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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40화 (140/225)

[140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그드라실이 깨어나기 전까지 이그드라실을 공격 가능한 범위 내에 둔다는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이그드라실이 정신을 차리는 게 빠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그드라실과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정신을 차린 이그드라실은 보다 가까워진 참가자들을 보며 분개했다.

만약 멍청한 현무였다면 또다시 전력을 다해 광선을 토해 낸 후 정신을 잃는 과정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겉모습만 보면 그저 식물에 불과하지만, 이그드라실은 엄연히 지능을 갖추고 있는 개체이며 그 지능은 현무보다 월등했다.

자신의 광선 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이그드라실을 새로운 방법으로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어?”

시현은 주변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보면 자신이 있는 곳만 그림자가 져 있고 다른 부분은 굉장히 밝았다.

“위! 위를 봐요!”

옆에 있던 민서라가 기겁하며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머리 위를 올려다본 시현은 기겁하고 말았다.

이그드라실의 열매가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열매지 그 크기는 어지간한 소형차 정도로 거대했다.

“이럴 때는 위를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도망치라고 하는 거잖아요!”

시현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퍼억!

다행이도 열매에 머리를 직격당하는 참사는 없었다.

황금빛의 탐스러운 열매는 아랫부분이 찌그러진 채 단물을 흘렸다.

문제는 황금빛이던 이그드라실의 열매가 점점 붉게 물들며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원작에 이그드라실이 열매를 이용해 공격하는 패턴은 없었죠?”

시현의 질문에 민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제 경험에 따르자면, 이런 경우에는 꼭 폭발을 하더라고요.”

“역시 그렇겠죠?”

의견을 일치시킨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멀어지기가 무섭게 열매는 성대하게 폭발했다.

휘발성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것인지 폭발 직후 열매는 불길에 휩싸였다.

심지어 폭발을 하며 사방으로 퍼진 과육에서도 불길이 발생했다.

“어쩌죠? 보아하니 가만 두면 크게 번질 거 같은데, 진압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그럴 여유는 없을 거 같네요.”

떨어지는 열매는 하나가 아니었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수많은 열매가 성남시 전체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미, 미친!”

“피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악물고 전탄 회피하라고!”

당연하지만 참가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시현의 입장에서 저 정도 공격이야 조금 무리하면 몸으로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구원자들에게는 다르다.

외피의 강도에서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는 그들은 열매에 직격당하는 순간 목이 부러져 죽고 말 것이다.

애써 열매를 피하더라도 낙하의 충격으로 튀어나온 휘발성 과육에 직격당한다면, 전신이 불길에 휩싸여 타죽고 말 것이다.

사소한 실수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생사의 경로에서 참가자들은 반복해서 시달려야 했다.

만약 영광을 위한 맹세로 인해 얻은 축복이 아니었다면, 몇 사람 정도는 부상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큰일이네요.”

민서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열매가 떨어지며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것이다.

기존의 루트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쪽 길이 안 되면 크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손실이 너무 커져요.”

길을 돌아가게 되면, 참가자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건 단순히 시간뿐만이 아니다.

그 시간만큼 이그드라실의 공세를 몸으로 버텨 내야 하며 그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이게 된다.

무엇보다 정신력의 소모는 구원자들의 전투력을 크게 감소시킨다.

“불길이 문제라면 제가 제압할게요.”

낯선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상당히 지쳐 보이는 정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정훈의 곁에는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다소 앳되어 보이는 인상의 여성이 있었다.

물정령사 이한솔이다.

“제 권능이라면 좁은 영역에 물을 모아서 불을 진압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부탁드립니다.”

때 아닌 화재에 전전긍긍하던 시현은 안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무력이 있다 한들 개인으로서는 엄연히 할 수 없는 일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수의 구원자가 모인 지금, 각자 가진 권능을 조합하면 어떻게든 돌파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에 든든함마저 느껴졌다.

