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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19화 (119/225)

[119화]

박성호.

그는 경기도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세력, 하운드에 소속된 구원자이자 참가자다.

또한 하운드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이며 Re write의 랭킹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박성호가 가진 자부심은 상당했다.

전투가 있으면 소총 한 자루를 든 채 늘 전방에서 싸웠고, 후퇴라는 단어를 치욕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 박성호의 입에서 후퇴도 아니고 도망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어지간히도 긴박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상당히 놀란 이보람은 창틀로 상체를 내밀고 창밖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콰아아아!

엄청난 규모의 폭풍이 원을 그리며 두 사람이 있는 건물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아아!”

이보람은 비명을 질렀다.

박성호의 경우 이미 장비를 챙긴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 역시 발에서 불이 나도록 달렸으나, 채 몇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폭풍이 건물의 상층부를 덮쳤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건 고사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벅찼다.

시시각각 머리 위에서 돌가루가 떨어졌으며 가끔씩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갈라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내려앉았다.

결국 이보람의 눈에서 눈물이 터지고 나서야 흔들림이 멎었다.

건물의 붕괴로 인해 막혀 있던 천장이 뻥 뚫려 있었으며, 층수도 두 개는 줄어든 것 같았다.

“미친,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윤시현의 권능은 자기강화계열 아니었어?”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밑에는 너무 급하게 달리다 흔들림을 버티지 못하고 성대하게 자빠져 있는 박성호가 있었다.

그는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르하…… 윤시현이 아르하였어!”

“뭔 소리야?”

“이 멍청한 고릴라 년아! 윤시현, 그 자식이 블랙마켓에서 아르하의 권능을 사간 범인이라고! 1㎞ 밖에서 행해진 공격이 이 정도 위력을 가진 바람계열 권능이면, 이나연의 권능인 폭풍밖에 더 있냐고!”

“그러면 아르하의 권능으로 천살성의 폭풍을 모방한 거야? 듣기로는 인천에서 일방통행까지 사용했다던데……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고? 공방일체가 완벽한 괴물이잖아…… 흐윽.”

까마득한 벽을 느낀 이보람이 훌쩍였다.

“저 인간도 보나마나 정훈을 노리고 왔을 텐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정훈이라면 저 인간을 택했다.”

“지금이라도 하운드를 탈퇴하고 제발 호텔에 받아 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야.”

가볍게 말을 주고받고 있으나, 두 사람이 느낀 경악과 공포는 진짜였다.

더 이상 이 건물에 자리를 잡고 있어 봐야 좋은 점이 하나도 없기에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을 나서는 박성호의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현재 성남의 근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구원자들이 정훈이 소속되어 있다고 알려진 테크노벨리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원자들은 서로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며,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훈을 자신의 세력으로 영입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마 테크노벨리는 머지않아 여러 개의 조각으로 잔인하게 찢겨져 흩어질 것이다.

당장 사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며, 지금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 말할 수 있겠다.

“지금의 고요함을 깰 폭풍은 당연히 정훈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윤시현, 그 인간도 폭풍이었어. 어쩌면 정훈보다 더 강력할지도 모르는…….”

박성호는 이를 갈았다.

나름 강자 축에 속하는 자신이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함을 지닌 존재의 등장에 자존심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하지만 동시에 욕심이 났다.

“야,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랭커를 만나는 건 처음인가?”

“처음이지. 윤시현이 분명 랭킹 3위였나? 와…… 난 이제 겨우 73위인데. 까마득하네.”

“랭킹 3위…… 즉, 윤시현을 처치하기만 하면 메달을 얻을 수 있고, 상점에서 최고 등급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3위 메달이면 어지간한 물건은 전부 구매할 수 있어.”

“……뭐?”

“그뿐만이 아니야. 그 윤시현을 잡은 참가자로 알려지면서 조회수가 폭등할 가능성도 있어.”

“아니, 그렇기는 한데…… 저걸 어떻게 잡으려고? 꿈 깨세요.”

허황된 꿈을 꾸는 박성호에게 이보람이 일침을 가했다.

고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이보람은 겁이 많은 여자였다.

하지만 겁이 많다는 게 꼭 부정적인 결과만 낳지는 않는다.

