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콰앙!
굉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며 불길이 치솟았다.
“흐어억!”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에 박성호는 기겁하며 거리를 벌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를 가득 채우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호흡조차도 벅찼다.
“괜찮아?”
반쯤 주저앉아 허우적거리는 박성호를 이보람이 부축했다.
저격수임에도 전방에서 싸우는 박성호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는 이보람의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짜. 별것도 아닌 것들이 상황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
자욱하게 솟구치는 연기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두 자루의 검을 양손에 장비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박성호는 이보람과 자신의 저격소총에 의지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입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천소해,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매력적이어도 그렇지, 그렇게 집착하는 여자는 좀 별론데.”
“나도 못생긴 남자는 별로야.”
“…….”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박성호는 잠시 쓰린 가슴을 움켜쥐었다.
천소해의 혀는 두 손에 쥔 칼보다도 날카로웠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 가지 그래? 거, 등대의 권수용 있잖아. 그 아저씨 잘생겼드만. 너랑 랭킹도 크게 차이 안 나니 재미있는 싸움이 될 거 같던데?”
“까불지 마. 이 전쟁이 사실상 너 때문에 벌어졌다는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망할 자식.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가 이 사단을 벌여놓았으니,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이를 갈던 천소해가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약 5미터 가량의 거리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천소해가 허리를 쭉 내밀고 팔을 최대한으로 뻗어도 검은 닿지 않는다.
그러나 하운드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천소해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파동이 쏘아졌다.
파동은 불과 수 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있던 장소를 관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쩌저적.
바닥이 걸라지더니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지근거리에서 솟구친 화염은 주변의 온도를 확 끌어올렸다.
아직 날이 쌀쌀해서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 덕분에 찜 요리가 될 것 같았다.
“죽겠네. 이러다 진짜 죽겠어! 리더는 뭐래?”
“네가 직접 물어봐!”
“너무하네, 진짜.”
박성호는 투덜거리며 무전기를 꺼냈다.
“리더!”
목소리를 송출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답신이 왔다.
[왜.]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러나 지독하게 짧은 한 마디에서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묻어났다.
“나 이러다 진짜 죽겠어. 지금 천소해가 미쳐 가지고 날 죽이려 한다고!”
울먹이는 음성이 무전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력으로 도망 다녀. 너 그것만큼은 잘하잖아. 거의 다 왔으니까.]
아무리 틱틱거리는 사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은 하운드 최대 전력 중 하나.
하운드의 리더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두 사람을 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랭킹 23위의 천소해라 해도 개인의 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하운드의 리더 역시 상위 랭커.
그와 힘을 합친다면, 적수가 없어 날뛰는 천소해를 제압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으아아악!”
그렇기 때문에 박성호는 배후에서 연거푸 터지는 화염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여기다! 여기에 천소해가 있어!”
“죽여!”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고 있는 복장을 보아하니, 등대 쪽과 손을 잡은 구원자들이 분명했다.
권능의 이펙트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기 마련이다.
현재 성남에 모인 구원자 중 천소해 이상으로 화려한 효과를 자랑하는 권능을 가진 구원자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천소해가 권능을 뿌려 댈 때마다 참가자들이 그녀를 사냥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23위라는 랭킹을 거저 거머쥔 것은 아니었다.
“주제도 모르고 누굴 죽인다는 거야?”
갈라진 바닥에서 솟구친 화염이 막 그녀를 덮치려던 두 남자를 휘감았다.
“으아아악!”
엄청난 고열에 그들은 비명을 질렀다.
외피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화염이 몸을 휘감는다는 데서 비롯한 공포가 그들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만든 것이다.
“미친! 겨우 한 방에 외피가 너덜너덜해졌어!”
“일단 빠지자. 사람 모아서 한꺼번에 공격해야 해.”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두 남자는 삽시간에 패배한 개가 되어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그들을 눈으로 쫓던 천소해는 다시 박성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축하해. 아무래도 천소해는 첫 번째 사냥감으로 널 점찍은 거 같네.”
