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수백에 달하는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무리 외피를 가진 구원자라 해도 이 정도의 총알세례를 견딜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호텔의 일반 전투원들도 동원된 상황.
그들은 총알 앞에 한없이 무력한 존재들이다.
시현은 다급하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방통행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방패조, 앞으로!”
한 남자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전투원 사이에 숨어 있던 구원자들이 방탄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은엄폐에 실패한 인원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낯선 얼굴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남자는 굉장히 익숙했다.
“한기훈 씨? 어떻게 여기에…….”
“뭐긴. 거, 나연이가 이전 일을 들먹이며 도와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싫다고 하냐? 그리고 말했잖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한기훈이 그리 듬직해 보일 수 없었다.
이전 시현이 놀랐을 만큼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LT마트의 참전에 전황은 뒤집혔다.
“저들은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이다. 죄다 쏴 죽여! 우리가 용병으로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는지 보여 줘라.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너희도 이제 건빵은 질렸잖아?”
한기훈의 지시에 본격적으로 사격전이 시작되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 은엄폐조차 하지 않고 있던 교단 측 전투원들이 대거 피탄 당해 쓰러졌다.
“몸을 숨겨! 총격전을 벌이는데, 누가 모습을 다 드러내 놓고 있어?”
그제야 천소해가 부랴부랴 지시를 내렸고, 전투원들은 폐건물 사이사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수의 전투원이 목숨을 잃었기에 천소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돼!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교단 내에서 내 입지가…….”
“지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닌 거 같아.”
지척에서 들리는 지현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저기, 사신들이 오고 있거든.”
지현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시현과 이나연, 그리고 민서라가 달려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괴물들이다.
그제야 천소해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 윤시현을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처지였다.
“천소해, 어쩌다 보니 그동안 당한 걸 갚아 줄 기회가 와 버렸네.”
그새 지척까지 도달한 시현이 천소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속도는 시현이 위.
달아나는 게 불가능하다 판단한 천소해는 어쩔 수 없이 시현에게 맞설 수밖에 없었다.
“지현아!”
아무리 레벨 서포터를 투약했다 해도 그녀가 일대일로 시현을 이길 수는 없다.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 지원을 요청했다.
“알았어!”
지현아 역시 지금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전력을 쏟아 냈다.
그녀의 주변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불꽃이 피어났다.
그녀가 천 번째 별이라 불리는 이유.
마치 밤하늘의 별을 연상시키는 찬란한 불꽃의 개수가 무려 수백 개에 육박했다.
지금보다 구원자로서의 레벨이 오른다면, 최대 999개까지 불꽃을 동시에 피워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종래에는 자신의 육신을 백색의 불꽃으로 만드는 것이 지현아의 권능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한동안은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패널티를 겪게 되지만, 위험한 상황을 타파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 지현아는 이 권능을 통해 몇 번이고 자신보다 격이 높은 악마들을 사냥해 경험치를 대량으로 벌어 왔다.
그러나 그조차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딜!”
이나연의 손끝에서 시작된 한 줄기 폭풍.
그것이 수백여 개에 달하는 불꽃을 일제히 집어삼켰다.
“으앗? 자, 잠깐!”
지현아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필사적으로 불꽃의 궤적을 조종하려 했으나, 강력한 폭풍에 불꽃들은 제멋대로 흩날리다가 저들끼리 부딪치거나 애꿎은 장소로 날아가 폭발하거나를 반복했다.
사실상 지금 공격이 지현아의 마지막 발악임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수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 상황이었는지라 불꽃들이 허무하게 소모되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천소해가 꽥 소리를 내질렀다.
연거푸 내리치는 시현의 공격을 막는 데 급급하던 천소해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너나 잘해!”
천소해와 지현아.
여유가 사라진 만큼 두 사람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저리 비켜!”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스카이라인의 안진용이 달려들었다.
호텔의 리더인 시현만 어떻게 처리한다면 된다고 생각한 건지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게 거구와 맞물려 흡사 전차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안진용은 시현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툭.
“……어?”
무언가에 다리가 걸린 안진용은 성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민서라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다리를 걸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분개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감히…….”
“아저씨도 주먹 쓰는 거 좋아하는 거 같던데, 저도 그렇거든요?”
머리에 피가 잔뜩 몰린 안진용을 조롱하듯 웃은 민서라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별거 아닌 초보적인 도발.
그러나 이미 이성이 마비된 안진용에게는 효과적이었다.
“날 도발한 걸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 주마!”
자세를 낮추고 달려드는 안진용의 두 손에 강렬한 적색의 빛이 맺혔다.
