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랭킹 1위, 한소현.
랭킹 2위, 윤시현.
랭킹 3위, 이한울.
불과 수분 전에 변동된 랭킹을 보며 이한울은 웃었다.
“후후후후.”
낮은 웃음소리가 어둠이 가득한 방 안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같은 방 안에 있던 그의 여동생 이설아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이한울의 눈치를 살폈다.
가족이기에 현재 이한울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한울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웃고 있질 않았다.
허공에 떠 있는 메시지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검고 음침하게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그 불꽃을 시기, 혹은 질투라 부르고는 한다.
그녀는 주인에게 야단맞은 강아지처럼 방구석에 조용히 앉아 몸을 떨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천소해.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그녀는 이곳에 없는 천소해를 저주하며 원망했다.
“설아야.”
“어? 응, 왜?”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하면서도 이설아는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해코지를 피하기 위해 푼수처럼 웃었다.
이한울은 그녀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좋은 오빠다.
상냥하진 않지만 매사에 이설아를 늘 우선시해 주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기까지 했던 이한울이다.
그렇기에 이설아는 이한울을 좋아하고 따랐으며, 존경했다.
그러나 가끔, 이한울이 느끼는 불쾌감이 극에 달했을 때만큼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이설아조차 이한울의 분노가 자신을 피해 가기만을 기도하며 이불에 숨어 몸을 떨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한울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웃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불쾌감을 덜어 주기 위해 말이다.
“천소해는 어디에 있어?”
“그게……. 오면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복귀하지 않은 채 통신으로 간만 보고 있어.”
“그래? 현명하네.”
딱.
다리를 꼬고 앉은 이한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때렸다.
누가 3레벨 구원자 아니랄까 봐 그 별거 아닌 행동에도 테이블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그는 테이블이 완전히 주저앉을 때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완전히 망가진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더 이상 흥미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
“뭐를?”
“레벨 서포터를 개량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수목원이라고 생각했어. 조금이라도 일을 빠르게 끝마치기 위해 다른 모든 걸 제쳐 두고 거기에만 매달렸지. 모든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했고.”
“응응, 그랬지. 덕분에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잖아.”
“하지만 남지후, 정유환, 지현아, 그리고 천소해. 이렇게 네 사람을 잃고 나니 내가 얼마나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더라.”
“아, 응.”
그녀는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천소해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한울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저렇게 언급을 했으니, 조만간 천소해는 숨진 채 발견될 것이다.
“윤시현이 가장 문제였어.”
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진다.
“내 계획이 몇 개월 뒤로 미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교단의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그놈이 있는 호텔을 부숴 버려야 했다고!”
“…….”
“기껏해야 싸움이나 좀 하는 놈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아득바득 기어올라서 기어코 날 추월해? 한소현, 그 여자만 해도 짜증나 죽겠는데 윤시현까지…….”
이한울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이내 그 분노는 이설아에게 향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이설아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히끅!”
극도로 놀란 이설아는 딸꾹질을 했다.
자신의 오빠지만 이리도 무서울 수가 없었다.
이설아를 응시하는 이한울의 두 눈동자는 광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호텔을 치러 가고 싶어. 하지만 대전에서의 일이 막바지라 손을 뗄 수가 없어. 어쩌면 좋을까?”
“그, 그러게. 어쩌면 좋을까……. 문호영이나 나설주, 아니면 박화영을 보내는 건 어때?”
“그래 봤자 천소해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잖아. 솔직히 이쯤 되면 다른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그러면?”
“내가 가야겠어.”
“……어?”
“너와 천식이는 프로젝트에 집중해. 내가 교단의 구원자들을 총동원해 호텔을 치겠어.”
즉,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소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친 듯 떨리는 눈동자가 이설아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지만, 도저히 편을 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거듭된 실패와 랭킹에서 밀려나며 자존심까지 찢겨진 이한울은 현재 감정에 따라 판단하고 있었다.
이한울답지 못한 태도다.
“안 돼.”
그녀는 답지 않게 용기를 냈다.
“모두가 오빠만 바라보고 있어. 여기서 오빠가 빠지면 큰 혼란이 생길 거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놈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야. 지금 빨리 수를 써 놓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가 버릴 거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갈게.”
“…….”
마지막 한 톨까지 쥐어 짜낸 이설아의 용기에 이한울은 머리를 거하게 얻어맞은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설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이한울이 두려웠다.
한평생을 이러고 살았는데, 조금 용기를 냈다고 그 감정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전부 잃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프로젝트에서 내 역할은 거의 끝났잖아. 내가 없어도 조금 작업 속도가 더뎌질 뿐이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이설아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에 이한울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그건……. 안 돼.”
제정신이 돌아온 이한울은 이설아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차라리 윤시현을 방치하고 말지.”
“하지만 방치해 두면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 버리고 말 거라며. 우리가 원하는 게 뭔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랭킹 1위에 도달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난 것인지는 이설아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윤시현을 방치한다는 수는 최악의 수가 된다는 것 정도는 이한울도, 이설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한울은 고민했다.
방 안을 서성이며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알겠어.”
“나, 힘낼게.”
“그 대신 구원자들을 데려가.”
“얼마나? 누구까지 허락해 줄 거야?”
“한천식을 제외한 전부.”
이설아는 나설주나 지현아처럼 잃으면 아쉬운 존재가 아니다.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한울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강수를 뒀다.
* * *
* * *
* * *
이그드라실 문제를 해결하고 호텔로 복귀한 시현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지금쯤 다른 이들은 목욕을 하거나, 주린 배를 채우는 등 나름대로의 여독을 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현처럼 지독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곧장 침대에 몸을 던진 이도 분명 존재할 터다.
