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이번 전쟁에서 호텔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소모한 물자야 교단이 이송 중인 물자를 약탈하며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인명 피해는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며, 심각한 피해는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던 호텔 건물의 붕괴와 애지중지 키워 온 수호나무의 소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텔이 붕괴할 때 제단이 깨지지 않았다는 것일까.
붕괴한 잔해 사이에 끼어 가까스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제단이 부서졌다면, 시현의 권능이 전체적으로 약화될 것이며, 이는 곧 호텔의 전력 누락으로 이어진다.
그런 이유로 시현은 이번 전쟁에서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잃은 게 있으면 그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지. 건물이야 교단 놈들이랑 본진 교환하면 된다고 쳐도 그 외의 것들은…….”
시현은 공간을 도약했다.
잠시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밝아지며 나타난 것은 아르베니아, 그리고 아르베니아의 목을 문 채로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는 히드라였다.
히드라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아르베니아의 목을 꺾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현의 불꽃이 아르베니아와 히드라를 덮쳤다.
[캬아아아악!]
황급히 뒤로 물러난 히드라는 자신의 몸에 붙은 백색의 불꽃을 꺼뜨렸다.
그러곤 갑작스러운 난입자에게 흉흉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시현의 시선은 오로지 아르베니아에게 꽂혀 있었다.
“미안한데, 막타는 내가 가져가마.”
백색 불꽃이 아르베니아를 뒤덮었다.
몇 번이고 백색의 폭발이 발생하며 아르베니아의 육신이 검게 그을어졌다.
아르베니아는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애초에 빈사 직전이던 아르베니아는 시현의 권능 한 방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새까만 재가 되어 흩어지는 아르베니아 앞에서 시현은 희열에 물들었다.
<아르하의 각인. 5차 해금 완료.>
<아르하의 축복을 받아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처형의 권능을 통한 피해 횟수가 추가됩니다. 마지막 타격은 상대의 외피에 커다란 피해를 가합니다.>
역시 대형 악마.
기여도가 한참 낮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 레벨이 올랐다.
5레벨.
이전에 레벨 서포터를 사용해 편법으로 얼핏 닿았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몸을 감싸는 만능감과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크아아아아!]
히드라의 포효가 시현의 정신을 일깨웠다.
히드라가 가진 열두 개의 머리가 일제히 브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 성격 되게 급하네.”
콰아아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열두 줄기의 브레스가 뿜어졌다.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진 광선이 한 곳에 뭉치니 초대형 악마 이그드라실이 뿜어내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공격력을 가진 광선이 완성되었다.
“일방통행.”
시현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방패를 꺼내 들었다.
반투명한 막은 히드라의 광선을 집어삼켰다.
초대형이던 이그드라실과 공격력만큼은 동급의 공격이다.
본래라면 방패가 깨졌어야 옳다.
그러나 시현의 격이 보다 높아진 결과, 방패는 히드라의 공격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좋네.”
웃으며 짧은 소감을 내뱉은 시현은 검을 들고 크게 휘둘렀다.
히드라가 아닌, 아르베니아의 시체를 향해.
콰아아!
검을 휘둘러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풍압이 발생했다.
목숨을 잃은 아르베니아의 사체는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으나, 덩치가 덩치인지라 그 속도는 하염없이 느렸다.
그러나 시현이 휘두른 검에 의해 발생한 풍압은 재의 상당 부분을 날려 버렸다.
덕분에 시현은 잿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영롱하게 빛나는 청색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르베니아의 가슴에 박혀 있던 놈으로, 아르베니아가 내뿜는 힘의 원천이 되는 물건.
무려 드롭율 100%를 자랑하는 드롭 아이템.
아르베니아의 심장이다.
시현은 제 머리만한 그것을 손에 들었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표시됐다.
그러나 읽을 필요도 없었다.
아르베니아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을 때 함께 들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사용할 경우 새로운 특성이 발현되는 몇 안 되는 귀한 아이템. 공격에 냉기 속성을 부여하거나 사용하는 원소를 냉기 속성으로 바꿀 수 있으며, 딱히 정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 즉…….’
