨리의 생존자들을 받아들이면 꽉 찬단 말이야. 그러면 새로 영역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건물이 호텔이 될지 빌딩이 될지 모르잖아. 그런데 병원의 이름을 사용하자고? 난 반대.”

“그냥 아무거나 해……. 귀찮아 죽겠는데 이름이 뭐 대수라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기존의 이름을 고수하자는 집단,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집단, 귀찮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한 놈까지.

의견이 다양한 방향으로 분리된 채 좀처럼 통일이 안 되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높은 발언권을 지닌 시현은.

“자…… 일단 급한 대로 저질러 놓기는 했는데, 루에드의 맹세를 어떻게 구한담?”

회의에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걱정이 태산 같았다.

사실 시현이 처음 얻은 맹세도 노려서 얻은 게 아니라 운이 따라 줘서 얻을 수 있었다.

원작대로라면 맹세는 강림한 신이 자신의 역할을 떠넘기기 위해 건네주는 물건.

따라서 신의 강림이 있기 전까지는 해당 맹세를 얻을 수 없는 게 맞다.

그러나 리메이크에서는 뭔가 달랐다.

인과율을 무시하고 강림한 아르하나, 신의 강림 이벤트가 없었는데도 지상에 존재하는 맹세까지.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원작의 지식을 뒤적여 본다 한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다.

즉 현재로써는 무작정 부딪쳐 보는 게 유일한 수단이었다.

“첫 번째 맹세를 얻었을 때처럼 악마의 둥지를 털면 되나?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나? 빨리 대전에 가 봐야 하는데 골치 아프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대전으로 향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현은 7레벨의 권능을 사용한 대가로 아르하의 권능이 봉인된 상태다.

즉 걸어가거나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곳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능력의 태반이 깎여 나간 상태에서 대전으로 향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당장 시간 제한이 있는 루에드의 맹세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혹시 이설아는 알고 있나?”

보아하니 회의가 길어질 것 같았기에 시현은 이전에 습득한 이설아의 Re write를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도입부는 이설아가 Re write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쓰여 있었다.

‘어차피 감성팔이나 할 게 빤한데 그냥 넘어갈까?’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도입부를 넘기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이설아에 한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설아와 이한울은 남매지간이다.

그렇다면 도입 부분에서 이한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시현은 첫 장부터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세심하게 이설아의 Re write를 정독했다.

이설아의 가정은 지독했다.

아버지는 가정에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자리를 꿰찬 새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이설아 남매는 폭력과 함께 성장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어머니는 항상 이설아를 괴롭혔다.

때리고, 욕하고, 무시하고, 혐오하고.

그나마 체격이 좋은 이한울은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이설아의 인격을 아주 박살 내 버리겠다는 기세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기를 몇 년.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유난히도 폭력이 심한 어느 날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설아는 처음으로 반항을 시도했다.

이설아는 있는 힘껏 어머니를 밀었다.

술 때문에, 그리고 설마 이설아가 자신에게 저항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중신을 잃고 비틀거리던 어머니는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바로 조치를 취했으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은 이설아는 신음을 흘리는 어머니를 방치한 채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 이한울이 발견한 것은 싸늘하게 식어 있는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그렇게 이설아는 살인자가 되었다.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쓰러진 어머니를 신고하지 않고 방치해 뒀다는 게 이유였다.

“하아.”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당방위가 성립하는 조건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법이란 게 꼭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걸 알고 나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수확이 꽤 괜찮네.”

도입부에는 그저 쓸모없는 과거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이설아와 이한울이 어째서 Re write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는지.

아주 철저하게 묘사되어 있었으니까.

“목표는 이설아의 살인자 누명을 벗겨 내는 것. 초대받는 과정에서 정장 차림의 남자는 없었고…… 랭킹 1위를 노리는 이유는 우승자 특전을 이용해 인생을 근본부터 바꾸기 위해. 하긴, 과거로 돌아가 봤자 부모를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세운 계획은…… 참나, 나쁜 의미에서 아주 철저하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한울은 랭킹 1위가 되기 위해 자신보다 우위에 있거나 역전할 가능성이 있는 참가자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식의 계획을 수립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작에선 정훈이 외신 넷을 처리하고 소설의 엔딩을 맞이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재능이 차고 넘치며 주인공 보정을 받은 정훈조차 그 정도인데 일반인에 불과한 자신이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이한울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한울은 엔딩까지의 기간을 기하급수적으로 단축할 수단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인류를 배신하는 루트였다.

“배드 엔딩도 엔딩이기는 엔딩이니까. 여기 남게 되는 사람들이야 다 죽겠지만, 그래도 상위 열 명은 행복하겠지.”

나머지 656명의 참가자와 이 세상의 원주민인 생존자들에게 모든 희생을 강요하는 엔딩.

이한울이 노리는 엔딩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현은 열심히 페이지를 넘겼다.

역시 이설아라고 해야 할까.

이설아의 Re write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교단이 어떻게 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이한울이 소설의 엔딩까지 세워 놓은 계획, 레벨 서포터의 제작법.

그리고 이한울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 지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시현을 즐겁게 만든 것은 원하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루에드의 맹세, 이한울이 찾았구나.”

교단은 천리안 정유환의 도움을 받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초창기부터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했다.

많은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많은 생존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존자의 수가 많으니 자연히 구원자로 각성하는 이도 다수였으며, 천리안은 원작에서 확약한 네임드의 위치까지도 간파해 냈다.

만약 이한울이 마음만 먹었으면, 호텔이나 학교는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박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울은 호텔과 학교를 방치, 교단이 서울 유일무이의 세력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뒤로 미뤘다.

