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으아아악!”
총에 맞아 뒤로 넘어진 민서라의 옆에 있던 진우혁이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이나연과 신호석을 포함해 아직 외피가 남아 있는 생존자들은 따로 지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알 세례로부터 아군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젠장, 이게 뭐냐고. 병원은 텅 비어 있는 거 아니었어?”
강소하 역시 투덜거리면서도 권능을 사용해 아군을 보호했다.
시현과 민서라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기에 제대로 된 대열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
이대로 교전이 발생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었다.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2레벨 구원자 혼자서도 버텨 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지 못했다.
“깜짝 놀랐네…….”
민서라가 총알에 맞은 부위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당간당하던 외피가 이번 일격으로 깨지고 말았다.
만약 외피가 간당간당한 수준으로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머리가 꿰뚫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아주 잘못된 정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네.”
선두에서 총알을 받아 내던 이나연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날아오는 총알의 양도 적고, 명중률도 형편없어. 아마 교회에 남아 있던 비전투원 몇 명이 급한 대로 무장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이나연이 민서라를 보며 질문했다.
리더인 시현이 자리를 비운 지금,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이는 민서라이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민서라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총인데 시현 씨의 권능도 없는 마당에 외피도 없는 사람들을 밀어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민서라의 중얼거림에 구원자가 되지 못한 일반 전투원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민서라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짐작한 강소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외피 남아 있는 구원자는 나랑 이나연밖에 없잖아.”
강소하의 예감은 적중했다.
“나연이랑 강소하, 두 사람이면 충분하겠지?”
“당연.”
“에휴.”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 하는 일은 똑같았다.
저 멀리 방어선 뒤에 자리하고 있는 병원 건물을 향해 냅다 달렸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사격이 집중됐다.
“하나, 둘……. 대략 열 명인가?”
총구의 불빛을 보고 대략적인 적의 머릿수를 파악한 민서라가 중얼거렸다.
만약 필요하다면 추가 지원을 보낼 생각도 있었지만, 보아하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약 10분 후.
더 이상 총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곤 붉은 사슬 하나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쳤다.
진압이 끝났으니 들어와도 좋다는 소리다.
“가시죠.”
민서라는 사람들을 데리고 교단의 본진인 병원 내로 진입했다.
이전에 한 번 정보 수집을 위해 몰래 잠입한 적이 있지만,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병원은 발전되어 있었다.
“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쌍둥이가 넋을 놓았을 정도로 말이다.
전기가 공급되기는 하지만 그 양이 넉넉지 않아 최대한 아껴 쓰던 호텔과 달리, 병원은 전기를 펑펑 써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다.
샤워실은 당연하다는 듯 구비되어 있고, 욕탕까지 있는 것을 발견한 민서라는 경악하고 말았다.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식료의 경우엔 병원 안쪽에 있는 공터를 십분 활용해 밭을 꾸며 놓았다.
그 크기로 미루어 볼 때 족히 500명은 거뜬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호텔은 구비하지 못한 의약품이 가득했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원자들이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일반 생존자들의 경우에는 크게 기뻐했다.
더 이상 아파도 근성으로 참아야 하는 가혹한 상황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서라야, 이쪽으로 와.”
본분을 잃고 교단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던 민서라를 일깨운 이는 이나연이었다.
그녀를 따라 병원의 지하로 향한 민서라는 정체 모를 불쾌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뭐 하는 장소야?”
“원래는 시체 안치소였다는데,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모양이야. 출입 금지 구역이라 포로들도 잘 모르겠다나 봐.”
그렇게 말한 이나연은 어느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나연의 요구대로 방 안으로 들어간 민서라는 그렇지 않아도 냄새 때문에 구겨진 미간을 한 층 더 찡그렸다.
상당히 넓은 규모의 방 안에 여러 사람이 손발이 묶인 채 감금되어 있었다.
어림잡아 백은 넘어 보였다.
“이 사람들이 전부 교단의 비전투원들이야?”
“그런가 봐.”
가만 보니 대부분이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 그리고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처리라니…….”
민서라는 흉흉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나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보건데 민서라의 허락만 있으면 일말의 주저도 없이 여기 있는 전원을 몰살시킬 것이다.
그런 이나연과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포로들은 벌벌 떨거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심지어는 실금을 하는 이까지 나타났다.
상대가 무장한 전투원이라면 모를까.
전투력이 없다시피 한 이들까지 무참하게 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가둬 두기만 해. 처분은 시현 씨가 오면 의논하기로 하자.”
“그럴까?”
시현의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급격히 밝아지는 이나연을 보고 있자니, 시현이 저 맹견을 다루는데 얼마나 중요한 목줄 역할을 해 주는지 톡톡히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여기 시체 안치소부터 확인하자. 교단이 어떤 목적으로 여기를 사용한 건지는 알아봐야 할 거 아니야.”
일단 포로들로부터 이나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민서라는 그리 관심도 없는 시체 안치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건…….”
시체 안치소는 실험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실험을 위한 침대는 죄다 피로 물들어 적갈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한쪽에는 실험체로 사용되었을 악마나 인간의 사체가 가득하다.
이전에 학교의 옥상에서 봤던 실험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냉장고 안쪽에 한가득 들어 있는 혈액 팩이었다.
그녀 역시 참가자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교단은 계속해서 레벨 서포터에 대해 연구해 왔고, 레벨 서포터의 주재료는 신혈이다.
“설마 이게 다 신혈은 아니겠지?”
“이거 되게 난감한 상황인 거지?”
“난감하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골머리를 싸맸다.