시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르베니아의 심장을 사용했다.
사용방법은 간단했다.
힘을 줘서 으깬다.
아르베니아의 심장은 상당히 단단했지만 무려 5레벨 구원자의 힘을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쩌저적!
아르베니아의 심장이 갈라지고 그로부터 냉기가 흘러나왔다.
냉기는 주변을 한 바퀴 맴돌다가 시현의 몸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르베니아의 심장에 담긴 힘을 흡수했습니다. 신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혹한’이 특성으로 발현됩니다.>
더 이상 아르베니아의 심장은 빛나지 않았다.
안에 들어 있는 모든 힘을 흡수한 지금, 아르베니아의 심장은 가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시현은 빈껍데기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크아아아악!]
혼신을 다한 브레스가 먹혀들지 않자 히드라는 육탄전을 시도했다.
열두 개의 머리가 각자 다른 타이밍, 다른 방향에서 시현을 공격해 왔다.
공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일방적인 폭력 앞에 보통이라면 이렇다 할 수도 못 써 보고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달랐다.
공간을 도약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히드라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 순간에 목표물을 놓친 히드라가 어안이 벙벙해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을 타고 있을 때.
시현이 나타난 장소는 히드라의 머리 위.
노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약한 머리였다.
“본전을 찾으려면 아르베니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지.”
누군가 그 말을 들었으면 기염을 토했을 것이다.
지금 시현은 히드라를 토벌하겠노라 선언한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아르베니아야 히드라가 다 잡아 놓은 것을 마무리했을 뿐이니 그렇다 쳐도 히드라는 아니다.
히드라는 상처는 고사하고 약간이지만 외피도 건재한 상황이며, 제 아무리 시현이 5레벨 구원자로 등극했다 한들 대형 악마를 혼자 사냥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시현은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쳤다.
상대가 평범한 대형 악마였다면 깔끔하게 포기.
아르베니아의 토벌 보수만 챙기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히드라는 명확한 약점을 가지고 있고, 시현은 그 약점을 찌를 무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해볼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단의 본진으로 대피한 생존자들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시현은 애써 걱정을 떨쳐냈다.
천리안을 통해 교단 본진의 병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도 확인했고, 이설아는 레벨 서포터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권능을 사용할 수 없으며, 두 악마가 날뛰는 통에 교단은 많은 구원자를 잃었다.
자신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현은 눈앞의 적에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시현은 처형의 권능과 백색 불꽃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능을 일격에 쏟아부었다.
콰앙!
온 힘을 다해 휘두른 검이 히드라의 머리를 때렸다.
[키에에엑!]
히드라의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내지른 비명이라기보다는 화들짝 놀라 내지른 외침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공격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베니아가 히드라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와장창!
한계까지 약해져 있던 외피가 이번 일격으로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됐다.”
이로써 토벌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물론 히드라라고 해서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캬아아악!]
공격을 당한 머리는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나머지 머리들은 일제히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을 삼키려 날아드는 머리.
시현은 침착하게 타이밍을 맞춰 검을 휘둘렀다.
검은 히드라의 이빨을 강하게 때렸고, 시현은 그 반동으로 인해 뒤로 날았다.
만약 이게 게임이었다면 상대의 공격을 한 번 흘려 냈으니, 이번에는 시현이 공격할 차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게임과 한참 달랐다.
히드라는 압도적 우위에 있는 포식자이며, 반격의 틈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두 번째 히드라의 머리가 바닥에 독을 뿌렸고, 세 번째 머리가 제 목을 크게 휘둘러 허공에 떠 있는 시현을 가격했다.
시현은 공간을 도약하려 했으나 늦고 말았다.
“크악!”
공격에 얻어맞은 시현은 바닥에 고인 독안개를 향해 추락했다.
짙은 녹색을 띄는 독안개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자욱했다.
시현은 급하게 숨을 참았다.
들이마신 독의 양은 아주 소량이었다.
그러나 내장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인지, 타들어 가는 고통이 몸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통 때문에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시현은 필사적으로 견뎠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서 폐 안에 있는 공기를 토해 낸다면, 그 다음에는 산소와 함께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독안개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히드라는 몸을 추스르는데 필요한 잠깐의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머리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제 몸에서 나온 독이다.