그러나 시현은 눈을 감고 있되, 잠을 청하지는 않았다.
고민할 거리가 산처럼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시현은 망설였다.
정성국의 Re write.
그것을 열람해도 좋을지, 아닐지를 말이다.
사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정성국의 Re write를 열람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성국이 어떤 인물인지 정훈을 통해 대충 들은 게 있기에, 참가자를 연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에휴.”
고민이 깊어지다 보니 여지없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고민한 끝에 시현은 결정을 내렸다.
“역시 읽어 보는 게 맞겠지.”
세상에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각오를 다진 시현은 정성국의 Re write를 열람했다.
정성국.
그는 흔히 말하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부친은 이름을 대면 누구나가 알아주는 커다란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모친은 유명 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외동아들이던 정성국은 부모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런 정성국이 어째서 인생을 Re write에 참가하게 되었는가.
원인은 그의 직장에 있었다.
그는 회사를 이어받기 위해 경영 공부를 하라는 부친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보육원에서 보육사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육원에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보육원장의 부주의였다.
그 일로 인해 보육원장은 벌을 받았지만, 화재에 휘말린 아이들은…….
“벌써부터 의욕 떨어지네.”
차라리 정성국이 악인이면 좋았을 것을.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시현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전반부를 깔끔하게 뛰어넘는 것을 선택했다.
본게임이 시작되고 첫 번째 아포칼립스라는 재앙을 겪으며, 몇 번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정성국이라는 인물은 바뀌지 않았다.
악마가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그는 위기에 처한 동년배의 남자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이름이 정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는 상당히 놀랐으나, 단순히 동명이인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훈이 원작만큼의 위용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소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는 정훈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후에도 정성국은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판돈으로 내거는 그의 용기는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그 모든 선행이 순수하게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선한 주인공의 표본과도 같은 행보를 보인 그의 순위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순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대전에 위치한 어느 수목원.
그곳에서 정성국은 봉인되어 있는 외신을 발견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달아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신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고, 그 과정에서 정성국은 악마에 의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상처.
그 상처에서 시작된 오염은 빠르게 그의 육신과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정성국은 구원자로 각성하게 된다.
예상한 대로 정성국의 일대기는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 있었다.
누구보다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사지에 몰아넣었고, 결국에는 배드 엔딩을 맞이한 정성국의 Re write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이래서 사람이 마냥 착하기만 해서는 안 돼. 적당히 얍삽할 줄도 알아야지.”
뒷맛이 썼다.
그러나 정성국의 안타까운 사연보다도 시현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외신이라고?”
놀랍게도 정성국의 Re write엔 대전 수목원에 있는 외신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던 것이다.
원작에서 공개된 외신은 열다섯.
그들 대부분은 봉인된 장소가 해외에 있다던가 하는 이유로 이름만 언급되었으며,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넷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가 인천에 있는 놈이었으며, 나머지 셋은 위치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정성국의 Re write에 두 번째 외신에 대한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설마 정성국이 외신과 조우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잠이 확 달아났다.
육신을 지배하는 피로감마저 망각한 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가 시현에게 Re write에서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마지막 전쟁을 꼽을 것이다.
세 명의 외신.
그들의 지배하에 놓인 수많은 악마들과 대지, 그리고 하늘을 지배하는 초대형 악마들.
인류를 배신한 이단과 하수인들까지.
과연 그들과 싸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살아남는다 해도 몇이나 생존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그게 늘 걱정이었다.
외신 셋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불가피하게 많은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개격파를 계획했다.
인천에서 첫 번째 외신을 봉인한 것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외신까지도 봉인한다면.
그리고 만약 네 번째까지 완벽한 봉인에 성공한다면.
더럽고 끔찍한 단어가 총동원된 마지막 전쟁을 회피하는 것까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외신이 봉인된 장소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리안을 사용해도 이렇다 할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예기치 못한 행운은 그를 소풍 전날의 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가 볼까?”
이나연이나 민서라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만한 발언을 한 시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그드라실과의 전투로 정신력은 바닥난 상태이며 육체적 피로도 말이 아니다.
목적지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함부로 이동했다가는 어떤 변고를 당할지 모른다.
시현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침대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침착해지고 나니 자연히 정성국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외신에 대한 정보 탓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뿐이지,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정성국은 불쌍한 인간이었다.
애초에 Re write에 참가하게 된 계기조차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의롭지 않은가.
조금 주눅이 들었다.
겨우 가난을 해결하고자 게임에 참가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기왕이면 정성국 같은 사람이 10위권 안에 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토로해 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가 정성국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참가자의 수는 666명.
안타까운 사연의 수도 666개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로 랭킹 2위까지 올랐지. 1위만 얻을 수 있는 특별 보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어. 만약 가능하다면…….’
깊이 고민하던 시현은 같은 참가자인 민서라를 찾아갔다.
진중하게 고민하다보니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막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머리를 말리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웃으며 시현을 반겨 주었다.
“무슨 일이에요? 시현 씨가 제 방에 다 오고.”
“민서라 씨, 조금…… 아니,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그렇게 무게를 잡아요? 괜히 불안해지네. 생각 같아서는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데 또 그렇게 보내고 나면 궁금해서 밤에 못 잘 것 같단 말이죠.”
민서라는 웃었다.
“뭔데요? 한 번 해 봐요.”
“민서라 씨는 어쩌다가 Re write에 참가하게 되셨습니까?”
“…….”
민서라의 미소가 굳었다.
그리고 시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표정의 민서라와 대면하게 되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