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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58화 (158/225)

[158화]

이설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호흡은 가빠져 오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때 아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고고한 자태로 하늘을 날던 아르베니아가 지금은 맥을 못 추며 비틀거리고, 풍성하고 빛을 반사해 아름답게 빛나던 날개는 반 이상이 녹아 있었다.

“저 백색의 불꽃…… 윤시현인가?”

이설아와 같은 것을 올라다보고 있던 박화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색 불꽃은 본래 지현아 고유의 권능이었다.

그러나 지현아는 죽었고, 시현은 그녀의 권능을 모방해 사용하고 있다.

즉, 현 시점에서 백색의 불꽃을 사용할 수 있는 구원자는 시현이 유일하다 봐도 무방했다.

“저게 말이 돼? 분명 네가 그랬잖아. 아르베니아와 히드라는 외피가 징그럽게 단단하기로 유명한 놈들이라 현 시점에서 그 어떤 세력도 놈들을 토벌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놈들이 호텔을 파괴하고 나면 우리도 도망쳐야 한다고 그랬잖아.”

“…….”

이설아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설아가 박화영을 비롯한 교단의 구원자들 앞에서 호언장담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원작의 정훈도 5레벨 구원자일 때 도전했다가 쓰디 쓴 고배를 마시지 않았던가.

정훈이 아르베니아와 히드라를 토벌한 레벨은 6레벨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어떠한 구원자도 그들의 외피를 벗겨 낼 수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윤시현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아르베니아를 압박하고 있었다.

“나도 저게 가능할 줄은 몰랐어.”

이설아는 입술을 씹었다.

혀끝에서 비릿한 피의 맛이 느껴졌다.

시간 역행 때문에 상처는 금방 회복되었지만, 그녀가 받은 정신적 충격까지는 어떻게 해결해 주지 못했다.

“설마 외피를 깨부수지 않은 상태에서 데미지를 주는 방법이 존재할 거라고는…….”

* * *

대다수의 구원자들이 외피에 대해 착각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외피는 굉장히 유용하다.

일단 외피가 깨지지 않는다면 외부로부터의 모든 공격에서 사용자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물리 공격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속성을 통한 공격마저도 막아 준다.

예를 들어 이전 천 번째 별 지현아와의 전투에서 그녀가 사용하는 불길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어떠한 열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마 얼음 속에 갇히더라도, 차가운 남극의 물속에 빠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외피만 건재하다면 어떠한 냉기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물론 상대가 아르베니아처럼 규격 외의 냉기를 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찌 되었건 외피는 권능의 불꽃이 발하는 초고열의 온도도 막아 준다.

그러나 겨울날의 찬바람과 여름의 무더위까지 막아 주지는 않는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외피가 막아 주는 것은 외피에 직접 접촉하는 공격 및 물질에 한정된다.

즉, 시현이 아르베니아의 등짝에 백색 불꽃을 던진다면 아르베니아의 외피가 불꽃의 열기를 차단할 테지만, 직접 맞닿는 게 아니라면 외피는 열기를 차단하지 못한다.

[끼아아아악!]

아르베니아는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시현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자신의 흉포함을 알리기 위해 내지르는 괴성이 아니라, 고통에 찬 비명이라는 것을.

초고열의 불꽃이 수백.

그것이 아르베니아의 머리 위 한 뼘 높이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열기는 아르베니아를 뒤덮고 있는 얼음의 깃털을 녹이고 있었다.

“효과 확실하네.”

구원자의 권능이 사용자에게만큼은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이 이처럼 다행이라 느껴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르베니아는 어떻게든 자신을 녹이는 열기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날갯짓을 했다.

그러나 시현이 등 위에 서 있는 이상 아르베니아가 열기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끼아악…….]

깃털이 녹아 갈수록 아르베니아의 비행이 불안정해졌다.

고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술 취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결국에는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그 아래에는 반쯤 무너진 호텔을 끌어안고 있는 히드라가 있었다.

[크악?]

히드라의 머리가 일제히 위로 향했다.

제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아르베니아가 머리 위로 추락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히드라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히드라의 머리가 일제히 브레스를 내뿜었다.

