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12화 (112/225)

[112화]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될 테니…… 사과는 안 할 겁니다. 오히려 저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테니까요.”

시현은 온 힘을 다해 한소현의 안면을 쥐어박았다.

“으악!”

한소현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코에서는 선명한 붉은색의 폭포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2레벨 구원자다.

그러나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기에 외피는 발동되지 않았다.

“여긴…… 이런 망할!”

겨우 정신을 차린 한소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코를 누르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씩씩거리면서도 시현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고마워.”

예상한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시현에게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그것의 질문에 답하고야 말았을 테니까.

“그나저나 기분 더럽네.”

작게 중얼거리는 한소현의 눈시울은 붉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죠.”

두 사람은 다시 어두운 통로를 걸었다.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시현은 혹시라도 대화를 나누는 도중 실수로 그 목소리에 대답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렇게 무겁고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기를 10여 분.

언제까지고 끝날 것 같지 않던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45도 경사로 아래를 향해 길이 뻗은 넓은 공간.

손전등만으로는 전부를 밝히기에 역부족이었다.

“시현아. 저기에…….”

시현의 어깨를 두드린 한소현이 공간의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몇 명인가 생존자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뮤턴트의 표식을 달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텅 빈 눈동자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되뇌고 있었다.

자연히 시현의 시선은 생존자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에 시현이 그토록 경계하던 것이 있었다.

“우욱…….”

한소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무기를 꺼냈다.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거대한 아이의 머리였다.

그 크기가 족히 30∼4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아래로 뻗은 어둠에는 문어 다리를 닮은 촉수들이 뒤엉켜 있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 나왔다! 벌써 놈들 중 하나가 나와 버렸어!

― 아니야. 침착해. 아직 놈의 봉인은 건재해. 고작 1할 정도 흠집이 났을 뿐이야.

― 윤시현이라면 가능하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지만, 이놈은 그게 많으니까.

댓글 창이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었다.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조회수도 실시간으로 폭등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도 눈앞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눈앞의 존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규명된 바가 없었다.

그저 처음 이 존재를 목격한 생존자가 끔찍한 외형을 토대로 크툴루 신화를 떠올린 까닭에 외신, 혹은 옛것 따위로 불리고 있었다.

혹자는 악마가 이들로부터 기원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인간들을 축복하고 권능을 하사하는 신 이상의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구원자라 해도 결국에는 신에게 힘을 빌려 쓰는 존재.

힘의 원 주인보다 우월한 힘을 구사하는 존재를 상대로는 승리를 점하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상대가 가진 힘의 지극히 일부분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 할지라도.

‘깨진 봉인이 1% 미만이었으면, 지금 내 힘으로도 때려잡아서 밀어 넣을 수 있어. 기사서약을 모방하고 세연이한테 버프까지 받으면 아슬아슬하게 2%까지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10%는 불가능해.’

원래라면 눈앞의 옛것은 한참 후에나 등장했을 놈이다.

시기로 본다면 약 1년 후.

그때였다면 놈을 다시 봉인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능력 있는 구원자들을 모아 무력을 사용해도 되고.

그러나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운은 말했다.

윤시현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다른 사람의 말이었으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테지만, 김영운이 누구인가.

자그마치 예언자다.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엿본 예언은 100% 맞아떨어진다.

예언자 김영운은 어떤 미래를 봤기에 자신이 눈앞의 존재를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 것일까.

그 예언을 들은 당일부터 시현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참가자로서 누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은 자부한다.

하지만 그가 앞서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계에 한해서지, 고작 그 정도로는 눈앞의 외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예언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들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고민하고, 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시현은 결국 답을 유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것의 정체는 한 번 물에 젖었다 마르며 잉크가 빠지고 쭈글쭈글해진 종이.

복권이었다.

시현은 블랙마켓을 호출했다.

<참가자 윤시현의 소지 금액 : 2,653,144,100.>

복권의 당첨금은 60억.

그러나 아르하의 낙인으로 30억을 소모하고 네크로맨서 때문에 3억 5,000을 소진.