이한솔이 권능을 사용하자, 허공에 수분으로 구성된 커다란 고리가 생성됐다.

그 고리로부터 몸체가 물로 구성된 고래가 헤엄쳐 나오더니 이한솔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한솔은 딱히 육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저 동물과 교감이라도 하듯 고래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그에 고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쪽 길을 막고 있는 불길 위에 물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불길은 빠르게 제압되었다.

“됐다! 이제 다시 이동할 수 있게 된…….”

“으아아악!”

“또 뭐야!”

귀를 찢는 비명에 민서라가 성을 냈다.

뭐 하나를 해결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또 문제가 발생하고.

버그와 싸우는 프로그래머가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 초대형인가. 아직 근처에도 못 갔는데, 무슨 사건사고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

귀찮고 짜증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시현은 천리안을 사용해 비명이 들려온 장소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뱉었다.

“……미치겠네.”

“뭐예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천리안을 사용할 수 없는 민서라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훈과 이한솔도 비명소리의 원인이 궁금한 모양이다.

굳이 질질 끌 이유가 없었기에 시현은 자신이 본 것을 서술했다.

“지금까지 저희가 상대해 온 나무 짐승들 있죠?”

“네.”

“그놈들이 몸에 불길을 두른 채 달려들고 있습니다.”

“……아이고.”

민서라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사실 나무 짐승들이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몸에 불길을 두르고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현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으아아아아!”

참가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나무 짐승 하나를 쓰러뜨렸다.

보통이라면 그것으로 끝.

참가자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 짐승이 목숨을 잃게 되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들은 구심력을 잃고 아무렇게나 흩어지게 된다.

그렇게 흩어진 나무에 불이 옮겨 붙으며 작은 화재가 크게 번지고 있었다.

“오빠! 저것들 귀찮은데, 폭풍으로 날려 버릴까요?”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던 이나연이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싹 다 쓸어버리라 하고 싶었지만, 이나연의 권능은 바람계열이다.

그게 화재를 더욱 키우면 키웠지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한솔 씨, 그 물정령은 몇 번이나 더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죠?”

“죄송해요. 물이 없는 장소에서 물을 사용하면 소모가 극심해져서, 기껏해야 두세 번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정말 죄송해요!”

제법 소심한 성격인지 그녀는 딱히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자, 그게 자신의 무능을 질책하는 거라 여겼는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인다.

그런 이한솔의 오해를 푸는 데도 제법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다.

‘고작 두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면, 만약을 위해 아껴 두는 게 맞아. 하지만 화재를 해결하는 데 물정령보다 좋은 권능은 없어. 만약 지금 타이밍에 뿌리가 나오기라도 하면…… 아니, 잠깐. 뿌리?’

시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이그드라실은 계속해서 뿌리를 이용해 구원자들을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구원자들이 힘을 합쳐 격퇴하기는 했지만, 이그드라실의 뿌리는 소모품에 가깝다.

끝부분이 소모되더라도 금세 수복하는 게 가능하며 격퇴당해도 금세 수복시켜서 재차 전장에 내보내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구원자들을 괴롭혀 오던 뿌리가 조금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한 직후부터다.

“그러고 보니 이그드라실의 약점은 불이었지. 불로 태워 버린 뿌리는 수복되지 않으니까.”

시현은 웃었다.

“어이가 없네. 제 약점 속성을 무기로 사용하다니. 진화의 방향이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잖아.”

“윤시현! 이제부터 어떻게 해?”

불타는 나무 짐승을 상대하던 구원자 하나가 목청껏 소리쳤다.

난잡한 전장의 소음 속에서도 남자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렸다.

그에 시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적의 대책을 내놓았다.

“어쩌긴, 달려.”

“……뭐?”

“이그드라실이 있는 곳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옆이나 뒤에서 오는 놈은 무시해. 앞을 가로막는 놈만 친다!”

“미, 미친! 너 제정신이야? 그렇게 했다가 포위되기라도 하면…….”

