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하늘이 갈라졌다.
정확하게는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쪼갠 것처럼 정확하게 반으로 나뉜 것이다.
갈라진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새였다.
총 네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양쪽으로 길게 펼쳤을 때의 길이는 대충 봐도 현무 이상이다.
등과 배, 그리고 머리에 있는 깃털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치 갑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새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눈송이가 떨어져 주변의 기온을 급격이 낮췄다.
때 아닌 겨울이 찾아온 대지에는 소복하게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지에 내린 눈은 오래지 않아 녹아내렸다.
땅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붉은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갈라진 대지로부터 커다란 팔이 튀어나왔다.
콜로서스 때와 비슷하지만 팔의 크기가 배는 더 거대하다.
땅 아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것은 두 다리로 걷는 거대한 파충류였다.
특이한 점은 온 몸에서 붉은 용암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며, 꿈틀거리는 머리의 수가 족히 열은 넘는다는 것이다.
[크아아아아!]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하늘을 향해 목을 열고 우렁차게 포효하는 적색의 악마.
[끼아아아악!]
그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청색의 악마.
무려 둘이나 되는 대형 악마의 등장에 시현은 머리를 감쌌다.
“두 마리? 하나만 해도 벅찬 마당에 둘?”
감당할 수 없는 위기의 등장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설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진짜 지독한 여자네.”
신혈에 취한 두 악마는 호텔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원래라면 대형 악마들이 도달하기 전에 호텔을 비우고 달아나거나 호텔에 도달하기 전에 토벌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단의 병력과 교전 중인 상황.
무턱대고 달아나다가는 전멸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기서 다 같이 죽자는 거군. 어차피 지들은 권능으로 부활할 테니까.”
최악이었다.
[시현 씨!]
무전기에서 민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역시 같은 것을 목격하고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시현은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와 정보를 공유했다.
“네, 민서라 씨.”
[어? 생각보다 목소리가 괜찮으시네요. 뭔가 방법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럴 리가요. 당황해 봤자 답이 안 나오니 침착한 척이라도 하려는 거죠. 그보다 저것들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시현이라 해서 원작에 나오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작의 양은 몹시 방대한지라 머릿속에 집어 넣는다 한들 자주 떠올리지 않으면 어느새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복습하는 것인데 이번에는 며칠 동안 이어진 전투로 인해 복습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도 민서라는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파충류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전투에 집중해!]
전투 도중에 무전기를 잡고 있는 민서라가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 판단한 건지 무전기 너머에서 박화영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민서라는 거칠게 숨을 토하면서도 무전기를 놓지 않았다.
[이름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히드라. 불과 독을 사용하는 대형 악마에요. 방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재생력이 뛰어나서 쉽게 죽이기는 힘들어요. 완전히 숨통을 끊어 놓으려면 머리를 거의 동시에 베어야 합니다. 머리는 베이고 난 뒤, 빠르게 재생되거든요.]
열 개가 넘는 머리를 동시에 베어야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원작에 등장한 악마라면 어떻게든 정훈에 의해 토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불가능해 보여도 결국에는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있습니까?”
[물론 있죠. 사실 어떻게 동시에 열 개가 넘는 머리를 모두 벨 수 있겠어요. 원작에서 정훈은…….]
[약해빠진 주제에 무시하지 말라고!]
[아, 진짜 되게 쫑알거리네. 통화할 때는 조용히 하는 게 예의라는 것도 몰라?]
계속해서 훼방을 놓는 박화영과 싸우면서도 민서라는 무전을 놓지 않았다.
제대로 정보를 전하지 않으면 박화영이 문제가 아니라 호텔의 존속 자체에 위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였나? 거기에서는 목을 베어 낸 후, 불로 지져서 재생을 못 하도록 했죠. 하지만 보다시피 저 놈은 다양한 속성을 사용하거든요. 그중 불도 포함되어 있고요. 불로 지져 봤자 회복만 도울 뿐이에요. 그러니까 단면을 얼려 버려야 해요.]
“정훈은 어떻게 했죠?”
[강력한 빙속성 권능을 사용했죠.]
“쯧.”
시현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민서라가 건네준 정보는 훌륭했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그녀가 알려 준 방법을 사용할 방도가 없다.
그가 모방하고 있는 권능 중 빙속성의 강력한 권능은 없으며, 그건 호텔의 구원자 전원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답답한 마음에 이만 갈고 있으려니, 옥상 문이 벌컥 열리며 진우혁이 등장했다.
“리더어어어!”
어릴 적 헤어진 이산가족과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애처롭게 시현을 부르짖는 진우혁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무려 두 마리의 대형 악마를 맞이하고 절망한 이라기보다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반기는 듯한 목소리 아닌가.
“무슨 일이십니까?”
“리더께서 혹시 저 악마들에 대해 모르고 계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알고 계십니까?”
“저 새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어찌 보면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말을 하면서도 시현은 웃었다.
요즘 들어 자주 잊어버리고는 하는데 호텔에 소속된 참가자는 총 세 사람이다.
시현과 민서라, 그리고 진우혁까지.
즉, 시현과 민서라가 모르고 있는 정보라 해도 진우혁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진우혁은 그런 시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빙조 아르베니아. 보시면 아시겠지만 냉기를 이용한 공격을 주로 합니다. 하늘에 있어서 공격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네 쌍의 날개를 덮고 있는 깃털 전부가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고열의 화염에 취약하며 날개의 깃털을 전부 녹여 버린다면 추락할 겁니다. 그리고 토벌에 성공할 경우 아르베니아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시현은 민서라가 준 정보와 진우혁이 준 정보를 규합했다.
