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늦은 저녁.
노을이 지는 하늘 위로 강렬한 폭풍이 발생했다.
콰아아아!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시작된 폭풍은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정성국의 권능에 의해 날려진 자신의 복귀를 화려하게 알린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현은 쓰러진 참가자들을 보며 손을 털었다.
죽은 이는 없었으나, 당장 전장으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다.
“그어어어…….”
“괴, 괴물 자식…….”
그들이 시현을 괴물이라 표현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고작 일격이었다.
무심한 듯 내지른 권능 한 방에 세 명의 참가자는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다.
더군다나 목숨은 빼앗지 않으면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아슬아슬한 힘의 컨트롤까지.
어지간히 실력 차가 있지 않으면 선보이기 불가능한 기술이다.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웃으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 시현은 등을 돌려 테크노벨리로 향했다.
남겨진 구원자들은 의아해하며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왜 우리를 살려 두는 거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게 단순한 변덕인지 자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죽다 살아났다는 생각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그 윤시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고.”
참가자 중 한 명이 무전기를 들었다.
시현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참가자들이 소식을 돌리기도 했고, 시현이 일부러 그들을 제압하는 데 화려한 이펙트를 자랑하는 폭풍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던 참가자들이 대거 시현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쪽이다!”
“둘러싸! 단순히 참가자 하나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중대형 악마 레이드 한다고 생각해!”
“저놈을 잡기만 하면 3위 메달이다!”
욕망에 취한 참가자들은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애초에 정훈을 영입하기 위해 테크노벨리에 모여들었던 참가자들이 세 개의 세력으로 뭉친 것도 시현이 원인이었다.
“징그럽게 많네.”
그 수가 워낙 많아 폭풍으로 전부를 처리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애초에 위력 조절이 어려운 폭풍을 섣부르게 서용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시현은 처형의 권능을 사용했다.
소모가 적고 지속 가능한데다가 모방한 권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권능이기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지금 같은 상황에 딱 어울리는 권능이다.
촤악!
휘두른 검에 가장 선두에 있던 참가자가 뒤로 나뒹굴었다.
고작 일격에 외피가 너덜너덜해진 것을 확인한 참가자는 경악했다.
“미, 미친! 어떻게 되먹은 공격력이야?”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전장에서 이탈하려 했다.
외피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싸우다가 깨지기 직전에 전장에서 이탈, 다시 외피가 회복되면 참전.
이는 구원자들이 사용하는 아주 전형적인 전술이다.
남자는 이번에도 같은 전술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파지직. 와장창!
외피 위로 검은색의 기류가 흐르더니 외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어?”
순식간에 무방비상태가 된 남자가 당황해하던 것도 잠시.
그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상처를 헤집는 2차 피해는 직접적인 대미지를 줘야만 발동하는 거였는데, 추가 일격을 가하는 3차 피해는 외피를 부술 때도 발동하는구나.”
자신의 권능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시현은 흡족하게 웃었다.
“젠장…… 동시에 덮쳐!”
고작 일격에 참가자 하나가 전투불능이 되었음에도 남은 참가자들은 달아나거나 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사냥하는 데 손해가 아주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광휘!”
시현의 눈앞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불가피하게 눈을 감은 시현의 외피에 총알과 화살이 꽂혀들었다.
“지금이야!”
시현이 눈을 감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 판단한 참가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만약 시현이 천리안을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끄악!”
“크허어억! 내 외피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시현은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을 막아 내고 반격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가자들이 시현과 거리를 벌였다.
“으아아아악!”
자신의 발아래 쓰러진 참가자의 외피를 없애고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상처를 남겨 준 시현은 다름 목표를 찾았다.
“뒈져어어어!”
근육질의 제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망치를 든 참가자가 시현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찍었다.
오른손에 든 핏빛 칼날로 반격하려 했으나 측면에서 날아든 흰색의 천이 시현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어우! 무슨 힘이……!”
혼자서는 버텨 낼 수 없다고 판단한 건지 참가자 여럿이 달려들어 천을 붙잡았다.
그러는 순간에도 망치는 시현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빈손으로 검을 옮겨 잡지도 못하게 흰 천은 칼날까지 휘감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당황할 법도 하건만.
