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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54화 (154/225)

[154화]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정보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몇 번이고 교전이 있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는 소식을 접한 이한울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윤시현, 역시 그 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자연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윤시현과 처음 교전했던 그 날.

포스트 아포칼립스 초창기에 서로 막 각성을 마친 신출내기 구원자였던 그 시절이 말이다.

그 때의 윤시현은 약했다.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를 영입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를 죽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작은 날갯짓이 이렇게나 큰 태풍이 되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리더, 수고했어.”

어둠 속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일렁였다.

반쯤 타버린 초를 들고 있는 인물은 20대 중반의 젊은 남성.

교단 소속의 구원자이자 참가자이기도 한 한천식이다.

장발에 헝클어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탓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본인은 그게 좋다고 늘 말하고 다니는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야 길었던 대장정의 끝이 보이네. 조금만 있으면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는 거겠지?”

“…….”

“왜 말이 없어? 설마 내가 늦었다고 삐진 건 아니지?”

“…….”

“와, 이거 단단히 삐졌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놀다가 늦은 것도 아니고. 이 쬐깐한 양초 하나에 의존해서 미로 같은 길을 찾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손전등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모를까…… 하여간 여기 주인은 전자기에 민감해서 탈이라니까.”

“…….”

“…….”

열심히 떠들어대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한천식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조금 토라진 게 아니라 아주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아니, 단순히 삐졌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지. 설마 화났나?’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한울이 화가 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딱히 이렇다 할 문제는 떠오르지 않았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머지않아 교단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때는 이 지긋지긋한 Re write도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앞으로 좋은 일만 남았는데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조금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전황이 안 좋은 모양이네.”

“……하아.”

정곡을 찔린 이한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어지간히도 상황이 심각한 건지, 그렇지 않아도 사나운 눈매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걱정되면 다녀오지 그래?”

한천식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이한울의 싸늘한 눈초리였다.

“왜. 내가 서울에 가 있는 동안 너 혼자 독식하려고?”

“뭐야. 내가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여?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은데 아직까지도 날 그렇게 의심하면 조금 섭섭해, 리더.”

“개소리.”

생글거리며 늘어놓은 변명을 이한울은 개소리로 일축해 버렸다.

뜻이 맞아 협력하고 있지만, 이한울은 결코 다른 참가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유환도 그랬고, 천소해도 그랬고, 그리고 눈앞의 한천식도 그랬다.

이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는 참가자는 언제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배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는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신뢰하는 참가자는 단 한 사람.

동생인 이설아뿐이다.

“우리 리더는 말이 너무 심하네. 내가 상처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넌 그렇게까지 섬세한 인간이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보다 이제 슬슬 리더가 일을 좀 해 줘야 할 거 같은데. 그것을 깨우기 위해 리더가 가진 신혈이 필요하거든.”

“알고 있어.”

이한울은 들고 있던 무전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호텔과의 전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의 일이 더 중요했다.

이한울은 한천식이 그랬던 것처럼 양초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둠속을 향해 걸어갔다.

부디 이설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좁고 어두운 통로에 들어간 순간, 미약한 두통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깨운 게 인간이라니……. 좋다. 어디 한번 원하는 바를 지껄여 봐라. 내 친히 들어줄 터이니.

“…….”

이한울은 입을 열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벌써 며칠 째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면 피해가 누적되는 것은 공격 측인 교단이 될 수밖에 없다.

먼저 교단에서 꾸준히 물자를 공수해 와야 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덩치가 큰 만큼 보급 부대 역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악마의 눈을 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물자를 옮길 때마다 악마의 습격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얼마 전, 시현이 포탈 생성을 터득하게 된 이후로는 시현을 필두로 한 게릴라 부대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그에 따라 쌓여가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아야∼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설아야∼”

“…….”

이설아는 생각했다.

박화영 저 인간, 또 지랄이구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극도로 기분이 좋을 때 저런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그러나 박화영은 어딘가 근본부터가 비틀어진 인간이었다.

극도로 기분이 저조할 때, 박화영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저런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즉, 현재 박화영의 기분은 밑바닥이라는 소리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설마 또 보급이 뒤집어졌어요?”

“정답! 우리 설아 똑똑하기도 하지.”

“하아…….”

이번에는 이설아의 스트레스가 폭주할 차례였다.

윤시현의 게릴라전이 시작된 이후 보급 차량을 지키기 위해 보다 많은 구원자들을 배정했다.

심지어 책임자로 박화영을 배정하지 않았던가.

무력 면에서 박화영이 교단 최고의 카드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매일 같이 들려오는 소식은 보급에 실패했다는 것뿐이었다.

“윤시현이 문제야. 지가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권능을 이용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데 우리 같은 뚜벅이가 무슨 수로 쫓아가겠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두 개는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이설아는 임무에 실패한 박화영을 탓하지 않았다.

애초에 어려운 임무였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실패를 계산해 보급로를 여러 개 동시에 운영하지 않았던가.

두 개의 보급이 무사히 도착했기에 현 시점에선 부대를 운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박화영의 생각은 달랐다.

“고작 두 개야. 다섯 개를 보냈는데 겨우 두 개가 도착했다고. 차라리 악마의 습격에 물자를 소실한 거면 말도 안 해. 이송에 실패한 보급은 죄다 호텔에서 가져갔을 거 아니야!”

