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날이 밝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전날과 같은 폭음에 성남시 곳곳에서 발생했다.
대지가 갈라지고 화염이 솟구치는 가운데, 컨디션을 회복한 참가자들은 하나둘 전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전장의 중심에는 늘 시현이 있었다.
“오늘에야말로 끝장을 보자!”
“어제 우리를 끝장내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참가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도 몇 놈 정도는 은혜를 느끼고 얌전히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을 믿는 게 아니었어.”
한숨을 내쉰 시현은 달려드는 참가자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외피를 깨부수고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혀 전장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현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퍼엉!
“와악!”
자신의 지척에서 발생한 백색 화염의 폭풍에 시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천 번째 별 지현아가 있었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당연하지만 지현아의 옆에는 천소해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 슬슬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를 거야.”
팔짱을 낀 천소해는 으스댔다.
확실히 어제와 비교해 그녀로부터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여유가 느껴졌다.
분명 저러는 이유가 있을 터.
천리안으로 주변을 살펴본 시현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빨리도 도착했네.”
어제까지만 해도 성남에 존재하지 않던 다수의 구원자, 그리고 생존자들이 일대에 집결해 있었다.
모두가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 제일의 세력이라 인정받고 있는 교단의 병력이 분명했다.
퍼억!
기습적으로 추격과 함께 시현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바닥에 떨어지는 찌그러진 탄두를 확인한 시현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놈인가.”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조금 먼 장소에 저격소총을 들고 있는 남자와 그 옆에 선 여자가 보였다.
두 사람은 교단을 견제하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시현을 더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서울과 경기, 혹은 그 인근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세력에서 추가로 병력을 파견한 것인지 총기 따위로 무장한 생존자들이 다수 확인됐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최악이라고 해야 하나.”
시현의 노림수는 먹혀들었다.
원래라면 저들끼리 치고받느라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어야 할 상황이지만, 시현이라는 공공의 적을 사냥하기 위해 잠시 힘을 합친 것이다.
참가자의 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사격 개시!”
누군가의 외침에 시현을 겨누고 있던 총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연거푸 터져 나오는 화약소리는 훈련소 사격장에서 듣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러웠다.
“으아아악!”
“자, 잠깐!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시현을 공격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해 있던 구원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꽁무니를 뺐다.
그와 반대로 시현은 담담히 한마디를 읊조릴 뿐이었다.
“일방통행.”
인간의 피륙 따위는 너무도 쉽게 관통해 버리는 총알들이 반구 형태로 시현을 감싸고 있는 막에 허무하게 흡수되고 말았다.
물리력을 이용해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의 공격은 없던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이로운 성능의 방패.
아무리 많은 수의 탄환을 퍼부어도 방패는 뚫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뚫린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영 불안하네.”
물론 일방통행을 깨부순 것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에 비하면 소총 정도야 가랑비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일방통행이 절대무적의 방패가 아니란 걸 알기에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관둬. 일방통행에 사격은 그저 총알낭비일 뿐이야.”
혀를 찬 천소해가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같은 참가자이기에 일방통행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권능이 어떤 성능을 가졌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참가자들도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일방통행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외침과 함께 거구의 참가자가 커다란 도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저적.
남자의 발밑에서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정면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더니, 이내 시현이 밟고 있는 대지까지 반으로 쪼개 버렸다.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반투명한 방패는 대지의 갈라짐에 따라 반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망할.”
다시 한번 사격이 시작되었고, 시현은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다.
정신력은 충분히 남아 있지만,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정신력의 소모를 줄여야 했다.
“어딜 가시려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몇 명의 참가자들이 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중에는 하운드 소속의 참가자, 박성호와 이보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간다.”
“그날의 수모를 제대로 갚아 주자고.”
박성호는 시현을 향해 저격소총이 아닌 돌격소총을 겨눴고, 이보람은 소총에 손을 얹고 권능을 사용했다.
“뭔가 위험해 보이는데…….”
저들이 사용하는 권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5초면 되니까 움직임을 막아!”
박성호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참가자들이 일제히 시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고작해야 2레벨에 불과한 구원자들.
나름대로 세력에서 에이스로 통하는 이들이었겠지만, 시현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공격 한 번에 외피가 깨지고 비명을 지르며 뻗어 버리는 나약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라도 어떻게든 5초 동안 시현의 발목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잘 가라.”
박성호는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굉음과 함께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강한 반동에 박성호와 이보람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날아드는 총알은 시현의 코앞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우, 우리까지 말려들…… 끄어어억!”
온 힘을 다해 시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참가자들은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들을 지켜줄 외피조차 시현에 의해 부서지고 없는 상황.
솟구치는 화염의 기둥이 사라졌을 때 제 다리로 서 있는 이는 시현뿐이었다.
“…….”
주변을 훑은 시현은 이를 갈았다.
약 다섯 정도의 참가자들이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피부가 녹아내린 채 죽고 말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많은 수의 참가자를 살리려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와, 씨… 그걸 맞고 살았다고?”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할 리가…….”
하운드의 두 남녀는 몸을 떨었다.
그들은 이번 공격이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행한 일격은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하다.
