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그저 지옥인 줄 알았던 수룡의 둥지.
알고 보니 엄청난 수준의 노다지였다.
수북하게 쌓여 있던 재가 바람에 모두 날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남짓.
그 사이에 시현은 총 열여섯 개에 해당하는 수룡의 비늘을 확보했다.
“이건 대체……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감도 안 잡히네요.”
어떻게든 태연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민서라였으나 소용없었다.
수룡의 비늘 몇 개를 양손에 쥐고 있는 그녀의 손과 그것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고,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이 날아갈 듯 기쁜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룡의 비늘은 분명 방어구 강화제로 쓰이는 아이템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 쪽 구원자들의 방어구가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거면 해결되겠네요.”
시현은 민서라의 의상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방어구다운 방어구를 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호텔 전력의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민서라조차 이렇다 할 방어구 없이 그녀 두꺼운 야상을 걸치고 다니는 게 전부.
일반적인 구원자나 생존자들이라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의복조차 수준급의 방어구로 만들어 주는 수룡의 비늘은 부르는 것이 값인 보물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아직 기쁜 일은 끝나지 않았다.
<둥지(수룡)의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정화의 묘목이 심어졌습니다.>
<일대가 정화됩니다. 이 땅에는 악마가 범접할 수 없으며 오염되지 않은 식물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 효과는 묘목이 파괴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두 사람은 엄연히 둥지를 공략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기 마련.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빛이 터졌다.
“가 볼까요?”
민서라는 마치 생일날을 맞아 선물 개봉을 앞둔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빛의 입자가 내려앉은 대지는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물이 빠지고 남은 질척질척한 진흙 바닥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움직이는 나무 같은 경우 불에 대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기 급급했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의 입자를 응시하는 생존자들의 눈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건 언제 봐도 예쁘네요.”
“그러게요.”
민서라의 말에 시현은 짧게 대꾸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시현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민서라는 피식 웃고 만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상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건 여전하시네.”
정화의 묘목이 피어 있는 장소에는 수룡 여왕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동그랗게 패인 대지에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 만든 커다란 둥지.
그 중심부에 묘목이 피어 있었다.
이 묘목이 부러지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한 이 일대는 악마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
“찾았다!”
잡동사니 탓에 보상이 담긴 목함을 찾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시현은 잡동사니 틈에 파묻혀 있던 목함을 꺼내 들고는 활짝 웃었다.
만약 목함을 돋보이게 하는 고풍스러운 장식이 아니었다면, 탐색에는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빨리 열어 봐요.”
잔뜩 흥분한 민소라가 시현의 등을 두드리며 보챘다.
3레벨 구원자가 된 민서라의 공격력에 여왕의 공격으로 잔뜩 소모된 시현의 외피가 당장이라도 깨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보챔을 견디지 못한 시현이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으아악! 내 눈!”
“꺄아아악!”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시현의 경우 허우적거리며 들고 있던 목함을 던져 버리기까지 했다.
목함의 뚜껑을 열자, 시력을 멀게 할 것만 같은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미친. 저게 뭐야?”
눈을 비빈 시현은 멀리 떨어진 곳에 옆으로 쓰러져 있는 목함을 노려봤다.
등장할 때의 화려한 단발성 이펙트가 아니었는지 목함에서는 여전히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혹시 선글라스 있어요?”
“농담이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앞으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 선글라스 하나 정도는 장만해 둬야겠네요.”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푹푹 쉰 시현은 목함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리 직시하기 힘든 수준의 강렬한 빛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목함을 저렇게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목함을 앞에 둔 시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앞을 더듬어 가며 목함에 접근했다.
“시현 씨, 뭔가 그…… 멋있는 모습은 아니네요.”
“…….”
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듬던 손끝에 목함이 만져졌다.
시현은 목함 안에 손을 넣었다.
검은 가시나 핏빛 칼날 등.