그랬다.

교단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어떻게 된 것이 포위를 하고 있는 건 교단이고 고립된 건 호텔인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호텔은 풍족해지고 교단은 빈곤해지고 있었다.

굴욕적이기까지 한 결과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쪽에서 헬기를 띄운 시점에서 말려 죽인다는 작전은 실패나 다름없었어요.”

“그걸 아는 인간이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있는 거야?”

“그건……!”

누가 시간은 끌고 싶어서 끌었겠는가.

창을 쥔 두 손의 온 힘을 다해 내질렀는데, 저 견고한 방패를 뚫지 못했을 뿐이지.

그러나 이설아는 말을 아꼈다.

이 이상 계속해 봤자 아무런 성과도 없는 감정싸움만 계속될 뿐이었다.

“그보다 문제가 생겼어요.”

“또, 또 문제. 여기서 뭐가 더 나빠질 게 있나?”

“호텔에서 지원을 부른 모양이에요. 교회, 그리고 인천연합. 이 두 곳에서 병력을 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와…… 호텔 하나만 해도 벅찬 이 와중에 교회는 그렇다 쳐도 인천연합? 앞뒤로 둘러싸이면 정말 재미있겠네. 아니, 그나저나 그 두 곳은 움직이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박화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교단을 통솔하는 이한울은 결코 머리가 나쁜 인간이 아니다.

다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나름 융통성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 놓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다.

그런 이한울이 호텔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와 인천연합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교회의 경우 하운드, 인천연합의 경우 스카이라인과 극단을 이용해 압박하고 있잖아. 여유가 없을 텐데?”

“둘 중 하나겠죠. 함정카드거나, 인천연합과 교회의 힘을 우리가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가. 제 생각에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 문제죠.”

만에 하나라도 인천연합과 교회가 가진 힘을 교단이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면.

그 두 세력이 전쟁 중인 호텔에 지원군을 파견해 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교단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럴 때 천리안이 있었으면…….”

곁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곁에 없으니 천리안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받고 있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만약 천리안이 있었으면 만약을 걱정할 것 없이 실시간으로 두 세력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작전을 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뒤진 놈인데 뭘 어쩌겠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러다가 큰일 난다고.”

그렇게 말한 박화영은 전쟁에 쓰일 작전들이 적힌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이설아는 현 시점에서 사용할 수 없는 안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그러고 나니 남아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건…… 와, 큰일 났네. 사실 이건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는 거 아니야?”

집게와 엄지로 얇은 한 장의 서류를 들어 올린 박화영이 조소했다.

서류에 적힌 문자를 확인한 이설아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총력전.

순백의 서류에는 깔끔하게 세 글자만이 기입되어 있었다.

* * *

“오늘은 교단이 어떤 작전을 보여 줄까요? 기대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옥상에 올라와 있는 시현의 옆에 자리한 이나연이 말했다.

괜히 해 본 소리가 아니라는 듯 이나연의 입가에는 자세히 봐야 발견할 수 있는 미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 이번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있던 엄청난 수를 써 올지도 모르잖아.”

입장상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시현도 별 기대는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교단은 호텔을 공격해 왔고, 그 때마다 호텔은 성공적으로 어려움 없이 교단의 공격을 막았다.

이설아가 아무리 수를 바꿔 가며 집요하게 달라붙어도 시현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커다랗게만 느껴지던 교단이 하염없이 만만하게 느껴졌고, 그에 따라 경계심도 다소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걱정되는 게 있다면 전투원들의 정신력인데…….”

여기서 시현이 언급한 정신력은 구원자들이 권능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정신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정신의 힘.

멘탈을 흔들어 놓는 일을 겪고서도 딛고 이겨 낼 수 있는 의지를 뜻한다.

사실 지금까지만 해도 호텔의 전투원들은 잘 버텨 주었다.

몇 번을 죽여도 끊임없이 부활해서 달려드는 적들.

반면 아군은 죽음을 거스를 수 없다.

그나마 시현의 권능을 통해 부상은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부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생존자들은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끊이지 않는 고통은 사람을 미치게 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데서 오는 지독한 죄악감은 보통 사람이 견뎌 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 호텔에선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을 호소해 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술이라도 푸는 게 어때요? 그 때 못다 한 축제를 다시 하는 거죠.”

“그러자.”

이나연의 제안을 시현은 기꺼이 수락했다.

피폐해진 생존자들을 달래 줄 수만 있다면 그깟 술이 뭐 대수겠는가.

그보다 더한 것도 해 줄 의향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교단 측 생존자들의 정신적 피폐함이 호텔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

그것을 멀쩡한 정신으로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말단 전투원의 정신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오늘도 교단은 여지없이 군대를 움직였다.

“아, 온다.”

망원경을 붙들고 있던 이나연의 말에 시현은 곧바로 천리안을 사용했다.

그녀의 말대로 교단의 병사들이 호텔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어?”

그때 뭔가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의 교단은 항상 예비 병력을 배후에 놔뒀다.

세력과 세력의 싸움에는 늘 방해꾼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제3의 세력이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고, 도시를 누비는 악마들에게 배후를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작전이 어긋났을 때를 대비해 이설아는 늘 전체의 3할 정도를 후방에 배치해 두었는데 오늘은 후방 병력 없이 모든 전력을 쏟아 부은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총력전?”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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