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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62화 (162/225)

[162화]

[크아아악!]

광분한 히드라가 내지르는 고함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침착하게 히드라의 머리를 잘라낼 뿐이었다.

이제 남은 머리는 네 개였다.

“설마…… 진짜 대형 악마를 토벌하는 건가? 단신으로?”

한없이 나약하기 짝이 없으며, 먹이사슬 최하층에 자리한 인간이?

반대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으며 인간뿐 아니라, 다른 악마들의 위에 군림하는 대형 악마를 단신으로 토벌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시현은 호텔 소속이고 이재인은 교단 소속의 구원자다.

서로가 서로에게 검을 들이미는 적대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투를 지켜보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크아아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히드라가 공격 방식을 바꿨다.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지상을 향해 불을 쏟아 냈다.

그 위로 다른 히드라는 물줄기를 토한다.

물과 불이 만나며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대량의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오…… 저런 식으로도 공격을 하는구나. 히드라가 생각보다 똑똑하네.”

히드라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남은 네 개의 머리는 더 이상 시현의 공격에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철저하게 수비 위주로 전투 방법을 변경했다.

계속해서 두 개의 머리가 고온의 수증기를 만들어 시현의 접근을 막고 다른 두 개의 머리가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방식이다.

과연 시현이 어떤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해 나갈지 기대되기까지 했다.

이재인은 망원경으로 시현의 얼굴을 살폈다.

“웃네?”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히드라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꼴이 가소롭기라도 하다는 듯.

시현은 수증기 밖에서 냅다 검을 휘둘렀다.

“이런 미친.”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빛을 발하는 검의 길이가 엄청난 수준으로 늘어나며 히드라의 머리를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을 토하던 히드라의 머리가 잘려 나가자 더 이상 수증기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시현은 그대로 거리를 좁혀 또 하나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대박…… 이제 남은 머리는 둘…… 아니, 하나!’

마지막 남은 머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열두 개의 머리로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고작 하나의 머리가 고군분투한다 한들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촤악!

마지막 머리가 잘려 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재인은 전율했다.

‘아, 알려야 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이설아에게 알려야 했다.

이 세상에는 단신으로 대형 악마를 토벌하는 괴물이 있다고.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망원경 너머로 시현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허억!”

이재인은 거칠게 숨을 토했다.

그의 전투를 지켜본 이재인은 시현에게 있어 거리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달아나는 것을 포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넌 뭐야?”

배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됐다…….”

시현은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승리의 희열을 맛봤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르베니아의 막타를 쳐서 5레벨 구원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단신으로 대형 악마를 토벌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좀 아쉽네.”

평소라면 독자들이 댓글 창에서 온갖 주접을 떨어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사건 이후 댓글 창은 한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있을 때는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시스템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운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르하의 각인. 5차 해금 완료.>

<구원자의 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더 이상 모방한 권능을 사용하는데 추가 정신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드디어 패널티가 사라졌어…….”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다른 권능을 모방해 사용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 뭐였냐고 누가 묻는다면 시현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정신력이라 답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모방해 사용하는 권능들은 하나같이 정신력의 소모가 막대하다.

그런데 패널티로 인해 소모되는 정신력이 추가되니 권능을 사용하는데 늘 두 번 세 번 고민하거나 망설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르하의 권능이 5레벨에 이르며 모방할 수 있는 권능의 개수가 추가되었을 뿐 아니라 패널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히드라의 토벌은 어디까지나 과정에 불과하다.

목표는 호텔을 침공해 온 이설아와 교단의 군세를 처치하는 것.

아직은 마음 편히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지만 챙길 건 챙겨야겠지. 제발 뭐라도 있어라…….”

시현은 폭풍을 이용해 히드라의 시체가 남긴 잿더미를 날려 버렸다.

확실히 이전과 달리 정신력의 소모가 확 줄어든 게 느껴졌다.

폭풍이 한 차례 난장판을 치고 지나간 자리.

그곳에 반짝이는 드롭 아이템이 놓여 있었다.

“좋아, 대박이다.”

제 머리만한 비늘 한 장을 손에 넣은 시현은 환하게 웃었다.

무려 대형 악마의 드롭 아이템이다.

이걸 가공해서 장비를 만든다면 어떤 물건이 탄생할 지 벌써부터 기대됐다.

“그러면 이동하기 전에…….”

시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리안을 사용했다.

“쥐새끼부터 잡아야겠지.”

구원자의 레벨이 높아지면 오감이 상승한다.

그리고 오감이 상승하면 자신에게 향하는 타인의 권능에도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가능하다.

상대방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 했으나, 시현은 히드라와의 전투를 벌이고 있던 도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딱히 위험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당장 히드라를 처치하는 게 우선이라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현은 포탈을 사용했다.

“허억!”

어느 빌딩의 옥상 위.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댄 채 크게 당황하고 있는 남자, 이재인의 뒤통수가 보인다.

