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42화 (142/225)

[142화]

“한기훈 씨! 일반 생존자들을 데리고 이그드라실 밑으로 향해 주세요!”

“알겠어.”

한기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현의 지시를 따랐다.

시현도 이나연과 함께 이그드라실의 거체 앞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은 이그드라실에게 딱 달라붙은 채 두꺼운 나무껍질에 칼날을 쑤셔 박으며 외피를 갉아 대고 있었다.

고목나무에 달라붙은 풍뎅이 같은 모양새다.

시현은 이그드라실의 상태를 확인했다.

타원의 빈 공간에 모인 에너지의 양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강대했다.

시현은 아직도 뒤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생존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서두르세요! 이그드라실에게 딱 달라붙지 않으면 광선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뭐라도 좋으니 꽉 붙들고 계세요!”

다분한 협박성 멘트에 생존자들의 이동속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모든 생존자들이 이그드라실 아래 도달했을 때, 이그드라실은 정면을 향해 광선을 토해 냈다.

시현의 예상대로 각도상의 문제로 이그드라실의 광선은 바로 밑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나 강렬한 풍압이 문제였다.

심지어 근처에 잡을 것도 없어 두 다리로 버티거나 커다란 이그드라실의 뿌리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보통 사람, 특히 여성이나 노약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고꾸라지는 인원이 발생했다.

“으아아악!”

팔에 힘이 없는 노인을 시작으로 몇몇 이들이 바닥을 구르다 광선의 범위 내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비릿한 맛이 느껴지도록 입술을 씹는 것 외에 시현이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몇 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그드라실은 힘에 부친 듯 공격을 그치고 축 늘어졌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몰아붙여!”

여기까지 오며 사람들의 체력, 정신력의 소모는 극에 달해 있었다.

아까만 해도 구원자 하나가 팔에 힘이 빠져 풍압에 휩쓸리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구원자조차 그런데, 일반 전투원들의 체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이상 전투가 길어지면 인명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슬슬 쓰러질 때도 됐는데…….”

시현은 이를 갈며 이그드라실을 노려봤다.

여전히 잿빛의 화염에 타들어 가고 있는 이그드라실.

그 생명력도 함께 타들어 가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팔팔한 이그드라실을 보고 있자니 초조함이 느껴졌다.

무려 5레벨 구원자가 온갖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약점 속성으로 전력을 다한 일격을 먹였다.

더군다나 그 불길은 계속해서 이그드라실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며, 외부에서는 구원자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다.

초대형이 아니었다면 진즉 목숨을 잃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건만.

계속해서 멀쩡한 모습으로 공격을 해 오니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시현 오빠! 이거 사용할게요!”

앳된 목소리에 돌아보니, 제 신체보다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김세연이 보였다.

왠지 익숙한 디자인의 지팡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들고 다니기 귀찮기도 하고, 워낙 비싼 물건이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고 창고에 고이 모셔 두고 있던 무려 2억 5,000만짜리의 장비.

‘이끄는 태초의 빛’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지팡이다.

“말도 안 했는데, 그걸 가져온 거야?”

“네? 아, 그…… 필요할 거 같아서…… 죄송해요.”

“아니야. 잘 했다고 칭찬하려고 그랬어. 역시 세연이, 머리 좋네. 네가 나보다 낫다. 정말 잘했어!”

“……헤헤.”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울음을 터뜨리려던 김세연은 시현의 껴한 칭찬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현의 허가가 있었기에 김세연은 본격적으로 이끄는 태초의 빛을 사용했다.

이끄는 태초의 빛이 가지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언데드의 말살.

다른 하나는 일대에 있는 아군에게 내려지는 강화 효과.

전자의 경우 현 상황에서 딱히 쓸모가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탁!

가벼운 소리와 함께 지팡이 끝이 땅을 내리쳤다.

퍼져나간 백색의 빛은 이그드라실의 외피를 죽어라 깨부수고 있는 구원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뭔가 몸이 가벼워진 거 같은데…….”

