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돌격!”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던 전쟁에 재시작의 봉화를 알린 이는 훗날 칼의 군주로 성장하는 박화영이었다.
구원자들을 이끌고 호텔 진영 깊숙한 곳까지 단번에 치고 들어온 박화영은 문자 그대로 칼춤을 춰댔다.
그녀의 칼날 앞에 호텔 소속의 구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썰려 나갔다.
적과 아군이 뒤섞인 지금, 사실상 사격전은 끝났다 봐도 무방했다.
남은 건 백병전이다.
“3레벨……. 제가 나설게요.”
민서라가 앞으로 나섰다.
구원자끼리의 싸움은 레벨이 굉장히 중요하다.
1∼2레벨 구원자들로만 박화영을 잡으려면 상당히 많은 수가 희생되고 말 것이다.
양손에 글러브처럼 빛을 휘감은 민서라는 박화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에 박화영은 코웃음을 쳤다.
“동 레벨이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봤자 아마추어면서.”
살짝 몸을 당긴 박화영이 순간적으로 땅을 박찼다.
보는 이가 경악할 만큼 폭발적인 돌진력이었다.
“……!”
화들짝 놀란 민서라가 양손을 교차에 방어를 시도했으나, 두 번의 찌르기가 교묘하게 민서라의 어깨를 찌르고 재빠른 가로 베기가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외피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피를 봤을 것이다.
그녀는 곧바로 반격하려 했으나, 이미 박화영은 공격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러나 있었다.
“뭐, 뭐가 이렇게 빨라?”
짧은 사이에 이루어진 공방에 경악한 이는 비단 민서라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시현을 포함한 구원자 전체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여자 뭐에요? 설마 펜싱이라도 배운 건가?”
“그러고 보니 박화영은 사브르 국가 대표였지……. 비중이 워낙 없어서 깜빡 잊고 있었어.”
인간과 악마의 싸움이라면, 권능의 화력이 높은 구원자가 강자로 칭해진다.
그러나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면 권능만큼 중요한 게 구원자의 레벨, 그리고 피지컬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화영의 피지컬은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방금 건 봐준 거야.”
그렇게 말한 박화영이 사브르의 칼날을 손가락으로 한 번 훑었다.
벌어진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붉은 피.
그것을 머금은 사브르가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공방이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공방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박화영은 재빠르게 파고들어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은 뒤 빠졌다.
민서라의 외피가 깨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한기훈 씨. 호석이를 데리고 민서라 씨와 합류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자신의 무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한기훈은 이런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다.
한 명의 사람을 상대로 집단이 나서서 폭력을 행사한다니.
평소였다면 아무리 시현의 부탁이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박화영의 강함은 솔직히 시현이 언급한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혹시 부족할 거 같으면 나연이도…….”
[까아아아악!]
“망할.”
배후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에 시현은 혀를 찼다.
연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까마귀가 날아들고 있었다.
목표는 시현의 옆에 서 있는 이나연이다.
“아무래도 저랑 놀고 싶어 하는 놈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 도발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네. 가서 격의 차이를 알려 주고 와도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이나연의 음성이 스산하다.
가만 보니 눈동자가 희미하게 붉었다.
“다녀와.”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시현은 이나연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나연이 나설주에게 패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야수의 군주로 성장하게 될 인재라 한들 천살성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강소하는……. 제대로 힘을 못 쓰는군. 쌍둥이는 빼돌리면 균형이 무너질 거 같고.”
구원자끼리의 싸움은 쌍둥이 덕에 겨우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였다.
선두에서 김세찬이 무력으로 적들을 압도했으며, 후방에 있는 김세영은 이끄는 태초의 빛을 이용해 광범위하게 버프를 넣어주고 있었다.
사실 구원자의 수도, 격도 교단 측이 압도적이었다.
본래라면 피가 흘러넘치는 전장에서 누구보다 크게 활약해야 할 강소하의 경우, 애석하게도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피가 너무 부족해!”
호텔 측의 경우, 부상자가 생기면 시현의 권능이 곧바로 치료해 버린다.
교단 측의 경우, 사망자가 생기면 곧바로 시간 역행이 시작된다.
시체도 없고, 흘린 피도 없는 전장.
피가 있어야 힘을 쓸 수 있는 강소하는 동 레벨의 다른 구원자보다 현저하게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방에서 활약하는 쌍둥이가 아니었다면, 진즉 균형은 무너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이설아의 탐색은 나 혼자 하는 수밖에.”
불사의 군대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설아를 먼저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제대로 몸을 숨겼는지 천리안을 사용해도 이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준비를 아주 단단히 했어.’
하지만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권능은 원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역시 가장 단단하게 보호되고 있는 중앙인가?”
