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무섭네.”
이설아는 나지막이 감상을 읊조렸다.
날이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떨렸다.
자신의 양팔을 감싸 안은 이설아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러자 밤이 내려앉아 칠흑 같이 어두운 도심의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빛을 품고 있는 예쁜 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윤시현이 있다고 생각하니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괴물 같은 인간.”
이설아는 성공적으로 호텔을 공략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한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교단의 모든 구원자들을 총동원할 수 있었으며, 전투원들도 최정예로만 선발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옛 속담에 따라 호텔 주변을 배회하며 정찰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그 덕에 오늘 저녁, 호텔에서 축제가 벌어진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축제라 하면 십중팔구 방비가 취약해질 거라 판단한 이설아는 오늘 저녁 해가 지고 난 후를 결전의 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한 이설아를 보다 못한 박화영이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옆에 섰다.
자연스럽게 팔을 둘러 자신을 끌어안는 박화영을 밀어내려던 이설아는 그녀의 고집과 끈질김을 떠올리고는 그만두었다.
“호텔의 대처가 너무 빨라서요.”
“빠른 건가?”
“축제라 방심하고 있었을 텐데, 금세 저렇게 방어 준비가 끝났잖아요. 이번 기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음…… 뭐, 어때. 원래 세상일이란 게 뜻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그런 것보다 네가 이렇게 떨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마치 병든 닭 같잖아.”
박화영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깊고 투명한 눈으로 이설아를 응시했다.
마주 보고 있으면 속내를 들키는 느낌이라 이설아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박화영은 끈질기게 답을 요구했다.
모르고 이러는 거면 차라리 낫겠는데, 다 알면서 이러는 꼴을 보니 짜증이 났다.
“다 알면서 묻지 마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좀 그렇잖아. 지금부터 윤시현이 이끄는 호텔을 치러 가야 하는데, 정작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윤시현을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우리가 널 어떻게 믿고 따르겠어?”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기에 이설아는 입을 다물었다.
박화영의 말대로다.
그날.
시현이 교단에 숨어들던 날.
시간 조작의 보조를 받던 남지후를 마치 어린애 손목 비틀 듯 손쉽게 처치해 버리던 그 모습을 목격한 이후.
윤시현의 이름이 들려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떨렸다.
그러나 이설아는 박화영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탁.
그녀는 자신을 휘감고 있는 박화영의 손을 거칠게 틀어 냈다.
“싫으면 돌아가요.”
“뭐야, 이렇게 강하게 나와도 돼? 나 없으면 안 될 텐데.”
“박화영 씨가 말씀하신대로 윤시현이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때도 독보적이었는데, 지금은 몇 배는 더 강해졌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더욱 내가…….”
“하지만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전 산을 넘는 게 무섭다고 피해 가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각오로 무장한 이설아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응시하던 박화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조롱의 미소였다.
“미안한데, 그 산을 넘는 걸 실패하면 우리 전부 조난당해 죽을 텐데?”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은 이미 한참 거리가 멀어진 이설아에게 닿지 않았다.
이설아는 마지막 남은 긴장감을 떨쳐 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앞으로 문호영이 다가왔다.
“설아야, 준비 다 끝났다.”
“나설주 씨는요?”
“나야 진즉 끝났지!”
먼 곳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의 배후로부터 푸른색의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연기는 다양한 야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도 다수의 구원자들이 그녀 앞에 대열을 맞춰 서 있었다.
명령 한 번이면 그들은 정면에 보이는 호텔을 향해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우…….”
이설아는 깊게 내뱉은 한숨에 마지막 망설임도 섞어 함께 토해 냈다.
그러곤 말했다.
“처음 한 방은 큰 걸로 가시죠. 어차피 수호나무 결계를 깨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스타트는 내가 끊을게.”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야수의 군주 나설주가 앞으로 나섰다.