시현은 차분하게 왼손으로 두 번째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얼마 전, 이채연을 죽이고 회수에 성공한 검은 가시가 그 주인공이다.
기형적인 형태의 단검과 커다란 망치가 충돌했다.
검은 가시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부르르 떨리면서도 충격을 견뎌 냈다.
있는 힘껏 망치를 쳐낸 시현은 검은 가시로 남자의 팔을 몇 번이고 반복해 그었다.
처음 몇 번은 외피에 가로막혔으나, 세 번째 공격에서 외피가 까지고 네 번째 공격에서 피부가 갈라지며 상처가 생겼다.
상처를 만드는 데 성공한 시현은 남자에게서 흥미를 거뒀다.
“어딜 보는 거냐!”
남자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외피가 벗겨졌다고 계집애처럼 달아나는 다른 참가자와 나는 다르단 말이다! 상남자 중의 상남자인 내게 겨우 이 정도 상처쯤이야…….”
남자는 시현의 머리에 대고 다시 한번 망치를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푸확!
“끼아아아악!”
안에서부터 팔을 뚫고 솟구친 검은색의 가시.
그로 인해 동반되는 지독한 통증에 망치를 놓친 남자는 여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시현은 흰색 천을 붙잡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검은 가시를 투척했다.
“으허어억!”
검은 가시에 베인 참가자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똑똑히 지켜본 참가자들은 기겁하며 검은 가시를 회피하려 몸을 틀었다.
그 틈을 노려 시현은 오른팔을 크게 뒤로 잡아당겼다.
회피에 집중하느라 중심이 흐트러져 있던 참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 사이에 파고든 시현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절망했다.
그러나 시현은 전투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상처를 입히기만 할 뿐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뭐야? 나 왜 살아 있어?”
“설마 봐주는 건가? 강자의 여유 같은 거야? 재수 없네.”
안타깝게도 생존자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시현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등의 기특한 마음가짐은 없었다.
멀어지는 시현의 등을 향해 언젠가 오늘 일을 후회하게 해 줄 거라는 등의 저주를 퍼붓는 게 전부였다.
“전쟁이고 나발이고 저런 놈들은 처리해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려 둔 그림을 뭉개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참가자들은 시현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래도 속으로 참을 인을 몇 번이고 반복해 새기며 시현은 상대를 제압하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찾았다! 이쪽이야!”
심지어 계속해서 참가자들이 합류했다.
적당히 상대해 주며 천리안을 통해 주변을 확인한 시현은 혀를 찼다.
“징그럽게 많네.”
시현이 강력한 힘을 가진 구원자라는 것은 자타공인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에는 개인.
체력과 정신력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는 법이며 두 개의 손으로는 수십 개의 칼날을 막아낼 수 없다.
이런 식의 소모전이 반복되면, 결국 시현은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천소해 등의 강자들까지 소식을 전해 듣고는 시현이 있는 장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정도로 어그로를 끌었으면 이제 멍청하게 지들끼리 싸우는 일은 없겠지.”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시현은 태도를 바꿨다.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달려드는 참가자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렀다.
그러나 이제는 건물 사이사이로 피해 다니며 참가자와의 접촉을 줄이고 힘을 아꼈다.
“도망간다! 쫓아!”
“그러면 그렇지. 제아무리 랭커라 해도 엄연히 인간인데, 한계는 있겠지.”
“메달이 머지않았어!”
그걸 두고 시현이 힘에 부쳐 도망간다고 판단한 건지, 참가자들은 신이 나서 그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단순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시현은 더욱 도시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찾았다, 윤시현!”
어느 정도 참가자들을 따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 자루의 검을 치켜 든 채 자신을 향해 뛰어내리고 있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낯선 얼굴.
그러나 천리안을 통해 꾸준히 정보 수집을 한 시현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교단의 천소해인가. 그리고…….”
살짝 눈동자를 굴리면 옥상 위에서 하얀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저쪽은 지현아고.”
참가자 천소해와 원작에서 천 번째 별이라 불리던 구원자 지현아까지.
교단에서도 핵심 전력인 두 사람의 등장에 시현의 안에서 망설임이 생겼다.
‘여기서 발목이 잡히면 귀찮아지는데.’
두 사람은 강하다.
