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교단은 끈질겼다.
몇 번 찔러보고 안 뚫릴 거 같으면 포기하고 좀 돌아갈 법도 하건만.
이설아가 이끄는 교단의 병사들은 계속해서 수단과 방법을 바꿔가며 호텔을 공략하려 들었다.
“와…… 진짜 쟤들은 지치지도 않나?”
옥상 난간에 기대어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피던 이나연이 하늘을 우러르며 한탄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시작이었다.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게 어제와는 또 다른 움직임이라 어찌 보면 대단하기까지 하다.
“이쯤 되니 오늘은 뭘 보여 줄지 기대되기까지 하네.”
“이틀 전에는 박격포까지 쐈잖아. 옥상에서 그거 보고 식겁했는데. 수호나무 결계를 사용해서 겨우겨우 막기는 했는데, 그거 맞았으면 난리 났을 거야.”
“그러니까요. 어제는 어둠을 틈타 소수정예로 암습을 시도했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걸 위해서 전날 박격포로 수호나무 결계를 깨부순 거 같아요. 다행이도 두 개째가 완성돼서…….”
반사적으로 대답해 놓고 이나연은 깨달았다.
이나연은 옥상에 혼자 있었으며, 옥상으로 연결되는 문이 열리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즉, 현재 옥상에서 이나연 외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목소리가 그녀에게 있어 굉장히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오빠?”
그녀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돌아보니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시현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평소라면 마주 보며 웃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지금 이나연의 표정을 직역하자면 ‘왜 네가 여기에?’ 정도로 나타낼 수 있겠다.
“오빠, 잠시 상담할 거 있다고 헬기로 인천에 간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이상하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인천까지 갔다 올 시간이 안 되는데? 아니, 애초에 헬기는 돌아오지도 않았잖아요!”
“내가 어떻게 헬기도 없이 호텔에 복귀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시현의 장난기 다분한 웃음에 이나연은 요즘 들어 워낙 정신이 없는 통에 망각하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포탈 생성에 성공하신 거예요?”
“정확하는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요 며칠 동안, 계속된 전쟁 때문에 어둡고 피폐해져 있던 시현의 목소리가 간만에 밝았다.
매일매일이 싸움의 반복이라 연습에 사용할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아 늘 제자리걸음이었는데, 어제 오늘 여유가 있어 연습에 집중하여 결국 해내고 만 것이다.
“축하해요. 오빠라면 금방 해내실 거라 믿었어요.”
“고마워.”
이나연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함께 기뻐해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기쁨을 호텔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교단의 움직임이 오늘따라 예사롭지가 않았다.
[시현 씨! 지금 빨리 호텔로 복귀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시현이 인천에 있다 생각하는 민서라가 무전을 통해 연락을 취해 왔다.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은 불필요했다.
“지금 호텔 옥상에 있습니다.”
[네? 대체 무슨…… 아,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일단 대처해야 하니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무전기 전원을 끈 시현은 호텔의 정면을 응시했다.
유리창이 모조리 깨진 빌딩의 옥상.
그곳에 적색의 커다란 도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전에도 본 적 있는 화속성 포격의 진이다.
사실 포격의 진은 화려한 효과와 달리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이전에는 워낙 급해서 일방통행을 사용했지만, 사실 외피만 멀쩡하다면 시현이 몸으로도 막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전에 발견만 할 수 있다면 민서라 역시 어렵지 않게 포격을 막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민서라는 초조함에 휩싸여 시현을 호출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옥상에 나타난 포격의 진이 무려 여섯 개나 되었기 때문이다.
“와……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초록……. 색깔도 참 다양하네요. 색이 전부 다르다는 건 속성도 전부 다르다는 뜻이겠죠?”
“그렇겠지. 그러고 보니 포격의 진 색상별로 여섯 개 모으면 흑색 포격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던데…… 저거 막으려면 꽤나 진땀을 뺐을 거다.”
“오빠가 없었으면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이나연은 대규모 권능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도 근심 걱정 하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이나연의 기대를 배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현은 웃었다.
“맞아. 보아하니 내가 호텔을 잠시 비운 걸 알고 계획을 꾸민 모양인데……. 아쉽게 됐네.”
시현은 곧바로 권능을 준비했다.
