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
이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이 극도로 당황하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어떠한 말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의 이설아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교단 최강의 구원자인 박화영이 시간을 버는 동안, 나설주가 정예를 데리고 잠입한다.
가능하다면 기습을 통해 병원을 장악하고, 불가능하면 안에 있는 물자를 최대한 챙긴 후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싹 다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장부터 일이 틀어졌다.
‘어째서 이나연이 레벨 서포터를 사용한 거지?’
레벨 서포터는 교단 고유의 물건이며, 재산이다.
결코 적대 세력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될 물건이기에, 보관과 관리에 늘 신중을 기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딱 전쟁에서 사용할 물량만 챙기고 나머지는 이한울이 있는 대전으로 보냈다.
병원에 남아 있는 레벨 서포터는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나연은 레벨 서포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유추해 낼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수량을 딱딱 맞췄으니 물건을 빼돌렸을 가능성은 없고, 설마 연구원들이 지시를 무시한 건가?’
위에서 내린 지시를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눈속임만 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 아니던가.
아마 본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이설아는 교단 최고 전투력인 박화영을 잃고 말았다.
참가자이기에, 원작의 지식을 알고 있기에 레벨이 높아질수록 이나연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알았으면…… 이나연이 레벨 서포터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박화영을 절대 내보내지 않았을 거야.’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레벨 서포터의 후유증으로 인해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이설아가 박화영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오빠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이설아는 손톱을 씹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한울이 얼마나 절망하고 비통해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설주, 최소한 나설주라도 살려서 가야 해.”
이미 승리는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어떻게 해서든 최소한의 피해로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화영이 사망한 후에도 억지로 전선을 유지했다.
박화영을 처치한 이나연은 본격적으로 포위망을 향해 권능을 퍼부었고, 빠른 속도로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방어 라인을 유지하던 호텔의 전투원들도 승기를 잡았다 판단하고, 신이 나서 공격을 해 오기 시작했다.
이보다 최악의 상황이 있을까 싶었지만, 바닥 아래에는 또 다른 바닥이 있었다.
“나, 나는 더 이상 못 해!”
당연하다는 듯 탈주자가 발생했다.
약이라도 한 듯 눈빛이 흐리멍텅한 남자가 진영에서 이탈해 달아났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호텔과의 전투에서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전투원들의 정신은 상당 부분 무너졌다.
원래라면 지금쯤 본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피폐해진 정신을 달래고 있어야 하건만.
본진이 적에게 점령당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데 달아나지 않는 게 오히려 용할 지경이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 법이다.
한 명의 이탈자가 발생하자, 교단을 향한 충성도가 낮은 사람부터 우후죽순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포위망은 구멍이 뻥뻥 뚫리며 의미가 없어져 버렸고, 남은 인원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가 되었던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설아의 곁에는 그녀의 결정을 도와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건…… 나설주를 기다리는 건가?”
배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두려우며, 동시에 몹시 증오스러운 이름이기도 하다.
몸이 돌이라도 된 건지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원인은 공포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나설주는 못 와.”
데구르르, 툭.
이설아의 다리 근처로 무언가가 굴러와 닿았다.
비밀 통로를 이용해 잠입한 나설주의 머리였다.
“설아야, 뒤로 물러나.”
“망할 자식……. 어지간히도 제 실력에 자신 있는 모양이네. 하긴, 그러니까 적진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미친 짓을 저질렀겠지.”
늘 그녀의 곁을 지키는 두 명의 호위가 이설아를 감쌌다.
두 사람 모두 3레벨의 구원자.
그중에서도 교단을 향한 충성도가 높고 실력도 뛰어난 자들이다.
그러나 저 괴물 앞에서 과연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설아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윤시현, 이설아의 모든 것을 좌절시킨 그의 얼굴이 보였다.
“도망쳐…….”
“…….”
“두 사람 모두 도망쳐요.”
그녀의 중얼거림은 애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치는 대신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한 사람은 말도 없이 이설아를 들쳐 매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괴성을 지르며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 설아는 털끝 하나도 못 건드린다!”
“눈물 나는 충성심이네.”
두 사람의 검이 충돌했다.
힘 싸움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호위는 무릎을 꿇었다.
힘의 차이는 누가 봐도 월등했다.
그러나 호위는 끝까지 시현에게 달라붙었다.
“도망쳐!”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동료가 목숨을 바쳐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 이설아를 들쳐 맨 호위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도망치라는 그의 외침에 엉거주춤 병원을 포위하고 있던 교단의 전투원들도 일제히 등을 돌려 달아났다.
호텔의 생존자들은 달아나는 교단의 뒤를 쫓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 시현만은 달랐다.
삽시간에 앞을 가로막는 호위의 외피를 절단해 버리고 그의 사지를 분리시켰다.
그리고는 이설아를 향해 달려왔다.
“마, 막아!”
교단을 향한 충성심은 비단 두 명의 호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일반 전투원들도, 이설아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저레벨 구원자들도.
목숨을 걸고 시현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그들 중 시현의 검을 단 한 번이라도 막아 내는데 성공한 이는 없었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이설아의 눈동자가 점점 빛을 잃고 있었다.