* * *
이미 다 들통 난 마당에 기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교단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더니, 이번에는 또 되게 소극적이네요.]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던 이나연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목소리부터가 투지로 타오르는 게 가만 놔두면 거하게 사고라도 칠 기세다.
“우선 침착해.”
[무슨 소리에요? 전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거든요.]
“웃기지 마. 장담하는데 우리 세력에서 너 정도로 충동적인 애는 없을 걸? 있으면 예를 들어 봐.”
[……쳇.]
시현과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 이나연의 목소리가 조금은 침착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보다 오빠가 지시하신 위치에 도착했어요. 다음에는 뭘 해야 해요?]
“대기하고 있어. 분명 상대방으로부터 큰 공격이 올 거야. 민서라 씨가 타이밍 맞춰서 결계를 회수할 거니까 넌 그걸 요격해 주면 돼.”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맡겨 주세요. 그런데 오빠.]
“왜?”
[결계는 왜 회수하시는 거예요?]
“아까워서.”
[……아, 네.]
시간이 워낙 촉박하기에 다소 퉁명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수호나무 결계에 그리 여유가 있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민서라의 노력 덕에 호텔은 주기적으로 수호나무로부터 열매를 채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주기가 결코 짧지 않다.
수호나무 결계는 악마, 혹은 명백한 악의를 품은 구원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세력을 지키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아무리 생존자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세력 주변을 살펴본다 한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호나무 결계는 그 빈틈을 완전히 채워 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수호나무 결계는 늘 수요가 공급보다 월등하게 많을 수밖에 없었고, 시현은 보유 중이던 열매들을 인천시청이나 교회 등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세력에 먼저 공급했다.
즉, 현재 호텔에는 결계의 여유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지하고 있는 결계가 깨지면 다음 열매의 수확만을 오매불망 기다려야 한다.
“상대방도 우리가 결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 그렇다면 첫 번째 공격을 하는 구원자는 높은 확률로 나설주일 거야.”
[나설주요?]
“그게 누구냐 하면…….”
시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 진영으로부터 한 남자가 달려 나왔다.
헬스인이라면 누구나가 부러워할 근육을 가진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바로 저 인간이야. 준비해.”
[네!]
이나연의 우렁찬 외침이 있은 직후 나설주가 행동을 개시했다.
덩치에 어울리는 기합을 내지른다거나, 낯부끄러운 기술 명을 외친다거나 하는 요란한 짓은 벌이지 않았다.
그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푸른색의 연기 덩어리를 내던질 뿐이었다.
나설주의 손을 떠난 연기 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덩치를 부풀렸다.
[아오오오오!]
울음소리와 함께 연기 덩어리는 늑대의 형상을 취했다.
그 크기는 무려 중형 악마 이상의 덩치를 자랑했다.
늑대는 빠른 속도로 질주해 결계의 앞에 도착하더니 형태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늑대보다 1.5배는 더 커다란 곰의 형태를 취하더니 크게 앞발을 휘둘렀다.
목표는 수호나무 결계다.
그러나 연기의 곰은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수호나무 결계가 갑자기 사라지고 곰의 앞발은 허공을 갈랐다.
“……!”
설마 이런 식으로 대처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나설주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차후 군주급 구원자로 성장할 인재는 달라도 뭔가 달랐다.
그는 이미 소모한 정신력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빠르게 목표를 변경, 연기의 곰은 가장 지척에 있던 구원자 집단을 향해 양쪽 팔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그러나 나설주는 몰랐을 것이다.
그 구원자 집단에 이나연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어딜. 어림도 없지.”
쭉 뻗은 이나연의 손끝에서 시작된 폭풍이 연기의 곰을 덮쳤다.
형태가 없어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연기의 곰이라지만,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세기를 가진 바람에는 취약했다.
그렇게 일격으로 연기의 곰을 날려 버린 이나연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나설주를 향해 조롱의 미소를 날렸다.
“……하!”
