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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47화 (147/225)

[147화]

“그나저나 시현 씨는 참 능력도 좋으시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에이, 숨기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은아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히죽거리고 있었다.

예쁘게 초승달을 그리는 눈매가 괜히 얄밉게 느껴졌다.

그녀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이더니 작은 상자를 꺼냈다.

검은색 바탕에 작은 금박이 되어 있는 상자는 보는 순간 반지 케이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은아는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백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꼭 결혼반지처럼 생겼네요.”

반지의 아름다움에 홀려 눈을 빛내던 이나연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시청에 어떤 여성분이 오셨어요. 그리고 시현 씨를 찾더라고요. 서울로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굉장히 아쉬워하면서 이것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금발의 굉장히 아름다운 분이었어요.”

“여자요? 오빠 설마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던 거예요?”

“금시초문인데. 애초에 그 누구도 이게 결혼반지라고는 하지 않았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은 시현의 즉답에 이은아는 크게 아쉬워했다.

“아쉬워라. 저는 틀림없이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나저나 그 금발의 여자가 누구인지 신원은 확인하셨습니까?”

시현은 섣불리 반지를 받아 들지 않았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시현은 스스로가 적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교단의 이한울 일당, 10위권 내로 진입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11위 이하의 참가자들, 메달을 욕심내는 참가자까지.

시현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이는 수도 없이 많다.

구원자이기에 축복과 외피를 가지고 있는 시현을 암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저주.

굉장히 찾아보기 힘든 권능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면 시현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저주에서 주로 사용되는 매개체는 반지, 혹은 목걸이다.

“……어라?”

이은아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안 했어요. 며칠 동안 시청 내에서 같이 먹고 자고 했는데……. 게다가 리더랑 개인적인 면담도 했고……. 이상하다. 왜 그랬지?”

그녀의 동공이 격하게 떨렸다.

마치 자신이 한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초조해하고 있었다.

자연히 이은아의 손에 들린 반지를 응시하는 시현의 눈도 차갑게 식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인천 시청이 어떤 세력인가.

인천 연합의 주축이 되는 거대 세력이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몰려오는 장소이기에 인천 시청의 보안은 늘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다.

시청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대기열을 거쳐야 하며, 그곳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는 시청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시청의 리더는 어중이떠중이가 쉽게 만나거나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신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그런데 시청의 리더 정은수가 신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연아, 당장 진우혁 씨를 데리고 와.”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이나연은 호텔 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 직후.

“으어어어억!”

진우혁의 비명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내가, 내 발로 걸어간다고!”

진우혁은 이나연에게 뒷덜미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었는지, 손에 들린 젓가락이 애처롭게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이나연의 거친 행동에 사나운 눈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대던 진우혁은, 시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순한 양이 되었다.

“리더!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여기 이분을 위해 정화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죠.”

정화에 따르는 괴로움을 떠올린 진우혁은 굉장히 싫은 얼굴을 하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자신이 밥값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시현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그는 괴로움이 뒤따르는 정화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음?”

진우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화를 사용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제가 조금 못미더운 인간인 건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권능을 사용함에 있어 실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 뭔가 잘못되었을까 싶었던 진우혁은 몇 번이고 이은아에게 정화의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나 몇 번을 사용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즉 이은아의 정신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신이 오염된 것도 아닌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외부인을 안에 들이고, 시청의 리더 정은수가 직접 그녀를 응대했으며, 물건을 전해 달라는 부탁까지 받아들였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이은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스스로가 한 행동마저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말이죠?”

“만약 시현 씨가 자신을 의심한다면, 꼭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했어요. 대전에서 이게 꼭 필요할 거라고…….”

“……네?”

“네?”

“그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네……. 분명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는데…….”

시현은 저도 모르게 뺨을 꼬집었다.

스스로를 향한 공격에는 외피가 발동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래간만에 아찔한 통각이 느껴졌다.

즉, 지금의 상황은 꿈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게 가능한가?’

머리가 어지럽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시현은 정성국의 Re write를 통해 대전에 있는 외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단 정성국의 Re write에 적혀 있는 정보는 굉장히 적고, 지극히 한정적인지라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대전에 방문할 필요가 있었다.

포탈 생성의 권능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면 바로 대전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계획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나연에게도, 민서라에게도 아직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권능에 익숙해져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해지면 그때 두 사람에게 알리고 협력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내용을 만나본 적도 없는 금발의 여성이 알고 있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윤시현의 Re write를 구독하고 있는 독자들뿐이다.

“설마…….”

시현은 다급히 Re write의 댓글을 확인했다.

언제나 독자들이 자신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던 댓글 창에는 믿을 수 없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외부 요인으로 인해 더 이상 윤시현의 Re write에 댓글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만큼은 분명해졌다.

지금 이 세상에 쥐도 새도 모르게 강림한 채 멋대로 싸돌아다니고 있는 신이 있다.