“아까까지만 해도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는데, 뭔가 숨통이 좀 트이는 거 같아.”

구원자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콰아아아!

이나연의 폭풍을 시작으로 사용횟수에 한계가 있어 아끼고 아끼던 고위력의 권능들이 일제히 사용되었다.

대형 악마인 현무만 해도 수많은 구원자들이 며칠을 달려들어 겨우 외피를 깰 수 있었다.

하물며 눈앞에 있는 건 초대형 악마 이그드라실이다.

보통이라면 현무 때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무 때와 지금은 구원자의 수는 물론 격이 다르다.

지금 모인 구원자들의 경우 최대 3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예비 영웅들.

그들이 전력을 다하는데 제아무리 이그드라실이라 한들 버텨 낼 재간이 있을 리가 없다.

파직.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 본 이그드라실의 몸에 빛나는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시현은 웃었다.

시현뿐 아니라 한 마음, 한 뜻으로 이그드라실을 공격하던 참가자, 구원자, 전투원 전원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승리.

그것이 눈앞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도 나는 느낌이었다.

“죽여!”

“이놈의 외피 없애 버려!”

한층 난폭해진 참가자들을 선두로 구원자들의 권능이 미쳐 날뛰었다.

이그드라실 역시 서서히 몸을 회복하고 반격을 준비했다.

분노한 이그드라실의 첫 번째 뿌리가 바닥을 뚫고 올라왔을 때.

쩌저저적.

번개라도 치는 듯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이그드라실의 균열이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기 위함인지 깨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던 외피는.

“적당히 해라!”

이나연의 전력을 다한 폭풍이 직격하는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상대가 워낙에도 거대하다 보니 깨진 외피의 파편이 쏟아져 내리는데, 함박눈 수준이 아니라 폭설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됐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다.

퍼억!

양팔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내지르던 참가자 하나가 뿌리에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찌그러진 캔음료 같은 모양새로 널브러져 있는 참가자를 보며 사람들은 잠시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까지나 직접공격을 가로막는 외피를 부쉈다뿐이지 아직 완전히 끝이 난 게 아니라고.

“으아아아아!”

두 주먹에 권능을 담은 한기훈이 기합을 내지르며 일격을 가한다.

이그드라실의 표면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생기며 표피가 깊게 패였다.

직경 2미터 가량의 구덩이를 이그드라실의 몸체에 새겨 준 한기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엥?”

자신의 예상보다 이그드라실이 입은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앗, 깜짝이야.”

화려한 발길질에 이어 연속 공격을 이어 가려던 김세찬은 일격에 허물어져 버리는 이그드라실의 뿌리로 인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멍하니 뿌리를 응시하는 김세찬의 눈에 보인 것은 맥없이 재가 되어 흩어지는 이그드라실의 뿌리였다.

비슷한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어? 이게 대체 뭐야?”

“그러게. 왜 이렇게 잘 부서지냐? 순두부 같네.”

분명 처음 상대할 때의 이그드라실은 단단하기가 바위와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이그드라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두부도 보통의 두부가 아니라 순두부 정도 되어 보이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강도의 내구도는 구원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몇 번 더 공격하던 구원자들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열기를 느꼈다.

“그런 거였구나! 이그드라실 이거 겉만 멀쩡하지 속은 타들어 가고 있던 거야!”

비로소 그들은 깨달았다.

이그드라실의 겉을 태우고 있는 잿빛의 불꽃.

겉보기와 달리 영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잿빛의 불꽃은 이그드라실의 몸속으로 들어가 내부에서부터 그 거체를 태우고 있던 것이다.

가까스로 형태를 유지해 주던 표피를 깨부수니, 내부에 있던 잿더미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고.

사실상 겉만 멀쩡하지 이그드라실은 한계에 봉착해 있던 것이다.

이제는 정말 골이 눈앞이다.

구원자들은 없던 힘까지 쥐어짜 냈다.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인가?’

패널티로 인한 시간을 계산하던 시현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지금처럼 하나의 악마를 다수의 인원이 공략한다면, 경험치는 모두가 나눠 갖게 된다.

