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시현은 자신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정성국을 응시했다.
참가자들을 비롯해 수천에 달하는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꽂혀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다.
참가자들은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아 시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이끌고 이그드라실이라는 초대형 악마를 쓰러뜨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시현을 향한 걱정.
동시에 랭킹 3위라는, 사실상 승리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경쟁자가 이곳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
이 상반된 감정이 뒤섞인 표정은 심심풀이용으로 제법 볼만했다.
‘아주 대놓고 내가 죽기를 바라는 놈도 있네.’
특히 천소해가 그 대표격에 속했다.
정성국이 등장한 이후 행여 참가자들에게 포위될까 싶어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간 그녀였으나,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에는 두 눈을 빛내며 시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페널티만 아니었어도 당장 저 여자부터 잡는 건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시현은 정성국을 응시했다.
“주제도 모르고!”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시종일관 여유를 보이던 정성국이 대뜸 분노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민서라가 시현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그녀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고막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의 주인은 시현의 요청에 따라 몸을 던져 정성국을 막은 진우혁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정성국이 진우혁을 공격한 것도 아니건만 그는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하?”
정성국은 크게 당황해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진우혁을 내려다보는 정성국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지독하던 살기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이게 대체…….”
그는 시현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마지막으로 나무껍질에 보호받고 있는 자신의 육신과 손을 응시했다.
“…….”
조금 전까지 시현을 잡아 죽이겠다는 살벌한 기세를 내뿜던 남자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괜찮습니까?”
시현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진우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식은땀을 비처럼 쏟아내며 거칠게 숨을 내쉬던 그는 시현이 내민 손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어떻게든 정화에는 성공한 거 같아요. 진짜…… 제가 지금까지 정화해 왔던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 상태가 심각했어요.”
진우혁의 권능은 정화.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말해졌던 신체적, 정신적 오염을 정화하는 게 가능한 유일무이한 구원자다.
정화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오염을 자신의 육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오염이 육신에 머무르고 그게 정화되기까지 걸린 짧은 시간 동안 끔찍한 기억에 시달려야 했던 진우혁은 정성국을 경멸하는 한편 연민했다.
“뭔가…… 되게 씁쓸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력에 소속된 구원자로서 당연한 일인데요.”
쑥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진우혁을 뒤로한 시현은 정성국에게 다가갔다.
정화를 통해 정신오염에서 벗어난 정성국이 더 이상 아무런 위험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에 시현이 있음에도 정성국은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래?”
“…….”
시현의 질문에도 정성국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주저앉아 동태눈깔을 한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은 제 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고작 2레벨 구원자의 육신으로는 이그드라실의 힘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어. 정화의 권능으로도 악마화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두 시간. 그 안에 네 육신은 붕괴할 거야. 그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고.”
자연스럽게 꺼내 든 핏빛 칼날이 어느덧 드리운 노을을 반사하며 요사스럽게 빛났다.
깔끔한 단면에 비친 정성국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 목숨마저 타인의 죽음과 교환하고자 했던 모습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원한다면 도와줄게.”
시현은 자신의 적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자비를 베풀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들의 일화는 만화나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윤시현의 Re write의 엔딩이 그런 바보 같은 엔딩으로 장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현은 늘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아 주었다.
폭력에는 더한 폭력으로.
죽음에는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는 참혹한 죽음으로.
늘 그렇게 되갚아줬다.
정성국은 시현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 그를 수룡의 둥지로 날려 버린 이력이 있다.
원래라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끔찍한 죽음을 선사해 줬겠지만.
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정신오염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아 아닌, 일종의 재앙에 가깝다.
그러나 정성국으로 인해 무고한 누군가가 목숨을 잃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딜레마는 아마 평생가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은 네가 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 줘.”
그의 뒤틀린 요청에 쓴웃음을 지은 시현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안타깝지만 그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촤악!
있는 힘껏 휘두른 칼이 정성국의 목을 베었다.
현재 시현은 구원자로서의 힘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
반대로 정성국은 이그드라실의 힘을 흡수해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어렵지 않게 정성국의 목을 벨 수 있었다.
삶을 포기한 정성국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끈 눈을 감은 정성국의 머리는 몸과 분리되어 바닥을 구르더니 이그드라실에 의해 만들어진 잿더미 사이로 파묻혀 버렸다.
<아르하의 각인. 4차 해금 완료.>
<축하합니다. 윤시현의 Re write가 랭킹 2위로 올라섰습니다.>
* * *
하늘을 가리던 거대한 나무는 재가 되어 성남시의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이 현상은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이다.
기껏해야 하루, 길어봐야 이틀 내로 성남시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하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그드라실이 가지고 있던 대량의 경험치는 이그드라실 토벌작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
“참여 인원이 많다 보니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이 너무 아쉽네.”
시현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사실 5레벨을 욕심내지 않았다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레벨 서포터를 이용해 아주 잠깐이기는 하지만 시현은 자신의 한계 이상의 힘을 경험했다.
그 경이로운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시현은 빠르게 욕심을 떨쳐 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파멸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만나 온 여러 참가자들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 이그드라실을 불러들일 때만 해도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그래도 잘 처리해서 다행이네요.
― 솔직히 난 믿고 있었다!