제 아무리 여섯 개 속성이 모여 흑색 포격의 진이라는, 보다 상위의 권능을 발현한다 한들 일방통행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일방…… 아니, 잠깐.”
시현은 돌연 권능의 사용을 멈췄다.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저놈들이 공격을 한다고 해서 꼭 방어를 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네?”
전혀 이해하지 못한 건지 이나연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적이 공격해 오는데 방어를 하지 않으면 뭐 어쩌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보면 답은 충분히 나왔다.
적의 공격을 몸으로 받는 게 하수요, 막거나 피하는 게 중수이며, 적의 공격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게 고수다.
“다녀올게.”
“……아!”
이제야 깨달았다는 얼굴을 한 이나연을 뒤로한 시현은 권능을 사용했다.
일방통행이 아닌 포탈 생성의 권능을.
순식간에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은 여섯 개의 도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빌딩의 옥상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은 자신이 있던 호텔의 옥상이다.
그리고 시현의 앞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는 여섯 명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플 터.
시현은 곧장 칼을 뽑았다.
스릉.
“으음?”
검신과 칼집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를 감지한 이는 여섯 명 중 딱 한 사람에 불과했다.
노년의 구원자는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봤고, 그가 목격한 것은 자신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날이었다.
“커헉!”
구원자의 목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외피 때문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는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결과 만들고 있던 포격의 진도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았다.
“어어? 뇌속성 포격의 진이 흩어지고 있어요!”
“잠깐, 뭐가 어떻게 된…… 허억! 유, 윤시현!”
“쟨 뭐야! 왜 저놈이 여기에 있어?!”
작전을 말아먹은 노인을 탓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 구원자들은 경악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처형장의 망나니처럼 웃으며 적색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현은 다급히 일어나려는 노인의 가슴을 발로 짓밟았다.
요즘 재미가 들린 회색 불꽃을 검에 두른 시현은 노인의 머리를 반복해서 내리쳤다.
기본 타격에 화염 데미지.
거기에 더해 처형의 권능으로 인한 추가타가 연속으로 터져 나가는데 노인의 외피가 그것을 버텨 낼 리는 없었다.
“억! 억! 어억!”
노인은 힘없는 비명만 몇 번 내지르다가 외피와 목숨 모두를 잃고 말았다.
만약을 위해 기다려 봤지만 예상대로였다.
사망한 노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당연히 교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이설아는 정신력 소모가 심한 시간 역행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구원자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시현을 막으려 했으나, 그들보다 시현이 더 빨랐을 뿐이다.
“할아버지! 젠장, 노인 공경도 모르는 호로새끼 같으니라고!”
“노인이고 나발이고 전장에 섰으면 적과 아군만 있는 거 아니야?”
“개소리 집어 치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언성만 높이는 건장한 남성은 지성을 내려놓은 돌격을 감행했다.
“멍청아! 그만둬!”
“상대는 윤시현이라고! 할 거면 최소한 동시에…….”
다른 구원자들이 다급하게 뒤를 쫓으며 남자를 만류했다.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 버린 남자는 동료들의 만류를 듣지 않았다.
“이건 뭐 유인원도 아니고.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
분노에 몸을 맡긴 대가는 참혹했다.
힘껏 내리찍은 검에 머리를 적중당한 남성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바닥에 엎어진 모양새가 차바퀴에 짓눌린 개구리 같았다.
머리가 짓밟히고 나서야 남성은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레벨 차이가 없었다 해도 내 권능은 근접 강화 계열이고, 넌 장거리 포격 계열이잖아. 무슨 자신감으로 근접전을 시도한 건 지 모르겠네.”
시현은 남자의 어리석음에 진지한 충고를 해 줬다.
안쪽이 텅 비어 있으리라 유추되는 머리를 몇 번이고 반복해 내리치면서 말이다.
이제 한두 번 정도만 더 내리치면 외피가 깨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남자의 동료들이 지척까지 도달한 상황.
더 시간을 끌면 포위당하게 될 것이다.
‘대충 2레벨 둘에 3레벨 둘인가? 무지성은 2레벨이고.’
아무리 이들이 포격 계열의 구원자라 해도 레벨이 마냥 낮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시현이 동일 레벨 구원자 셋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박화영처럼 괴물 같은 피지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위험할 수도 있다 판단한 시현은 거리를 벌였다.