“그럴 일은 없어. 이그드라실의 뿌리는 열매가 낸 불길이 무서워서 나오지 않을 테니까. 조금 부상을 입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내가 치료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게 무슨…… 아!”

그제야 다른 참가자들도 불길 때문에 이그드라실의 뿌리가 활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도시 전체로 번지고 있는 불길은 진격에 몹시 방해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방해가 된다 한들 이그드라실의 뿌리만큼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다소 무리한 강행군을 이어간다 해도 뿌리가 없으면 적어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부상자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정도는 치료의 권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야…….”

“저 멍청한 나무 놈, 자충수를 뒀네.”

“가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이그드라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불길을 휘감은 나무 짐승들이 달려들었으나 진격에 방해가 되지 않는 놈들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물론 일반 전투원들은 고작 나무 짐승 따위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지키기 위한 포메이션도 잊지 않았다.

시현의 예상대로 참가자들이 빠르게 거리를 줄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그드라실은 뿌리를 땅 속에 꼭꼭 숨겨 둔 채 내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현의 공격 범위 내에 이그드라실의 본체가 들어왔다.

“첫 일격은 전력으로 간다.”

시현은 가방에 꼭꼭 숨겨 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이전에 천소해가 허겁지겁 달아나며 떨어뜨리고 간 레벨 서포터다.

이한울이 만든 물건을 사용하는 건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었으나, 그래도 있는 걸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이유는 아니다.

무엇보다 불쾌함을 잠깐 참으면 아군의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현은 레벨 서포터를 팔에 주사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차가운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쿵.

심장이 크게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쿵. 쿵.

고동이 빨라짐과 동시에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과 만능감이 느껴졌다.

이는 시현의 육체와 정신을 놀라운 수준으로 강화시켰지만, 동시에 굉장히 불쾌한 감각을 선사해 줬다.

<레벨 서포터로 인해 강제적으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이자프의 권능이 5단계의 힘을 발휘합니다. 이자프가 지금의 상황을 몹시 불쾌해합니다.>

<아르하의 권능이 4단계의 힘을 발휘합니다. 아르하가 지금의 상황을 못마땅해 합니다.>

<레벨 서포터의 지속시간은 30분입니다. 해당 시간이 지나면 이자프와 아르하로부터 패널티를 부여받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축복이 거두어집니다.>

“30분…….”

레벨 서포터로 얻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고작해야 30분.

하지만 5레벨 구원자의 능력을 모두 해방하는 데 30분이면 차고도 넘친다.

“세찬아, 세연아!”

시현은 먼저 쌍둥이를 불렀다.

김세찬으로부터 권능의 사용을 허가받고, 김세연으로부터 버프까지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괴리감이 느껴질 만큼 강해진 육신에 한층 더 강한 힘이 깃든다.

그 외에도 버프형 권능을 가진 소수의 참가자들이 자진해서 시현에게 버프를 걸었다.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크게 한 번 보여 줘!”

“4레벨 구원자가 어느 정도인지 구경이나 한 번 하자.”

그들의 응원 아닌 응원에 시현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고오오오…….

사용하지도 않은 처형의 권능이 흘러나와 시현의 몸을 휘감았다.

검은색의 기류에 휩싸인 시현의 손에서는 밝은 백색의 불꽃이 피어났다.

화르륵!

두 번째 불꽃은 시현의 머리 위에서 피어났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백색의 불꽃이 시현의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불어난 불길의 수는 이제 헤아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어림잡아도 족히 천 개에 가까워 보였다.

“천 번째 별…….”

누군가가 지현아의 별명을 읊조렸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지현아가 아닌 시현을 담고 있었다.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현의 몸을 백색의 불꽃이 휘감았다.

백색의 불꽃은 흑색의 기류와 휘감기더니 일대에 떠오른 불꽃의 색을 모조리 회색으로 바꿔 버렸다.

정면으로 손을 내민 시현은 이그드라실의 본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가라.”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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