“하하하, 이런 관심 기쁘지 않은데…….”
박성호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원군이 오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때까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이 서지 않았다.
* * *
[윤시현이 거기에 나타났다고? 그게 사실인가요?]
전쟁이 시작되기 전.
무전으로부터 답이 돌아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나 흥분 상태에 있었다.
“맞아요. 더군다나 호위는 민서라 한 명뿐이에요. 그만큼 자신이 있은 건지, 아니면 조금 강해졌다고 건방져진 건지 모르겠지만요.”
교단의 리더 이한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천소해는 이한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권왕 남지후에 이어 천리안 정유환까지.
교단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윤시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단순 무력이 아니라 유틸 면에서 여러 방면으로 활약할 수 있는 정유환의 죽음은 교단 입장에서 굉장히 뼈아픈 손해였다.
만약 교단의 승리를 위해 지금 당장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아니었다면.
손을 뗄 수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인해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한울은 교단의 전력을 끌어 모아 호텔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치고 있었는데, 윤시현의 행방을 알게 되었으니 어지간히도 애가 달았을 것이다.
[처리할 수 있겠어요?]
“에이, 당연히 나 혼자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간부 한 명이랑 어느 정도 병력을 보내 주면 가능할지도. 지금 하운드의 멍청이들 덕에 어느 정도 세력을 확보해 둔 상황이거든요. 이것들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는 큰 손해 없이 윤시현을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한 명 정도라면 잠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어디 한 명 골라봐요. 아, 혹시 몰라 말해 두는데 설아랑 천식이는 안 되는 거 알죠?]
“그럼요. 프로젝트에 중요한 두 사람이니까요. 제가 원하는 건 지현아예요.”
천 번째 별, 지현아.
권능을 사용하는 데 드는 정신력의 소모가 막대해 3레벨을 목전에 둔 지금도 전력으로 권능을 사용하면 정신을 잃고 픽 쓰러지는 구원자다.
하지만 정신력의 소모가 크다는 건 그만큼 권능의 위력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현아라면 그 윤시현에게도 대미지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알겠어. 전투원도 A급으로만 보내 주지.]
“어머, 고마워라.”
그녀는 웃었다.
랭킹 3위 윤시현이 거슬리는 건 천소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금은 테크노벨리에서 모습을 감춘 윤시현이지만, 그녀는 윤시현이 반드시 테크노벨리로 돌아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윤시현, 네가 돌아오는 순간이 마지막이 될 거야.’
윤시현을 처리하기만 하면 불안정한 교단에서의 입지도 단단하게 확보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메달을 확보함으로 장비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10위권 내로 진입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웃음이 멈출 줄을 몰랐다.
* * *
“상황은 어때?”
권수용의 질문에 임서림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
알면서도 일부러 저러는 그녀가 조금은 얄밉게 느껴졌다.
콰아아!
굉음과 함께 임서림의 배후에서 엄청난 기세를 담은 화살이 날아왔다.
동시에 다수의 총알이 권수용의 외피를 때렸다.
권수용의 다리를 묶어둠으로써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미비한 임서림에게 치명상을 남기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공격이다.
그러나 이는 임서림을 너무 무시한 처사였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이유가 귀여운 척을 하기 위함이 아니란 것을 권수용은 알고 있었다.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임서림의 귓불을 비껴가 콘크리트 벽에 깊숙이 박혔다.
천리안에 익숙해져 있는 임서림이기에 보일 수 있는 묘기였다.
“지금 우리 전쟁 중이지? 아직까지도 장난칠 여유가 있다는 건 조금 부럽네.”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늘 심각한 얼굴로 있으면 정신이 못 버텨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이나 좀 줘.”
아무리 외피가 있다지만 총알 세례를 무한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수용은 임서림의 팔을 잡아끌어 건물의 잔해 뒤로 몸을 숨겼다.