그녀는 겁이 많기에 모험이나 도박에 자신의 명운을 걸지 않았고, 그렇기에 온갖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3위 메달과 엄청난 조회수라는 달콤한 미끼를 함부로 물었을 때 닥쳐올 파국을 염려했다.

하지만 이미 명예와 탐욕에 눈이 돌아가 있는 박성호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우리 둘이라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조금 전의 폭풍, 다른 세력의 참가자들도 눈이 있다면 목격했겠지?”

“……아마 그렇겠지?”

“그들도 머리란 게 달려 있다면 생각했을 거야. 윤시현, 저 인간은 굉장히 위험한 경쟁자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테크노벨리에 모인 참가자들이 싸우지 않고 경계만 하고 있는 이유는 서로가 가진 힘이 비슷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들개들의 축제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목 빠지게 기다리던 들개들은 뭐가 되겠냐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횡설수설하지 말고 요약해서 말해 봐.”

“요약? 어려운 주문도 아니네.”

피식 웃은 박성호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올려다본 하늘은 박성호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들개들을 모아서 호랑이를 쳐낸 후 마저 축제를 즐기자, 이거야.”

* * *

박성호의 예상대로 다른 세력들도 시현이 쏜 폭풍이 빌딩을 덮치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당연하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카이라인의 경우.

“방금 그거 뭐야? 저쪽이면 하운드의 미친개들이 자리하고 있던 빌딩 아니야?”

“듣기로는 그놈들이 어떤 구원자를 잘못 건드려서 발생한 사고라고 하던데요.”

“에라이, 정신 나간 놈아. 너는 고작 구원자가 그 정도 수준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 천살성 이나연이라도 강림했대?”

“진짠데. 히잉…….”

23사단의 경우.

“와, 이씨…… 소대장님, 저거 어떻게 합니까? 암만 봐도 저희가 어떻게 비벼 볼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생각 중이다. 이 소대장만 믿고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 다리가 떨리고 계신 거 같습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거 같습니다.”

“시끄러!”

등대의 경우.

“저거 이나연의 폭풍 맞지? 그렇다는 건 적어도 윤시현이나 이나연, 둘 중 하나가 왔다는 소리인데…….”

“방금 리더한테 연락해 봤는데.”

“뭐래요?”

“괜히 까불다 맞아 죽지 말고 적당히 눈치 보고 알아서 하라던데. 저거 완전 괴물이라고. 외신을 봉인하고 엄청난 보상을 받아먹었을 테니 아주 지랄 같아졌을 거라고.”

“좋아. 집으로 돌아가죠.”

“……진짜 돌아갈까?”

“그러고 싶기는 한데. 조금만 더 기다리며 기회를 노려 보죠.”

교단의 경우.

“야, 천소해. 우리 큰일 난 거 같은데, 어쩔래? 리더한테 보고하고 퇴각할까?”

“안 돼. 남지후 건으로 내 입지가 말도 안 되게 좁아졌는데, 여기서 정훈까지 포기하면 난 그대로 끝이야. 어떻게든 수를 마련해야 해.”

“그래, 열심히 해. 난 간다.”

“잠까아안! 날 버리지 마!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건 뭘 하건,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테니까 제발!”

“……어휴.”

그리고 댓글의 경우.

― 윤시현, 이거 아주 정신 놨네. 이런 식으로 경쟁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거야?

― 그거 아닐까요? 너희 같은 송사리가 모여 봤자니 튈 놈은 튀고, 덤빌 놈은 덤벼라.

― 시원시원하니 좋네. 하긴, 4레벨에 권능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놈이 눈에 뵈는 게 있겠어? 다 쓸어버려라!

― 얘가 원래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하는 애였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다.

시현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건 민서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성남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신중하게 접근해도 모자랄 판국에 시각적으로도 굉장히 눈에 띄는 일격을 냅다 질러 버렸으니, 민서라의 걱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되겠죠.”

오토바이의 원한을 갚기 위해 성대하게 일을 저지른 시현은 상쾌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보다…….”

“이렇게 성대하게 일을 저질러 놓고 그런 것보다라니요.”

“조금 전, 테크노벨리에서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새 천리안을 사용하신 거예요?”

“네. 사실 별 기대도 안 하기는 했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걸 목격했거든요.”

시현은 조금 전 천리안으로 본 광경을 떠올리며 웃었다.

