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웃기지 않아?”
“뭐가?”
정성국의 질문에 남자는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정성국이란 남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일 실실 웃고 다니며 속내를 숨기고 다녀서 그런지 무슨 행동을 하던 간에 당최 믿음이 가지를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모르겠고.
이번에도 그랬다.
각지의 구원자들이 몰려들어 테크노벨리를 포위한 채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까닭에 테크노벨리 소속의 생존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구원자들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의논을 거듭했다.
저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내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부터, 뭐가 되었건 테크노벨리의 것을 내줄 수는 없으니 싸워서 지켜 내자는 의견까지.
갖은 의견이 서로 충돌하며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는데, 정작 리더라는 작자가 실실 웃기만 할 뿐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남자는 답답함에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물정령사 이한솔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령을 만들어 주변 정찰에 힘을 쓰고 있었다.
매일 무리를 반복하며 하루 중 꼬박 반나절은 앓아누워 있으면서도 세력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를 깎아 먹었다.
일개 세력원인 그녀가 그토록 고생하고 있건만.
리더란 작자는 제가 벌인 일조차 해결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의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이 사달이 났잖아. 그깟 주인공이 뭐라고…….”
“주인공?”
“그런 게 있어. 나같이 특별한 사람들만 아는, 그런 특별한 정보 같은 거야.”
“항상 느끼는 건데, 너 진짜 안면 갈아 버리고 싶을 만큼 재수 없어.”
“으히히히.”
제법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도 정성국은 그저 웃었다.
“그래도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까지 만들어 줬잖아.”
“구경거리? 저 구원자 놈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테크노벨리 소속 생존자들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냐?”
“아니아니, 그 반대. 저놈들은 테크노벨리를 공격해 오지 않아. 아마 머지않아 그럴 만한 여력도 없게 될 걸? 저놈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동안 답답했는데, 어떤 멍청한 구원자 덕에 해결책이 생겼거든. 아, 말로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구경이나 하러 가자.”
“구경이라니 대체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성국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채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보아하니 물어본다 해서 알려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가자.”
애초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던가.
이제는 이런 식으로 막 다뤄지는 것도 익숙해졌다.
남자가 수락하자, 정성국은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 공간을 넘었다.
꽉 막힌 실내의 삭막한 풍경이 사라지고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그 아래로 펼쳐진 멸망한 도시의 풍경을 보고 나서야 남자는 자신이 이 인근에서 상당히 높은 빌딩의 옥상에 서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람이 꽤나 강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저기 좀 봐.”
정성국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지못해 정성국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남자는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테크노벨리를 둘러싼 채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던 구원자들.
그들이 어째서인지 서로 무리를 이룬 채 서로를 향해 지독한 경계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지금은 언성이 오가는 정도인 것 같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언제 싸움으로 이어져도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걱정하지 마. 전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사실 저것들이 하라는 싸움은 안 하고 서로 신경전만 벌이고 있을 때는 조금 쫄렸는데, 윤시현 덕에 다 해결됐어.”
“그러니까 제대로 설명을 하라고!”
“전쟁이 벌어질 거야.”
“전쟁?”
미간을 찌푸린 남자는 재차 구원자 무리에게 시선을 줬다.
확실히 상황을 보아하니 머지않아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고작해야 5∼60명끼리의 패싸움 아닌가.
그걸 두고 전쟁이라 표현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정성국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이 싸움에서 엄청난 수의 구원자가 죽어나갈 거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뭘 어떻게 돼. 그게 끝이지.”
“아니지. 귀하디귀한 고레벨 구원자를 잃은 세력에서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지독한 원한은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법이거든. 분명 이 싸움은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세력 대 세력의 싸움으로 번질 거야. 그 싸움에 참가하는 세력이 많아진다면 그게 전쟁 아니겠어?”
“…….”
“분명 많은 피가 흐를 거야.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
정성국은 입가를 말아 올리며 히죽 웃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어지간히도 미친놈이 분명했다.
어울리는 것조차 꺼려졌기에 남자는 슬금슬금 정성국으로부터 멀어졌다.
어쩌다가 자신이 이런 놈과 함께 하고 있는 건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엥?”
돌연 정성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늘 웃고 있는 정성국의 보기 드문 표정변화에 호기심이 생겼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또 악성 댓글이 달려서. 이것들을 지치지도 않나. 그래도 내 소중한 조회수를 책임져 주시는 몇 안 되는 호갱님들이기는 하지. 아이고, 감사하기도 해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영국 신사처럼 과장된 인사를 하는 정성국을 보며 남자는 질색했다.
‘저거 진짜 미친 모양이네.’
평소 미친놈이라 부르고 다니기는 했는데, 진짜로 미친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미친놈의 곁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전의 기억이 그를 붙잡았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아포칼립스 초기.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어쩌지도 못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를 보며 남자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때 정성국은 돌 하나를 들어 좀비를 쳐 죽이고 남자를 구했다.
자기도 무서워서 손발이 떨리고 눈물을 쏟아 내는 주제에 악마를 죽이고 자신을 구한 정성국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남자로 하여금 미련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언젠가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정성국.”
“왜?”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내가 아는 거라면 뭐든 알려 줄게.”
“뭐라고 소문을 퍼뜨렸기에 저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테크노벨리로 몰려든 거야?”
“……뭐야? 알고 있었어?”
모를 리가 없었다.
남자의 하루의 대부분을 정성국과 함께하고 있을뿐더러, 애초에 정성국은 자신이 하는 일은 남에게 발설하지 않지만 딱히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남자는 알고 있었다.
정성국이 얼마 전부터 권능으로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기묘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것을.
그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정성국은 웃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의 질문에 답을 해 줬다.
“별말 안 했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사실?”