그에 맞춰 민서라도 황금빛 요정을 자신의 두 손에 깃들게 했다.
“으아아아!”
안진용은 괴성을 내지르며 연달아 주먹을 휘둘렀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마구잡이식 공격이었으나, 제 거구만큼이나 두꺼운 주먹과 팔뚝, 구원자의 신체 능력이 더해지자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 상처가 생길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되었다.
그에 민서라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구원자의 뛰어난 동체시력을 이용해 안진용의 공격을 회피, 가끔 보이는 틈에 빠른 일격을 꽂아 넣는다.
“허억!”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난 안진용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고작 일격이다.
심지어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고 견제를 위해 날린 가벼운 잽 같은 공격.
그런데 외피가 받은 충격은 안진용의 계산보다 아득하게 위였다.
“설마 3레벨?”
“뭐야? 겨우 한 대 맞고 겁먹은 거예요?”
민서라는 다시 한번 안진용을 도발했다.
그러나 자신과 민서라에게 격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안진용은 이전처럼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던 안진용은 기습적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을 주워 던졌다.
그러더니 민서라가 돌을 피하는 틈을 타 잽싸게 등을 돌려 달아났다.
“……엄청 추해.”
고개를 저은 민서라는 안진용의 뒤를 쫓는 대신 시현과 싸우고 있는 천소해를 쫓았다.
“살았다, 살았어!”
안진용은 민서라가 자신의 뒤를 쫓지 않는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는 한편,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호텔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력해. 여긴 지옥이야. 일단 병력을 데리고 후퇴한 다음, 인근 세력을 하나로 뭉쳐서 대응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금 머릿속으로 열심히 미래를 그려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안진용의 몸이 기역자로 휘었다.
외피가 깨지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밀려 왔다.
“끄어어억!”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얻어맞은 부위를 붙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앞에는 임명과 서약의 권능을 한 몸에 받아 막강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김세찬이 서 있었다.
“으음…… 일단 제압은 했는데, 이제 어쩌지?”
“나도 몰라.”
쌍둥이는 망설였다.
쌍둥이가 실전에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을 때리는 것만 해도 손이 떨리는 마당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틈을 노린 안진용이 기습적인 반격을 가하려던 찰나.
“비켜. 막타는 내 거야.”
김세찬을 밀어낸 강소하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안진용의 심장에 창을 꽂아 넣었다.
“커헉!”
이렇다 할 저항을 할 틈도 없이 안진용은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안진용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모은 강소하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너희는 0킬 확정이다. 최다 킬의 주인공은 내가 될 거고. 너희는 댕댕이나 제대로 보호하고 있으라고. 으하하.”
약 올리듯 웃음을 터뜨리고 멀어지는 강소하를 멍하니 바라보던 김세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고마워하지 마! 분해하라고!”
끝까지 겉과 속이 다른 강소하를 웃으며 배웅한 쌍둥이는 시현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 *
“망할! 빌어먹을!”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꽂히는 시현의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낸 천소해가 욕설을 토했다.
그런 천소해의 걸걸한 입을 응징이라도 하듯 옆구리에 민서라의 주먹이 꽂혔다.
강한 충격에 천소해의 몸이 내동댕이쳐졌다.
“아악!”
외피 때문에 고통은 없었으나, 그녀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어떻게든 자세를 추스르려던 천소해의 눈앞에 붉은색이 퍼졌다.
촤르르륵!
쇳소리와 함께 뻗어진 피의 사슬이 그녀의 오른손을 휘감았다.
외피와 함께 뼈까지 으스러뜨릴 기세로 사슬이 파고들었다.
“망할! 망할!”
욕설을 반복하며 검으로 사슬을 내리치는 천소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잠깐뿐이기는 하지만 대형 악마도 묶어 놓은 피의 사슬을 천소해가 끊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현아!”
성과 없는 칼질만 반복하던 천소해는 소리를 지르며 지현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현아라 해서 멀쩡하지는 않았다.
“시끄러. 말 걸지 마. 돌아볼 여유도 없으니까.”
폭풍에 의해 전신에 베인 상처가 생긴 지현아는 거칠게 숨을 토하고 있었다.
얼굴에 난 상처를 소매로 훑어내는 지현아의 등 뒤로 투명화로 몸을 숨기고 있던 신호석이 나타났다.
외피는 이미 이나연에 의해 찢겨진 상황.
지현아의 복부를 뚫고 칼날이 빠져나왔다.
“커헉!”
괴로움이 신음하면서도 지현아는 얼마 남지 않는 백색의 화염을 던졌다.