물론 아르베니아라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깃털이 녹아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었을 뿐이지 전투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베니아가 날개를 크게 펼쳤다.

가슴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보석에서 영롱한 빛이 쏟아지더니 무수한 얼음 파편들이 쏘아졌다.

아르베니아가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공격이었으나 히드라와 아르베니아 사이에는 속성의 유리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었다.

히드라의 브레스는 얼음 결정을 사방으로 날려 버리며 아르베니아를 공격했다.

[끼아아악!]

아르베니아의 외피가 깎여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크윽!”

직접적으로 공격이 닿지는 않았지만, 아르베니아의 등에 타고 있어 함께 충격을 받은 시현은 혀를 씹고 말았다.

그래도 시현이 받은 피해는 교단의 구원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으아아악!”

“커헉!”

곳곳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브레스와의 충돌에 사방으로 날려진 얼음 파편.

말이 좋아 얼음 파편이지 그 크기는 사람의 머리통만큼 거대하다.

그런 흉흉한 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데 제아무리 구원자라고 해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체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린 구원자들은 맥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후방에 있던 생존자들은 그나마 무사한 편이었지만, 완전히 바닥에 추락한 아르베니아와 히드라가 본격적으로 충돌하며 발생한 여파는 그들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콰앙!

전투는 추락한 아르베니아가 히드라를 깔아뭉개며 시작되었다.

엄청난 무게와 크기, 거기에다가 더해진 중력가속도까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히드라는 추하게 쓰러진 채 허우적거렸다.

마찬가지로 낙하의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히드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하던 아르베니아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아르베니아는 자신의 날개를 녹여 버린 시현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히드라에게 오감을 집중했다.

[끼아아악!]

우렁찬 외침과 함께 아르베니아의 부리가 히드라의 몸통을 찍었다.

단순한 물리 공격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독한 한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부리 뿐만 아니라 날개, 발톱, 꼬리까지 동원한 공격에 히드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았다.

자신의 약점 속성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드라의 가장 큰 무기는 열 개가 넘는 머리에 있다.

다른 머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 안쪽에 있어 그나마 충격이 덜하던 머리 하나가 반격을 시도했다.

[크아아아!]

쩍 벌어진 입에서 지독한 독기가 뿜어졌다.

머리를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크게 휘두른 덕에 독기는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화염 외에 약점 속성이 없는 아르베니아는 독기 브레스에 맞고도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브레스의 범위에 닿은 교단의 전투원들은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괴로워했다.

“퇴각! 넋 놓고 구경하지 말고 퇴각해!”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놈은 아군의 시체를 업고 달려! 거기 너! 너무 앞서가다간 권능의 범위 밖으로 나가게 된다!”

박화영과 나설주를 필두로 실력 있는 구원자들이 아군을 안전지대까지 대피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 둘 순서대로 정신을 차린 히드라의 머리가 계속해서 다양한 원소를 뿜어냈고, 그럴 때마다 교단의 구원자들은 맥을 못 추리고 죽어나갔다.

이설아의 권능이 있다지만 한 걸음을 떼면 불꽃이 덮쳐 오고,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때면 얼음이 덮쳐 온다.

“차라리 죽여 줘…….”

반복되는 고통에 급기야 삶의 의지마저 잃고 주저앉아버리는 이들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 * *

사실 이설아가 세운 계획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신혈을 이용해 대형 악마를 불러들여 호텔을 공격하게 만든다.

대형 악마는 교단, 호텔을 구분 짓지 않고 인근에 있는 모든 인간을 공격할 것이다.

교단의 수많은 생존자와 구원자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물론 호텔의 생존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교단은 이설아의 권능을 이용해 사망자들의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반대로 대형 악마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즉사한 생존자를 되살릴 방법이 호텔에는 없다.

따라서 시현이 호텔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호텔이 입는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한 싸움을 강요하는 게 이설아의 계획이었다.

눈치 빠른 시현이 곧바로 생존자들을 뒤로 빼 버리기는 했지만, 그들의 터전인 호텔 건물을 붕괴시킨 것만 해도 이득이며 커다란 성공이었다.

남은 것은 히드라가 신혈을 탐하는 동안 안전지대까지 물러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설마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이야.

“윤시현……!”