어마어마한 폭풍이 빌딩을 공격함으로 발생한 커다란 소음에 테크노벨리는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생존자들이 모여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는 커다란 건물의 정문이 열리더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것이 등장한 것이다.

허리춤에서 핏빛 칼날을 뽑아 든 시현은 칼끝을 이용해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천리안으로 무엇을 목격했는지 민서라에게 보다 정확하게 전해 주기 위해 모처럼 그림 실력을 뽐낸 것이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민서라의 표정은 그림이 막바지에 이르자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현이 그린 것은 앙증맞은 얼굴을 한 고래였다.

“이, 이거 정령! 맞죠? 심지어 이 형태는 물정령인 거 같은데…….”

“아마 맞을 겁니다. 온몸이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요. 정령은 테크노벨리 부지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작은 물방울이 되어 흩어지더군요. 마치 테크노벨리에 이상이 있나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는 건 물정령사 이한솔이 테크노벨리에 있다는 걸까요? 그것 참…….”

“이상하죠?”

“이상하네요.”

물정령사 이한솔.

그녀의 권능은 별명처럼 물정령을 다루는 것이다.

정령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범용성을 꼽을 수 있겠다.

물정령의 경우 정찰, 수자원 공급, 회복, 온도 조절, 국지적 호우 등 다양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해당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권능과 비교하자면 명백한 하위호환에 불과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두루 쓰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강점이다.

무엇보다 파괴되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위험한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인력의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한솔이 테크노벨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이다.

“분명 아포칼립스가 시작될 때, 이한솔은 일 때문에 LA에 있었죠?”

“네. 당연하지만 배도, 비행기도 끊겼기에 한국으로 돌아올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어쩌면 이한솔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물정령의 권능을 얻은 건 아닐까요?”

민서라의 추측에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적은 정도가 아니라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물정령은 나연이의 폭풍이나 유설의 유령군대와 마찬가지로 단일권능입니다. 심지어 원 사용자가 죽는다고 계승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만약 물정령사 이한솔이 죽는다면, 이 세상에서 물정령의 권능은 영원히 소실된다.

따라서 이 장소에 물정령이 있다는 것은 LA에 있어야 할 이한솔이 테크노벨리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 볼 수 있다.

“아마 정답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포탈을 여는데 성공했거나…….”

“에이, 설마요.”

민서라는 웃는 낯으로 손사래를 치며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했다.

“대륙을 연결하는 포탈이라면 초대형을 처치해야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을 매개체로 고레벨의 제작자가, 많은 양의 재화를 들여야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제아무리 참가자라도 아직 0년차에 포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상당히 자세하게 알고 계시네요.”

“……그냥. 관심이 가는 분야여서요.”

말을 흐린 민서라는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했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캐물어 봐야 사이만 틀어질 뿐이라고 판단한 시현은 하다 만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도 포탈이 열렸을 가능성은 0.1% 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어쩌면 저희가 알지 못하는 공간이동 계열의 권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거죠. 조금 허황되기는 하지만, 포탈보다야 그쪽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본인이 말해 놓고서도 시현은 민망함을 느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권능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강화, 방어, 보조, 제작, 정찰계열부터 시작해 원소, 특화, 심지어는 시간 및 공간의 조작까지.

권능으로 할 수 있는 범위는 굉장히 방대했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엄연히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특히 권능의 속성이 강력할수록 한계는 명확해지고 패널티는 커진다.

이나연이 가진 폭풍의 경우 타 권능과 비교 불가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반대로 단순히 빛을 터뜨릴 뿐인 광휘는 정신력의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 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정화 능력의 경우 능력도 뛰어나고 소모도 적지만, 짧게나마 상대방의 정신오염 및 감염을 자신의 몸에 이식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으며, 시간조작의 경우 범위와 시간에 따른 패널티가 크다.

그중에는 공간계열의 권능도 포함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공간계열 권능 전이의 경우,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거나 정확한 좌표를 알고 있는 장소로 자유로운 공간이동이 가능하다.

단, 이동거리에 비례해 정신력의 소모가 극대화되며 시현과 같은 4레벨 구원자라 해도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이동이 한계다.

즉,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한국에서 LA까지, 대륙을 건너는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현실을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법이다.

“세상에…… 어떻게 아셨어요?”

배후에서 들려온 제3자의 음성에, 시현은 반사적으로 핏빛 칼날을 휘둘렀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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