“음…… 솔직히 말해 상황이 좋지는 않네요. 우리가 예상한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고 있어요. 진짜 바글바글 기어오네요. 한 이삼 일 정도 있으면 난장판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아…… 역시 그래?”
권수용은 한탄과 함께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떠올린 최악의 가능성.
그건 각 세력에서 자신들의 에이스를 구하기 위해 성남으로 전력을 파견하는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심상치 않은 전쟁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상자의 수도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의 전력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만다.
무엇보다 등대의 희생도 커질 테고 말이다.
“우리 리더는 뭐래? 발을 빼도 된다고 하셔?”
“음…… 윤시현이 사라졌다고 하니까, 본인이 직접 와서 상황을 정리하겠다고 하던데요?”
“진짜?”
“진짜요. 김영운 때문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다행이네.”
“그 대신 어느 정도 병력을 추가로 파견해 주겠대요. 지휘관은 유서인…….”
“아, 차라리 오지 말라 그래.”
권수용은 절망하며 벽에 머리를 박았다.
가끔 보면 아군이라 칭하기 힘든 아군이 있다.
무능하거나, 유능하지만 다루기 힘든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거나.
유서인의 경우 후자에 속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남들보다 오래, 그리고 강렬하게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인은 등대의 구원자 중에서도 껄끄럽기로는 원탑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래도 유서인이 있으면 아군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어휴.”
“어쨌거나 지원군이 오려면 이삼 일 정도 걸린대요. 그때까지 비명횡사하지 않도록 힘내요.”
“마치 나만 힘내야 하는 것처럼 들리네.”
한숨을 내쉰 권수용은 점점 다가오는 적들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전란의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오늘도 전력을 다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시현은 기장 한성규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헬기에서 내렸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내는 소음 속에서도 용케 시현이 내뱉은 중얼거림을 주워들은 건지 한성규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리던 민서라가 걱정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어쩌겠어요. 한성규 씨를 무사히 호텔까지 안내하려면 저나 민서라 씨가 동행해야 하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같이 호텔로 갔다가 다시 성남으로 온다는 선택도 있어요. 성남이 그렇게까지 먼 장소가 아니니까요.”
“서울에서 천리안을 사용하면 성남의 상황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전 여기에 남아 있겠습니다.”
결국 시현의 고집을 꺾지 못한 민서라는 주름진 미간을 만지작대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뱉었다.
아주 황소고집이 따로 없다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헬기가 떠나고, 남겨진 시현은 천리안을 통해 전장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상황은 조금 전 확인했을 때보다 한참은 더 처참해져 있었다.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시현이 예상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끼리의 싸움이 덩치를 부풀려 그들이 속해 있는 세력끼리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마는, 그런 미래 말이다.
‘경기도나 서울 등 인근에 자리한 세력의 지원군은 벌써 성남에 도착했어.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세력들도 며칠 내로 도착하겠지.’
지금도 성남의 상황은 좋지 않다.
하루에도 많은 수의 구원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만약 각 세력의 추가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전장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수룡의 둥지를 해결한 정도로 맹세씩이나 되는 보상을 준 이유가 이거 때문인 거 같단 말이지.”
“이쪽이야! 방금 여기에서 헬기가 떴어!”
“젠장, 어디 세력에서 지원군이라도 보낸 건가? 헬기를 띄울 정도로 능력이 되는 세력이 있다고는 못 들어봤는데.”
혼자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지척에서 다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시현은 바로 핏빛 칼날을 뽑아 들고 교전을 준비했다.
이내 헬기가 착륙했던 장소에 몇몇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서 그런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흉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현을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뭐, 뭐야? 설마…… 저 남자는…….”
“누군데 그래? 아는 사람이야?”
상황을 모르는 참가자들이 당황해하는 남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에 벌벌 떨던 남자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했다.
“윤시현.”
“……뭐?”
“랭킹 3위, 윤시현이다!”
그 외침은 혼란을 향해 치닫던 전장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