문득 아포칼립스 초기, 악마와의 교전에서 많은 동료들을 희생시키고 겨우 살아남는데 성공한 이한울이 그녀에게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설아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너만 살아남으면 돼. 모든 걸 잃어도 우리 둘만 살아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미안해, 오빠.”
이곳에 없는 이한울을 향한 사죄의 말을 남긴 이설아는 늘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를 꺼내 손에 쥐었다.
교단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할애해 원작에 등장하는 보물들을 전국 각지에서 긁어모았다.
점점 성장해 가는 호텔을 무너뜨리는 것도, 인천연합과 등대의 견제라는 중요한 사안조차 뒤로 미루면서 말이다.
보물들은 별 거 아닌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블랙마켓에서 판매하는 보물과 비견되는 성능을 가진 물건도 존재했다.
그게 바로 이설아가 늘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였다.
[발푸르기스의 밤.]
발푸르기스와의 거래를 통해 단 한 번, 권능의 위력을 대폭 증가시킨다.
단, 악독한 발푸르기스는 대가로써 모든 것을 앗아 갈 것이다.
전쟁이 있기 전날.
발푸르기스의 밤을 이설아의 손에 쥐어 주며 이한울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네가 사용하지 마. 최악의 상황엔 나설주나 박화영이 사용하게끔 만들어. 알았어? 반드시야. 반드시!”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나설주도, 박화영도 이제는 그녀의 곁에 없으니.
“저기요.”
이설아는 호위를 호출했다.
호위는 거칠게 숨을 토하면서도 그녀의 부름에 답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말을 할 여유가…….”
“오빠한테 미안하다고 말 좀 전해 주세요.”
“네? 그게 무슨…… 설마!”
이설아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호위가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그녀로부터 목걸이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이설아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정신력을 목걸이에 불어넣었다.
쩌저적.
목걸이의 중심에 박혀 있던 보석에 균열이 발생했다.
<발푸르기스와의 거래를 시작합니다. 육체와 정신에 발푸르기스의 힘이 깃듭니다. 시간 조작 권능이 극도로 강해집니다.>
<오류 발생. 발푸르기스의 권한이 크로노아의 권한보다 낮습니다.>
<주의! 현재 사용자는 인과율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지불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춥니다.>
째깍.
어디선가 시곗바늘이 멈추는 소리가 난 듯했다.
이설아는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목격한 메시지에 표시된 내용처럼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발푸르기스의 밤을 빼앗으려던 호위도, 시현의 마수를 피해 달아나던 교단의 생존자들도, 시현이 정면을 향해 쏘아 보낸 불길도, 그로 인해 튀어 오른 파편도.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도, 이나연이 만든 태풍의 여파로 쉼 없이 불어오던 강풍도, 저 높이 하늘을 나는 새들도.
그리고 윤시현 본인도.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
깨진 발푸르기스의 밤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이설아는 그것을 바닥에 던졌다.
이제 저것은 그저 깨진 장신구,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그 대신 빈손에 떨어져 있던 검 한 자루를 주워 들었다.
누군가 도망가다가 손에 힘이 풀려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시현에게 살해당한 이의 유품이거나.
이설아는 손에 착 감기는 검을 질질 끌며 시현에게 다가갔다.
“부탁이야. 제발 나랑 같이 죽어 줘.”
그녀는 시현의 심장을 노리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시현을 꿰뚫지 못했다.
<실행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정지된 시간 선에서 현실의 시간 선에 있는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안 돼……. 대체 왜……. 아아악!”
검을 내팽개친 이설아는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이 뽑히며 피가 나오고 있는데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이성이 마비되어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마저 내건 수였는데 그게 불발로 끝나 버렸다.
미치지 않고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녀는 시현을 향해 손톱을 세웠다.
<실행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실행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실행 불가능한…….>
증오스러운 메시지가 몇 번이고 반복해 나타났다.
이설아는 손톱이 뽑혀 나갈 정도로 공격을 반복했지만, 시현에게는 어떠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왜…… 왜 이것조차 못 하게 하는 건데……. 딱 한 사람만 길동무로 삼겠다는데 왜 그것조차 못하게 하는 거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잊고 있던 고통이 느껴질 때 쯤, 피로 물든 손이 보였다.
손끝의 상처에서부터 흘린 피가 바닥에 한 방울씩 떨어져 자그마한 적색의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오빠.”
이설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시현의 옷 곳곳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고 피가 흐르지 않으면 일부러 자신의 몸에 상처를 만들어 피를 발랐다.
시현의 상의 절반 정도가 피로 물들었을 무렵.
이설아는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이걸로 윤시현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면…….’
천천히 고개를 든 이설아의 시선은 병원 건물로 향해 있었다.
이설아는 병원으로 향했다.
“아…….”
너무 많은 피를 사용한 까닭에 빈혈이 덮쳐 왔다.
비틀거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진 이설아의 무릎은 멍이 들고 찢겨져 피가 흘렀다.
급한 대로 옷을 찢은 이설아는 상처 부위에 감았다.
“괜찮아. 병원에는 회복약이 다소 구비되어 있어. 피가 모자라면 잘 먹고 푹 쉬면 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래…… 얼마든지 있어.”
홀로 중얼거리는 이설아의 눈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윤시현…… 너를 죽일 수 없다면 적어도 나와 같은 괴로움을 느끼게 해 줄 거야.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