이유는 우승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함과 동시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보물들을 손에 넣느라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도 그 시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한울은 루에드의 맹세를 발견했다.

당시 이한울은 시현이 아르하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맹세는 아르하의 권능을 가진 구원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

그렇기에 이한울은 루에드의 맹세를 어느 악마의 둥지에 숨겨 두었다.

‘다행이 장소는 여기에서 멀지 않아. 악마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대가 아니고. 잘하면 하루 이틀 정도로 끝낼 수 있겠네.’

결정을 내린 시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기상에 세력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던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현에게 집중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세력의 리더는 시현 씨인데. 정작 시현 씨를 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요.”

“오빠는 어떤 이름이 좋을 거 같아요?”

“야, 귀찮으니까 적당히 아무 거나 좀 골라 줘라.”

자신에게 꽂히는 기대 어린 시선에 시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어디 좀 다녀올 테니까 이름은 적당히 정해 줘. 민서라 씨, 대충 하루 이틀 정도 자리를 비울 테니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남겨진 사람들은 멍하니 시현이 나간 문을 응시할 뿐이었다.

시현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사고가 굳어지고 만 것이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민서라였다.

“저 인간 또 방랑벽이 도졌나 봐. 빨리 쫓아요!”

구원자들은 일제히 시현의 뒤를 쫓았다.

이제 막 전쟁을 끝내고 내정 관리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세력을 비우는 리더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어떻게든 시현을 잡아야 했다.

잡아서 자리에 앉혀 놔야 밑에 있는 사람들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3레벨 구원자들이 빨라 봐야 5레벨 구원자가 된 시현의 뒤를 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뭐가 저렇게 빨라?!”

아무리 쫓아도 빠른 속도로 멀어져만 가는 시현의 뒷모습.

결국 민서라 일행은 완전히 닭 쫓던 개가 되어 멍하니 시현이 남긴 족적만 응시했다.

* * *

교단은 엄청난 양의 이동 수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현은 마음에 드는 오토바이 하나를 골라 타고 서울시 한복판을 질주할 수 있었다.

[크아아악!]

오토바이 배기음을 듣고 악마들이 몰려들었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포탈 생성 권능을 손에 넣은 후 늘 공간 이동을 이용해 장거리를 오갔던 시현이 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누비는 것은 굉장히 오래간만이었다.

우렁차게 짖어 대며 달려드는 검은 늑대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제 와서 소형 악마인 검은 늑대는 시현에게 어떠한 위협도 안 되지만 말이다.

퍽!

자세도 잡지 않고 대충 내지른 발길질에 검은 늑대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크앙?]

먹잇감을 발견했다 생각하고 신나게 달려들던 검은 늑대들이 일제히 주춤거렸다.

놈들이 인간을 보면 눈이 뒤집혀 달려드는 사냥꾼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

그 앞에서는 흉포한 악마들도 꼬리 내린 온순한 개가 되고는 한다.

철저하게 본보기를 보였기 때문인지 더 이상 악마들은 요란하게 떠들어 대며 오토바이의 뒤를 쫓거나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시현은 목적지까지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어라? 시현 씨!”

목적지에 있던 누군가가 시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그를 맞이해 주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그보다 호텔에 큰 일이 있었다던데 괜찮은 건가요? 아, 이럴 게 아니라 리더를 불러올게요!”

신이 나서 떠들어 대던 남자는 낚시 도구를 챙기고는 멀리 보이는 커다란 교회를 향해 달려갔다.

그동안 시현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툭.

“음?”

뺨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시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까부터 먹구름이 잔뜩 모여 있어 불안하다 싶었는데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빗줄기는 금세 굵어졌다.

차가운 비를 맞고 있는 시현의 눈앞에 제법 규모가 있는 목조 건축물이 보였다.

“오, 생각보다 잘 지어 놨네.”

검은색의 목재를 가공해 벽을 세우고 나무로 뼈대를 만든 후, 비닐과 방수 천을 이용해 지붕을 만든 기묘한 형태의 목조 건축물.

시현은 사뿐하게 뛰어올라 건축물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투명한 비닐 아래로 죽은 듯 미동조차 없는 콜로서스가 보였다.

“시현 님!”

멀리서 시현을 부르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동자를 빛내며 달려오고 있는 교회의 리더, 참가자 임태연이 보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만약 임태연에게 꼬리가 있었으면, 지금쯤 좌우로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임태연은 눈빛, 몸짓, 말투를 통해 시현을 향한 반가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냥…… 근처에서 찾을 물건이 있어서요. 겸사겸사.”

“찾으시는 물건이요? 뭔지 모르지만 말씀만 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교회의 구원자들이 늘었거든요. 이 근방에 있는 물건이라면 금방 찾아 드릴게요. 물건 찾을 때는 머릿수가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시현 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잖아요. 아마 제가 부탁하지 않아도 다들 솔선수범할 걸요?”

“음…… 마음은 감사하지만 어려울 것 같네요.”

시현은 웃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임태연의 시선이 시현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그의 손가락은 잔잔하게 흐르는 한강에 향해 있었다.

“물속에 있거든요.”

“……아.”

임태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교회가 제 아무리 구원자의 수를 충당했으면 뭐한단 말인가.

그들 중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뭐 있나요. 그보다 콜로서스를 위한 건물이 훌륭하게 완성된 모양이네요.”

“그렇죠? 사실 이것도 시현 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이게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이 있었냐면…….”

콜로서스를 완벽하게 봉인하기까지 있었던 노력과 고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임태연.

때문에 시현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마음 한구석에 있는 한마디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한번 콜로서스에게 1:1로 도전해 보고 싶다는 본심을 말이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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