가까스로 위기 상황에 처한 동료를 구출하는데 성공한 구원자들은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마냥 시현을 경계했다.
“우선 이설아에게 알려서 빨리 필드를 사용하라고 해. 아니면 본인이 직접 여기로 오던가!”
“일단 연락할게요!”
가장 나이가 젊은 구원자가 무전을 들었다.
이설아의 권능이 사용되면 시현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
‘겨우 하나 가지고는 성이 안 차는데.’
최소한 하나, 가능하다면 둘 정도는 더 데려가고 싶었다.
그런다고 교단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이 정도 인원을 모으고 육성하는데 부단히도 애를 썼을 것이다.
그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는다면, 적어도 이설아나 이한울의 속을 뒤집어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연락 됐어요! 권능의 사정거리까지 진입하는데 약 2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좋아. 일단 2분만 버티자!”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파이팅을 외쳤다.
‘2분이란 말이지.’
당장 이설아의 권능이 사용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도 약간의 여유가 주어졌다.
시현은 권능을 사용했다.
“어?”
갑자기 눈앞에서 시현의 모습이 사라지자 구원자들은 크게 당황해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어디에서도 시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신인가? 은신을 사용해서 여기까지 몰래 잠입한 건가? 그러고 보니 호텔의 구원자 중 은신을 사용하는 놈이 있잖아. 그 인간의 권능을 빌렸을 수도 있어.”
“일단 등을 맞대고 주변을 경계해!”
그들은 원을 그린 채 등을 맞대고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어차피 외피 때문에 일격에 당하지는 않을 테니 몸으로 버텨 보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시현이 사용한 권능은 은신이 아니라 포탈 생성이라는 것을.
포탈을 생성한 장소는 그들의 머리 위 약 10미터 지점이다.
중력가속도를 받아 빠르게 추락하는 시현이 노리는 곳에는 아까 미처 끝장을 내지 못한 남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미어캣마냥 목을 쭉 빼고 있었다.
시현은 두 다리로 남자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어어억!”
강한 충격을 버티지 못한 남자가 또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얼마나 충격이 강했는지 바닥에 거미줄 모양으로 균열이 생겼을 정도다.
결국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남자의 외피가 부서지고 말았다.
“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게 중요해? 일단 막아!”
구원자들은 어떻게든 동료를 지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시현은 그들의 공격을 무시한 채 남자의 목을 그어 버렸다.
“커허억!”
남자는 절명했다.
남은 시간은 약 1분.
한 명을 더 데리고 가기에는 다소 시간이 부족하다.
시현은 목이 베여 죽은 남자의 시신을 붙잡고 공간을 도약해 쓰러져 있는 노인의 시신 앞에 섰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노인의 시신을 붙잡았다.
“너, 너 설마…….”
“멈춰!”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한 구원자들이 그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리가 빠르다 한들 공간을 도약하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들이 휘두른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남아 있는 것은 선명한 핏자국 뿐.
어디에도 노인과 남자의 시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오빠 왔다! 보아하니 문제는 잘 해결하신 모양이네요. 그런데 그건 뭐예요?”
호텔의 옥상으로 복귀한 시현을 이나연이 반겨 주었다.
웃으며 시현을 반기던 그녀는 시현이 가져온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정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흉측한 건 왜 가져와요? 혹시 너무 사람을 많이 죽여서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죠? 막 시체를 좋아하게 되었다거나, 수집욕이 생겼다거나.”
“너 이제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상상력이 뛰어나네.”
“그러면 뭔데요.”
“거기에 두면 시간 역행으로 소생할 테니까 범위 바깥까지 가져온 거지. 기껏 처리했는데 살아나 버리면 내가 얼마나 허탈하겠어.”
“아아…….”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이나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써 가지고 온 시신들을 옥상 구석에 대충 던져 놓은 시현은 난간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이나연에게 망원경을 받아 빌딩의 옥상을 확인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구원자들, 그리고 막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이설아와 박화영을 비롯한 호위 둘.
모두가 솟구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방 날뛰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이설아의 표정이 특히 압권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에 시현은 간만에 폭소를 터뜨렸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