그들과 싸우다 다른 참가자들이 합류라도 하면 계획이 틀어지고 만다.
하지만 교단 소속의 두 사람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참가자를 죽일 생각은 전혀 없지만 교단만큼은 예외다.
‘조금 간만 볼까.’
시현은 달아나는 대신 자신에게 향하는 천소해의 검을 맞받아쳤다.
가까이서 본 천소해는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고 있었다.
“오늘만 기다렸다, 이 새끼야! 그날 네가 남지후를 살해하고 달아난 탓에 내가 얼마나 욕을 처먹었는지 알아?”
“나야 모르지.”
“당연히 모르시겠지. 그리고 오늘이 네가 남지후와 재회하는 날이라는 것도 몰랐을 거야.”
이를 드러내며 웃은 천소해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는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동이 쏘아졌다.
시현은 침착하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도 특히 바닥에 오감을 집중했다.
‘바닥이 갈라지거나 불꽃이 솟구칠 기미는 안 보이는데. 보아하니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지는 않고.’
이런 상황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잘 돌아갔다.
바르게 계산기를 두드려 본 시현은 이내 답을 확인하고는 미소 지었다.
“조금 전부터 공격 궤도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검에서 쏘아지는 파동이 땅에 닿아야 불길이 솟구치는 모양이네.”
“눈치는 좋네.”
땅을 박찬 천소해는 시현과 거리를 벌이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커다란 초승달 형태의 파동은 시현이 밟고 있는 대지로 향했다.
크게 검을 휘둘러 파동을 베어 버린 순간.
콰앙!
굉음과 함께 시현의 등 뒤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고열을 동반하는 백색의 불길이 사정없이 그를 휘감았다.
외피가 깨질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철제 구조물이 녹아내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위력이 담긴 일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현은 자신을 공격한 인물을 노려봤다.
지현아의 주변에 이글거리는 백색의 구체가 여럿 떠다니고 있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그래도 리더의 명령이니까…… 죄송해요.”
그러나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다.
입으로는 사과를 하면서도 그녀의 손은 시현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백색의 구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러나 각자의 궤적을 그리며 시현에게로 향했다.
마치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우아한 손동작이었으나, 그 결과는 우아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쾅! 콰앙!
연달아 구체가 폭발하며 일대를 불지옥으로 만들었다.
“젠장!”
몇 번이고 몸을 던져 공격을 회피하는 시현이었으나, 공격이 빗나간 순간 백색의 구체는 궤도를 꺾으며 시현을 노렸다.
이를 악 물고 전탄 회피에 성공했더니 이번에는 잠시 거리를 두고 있던 천소해가 달려든다.
“쉴 틈을 안 주네.”
천소해의 공격은 굉장히 영악했다.
두 개의 검 중 하나로는 시현을 직접 공격하고 다른 하나로는 그의 배후를 향해 파동을 쏘아내는 걸로 회피라는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천소해가 상당한 실전 경험치를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전이라면 시현도 자신이 있었다.
오른손의 검으로 천소해의 검을 쳐내고 왼손의 장갑으로 파동을 막아냈다.
그대로 손을 뻗어 천소해의 멱살을 잡은 시현은 있는 힘껏 그녀의 안면을 들이받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천소해의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이, 이런 무식한 새끼!”
그녀는 기겁했다.
만약 외피가 없었다면 그대로 코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어떻게든 시현으로부터 멀어지려 발버둥치는 천소해였으나 시현은 모처럼 잡은 기회를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얼굴을 노린 찌르기를 천소해는 역으로 쥔 검을 교차해 막아냈다.
그러나 시현은 미끄러지듯 검을 움직여 가드 사이로 검을 찔러 넣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콰앙!
다시 한번 백색의 불꽃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사용한 탄환을 다시 만들어 낸 지현아의 일격은 강력하고 매서웠다.
어쩔 수 없이 시현은 천소해를 놓아주고 화염 속에서 빠져나갔다.
“미친, 지현아! 나까지 통구이로 만들 셈이야?!”
“어차피 그 상황이었으면 일방적으로 당했을 거 같아서.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그걸 사용해야 할 거 같아.”
매섭게 시현을 노려보던 천소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확인한 시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 서포터!”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