다양한 장비를 얻을 수 있던 리퍼의 둥지와 다르게 목함 안에서 만져지는 아이템은 단 하나뿐이었다.
“……고작 하나?”
그 고생을 하고도 얻은 보상이 고작 하나라니.
아쉬운 마음에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고 말았다.
“하나요?”
반면 민서라는 뛸 듯이 기뻐했다.
비록 눈을 감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째 기뻐 보이시네요.”
“그럼 기쁘죠!”
“……왜요?”
“뭍에 리퍼가 있으면 물에는 수룡이 있다 말해질 만큼 두 악마는 동급이잖아요. 그러니까 수룡의 둥지에서도 리퍼의 둥지에서 얻은 것만큼의 아이템이 나와야 정상이죠. 그렇다면 그 하나의 아이템이 리퍼의 둥지에서 얻은 아이템을 전부 합한 것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
그녀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이내 시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매끄러운 구체로, 크기는 시현의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그것은 꺼내 든 시현은 옷 속으로 갈무리했다.
그러자 눈꺼풀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던 강렬한 빛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시현은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으로 해당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푸른색의 문자를 통해 나타났다.
<영광을 위한 맹세.>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슬.
언제나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어 취급이 까다롭다.
“……어?”
시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나타난 것은 몇 개의 짧은 문장이 전부.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아이템의 이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문제였다.
“왜 그래요? 기대한 것보다 영 별로예요?”
시현의 반응에 민서라 역시 크게 실망했다.
오히려 시현 이상으로 기대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표정을 통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여실히 전해졌다.
“왜요? 대체 뭔데 그래요? 설마 그냥 빛을 뿜어내는 게 전부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그게…… 저도 굉장히 믿기 어려운데요…….”
“대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알겠어요. 진짜 빛을 뿜어내는 게 성능의 전부라 해도 저 이 이상으로 실망하지 않을 게요. 그러니까 말해 봐요.”
“네 번째 맹세.”
“네?”
“영광을 위한 맹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엥?”
* * *
인간들에게 낙인과 권능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내려 주는 존재.
언제부터인가 인류는 그들이 이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해 줄 신이라 불렀다.
그들은 신을 숭배했다.
그들을 위한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기도했다.
제발 이 땅에서 악마들을 몰아내 달라고, 보다 많은 구원자에게 보다 많은 힘을 하사해 달라고.
그러나 신들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단 네 명을 제외하고는.
아니, 정확하게는 그 네 명조차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밀려 내려왔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했을 것이다.
첫 번째 강림은 부산의 해운대에서 발생했다.
그날.
해수면 아래에서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이 깨어났다.
커다란 늑대를 닮았으나 온몸의 털이 촉수로 이루어진, 보고만 있어도 혐오감에 구토감이 솟구쳐 오르는 괴물.
악마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악마와는 다른 존재.
그 끔찍한 외형이 원인으로 ‘외신’이라 이름 지어진 괴물은 불과 하룻밤 사이에 부산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등대의 리더이자 예언자인 김영운을 중심으로 부산의 세력이 뭉쳐 대항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정훈이 해당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부산은 이미 함락되었고 부산의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아포칼립스를 겪으며 인구가 얼마 남지 않았건만.
피난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괴로움만이 가득했다.
그러던 도중, 한 걸음을 내딛을 힘조차 남지 않아 바닥에 쓰러진 여성이 문득 읊조렸다.
“우리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신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바로 지척에 있던 사람에게도 겨우 들렸을 정도로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것이 등장했다.
그것을 대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마치 고깃덩어리를 대충 모아서 뭉쳐 놓은 듯한 외형에 새하얀 깃털을 무성의하게 붙여놓은 듯한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을…… 나는 손가락이 두 개라서 보자기를 못 낸다고! 망할 자식들!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원을 그리듯 날고 있는 그것의 목소리는 지상에 있던 인류의 귀에 꽂아 넣듯 파고들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것에게 시선을 줬다.