* * *

신의 강림에는 외신의 완전한 각성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본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인과율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신들은 멋대로 강림하는 것도, 인류의 존속을 위해 무조건적인 지원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낙인과 권능이라는 간접적 시스템을 이용해 인류를 돕고 있는 거고.

다시 말해 외신의 완전한 각성이라는 전제 조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상에 강림해 있는 신이 있다.

원작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신이 강림했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외신의 봉인이 풀렸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외신의 봉인이 풀렸다면 지금처럼 일상이 평화로울 리가 없어.’

물론 악마가 들끓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반복하는 매일이 평화롭다는 것도 우스운 말이지만.

외신이 강림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평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외신의 봉인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신이 강림한, 본인들이 절대적이라고 언급했던 인과율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역시 인천에 가 보는 게 맞겠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

대전에 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천 쪽의 중요도가 더 높아졌다.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호텔 소속의 구원자들을 소집하려던 찰나.

“오빠!”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리며 이나연이 들이닥쳤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던 예의 없는 행위.

그만큼 당황했거나 다급했다는 뜻이기에 시현은 굳이 그녀의 실수를 추궁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빨리 메인 홀로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그녀는 오두방정을 떨며 시현을 재촉했다.

그녀와 함께 호텔의 메인 홀로 향한 시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이나연이 저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시현 씨, 부탁드려요. 부디 테크노벨리를 도와주세요!”

생존자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메인 홀의 중앙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이는, 정훈의 잠적으로 등을 떠밀리듯 테크노벨리의 리더가 된 물정령사 이한솔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체구이건만,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리고 있으니 더욱 몸집이 작아 보였다.

“저 혼자서는 테크노벨리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킬 수 없어요. 부탁드려요.”

‘머리 아프네.’

시현은 이마를 짚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두 가지에서 세 가지로 늘어났다.

“왜 하필 저희 호텔입니까?”

“인근의 다른 세력들은 수용 인원이 꽉 차서 이제 기댈 곳은 호텔과 교단밖에 남지 않았어요. 교단은 그……. 안 좋은 소문이 많아서 기왕이면 호텔에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확실히 교단 이전에 호텔을 찾아온 건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시현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요?”

먼저 홀에 와 있던 민서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서라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궁지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현은 호텔의 리더이기에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했고, 기존 호텔의 생존자들을 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테크노벨리의 생존자는 생각보다 많아요. 아마 저희 호텔 인원의 1.2배는 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있지 않나요?”

민서라의 말대로다.

호텔의 규모는 상당히 크며, 현 생존자들에게 1인 1실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남는 방이 상당히 있다.

만약 가족, 친척, 지인끼리 모아 둔다면 지금보다 족히 세 배는 되는 인원을 수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히 쉴 곳을 제공하기만 하는 거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식량이죠.”

인류는 생존을 위해 매일 무언가를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호텔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성을 끌어올렸다.

이제 주민들은 비스킷이나 건빵 같은 보존 식량 외에도 신선한 야채 및 교회에서 주기적으로 공급해 주는 물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인천시청 덕분에 주기적으로 달걀 요리까지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공급량으로는 딱 호텔의 인원이 낭비 없이 소모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원이 단번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면 더 이상 지금 같은 생활은 즐길 수 없게 된다.

“그거야 그렇지만…….”

민서라도 마음이 앞서서 그렇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한솔을 바라보면서도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한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식량이 문제라면 저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저희가 운용하고 있던 온실을 이 근방으로 옮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저희 쪽에서 돼지들을 기르고 있거든요.”

“돼지라고……? 삼겹살…….”

옆에서 목구멍으로 침 넘기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나연이 군침을 흘리고 있으며, 민서라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몇 번이고 침을 삼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을 나왔던 쌍둥이도 침을 질질 흘리며 시현의 양팔을 잡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 외에 다른 참가자들도 하나같이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교회에서 물고기를 주기적으로 공수해 준다 한들 생고기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흐음…….”

반면 시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가축을 육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심지에서는 방목도 불가능할뿐더러 전문 지식도 요구되고 인력까지 소모된다.

무엇보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란 판국에 가축의 먹이까지 마련하는 건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받는 일이다.

아포칼립스 이전 시대의 농가처럼 대규모로 가축을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안정적으로 고기를 생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봐야 한다.

기껏해야 뱃속에 기름칠 좀 하자고 감당 못할 대식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거절하기 위해 입을 막 떼는 순간이었다.

“죄송하지만…….”

“아시다시피 정성국은 공간 이동 계열 권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초창기부터 권능을 이용해 전국 곳곳을 막 싸돌아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퇘지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다들 오늘은 고기를 먹겠구나, 하고 기뻐했어요.”

그녀는 눈치를 보면서도 어떻게든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한솔이 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기에 시현은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까 수퇘지가 루스의 낙인을 가지고 있다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시키는 대로 했죠. 그러더니 한 2주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암퇘지를 하나 데리고 왔어요. 이번에야말로?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루스의 낙인을 가진 돼지니까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시현 씨.”

가만히 듣고 있던 민서라가 시현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받죠. 테크노벨리의 생존자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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