중형 악마를 상대로 사용해 본 결과, 그들은 설사 3레벨 구원자라 할지라도 버텨 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현은 멀쩡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설마 4레벨…….”
퍼억!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보람의 어깨에 핏빛 칼날이 내리꽂혔다.
일격에 외피가 깨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핏빛 칼날은 쭉 밀고 내려와 이보람의 어깨를 크게 그었다.
“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이보람이 자신의 상처 부위를 지혈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2차 피해가 상처를 크게 만들었고, 3차 피해가 너덜너덜하던 팔을 완전히 몸에서 잘라내 버렸다.
팔이 잘려 나가는 세 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이보람은 쇼크로 기절하고 말았다.
“이보람!”
크게 당황한 박성호가 겉옷을 벗어 이보람의 상처를 지혈했다.
“이 개자식이……!”
그는 잡아먹을 기세로 시현을 노려봤다.
그런 박성호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시현은 어이가 없어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해? 사람을 쳤으면 당연히 반격당할 각오도 했어야지.”
뻔뻔하기 그지없는 박성호의 팔도 떼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랬다가는 두 사람 모두 과다출혈로 죽고 말 것이다.
시현 입장에서는 한없이 약해 빠진 두 사람도 일단은 상위 20% 안에 드는 참가자들이다.
이런 놈들도 살려 두면 일단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분노는 잠시 접어 두는 수밖에 없었다.
“봐주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야.”
시현은 빠르게 장소에서 벗어났다.
뒤에서 박성호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는 했으나, 이미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고 전장의 소음이 워낙 커다란 탓에 잘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얼마 못가 또 한 무리의 참가자가 시현을 가로막았다.
그들 중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음.”
온라인에서나 사용할 법한 말투를 구사하고 다니는 여고생.
등대의 구원자, 유서인이다.
그 옆에는 만성 두통이라도 있는 건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남성, 권수용과 천리안을 사용하느라 눈을 감고 있는 임서림도 함께하고 있었다.
배후에 있는 건 무장 상태가 오히려 교단보다 더 뛰어난 등대의 전투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차분하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닌 거 같네요.”
“그래 보임. 잠깐 정도는 시간을 끌어 주겠음.”
그녀는 웃으며 길을 터 줬다.
시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등대마저 자신을 적대하면 어쩌나 싶었다.
인천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나름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원래 사람이란 욕망 앞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소현이 정훈이라는 엄청난 이익 앞에서 시현을 배신하는 것도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성남과 부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락망의 구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한소현과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등대의 구성원이 자신을 적대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피한 직후, 배후로부터 소란이 발생했다.
“뭐야? 윤시현 방금 이쪽으로 도망쳐 오지 않았어?”
“우리가 여기 지키고 있었는데, 이쪽으로는 안 왔음.”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여기 말고는 길이 없는데!”
“구원자니까 다른 루트를 사용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님?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임? 너, 어디 세력의 누구임? 얼마나 자신 있기에 우리를 상대로 그렇게 고압적으로 나오는 거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역시 규모만 놓고 보자면 단일세력 중 최고다웠다.
잔뜩 흥분해서 날뛰던 참가자들은 유서인의 싸늘한 눈빛 아래 꼬리 내린 개가 되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생각한 시현은 슬그머니 웃었다.
얼마 만에 웃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또 어딜 도망가려고? 꽁무니 빼고 도망 다니는 게 특기야?”
천소해 일당이 앞을 가로막았다.
교단뿐만이 아니었다.
23사단, 스카이라인 등 쟁쟁한 세력도 함께하고 있었다.
“등대의 머저리들이 어느 정도 네 편을 들어주리란 건 예상하고 있었지. 천리안이 죽었다고 우리의 정보력이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
시현은 입술을 씹었다.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레벨 서포터를 사용하는 천소해와 지현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시현이라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23사단과 스카이라인까지.
둘 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는 누구나가 알아주는 힘 있는 세력이다.
그들을 상대로 힘 가감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남에 모인 세력이 대충 5할 정도인가…… 나머지는 집결 중이고. 아직 모자라. 적어도 3할 정도는 더 모여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내가 죽겠어.’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시현이 가방 안에 손을 넣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천소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곳에 모인 전원이 그녀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꾸민 일은 아닌 거 같았다.
그 순간에도 굉음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거 뭔가 느낌이 안 좋은…….”
천소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측면의 건물을 부수고 쏟아진 폭풍이 천소해를 덮쳤다.
콰드드드득!
“으아아아악!”
그녀와 함께 휘말린 전투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이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벽에 부딪쳐 추락해 부상을 입는 상황이 속출했다.
“이거 뭐야? 일반적인 바람이 아니야. 폭풍이야!”
당황한 지현아가 시현을 노려봤다.
그러나 시현 역시 굉장히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즉, 이 폭풍을 사용한 것은 시현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지현아의 안색이 점점 파랗게 물들었다.
아무리 생각이 짧은 사람이라도 이 정도로 단서가 주어졌는데, 답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나연?”
“뭐야? 너도 나 알아?”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지현아의 예상대로 이나연이었다.
태양을 등지고 서서 그늘진 이나연의 얼굴에서 엿보이는 눈동자는 선명한 피처럼 붉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