물론 전투의 기여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양이 달라지며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경우 제법 많은 양의 경험치를 가져갈 수 있다.

“그래도 막타 정도는 내가 가져가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 없어 한숨만 토하고 있을 무렵.

[우우우우…….]

이그드라실이 힘없는 소리를 토하며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파리와 열매는 모두 빛을 잃었으며 힘을 잃고 떨어지던 나뭇가지는 바람결에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하늘을 가리던 무성한 이파리가 전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던 두 개의 줄기가 나누어지더니 서로를 밀쳐 내며 다른 방향으로 쓰러졌다.

무시무시한 거구가 바닥에 충돌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자욱하게 재가루가 올라오고 그것이 다시 한번 하늘을 가렸다.

이그드라실은 허리가 끊어졌으며 남은 건 속이 텅 비어 있는 밑동뿐이었다.

재가루를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우오아아아아!”

“1년차에 이그드라실 토벌이라니……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가슴 깊이 감동한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원작을 대충 넘기지 않고 자세히 읽은 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이그드라실의 잔해를 헤치며 그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음…… 왜 경험치가 안 들어오죠?”

지금의 이나연처럼 말이다.

뭔가 남았나 싶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나연을 보고 시현은 어깨에서 힘을 빼라는 뜻으로 머리와 어깨에 뭍은 재를 털어 주었다.

“이그드라실은 굉장히 얍실한 놈이거든.”

“얍실해요?”

“응. 본체가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위험에 처할 경우를 대비해 늘 자신의 분신을 숨겨 놔. 그러다가 본체가 당하기 직전에 영혼을 분신으로 이동시켜. 그런 식으로 영생을 꾀하는 놈이야.”

“그렇다면 그 분신을 찾아 처리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기는 한데, 우리는 그냥 발 뻗고 편히 쉬면 돼. 지금 출발해 봤자 늦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고생했잖아. 나머지는 저기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시현의 눈에는 분신이 있을 법한 장소를 열심히 파헤치는 참가자들이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이나연이나 민서라를 보내 마지막 일격 보너스를 받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명령을 전달하는 도중에 저들 중 누군가가 분신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욕심을 버리고 과연 누가 마지막 일격의 행운을 차지할까 지켜보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돌연 비명이 울렸다.

더 이상 비명이 울려 퍼질 이유가 없음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뭐지? 너무 욕심 부리다 저들끼리 분쟁이라도 난 건가?”

“천소해! 천소해가 나타났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생각대로 일이 술술 풀리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레 나타난 이물질은 시현에게 두통을 안겨 주었다.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제 동료조차 버리고 달아난 겁쟁이 아닌가.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될 줄이야.

“가까이 가 보자.”

“네. 오빠, 아직 패널티 진행 중이죠? 제가 확실히 호위할게요.”

말만으로도 듬직한 이나연을 대동한 시현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그드라실의 심부로 향하는 길목.

그곳에 수많은 참가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천소해가 있었다.

콰앙!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구쳤다.

그 불길 때문에 참가자들은 쉬이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망할 년이……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다가 마지막에 제일 맛있는 부분만 가져가려고? 어림도 없지. 내가 죽더라도 그 꼴은 못 본다!”

“당장 꺼져! 제아무리 교단이라 해도 선 넘는 건 못 참지!”

“네가 교단이면 다야? 제아무리 교단이라도 여기 있는 참가자 전원을 적으로 삼고 무사할 거라고 생각해?”

참가자들은 언성을 높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천소해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눈을 굴리며 권능을 사용해 자신에게 향하는 참가자들을 견제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 나타난 거지?’

시현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려 했다.

단순히 이그드라실을 마무리 지어 경험치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경험치를 확보하면 뭐 한단 말인가.

분노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 짓인 것을.

“언제 끝나는 거야? 대체 언제…….”

이를 꽉 깨문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이그드라실의 분신이 있는 최심부를 곁눈질한다.

‘그러고 보니 전쟁 도중 정성국이 무언가 수작을 걸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잠잠했단 말이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