대형 악마 중에서도 특징이 도드라져서 토벌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
그러나 특징이 도드라지는 만큼 약점 또한 명확하게 드러났다.
약점을 잘만 찌른다면 어떻게 잘 처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약점이 불과 얼음이라 이거지…….”
* * *
빙조 아르베니아는 호텔의 상공에서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이성을 미치게 하는 신혈의 향에도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 지상에서 날뛰고 있는 히드라가 원인이리라.
반면 히드라는 흉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악마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제 몸집만한 새가 날고 있건 어쩌건 눈이 뒤집힌 히드라는 호텔까지 가는 길목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급급했다.
[캬아아아아!]
머리가 열 개가 넘어가다 보니 내지르는 포효의 크기도 보통이 아니었다.
모든 머리가 동시에 괴성을 내지를 때면 제법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시현조차 귀가 아플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가까기에 있던 생존자들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기도 했다.
“으아아아악!”
“대형 악마라니. 이런 말은 없었잖아!”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마리의 대형 악마.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교단의 전투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레 겁을 먹은 인원이 달아날 것을 고려해 이설아가 일부러 내용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다.
그 덕에 전투원들은 눈물, 콧물을 흩뿌리거나 다리 사이에서 노란 액체를 흘리며 절망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히드라는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흔들렸고 숨을 토할 때마다 불, 독, 번개나 냉기 등 다양한 원소들을 토해냈다.
생존자들은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사실상 호텔과 히드라 사이에 장애물은 없다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리, 리더, 어떻게 하죠? 저런 게 오면 틀림없이 모두 죽을 거예요!”
진우혁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조금만 자극하면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할 기세다.
비단 진우혁 뿐만 아니라 교단과 전투를 벌이던 생존자 전원이 시현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해답을 내려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시현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호텔을 지킬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호텔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했다.
사실상 0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시현은 쉽게 호텔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호텔에는 그동안 차곡차곡 토큰을 사용해 구축한 인프라도 있고, 무엇보다 시현의 제단이 존재하는 장소다.
만약 제단이 붕괴하기라도 하면 시현은 영구적으로 능력의 일부를 손실하게 된다.
따라서 호텔은 반드시 지켜야 할 장소였다.
그러나 시현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웃으며 죽어 달라고 부탁할 만큼 염치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시현은 결론을 내렸다.
“호텔 건물은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현은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기 살기로 치고받던 호텔과 교단이지만, 히드라와 아르베니아가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전투는 중단되었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당장 죽게 생겼는데, 눈앞의 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나마 교전을 계속하고 있는 건 구원자들이다.
시현은 무전기를 들었다.
“김세찬, 김세영, 목소리 들려?”
[네, 들려요!]
무전기에서 평소보다 몇 배는 굵어진 김세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반 전투원들을 정리해서 뒤로 빠져. 호텔을 포기하고 빠져나갈 거야.”
[어…… 진짜요?]
김세찬은 망설이는 듯 했다.
이전에 있던 요새에서 사실상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받던 쌍둥이에게 있어 물 잘 나오고, 전기 잘 돌고, 식사 잘 제공되는 호텔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호텔을 포기하라고 하니 좀처럼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망설이고 있을 시간도, 쌍둥이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 진짜야. 최대한 빨리 움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으니까 부탁할게.”
[알겠어요!]
다소 비겁하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미끼로 쌍둥이를 움직인 시현은 아직까지도 배후에서 발만 구르고 있는 진우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우혁 씨.”
“네?”
“현재 호텔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창고로 향해 주세요. 그러고 물이나 식량을 위주로,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물자를 챙겨 주시고요. 10분 정도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현과 김세찬이 나누는 무전의 내용을 엿들은 진우혁은 굳이 이유를 묻거나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옥상을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그…… 물자를 챙긴 후에는 어떻게 할까요?”
“쌍둥이네랑 합류하세요. 그 다음에는…….”
아주 잠깐 시현은 대답을 망설였다.
일단 호텔을 버리고 달아난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새하얀 백지 수준으로 계획이 없었다.
기존 호텔의 인원과 급하게 합류한 테크노벨리 생존자의 일부.
그 인원은 결코 적지 않다.
그나마 테크노벨리라면 이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있겠지만, 도망자 신분으로 성남까지 향했다가는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기왕이면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현의 뇌리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교단.”
“네?”
“교단의 본진인 병원으로 향하세요.”
“……네?”
밑도 끝도 없이 대뜸 교단의 본진으로 향하라니.
이게 웬 미친 소리인가 싶던 진우혁은 ‘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신이 혼란해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검지를 깊숙이 넣어 귀를 후빈 진우혁이 다시 한번 물었다.
“어디로 가라고요?”
“교단의 본진인 병원이요! 지금 여기서 문답을 나누고 있을 시간조차 아깝습니다!”
“아, 네!”
시현의 다그침에 진우혁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옥상을 벗어나 비전투원들을 진두지휘, 시현이 말한 것처럼 중요 물자를 챙기고 서둘러 호텔을 벗어날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시를 내린 이가 다름 아닌 시현 아닌가.
교단의 본진으로 향하라고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리 판단하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교단도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지. 전투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동원했고, 전투원도 총동원했으니 지금쯤 교단의 본진은…….”
십중팔구는 텅텅 비어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비전투원 몇 명이 어설픈 무장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겠지만, 그 정도면 진우혁 혼자서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푸하하하!”
시현이 무슨 생각으로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차린 진우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데없이 터져 나온 웃음에 그와 함께 탈출 준비를 서두르던 생존자들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우혁은 한참이나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리더는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이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