― 거짓말. 구독 취소하네 어쩌네 하면서 온갖 난리를 부렸으면서.
―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구독자가 크게 늘었음. 무려 랭킹 2위! 이제 한소현만 재치면 윤시현이 특별 보상을 얻게 되는 건가?
독자들 역시 댓글을 이용해 시현이 세운 업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시현이 한 일은 그들의 가려운 곳을 속 시원하게 긁어 주었기 때문이다.
“오빠! 저도 드디어 3레벨 구원자가 됐어요.”
이나연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순수하게 구원자로서의 레벨이 오른 것에 기뻐하는 것이라 여겼건만.
“오빠가 처음 대형을 사냥했을 때가 3레벨이었죠? 이제 적어도 대형과 싸울 때는 꼭 저를 데리고 다니셔야 해요. 그 정도 능력이 제게도 생겼으니까요.”
역시 이나연은 이나연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 시현에게 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너희가 마냥 보호해야 할 애들이 아니란 건 이번 기회에 잘 알았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너희도 같이 행동하게끔 할게.”
“켁. 설마 나도?”
시현의 말에 강소하가 표정만으로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이나연과 마찬가지로 3레벨 구원자가 된 강소하였지만 태도는 이나연과 180도 달랐다.
3레벨이 된 것은 두 사람뿐이었지만, 다른 이들도 기존보다 월등하게 강해졌다.
원래 3레벨이던 민서라의 경우 4레벨을 향해 크게 한 걸음을 내딛었으며, 기존에 1레벨이던 구원자들은 대부분이 2레벨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성장을 한 구원자는 비단 호텔의 구원자뿐만이 아니다.
이그드라실과의 전쟁에 참여한 참가자들, 그들을 따르는 구원자들, 그리고 낙인은 가지고 있으나 미처 각성까지는 이르지 못하던 생존자들.
전부가 이전보다 한 단계 강해졌다.
희생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구원자 전체의 전투력을 한 단계 상승시킨 것이다.
참가자들은 감동에 젖어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와아아아! 내가 3레벨…… 드디어 3레벨에 도달했어!”
“설마 진짜 이그드라실을 토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만약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도망치려 했거든.”
“정훈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목숨 걸고 이 고생을 한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네.”
처음 참가자들은 원작의 주인공 정훈이라는 한정되어 있는 인재를 독차자하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파이는 하나.
그것을 원하는 이는 다수.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더욱 높이, 견고하게 쌓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참가자들 사이에서 살벌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현이 자신을 미끼로 하여 참가자들이 서로 협력하게끔 했고, 이그드라실이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그 관계를 보다 끈끈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관계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애초에 Re write는 참가자끼리의 협력이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상위 10명까지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조건을 이용해 소수 인원이 서로 손을 잡는 경우는 있지만, 사실상 그 이상의 협력은 어렵다.
시현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가능한 이 자리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전투에서 인류의 승리를 위한 여력을 남겨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볼 수 있겠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참가자들의 시선이 하나둘 시현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고생했다.”
이름조차 모를 참가자 하나가 얼굴을 붉힌 채 다가와 시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제는 참가자들도 어느 정도 알 건 알고 있었다.
참가자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시현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것을.
탐욕과 분노에 눈이 멀어 있던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어디까지나 시현 덕이라는 것을.
이그드라실의 소환이라는 비상식적인 수를 두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건 이익뿐이니 그를 향한 죄책감도 덩치가 부푼 것이다.
아무리 서로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마지막 남은 인간성까지 내다 버린 건 아니었다.
“수고했다. 그…… 너를 공격했던 것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으마. 우리는 정훈을 손에 넣고 싶었고, 너는 그 어떤 개인보다, 세력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사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서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지 뭐야. 아하하! 미안!”
참가자들은 시현에게 사과를 하거나 어수룩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루아침에 태세전환을 하려니 수치심이 극에 달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달아나는 참가자가 태반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자. 지금이 기회야. 저놈 아까 보니까 외피가 완전히 벗겨진 거 같던데.”
“저 인간 이번 일로 랭킹 2위에 등극했어. 사실상 승리는 확정이잖아.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나연이나 민서라도 무섭다.”
“그건 그렇지.”
그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각자 세력을 이끌고 성남을 떠났다.
그렇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성남을 떠나고, 남은 건 시현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호텔의 인원과 용병으로 고용된 LT마트의 구원자들.
그리고 우울한 얼굴로 처분을 기다리는 정훈과 테크노벨리의 생존자들이었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슨 뜻입니까?”
“저는 정성국에게 평생에 걸쳐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정성국의 악행에 도움을 줬죠. 그러니 어떤 벌을 주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 그는 정성국의 간절한 요청을 이기지 못하고 하운드의 참가자 둘을 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스스로의 손에 사람의 피를 묻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천적으로 악하지 못한 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누군가 자신을 벌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매일 밤 나타나는 끔찍한 악몽도 끝을 맺으리라 믿으면서.
정성국의 눈을 빤히 응시하던 시현이 입을 열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그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 철학입니다. 그런데 정훈 씨에게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네요. 은혜도, 원한도요.”
“…….”
“그러니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현은 등을 돌렸다.
남겨진 정훈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그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그로부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시현은 정훈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는 짧은 편지 한 통을 남긴 정훈은 테크노벨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