시현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오, 온다!”
“윤시현이다!”
교단 진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전에 한 번 교단의 본진에 숨어들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도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 시현은, 교단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우러러보던 남지후를 시현이 죽였다는 사실까지도 함께 말이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앞을 가로막는 이들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음을 선사하는 무정함은 교단의 생존자들이 느끼는 공포를 극대화시켰다.
“으아아악!”
* * *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것이 공포에서 기인한 것인지, 몸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는 고통에서 기인한 것인지 분간조차 어려울 만큼 다량의 땀을 흘렸다.
탈진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바로 옆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보니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동료의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동료는 머리를 잃어버린 채 두 손으로 제 절단면을 잡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육신은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영원한 안식을 얻은 것이다.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잔혹한 마녀는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운 전사의 안식을 용서하지 않았다.
바닥에 퍼져 있는 희미한 빛이 스며들며 동료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쏟아진 피가 몸속으로 되돌아가고 잘린 머리가 몸과 달라붙는다.
그러곤 끊어졌던 숨이 되돌아왔다.
시간이 되돌아오며 모든 것이 없던 것으로 치부되었다.
죽음까지도.
그러나 기억까지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허억……. 허억…….”
되살아난 동료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동료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퍼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막 되살아난 동료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호텔의 옥상에서 누군가가 저격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완전히 터져 버렸잖아! 이번에야말로…….’
남자는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너무도 허무하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터진 머리가 원래대로 복원되고 동료는 되살아났다.
“차라리…… 차라리 죽여 줘…….”
애원하는 동료의 머리 위로 백색의 화염이 떨어졌다.
엄청난 고열을 자랑하는 불꽃은 동료의 뼈까지 태워 버렸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한 줌의 재 뿐.
그마저도 불어온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동료는 부활했다.
“하, 하하. 아하하하!”
동료는 무기를 손에서 놓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시선을 돌리면 전장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측되고 있었다.
이 전장에서는 적도, 아군도,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육신만큼은.
죽음마저 거스르는 마녀조차 망가진 정신은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 못했다.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 지옥이란 말인가.
“…….”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소총의 총구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 * *
“으아아악!”
바로 지척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비명에 남학생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돌아보니 교단의 전투원이 내지른 총검이 친구의 교복을 찢고 복부에 파고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으히히히!”
정신적으로 멀쩡하지 않아 보이는 전투원이 총검을 회수한다.
찢겨진 복부 사이로 내장이 흘러나왔다.
남학생의 친구는 끊임없이 눈물과 비명을 토하면서도 쏟아진 내장을 주워 넣기에 급급했다.
교단의 전투원은 그런 친구의 머리를 겨누고 총검을 휘두른다.
“으아아아아! 저리 비켜!”
남학생은 교단의 전투원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기습적으로 당한 몸통 박치기에 전투원은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남학생은 그런 전투원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급하게 쏜 총알은 운 좋게도 전투원의 머리에 적중했다.
그러나 한 발로는 불안했는지, 남학생은 탄창이 텅 빌 때까지 반복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 후에야 그는 친구의 안부를 확인했다.
“야, 괜찮아?”
“……다 나았어.”
친구의 말대로 시현의 권능에 의해 상처는 이미 전부 회복되어 있었다.
남학생은 안도했다.
“다행이다.”
“……아팠어.”
“뭐?”
“아팠다고! 씨발, 죽을 만큼 아팠다고! 나으면 뭐 해. 아파 뒤지겠는데!”
“…….”
친구는 어린애처럼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 보여 주던 침착하고 어른스럽던 면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얼핏 보면 꼴불견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남학생은 친구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으히히히!”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남학생의 말을 끊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벌집이 되어 있는 전투원의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죽음을 거스르고 부활한 전투원은 남학생을 향해 총검을 내리찍고 있었으니까.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총검이 어깨에 박혔다.
피부를 찢고 고기를 가르며 내려간 총검이 뼈를 부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아아악!”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남학생은 무기를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넘쳐흐르는 눈물로 인해 한 치 앞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탕!
이번에는 친구가 남학생을 구했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전투원은 힘없이 허물어졌다.
남학생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갔다.
고작 30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상처가 붙었다.
찢어진 옷자락만이 그곳에 상처가 있음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두 남학생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
친구는 남학생에게 괜찮냐 묻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에 되도 않는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어.”
“나도.”
뜻이 일치했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발을 떼지 않았다.
이곳에서 도망치면 당장 오늘은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두 사람은 애가 아니다.
당장 오늘을 모면하고자 도망쳐 봤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끔찍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지옥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으히히히히!”
지척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그들에게 몇 번째인지 모를 절망을 심어주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