그러나 공방일체의 권능을 자랑하는 민서라의 요정이 화염을 막아 냈다.
“으아아아!”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시현에게 머리를 붙잡힌 23사단의 참가자 중 마지막 생존자 유승호가 보인다.
보아하니 등 뒤에서 기습을 하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상황은 이 이상이 없을 만큼 최악이었다.
전투원끼리의 사격전조차도 LT마트 소속의 구원자들이 날뛰는 덕에 인원의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판국이었다.
‘이대로라면 죽고 말 거야.’
공포에 질린 천소해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시현의 손 안에서 유승호의 머리가 터졌다.
발버둥 치던 유승호가 축 늘어지는 것을 확인한 천소해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자신 역시 같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막 죽여도 괜찮은 거예요? 참가자가 죽으면 안 되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니.”
“그렇기는 한데, 교단은 예외입니다.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스카이라인이나 23사단도 마찬가지고요.”
“하긴, 증오심을 품은 사람은 손익과 무관하게 돌발행동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심지어 시현은 민서라와 잡담을 나누는 여유까지 선보였다.
결국 시현을 잡기 위해 출정한 구원자 중 남은 건 천소해와 지현아, 둘뿐이었다.
“대체 하운드나 다른 세력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싸움이 벌어지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참전하지 않는 타 세력에 대한 불만 역시 절정에 달했다.
“천소해!”
궁지에 몰려 있던 지현아가 기습적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을 담은 천소해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레벨 서포터? 너, 설마…….”
돌아본 지현아의 두 눈에서 단단한 각오가 엿보였다.
교단은 지독한 노력과 희생 끝에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인 레벨 서포터의 개발에 성공했다.
그 최소한의 부작용이란 수 시간 가량의 무력화.
외피조차 사용할 수 없어 굉장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30분가량 레벨 하나를 강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경이로운 이점 앞에 그 정도 부작용은 부작용 수준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레벨 서포터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동시에 두 개 이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용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다만 두 개의 레벨 서포터를 동시에 사용함으로 얻게 되는 대가는 끔찍한 죽음이다.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절규하며 죽어 가던 실험체의 최후를 떠올린 천소해는 몸을 떨었다.
세상에 그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고작 5분.
두 번의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고 활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다.
죽어 가는 과정은 무려 수십 시간에 달하며 도중에는 회복도, 이설아의 시간조작도 통하지 않는다.
“진심이야?”
“달리 수가 없잖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리더를 위해, 이들과 함께 가야겠어.”
지현아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두 번째 레벨 서포터를 투약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콰아아!
지현아의 몸을 백색의 불길이 휘감았다.
그러나 초고열의 불길은 지현아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나타난 백색의 불꽃은 이전보다 배는 많아진데다 크기도 커졌다.
“쳇, 하여간 너희는 끝까지 사람을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어.”
혀를 찬 시현은 곧장 천소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까지 4레벨에 도달한다면 상황이 녹록치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지현아가 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찬란한 백색의 불길을 두른 지현아는 놀랍게도 시현과 대등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지현아가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레벨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두 개의 권능을 가진 시현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천소해! 뭐 하고 있어!”
지현아는 천소해를 다그쳤다.
“그, 그게…… 손! 손이 묶여서…….”
화륵!
변명과 동시에 지현아의 손목을 묶고 있던 사슬을 백색의 불길이 태워 버렸다.
잠시 한눈을 판 대가로 지현아는 시현에 의해 오른쪽 귀가 잘려 나가고 말았다.
“천소해를 막아!”
시현의 외침에 민서라와 이나연을 필두로 호텔 소속의 구원자들이 달려들었다.
노리는 것은 천소해가 손에 들고 있는 레벨 서포터다.
“빨리!”
지현아가 천소해를 다그친다.
4레벨에 도달한 천소해가 합류한다면,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두셋은 데려가 호텔에 지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소해는 끝내 레벨 서포터를 투약하지 않았다.
“미안.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너는 어차피 늦었잖아. 그러니까 시간을 벌어 줘. 네 원한은 반드시 갚아 줄 테니까.”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은 천소해는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손에 들고 있던 레벨 서포터를 바닥에 내팽개친 채 말이다.
“천소해?”
달아나는 천소해의 뒷모습을 쫓는 지현아의 두 눈에 경악이 깃든다.
설마 이런 식으로 배신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걸까.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당황한 것은 시현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화냐. 너무 당황해서 쫓아가는 것도 깜빡해 버렸네.”
“와…… 충격, 그 자체.”
모두가 연민의 시선을 담아 지현아를 응시했다.
남겨진 지현아는 충격과 배신감에 치를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