“넌 뭐야?”

상대가 누구이고 뭘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시현과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극도로 당황할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아니, 멍청한 질문이었네. 대답 안 해 줘도 돼.”

시현은 핏빛 칼날을 늘어뜨린 채 이재인에게 다가갔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며 뒷걸음질 치던 이재인은 가까스로 한마디를 꺼냈다.

“사, 살려 줍시다!”

“……뭐?”

“아니, 말실수였어요. 살려 주세요!”

“내가 왜?”

시현은 이재인이 교단의 구원자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단은 적이다.

보아하니 3레벨 구원자인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처리해 두면 호텔에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이설아네도 교단 본진에 도착했겠지. 빠르게 처리하고 이동해야 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시현에게서 망설임이 보이지 않자 열심히 눈알을 굴리던 이재인은 무릎을 꿇더니 넙죽 엎드렸다.

“이한울!”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아주 잠깐 시현의 걸음이 멈췄다.

그 틈을 노려 이재인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지금 이한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그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거 다른 사람은 몰라요. 오로지 저만 알고 있는 정보에요!”

“…….”

시현은 망설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재인의 목을 치고 교단 본진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나 이한울이라는 이름이 시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교단은 본진의 방비마저 뒤로할 만큼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물자부터 인력까지.

모든 걸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그런데 정작 교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한울은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내가 있는 호텔을 부수고 싶었지만, 정작 본인은 따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정도로 의심해 볼 수 있겠지.’

시현은 이재인을 내려다봤다.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 다소 빈 공간이 많아 절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정수리가 보였다.

이재인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재인을 죽이게 되면 이한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교단은…… 어차피 이설아는 권능을 사용할 수 없고, 고레벨 구원자들 다수가 죽었으니 조금 늦어도 문제는 없겠지.’

한숨을 내쉰 시현은 적당한 곳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읊어 봐.”

“살려 주시는 건가요?”

“네가 말한 정보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경우, 더 이상 교단과 손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살려 줄게.”

“감사합니다!”

살 길을 찾은 이재인은 다시 한번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재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딴생각을 품었다기보다는 어떤 내용부터 말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듯 했다.

시간에 마냥 여유가 있는 게 아니었던 시현이 초조함을 느낄 무렵, 가까스로 이재인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의아함을 느낀 건 출전 당일이었어요. 분명 교단의 전력을 쏟아 낸다고 말한 것과 달리 핵심 전력인 이한울 리더와 한천식, 두 사람이 빠졌거든요.”

‘한천식?’

처음 듣는 이름이다.

원작에도 등장한 적 없으며 참가자 랭킹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

그러나 이재인이 핵심 전력이라 언급한 인물이니 분명 중요한 무언가를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시현은 그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해 두었다.

“그래서 이게 참……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제가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 한천식에게 벌레를 심어 뒀거든요.”

그렇게 말한 이재인은 권능을 사용해 은은하게 빛나는 벌레를 만들어 냈다.

“아, 제 권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알아.”

“……네?”

“그거 기생충이잖아. 숙주를 찾아 심어 두면 일정 시간 성장한 후 숙주의 시각, 청각 등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 정보는 사용자인 너 역시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기생충.”

“아, 네. 맞아요.”

설마 시현이 자신의 권능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당황한 이재인이었으나, 호텔에도 비슷한 능력의 구원자가 있겠거니 하며 혼자 납득하고 말을 이었다.

“한천식은 리더와 함께 대전으로 갔습니다.”

“대전?”

하필이면 대전이라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손에 넣은 정성국의 Re write에서 시현은 대전에 외신 중 하나가 봉인되어 있다는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해서 당장 이번 일만 정리되면 대전에 가 볼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이재인의 입에서 대전이 언급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한울은 인천에서도 뮤턴트를 꼬드겨 외신의 봉인을 풀어 버렸지. 설마 대전에서도 그 짓을 하고 있나?’

식은땀이 흘렀다.

인천의 경우, 봉인이 풀린 정도가 겨우 1할 남짓이라 현금 박치기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이상의 봉인이 풀렸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니,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러.’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시현은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전에 있는 어느 수목원으로 향했어요. 정확한 장소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거든요.”

“이런 씨발!”

“히익! 그, 그만 할까요?”

“아니, 계속해.”

어떻게 된 게 불안한 느낌은 통 빗나가지를 않는다.

시현은 이를 갈면서도 이어지는 이재인의 말을 경청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시현의 눈빛에 벌벌 떨면서도 이재인은 시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안에서 놈들이 뭘 하고 있었지? 설마 무언가의 봉인을 깨뜨린다거나, 그런 짓을 하고 있었나?”

“와, 돗자리 펴도 되시겠는데요? 수목원 안쪽으로 들어간 순간 기생충이 갑자기 죽어 버려서 정확한 건 모르지만, 대충 그런 뉘앙스였어요.”

“…….”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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