이설아는 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다 망쳐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시현으로 인해 성공 직전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차라리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끝이 났다면 다행히지, 히드라와 아르베니아가 교전하며 발생하는 피해로 인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구원자들은 시간 역행으로 부활하는 족족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일어나서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도로 누워 버리니 퇴각 명령이 제대로 이행될 리가 없었다.

위험한 것은 이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아야!”

나설주가 몸을 던져 이설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 차례 일대를 훑고 지나간 전격이 나설주의 숨을 끊어 놓았다.

시간 역행으로 부활한 나설주는 가장 먼저 자신이 아닌 이설아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괜찮아요.”

“다행히다.”

나설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몇 번을 죽어도 되살아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설아가 죽으면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다.

이 전장에는 시체만 구르게 될 것이다.

“더 이상은 위험해. 보통 때라면 어떻게든 버텨 보겠는데, 호텔과의 전투에서 너무 많은 소모가 있었어.”

나설주는 이설아에게 후퇴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이설아는 머리카락이 목에 휘감길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지금 후퇴하면 아직 이탈하지 못한 구원자들은 전부 죽고 말 거예요.”

호텔의 발을 묶어 두기 위해 전장 깊숙하게 침투했던 구원자들.

그들은 역으로 발이 묶여 안전지대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수가 적지 않다.

저들을 포기한다면 교단의 전투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곧 있을 인천연합과 등대와의 싸움에서 불리한 조건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설아만큼이나 나설주의 고집도 대단했다.

“구원자는 또 육성하면 돼. 하지만 우리가 수십, 수백 명의 구원자를 육성한다 한들 그중 너 정도로 시간을 다루는 구원자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

“저기 있는 수십 명의 구원자보다 너 하나가 더 중요하다.”

나설주는 이설아의 손목을 붙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놔요!”

이설아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박화영까지 그녀의 등을 밀었다.

“우리 설아, 어리광은 그만 부리자.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지.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설아가 모를 리가 없었다.

구할 수 없는 아군은 포기하고, 사실상 한없이 패배에 가까운 승리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소리였다.

그게 싫었던 이설아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동레벨 구원자 두 명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구원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설아!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마!”

“지휘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지휘관이 멀어지면 우리는……!”

그러나 그들은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얼음 조각에 꿰뚫려 목숨을 잃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몸을 일으킨 그들은 눈물을 흩뿌리며 이설아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들은 열 걸음도 채 떼어 놓지 못했다.

엄청난 수압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들의 허리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후미에 있던 몇 명은 더 이상 시간을 거스르지 못했다.

이설아의 권능 범위 밖으로 빠져나가고 만 것이다.

구원자들은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을 반복할 때마다 이설아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설아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죽음 후 몸을 일으키는 구원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갔다.

30이 20이 되고, 20이 10이 되고, 10은 곧 1이 되었다.

“이설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구원자는 울부짖듯 이설아의 이름을 외쳤다.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졌다.

흉측하게 짓이겨진 그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눈에 담은 이설아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아르베니아를 추락시켜 히드라와 전투를 하게끔 만든 장본인인 시현은 공간을 도약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 안착했다.

그리고 천리안을 이용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관찰했다.

“역시 아르베니아가 압도적으로 밀리네. 하긴, 머리가 하나 둘 셋…… 열둘이나 되는데 어떻게 이기겠어. 그나저나 교단은…….”

교단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던 시현은 활짝 웃었다.

결국 이설아는 두 대형 악마의 싸움에 휘말린 수십의 구원자들을 포기하고 전장을 이탈했다.

분명 전쟁의 승자는 교단일 터인데 그들의 뒷모습은 패잔병에 가까웠다.

한참을 웃던 시현은 다시 두 대형 악마에게 초점을 맞췄다.

사실 이 싸움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 싸움에서 밀리는 아르베니아인데 시현으로 인해 날개라는 수단을 빼앗겨 버리지 않았는가.

사실상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아르베니아는 열두 개의 머리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아르베니아의 마지막은 생각보다 빨랐다.

[끼아아악…….]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아르베니아가 힘없이 늘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르베니아를 내려다보던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아르베니아의 목을 물었다.

그와 동시에 시현이 움직였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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