인간의 시선에서 보면 한없이 기괴한 외형이었지만, 순백의 날개와 머리 위에 자리한 타오르는 원의 고리로 하여금 자연히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신.
혹은 천사.
“오오오! 신이 우리를 구원하시려 사자를 보내셨다!”
“신이시여…… 부디 부산에 나타난 거대한 악을 물리치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사람들은 경건하게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그것은 사람들의 기도에 콧김을 뿜으며 거세게 반응했다.
웃기지 마! 나 혼자 그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해? 태곳적부터 힘을 쌓아 온 그 무식한 놈을 다시 봉인하려면 적어도 우리가 열 이상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놈의 인과율 때문에…… 힘의 규격이 다른데, 왜 일대일 교환이냐고.
툴툴거리던 그것은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산의 생존자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서울이 있는 장소였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제 날개를 만지작거리던 그것은 이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인지 히죽 웃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종류의 미소였다.
그래, 생각해 보니까 굳이 내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나, 우리들 중 엄청 약하고, 최약체고, 죽는 거 무섭고. 그러니까…….
그것은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줬다.
얼굴로 추정되는 부위에 핏줄이 도드라졌을 무렵.
울퉁불퉁한 고깃덩이 사이로 무언가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자그마한 구슬은 눈으로 직시하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마치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구슬은 빠른 속도로 낙하했고, 그 위치에는 힘없이 누워있던 여성의 머리가 있었다.
여성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퍽!
머리가 으깨지고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혼비백산 달아나는 와중에도 여성의 머리 한가운데 파묻힌 구슬은 찬란하고 순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 거기에 내 힘의 일부가 담겨 있으니 알아서 해. 우리는 너의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바라고 있으니까.
자신으로 인해 한 명의 무고한 생존자가 머리가 터져 사망했음에도 그 존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다.
기왕이면 인간들 중 가장 강한 인간이 사용하는 게 좋겠지. 서울에 있는 정훈이라거나? 아무튼 힘내! 오랜만에 힘을 좀 썼더니 피곤하네. 난 이만 가 볼게!
그 존재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갈라진 하늘을 비집고 들어가 퇴장했다.
남겨진 인류는 멍하니 그 존재가 사라진 장소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이…… 아니었어.”
누군가가 말했다.
그 고깃덩이는 종말을 앞둔 인류를 구원할 신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위엄이나 성스러움의 파편조차 느껴지지 않으며 인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는, 그런 존재가 신이라면 너무 절망적이지 않은가.
“…….”
한 남자가 여성의 시체 옆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에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으나 사실 아포칼립스 2년차에 접어든 지금, 생존자들이 시체를 보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성의 머리를 헤집어 구슬을 꺼내 들었다.
“으윽…….”
표면에 묻은 피를 닦아 내자, 직시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의 빛이 발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황급히 옷으로 구슬을 감쌌다.
“분명 서울에 있는 정훈이라고 했지?”
각오를 다진 남자는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재차 피난길에 올랐다.
서울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여러 차례 악마에게 습격을 당했고, 그럴 때마다 사람이 줄어들었다.
구원자들이 생존자들을 지키려 고군분투했지만, 수가 너무 모자랐다.
그렇지 않아도 생존자에 비해 구원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마당에 부산에서의 전투는 구원자의 수를 크게 깎아먹었다.
무엇보다 문제되는 건 식량이었다.
급하게 인천에서 탈출하느라 식량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더 이상 구원자들은 생존자들에게 식량을 배분하지 않았다.
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행렬에서 이탈하는 생존자들이 다수 발생했다.
그러나 남자는 배를 곪으면서도 끝까지 행렬에 남았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가죽만 남아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라 있었다.
어떻게 그 행렬은 버텼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냈다.
그는 한 남자에게 쭉 품에 품고 있던 구슬을 건네고 쓰러졌다.
“……영광을 위한 맹세?”
당황한 듯한 남자, 정훈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남자는 영영 눈을 감았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