이나연의 도발에 나설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나설주는 쉬이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이나연을 한 차례 흘겨본 후 뒤로 빠졌다.
애초에 그가 앞으로 나선 이유는 수호나무 결계를 파괴하기 위함이었으니까.
파괴는 못했지만, 호텔 측에서 결계를 회수했으니 어느 정도의 성공으로 친 것이다.
“와, 이걸 참네.”
상대방의 인내심을 극찬한 이나연 역시 뒤로 빠졌다.
‘수호나무 결계는 한 번 회수하면 재충전까지 시간이 필요해. 교단 측도 수호나무 결계를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 패널티는 숙지하고 있겠지. 그렇다면 다음에 저것들이 취할 행동은…….’
타앙!
마른 소리와 함께 날아온 총알 하나가 호텔의 주변에 쌓아 놓은 모래주머니에 파고들었다.
모래주머니에 엄폐하고 있던 생존자는 사색이 되어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인근의 폐건물에 몸을 숨긴 교단의 전투원들은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머릿수가 많아서 그런지 화력이 장난 아니네. 심지어 권능이 담긴 총알까지 날아오고 있는데?”
턱을 쓰다듬던 한기훈은 꽤나 당황한 건지 식은땀을 흘렸다.
늘 풍문으로만 들어 오던 교단의 강함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는 크게 놀란 것이다.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강한 화력에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까지고 당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호텔 측에서도 곧장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그러나 머릿수가 부족하다보니 거의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방어구도 매우 부실하다.
그러다보니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럴 때마다 시현이 권능을 사용해 그들을 치유했으나, 총에 맞을 때의 고통마저 잊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아군의 사기가 빠르게 깎여 나갔다.
“먼저 수를 좀 줄여 놓을 필요가 있겠네.”
시현은 권능을 사용해 백색의 불꽃을 만들어 냈다.
레벨 서포터를 사용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불꽃이 시현의 주변에 피어오르며 일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시현은 그것을 자신의 머리 위로 높게 던졌다.
“원래는 하나하나 방향을 조종해 줘야 하는 기술이지만, 저렇게 수가 많으니 대충 던져도 누군가는 맞겠지.”
하늘에서 백색의 유성우가 떨어졌다.
사격 소리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제 머리 위로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떨어지는데 그걸 무시하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를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대신하는 비명이 난무했다.
“으아아아악!”
교단의 생존자들은 화염비의 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말 그대로 화염은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곳곳의 화염을 완벽하게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교단 내에서 불에 타 죽는 사람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생존률이 떨어지는 생존자 뿐 아니라, 힘이 약한 축에 속하는 구원자들까지도 그 희생양이 되었다.
삽시간에 교단의 생존자들 중 2할이 줄었다.
“진짜 무시무시하네.”
수호나무 결계를 비활성화시키고 전장에 합류한 민서라가 시현이 보여 준 살상력 높은 광범위 기술에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적이라면 두렵지만 아군이기에 든든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닥을 치던 생존자들의 사기는 금세 미터기를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 어어어어!”
화려하게 타들어가는 백색 지옥에서 민서라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끔찍한 몰골로 타들어가 잿더미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살점이 뼈에 달라붙고, 피부에 달라붙어 머리며 옷가지를 태우던 불꽃 역시 사라져 버렸다.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자가 되살아나는 일련의 과정은 그것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자신이 날린 회심의 일격이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시현이다.
“시간 역행을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는 건가……. 원작에서는 습득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고급 기술이라고 묘사되어 있더니만, 그거 순 사기였네.”
아니면 이설아가 상상 이상으로 능력이 좋은 구원자거나.
부정하고 싶었지만, 실상은 후자일 가능성이 지극히 높았다.
더군다나 상황을 보아하니 레벨 서포터를 사용한 것 같지도 않았다.
시현은 오랜만에 초조함을 느껴야 했다.
“불사의 군대를 상대하는 방법은 모르는데…….”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