“난 친절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이곳 테크노벨리에 너, 정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줬을 뿐이야.”
“엥? 진짜 그것뿐이야?”
남자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민했다.
“대체 내가 뭐라고…….”
* * *
방법이 있다는 말을 내뱉은 직후, 방유라는 종이 한 장을 펼치더니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현과 비교하면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솜씨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는 게 무엇인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섬과 그 섬을 둘러싸고 있는 강줄기를 그리고 있었다.
“이건 리더가 이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파악한 지형을 그린 거예요. 보시다시피 이 섬을 둘러싸고 있는 강줄기는 여기. 이 호수에서 시작되고 있어요.”
“이건 뭡니까?”
시현은 호수의 중앙부에 그려 놓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거라면 굳이 그려 넣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대답은 방유라가 아니라 김상균의 입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소입니다.”
“원자력발전소…….”
그제야 시현은 방유라가 섬 주변을 흐르는 맑고 깨끗한 강물을 두고 방사능 오염수라 한 것인지 깨달았다.
원자력발전소는 석탄이나 풍력, 수력발전소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반대로 단점도 존재하는 법.
원자력발전소는 기타 발전소에 비해 위험도가 상당히 높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빈틈없는 관리가 필요한 법인데,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그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애초에 아포칼립스 당시 동반된 지진을 원자력발전소가 버텨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즉, 예정된 사고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유출된 방사능은 자연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생물계의 돌연변이 발생률이라 할 수 있겠다.
“……아니, 잠깐.”
시현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하나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이곳 둥지에 자리한 수룡은 놀랍게도 전부가 돌연변이로 탄생했다.
돌연변이가 극히 드문 확률로 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상식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만약 방사능 물질이 자연계의 생물뿐 아니라 악마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영향을 받는 폭이 크다고 계산한다면…… 비상식적인 돌연변이 출현 확률을 설명하는 게 가능해.’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건지 방유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시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방사능을 어떻게 처리하죠? 관련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설사 방사능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방사능이 제거된다고 해서 이미 돌연변이로 태어난 놈들이 평범한 수룡으로 되돌아갈 리도 없으니까요.”
앞으로 태어나게 될 수룡은 평범한 청색 비늘의 수룡으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둥지에 자리한 스무 마리의 돌연변이 수룡의 비늘이 청색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희망이 꺾인 것인지 방유라는 크게 실망했다.
고개를 푹 숙인 방유라와 달리 김상균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물! 물을 빼 버리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요.”
김상균은 방유라가 그린 그림에서 호수와 섬까지 연결되는 강줄기의 중간을 선으로 끊어버렸다.
“여기를 막아 버리고 옆으로 길을 파서 강물을 흘려보내는 거예요. 마침 호수로부터 대략 5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강이 하나 더 있어요.”
방유라가 들고 있던 펜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받아 낸 김상균은 호수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강줄기 하나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그렇게 되면 수룡들의 둥지에 물이 빠지게 되고…… 물이 없으니 수룡들은 숨을 못 쉬어서 죽게 될 거고요.”
“보통의 수룡이라면 숨을 못 쉬겠지만, 돌연변이 수룡은 폐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앗, 그건 좀 아쉽네…… 하지만 물이 없으면 수룡의 속도는 느려지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섬에 있는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을 거예요.”
“음…….”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시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가 본 강물의 폭은 대략 30여 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뿐이라면 시간이야 제법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물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깊이다.
처음 강물에 빠졌을 때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깊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30미터 폭에 그 정도 깊이의 물길을 막을 방법이 시현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새로운 물길을 뚫을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물길을 막을 방법이 없군요.”
그와 동시에 김상균이 말했다.
“물길을 뚫을 방법만 있으면 좋을 텐데…… 물길을 막을 방법은 있거든요.”
“……?”
“……?”
두 남자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응시하며 눈을 깜빡였다.
* * *
시현은 강물 앞에 섰다.
지금은 잔잔해 보이지만, 저 수면 아래에는 붉은 비늘을 가진 무시무시한 수룡들 수십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따라서 강을 무사히 건너려면 강물에 접촉하는 시간과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후우…….”
시현은 손목과 발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진짜 하려고요?”
민서라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시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설사 실수로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진다 해도…… 한두 번 물리는 정도로 외피가 깨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누구와는 다르게 제 거는 깨지거든요?”
민서라는 새침하게 시현을 노려봤다.
그녀를 뒤로한 시현은 자세를 낮췄다.
이 장소에는 민서라 뿐 아니라 방유라와 김상균도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먼저 비행 권능을 사용해 강을 건넌 김상균은 영 의심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시현은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도움닫기를 한 시현은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발아래로 푸른 강물이 보인다.
강물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아무리 4레벨 구원자인 시현이라 해도 폭이 30m는 되는 강물을 한 번에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일방통행의 권능을 착지 지점에 아주 작고 세밀하게 만들어 냈다.
탁.
그의 발끝이 반투명한 막에 닿았다.
특정 방향에서의 통행을 거절하는 권능이 시현의 발을 밀어냈다.
다시 한번 허공으로 뛰어오른 시현이었으나 이번에도 강 건너편에는 닿지 못했다.
“일방통행.”
또다시 권능을 사용.
무릎을 굽혔다 펴며 뛰어오른 시현은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고작 세 번의 도약으로 폭이 30미터나 되는 강을 건넌 것이다.
“와…… 미친. 진짜 이게 되네?”
어지간히도 믿기 어려웠는지 김상균이 자신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시현은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민서라와 방유라의 얼굴이 보인다.
“자, 이제 민서라 씨 차례입니다. 일방통행의 규모를 최대한 작게 축소했기 때문에 아직 두 번은 더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타이밍은 제게 맡겨 주세요.”
“…….”
민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 뿐이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