히드라의 독은 자신의 본체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주저 없이 독안개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시현을 물어뜯으려했다.
[크악?]
독안개 속에 진입한 두 개의 머리는 크게 당황해했다.
안개 속 어디에도 시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억…… 헉…….”
히드라들이 사라진 시현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사이, 시현은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높은 곳에서부터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독은 외피로도 막을 수가 없으니 까다롭네.”
그나마 다행인 건 권능을 사용하면 독으로 인해 발생한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그를 괴롭히던 고통도 가셨다.
회복을 마친 시현은 서브 무기인 검은 가시에 권능을 담아 지상을 향해 던졌다.
5레벨 구원자의 강한 힘에 중력가속도까지 더해지니 그 기세가 마치 유성과도 같았다.
검은 가시는 독안개를 쏜 히드라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아아아!]
충격을 이기지 못한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기세를 잃지 않은 검은 가시는 히드라의 두꺼운 비늘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검은 가시가 두르고 있던 잿빛의 불꽃이 히드라의 머리를 덮었으며, 처형의 권능이 발동하며 히드라의 두피에 추가로 상처를 입혔다.
첫 번째 공격을 제외하고도 총 세 번의 상처가 생겨나며 히드라는 대량의 피를 쏟아 냈다.
거기에 더해 검은 가시 효과로 히드라의 가죽을 뚫고 검은 광택을 자랑하는 가시가 안에서부터 가죽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삽시간에 고슴도치가 된 머리는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리 열두 개의 머리 중 하나라고 하지만 고작 일격에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크악! 크아악!]
설마 동고동락해 오던 머리 하나가 이리도 쉽게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다른 머리들은 크게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을 뿜는 머리가 쓰러진 머리를 물어뜯었다.
머리는 목과 분리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어찌 보면 제 몸의 죽은 부위를 잘라내는 의료 행위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부글부글.
이빨 모양의 절단면으로부터 붉은 기포가 발생했다.
그러더니 채 10초가 지나지 않아 절단면으로부터 새로운 머리가 자라났다.
[크아아아악!]
새로운 머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더니 시현을 향해 독안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겨우 10초?”
시현은 혀를 찼다.
히드라의 머리가 잘려도 새로 돋아난다는 사실은 이미 진우혁에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르베니아의 심장을 얻어 냉기 속성의 특성을 손에 넣지 않았던가.
하지만 머리를 자른 후 주어진 유예 시간이 고작 10초 남짓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난이도가 꽤 높네.”
물론 난이도가 조금 높다고 포기할 거라면 애초에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현은 핏빛 칼날을 늘어뜨렸다.
칼날에 검은 기류가 맺히고 백색의 불꽃이 휘감겼다.
백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섞이며 잿빛의 불꽃이 탄생한다.
거기에 스산하게 흘러나온 백색의 냉기가 섞여들며 불꽃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색을 띄기 시작했다.
* * *
“이제 곧 교단의 본진인 병원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이전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해 본 적이 있는 민서라의 말에 그녀를 따르던 구원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교단이 어떤 곳인가.
자타공인 서울시 최강이자 최대 규모의 세력이며, 여러 세력이 모여 만들어진 인천연합과도 맞붙을 수 있는 단일 세력이기도 하다.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어차피 지금의 교단은 텅 비어 있는 빈집이니까요. 시현 씨가 천리안으로 확인했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어요.”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생존자들은 당최 안심하지 못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여기서 입 아프게 백날 떠들어 봤자 소용없으리라 판단한 민서라는 속도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병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충 봐도 굉장히 견고해 보이는 방어 수준에는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호텔의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도 이 가드 라인을 뚫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 견고한 방어력을 우리가 활용해서 교단의 병력과 싸운다면 호텔에서 수성할 때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막아 낼 수 있을 거야.’
본격적으로 빈집 털이를 위해 민서라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타앙!
매마른 총성과 함께 민서라의 머리가 크게 젖혀졌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