신혈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소량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악마를 한 곳에 모아 일망타진할 수 있지만, 양 조절에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지금 호텔이 처한 상황처럼 감당하기 힘든 악마를 불러들이게 된다.
지금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혈액의 양은 두 마리의 대형 악마를 소환하는데 소모된 신혈의 양보다 족히 세 배는 많아 보였다.
이걸 처분하는 것도 문제다.
처분 과정에서 실수라도 발생하면 기껏 점령한 새로운 생존지에 감당 못할 악마를 불러들이게 될 수도 있으니까.
“딱히 사용할 곳도 없으니 시현 씨한테 부탁해서 바다에 던져 버리던 어쩌건 해야겠다.”
“앗! 이거 좀 봐!”
민서라가 신혈의 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이, 실험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던 이나연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잔뜩 신이 나서 끌고 온 상자는 무려 이나연의 몸집만 했다.
“뭔데 그래?”
심드렁한 얼굴로 상자를 열어 본 민서라는 제 눈을 의심했다.
“레, 레벨 서포터!”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상자 안에 있는 것은 교단의 구원자들이 애용하던 최강의 도핑제, 레벨 서포터였다.
그 수량이 무려 30여 개에 달했다.
“이, 이거 어쩌지?”
레벨 서포터의 가치를 알고 있는 민서라는 말뿐만 아니라 손까지 벌벌 떨었다.
반면 이나연은 거침이 없었다.
“어쩌긴 뭘 어째. 쓰라고 있는 건데 써야지.”
“쓴다고?”
“응. 나 오빠처럼 4레벨 구원자가 되면 어느 정도의 힘을 얻게 되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어. 써 봐도 돼?”
“안 돼.”
민서라는 단호하게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입을 삐죽 내밀며 무언으로 호소하는 이나연이었으나, 민서라는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무룩해진 이나연이 레벨 서포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던 찰나였다.
“누님! 누니이임!”
신호석이 애타게 민서라를 부르며 지하로 달려왔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계단을 내려오다 마지막에 발을 헛디뎌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다.
외피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아 바닥에 쓸리며 상처가 생겼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서라 앞에 도달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교단!”
“어?”
“교단이 돌아왔어요!”
“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호텔은 대형 악마에 의해 붕괴했고, 호텔의 생존자들은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교단이 호텔 생존자들의 뒤를 추격한 것이건, 아니면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만족했건 그들이 돌아올 장소는 여기 병원일 수밖에 없었다.
“준비는 어때?”
“일단 배치는 끝났어요.”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전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 불안한 점이 있었다.
사실상 호텔을 지탱해 주던 시현이 현재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교단 측도 더 이상 시간 역행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시현 씨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커.’
소모가 심각한 것은 양쪽 세력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시현이 없는 대신 저쪽은 이설아가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한기훈 씨와 LT마트의 구원자들은 본진을 지키기 위해 귀환했어. 그만큼 남은 구원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하는데…….’
문제는 박화영이다.
호텔에서도 정상급에 속하는 구원자 셋을 혼자서 너끈히 상대하는 괴물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교단의 귀환을 막는데 큰 손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 때 이나연이 민서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웃으며 레벨 서포터를 들고 흔들었다.
“이제 이거 써 봐도 돼?”
* * *
“아…… 힘들다. 구원자가 되고 나서 이렇게까지 지쳐 본 적은 처음인 거 같아.”
“그러게. 가능하다면 두 번 다시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캠핑카의 위에 올라가 늘어져 있는 박화영.
느릿느릿 나아가는 캠핑카 옆에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걷고 있는 나설주.
그리고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설아를 괴롭게 했다.
무엇보다 핵심 전력의 일부였던 서른 명의 구원자들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의한 심적 괴로움은 레벨 서포터로 인한 부작용마저 잊게 만들었을 정도다.
‘호텔이 붕괴할 때까지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그 인간이 대형 악마 둘의 싸움을 붙여 놓는 바람에…….’
그 한 수.
시현이 둔 마지막 한 수가 결국 상황을 뒤집고 말았다.
온전한 승리를 거둬야할 교단이 사실상 패배에 가까운 승리에서 만족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본진을 잃은 시현에게 남은 것은 추락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다.
“도착했다!”
누군가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멀리, 이제는 안락한 집이 되어 버린 병원 건물이 보였다.
“돌아가면 일단 발 뻗고 잠부터 자야지. 스무 시간 정도 잘 거니까 깨우지 마.”
“난 목욕! 며칠 째 목욕은 고사하고 머리도 못 감았단 말이야. 찝찝해 죽겠어.”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울상을 지은 여성 구원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만류하거나 핀잔을 주지 않았다.
모두 함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그녀에게 그 정도의 자격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타앙!
신이 나서 달려가던 여성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질 것이라고는.
“……어?”
이설아는 멈춰서고 말았다.
극도로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굳어 버린 느낌이었다.
‘도대체 왜?’
병원은 교단의 본진이다.
멸망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집이자 고향인 셈이다.
비록 불완전하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이들을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지는 못할지언정 총을 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설아, 정신 차려!”
넋을 놓고 있는 이설아의 뺨에 고통이 느껴졌다.
박화영이 냅다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이다.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딱 보면 몰라?”
박화영은 혀를 찼다.
“우리가 윤시현과 대형 악마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호텔을 버리고 도망친 놈들이 우리 본진을 먹은 거잖아!”
“……!”
허를 찔린 이설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상대의 본진을 깨부수면 새로운 생존 구역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리 대담하게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단은 최강이라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교단의 본진을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렇기에 이런 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아아악!”
극도의 스트레스를 참지 못한 이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