이제 남은 금액은 26억이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남은 금액만큼은 현실로 가져가고 싶었다.

지금 가진 돈이면 현실에서 시현이 겪고 있는 모든 암울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 전 외신이 보여 줬던 끔찍한 기억들.

자신의 인생을 낭떠러지로 떠밀던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돈을 아끼겠다고 목숨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옛것은 옛것인 채로’ 구매 완료.>

<참가자 윤시현의 소지 금액 : 2,256,149,050.>

차감된 금액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리 의미 없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쿵.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던 것일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십자가 모양을 한 검이 꽂혀 있었다.

매끄럽게 뻗은 검신은 빛을 반사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으며 금빛으로 새겨진 기이한 문자들이 검신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예장용에 가까운 검이었다.

“이게 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설마 블랙마켓?”

한소현은 크게 당황했다.

“아르하의 낙인을 구매하고서도 아직 돈이 남아 있다고? 대체 잔액이 얼마나 있기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엄청 중요한 건데?!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너무 놀라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

자신의 뺨을 툭툭 때려 이성을 되찾은 한소현은 웃었다.

그리고 시현이 가장 듣고 싶던 말을 해 줬다.

“옛것은 옛것인 채로. 그거라면 충분하지. 역시 인천까지 와서 너를 살린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어.”

사실 한소현의 확언이 없었다 해도 시현은 자신의 선택을 믿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만사에 무심한 듯 미동조차 없던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고고고고!

땅이 울리고 지면에 가득하던 촉수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불경하다. 심히 불경한 물건이 주변에 있구나. 이런 식으로 인과율을 무너뜨리는가.

하나둘 솟아오른 촉수들이 위협적으로 움직여 왔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던 생존자들의 기도 소리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뚝 끊겼다.

그들은 섬뜩한 눈으로 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시현의 앞에 있는 검을 말이다.

없애라. 저것은 너희의 욕망에 불필요한 것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 생존자들은 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현은 검을 손에 들었다.

“이거 은으로 만들어진 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검의 주재료는 은으로 추정됐다.

은은 무른 금속이라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몇 번 휘두르다 보면 날이 나갈 것이고, 단단한 것과 충돌하면 검신이 부러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단 한 번,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해야 한다.

은검을 왼손에 잡은 시현은 오른손으로 핏빛 칼날을 잡았다.

생전 처음 사용하는 이도류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음……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혹시 잊어버렸을까 봐 말해 두는데, 저들 중에 정화 능력자가 있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퍼억!

말과 달리 시현은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 검을 내리쳤다.

검에 적중당한 남자는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칼등으로 쳤습니다.”

“머리가 깨진 거 같은데?”

“아마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손대중을 해 주느라 실수를 해서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들이 걱정된다면, 한소현 씨가 힘을 쓰셔야 할 겁니다.”

“알았어. 그러면 저들은 나에게 맡겨.”

한소현은 무기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생존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생존자가 한소현의 손에 의해 상처 없이 제압되는 것까지 확인한 시현은 그것에게 시선을 돌렸다.

스멀스멀 기어 오는 촉수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시현은 땅을 박찼다.

그런 시현을 향해 촉수 하나가 쏘아졌다.

길이는 끝을 알 수 없으며 굵기는 사람의 몸통만 하다.

콰앙!

“미친!”

심지어 촉수에 담긴 힘은 경악스러웠다.

두 손을 쓸 수 없기에 검에 가할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다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시현이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린 건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일격이다.

그것도 검을 비스듬하게 세워 힘을 흘렸다.

그런데도 검을 놓치고 추하게 바닥을 뒹굴 뻔했다.

아직까지도 검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형.”

<주변에 깔린 강한 지배력을 밀어내기에 구원자의 레벨이 낮습니다.>

<권능의 발동이 제한됩니다.>

혹시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작 3레벨 구원자의 능력으로는 저 머리통만 남은 촉수 괴물의 지배력을 뚫고 권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고작 10% 남짓한 힘으로도 이 정도냐…… 저게 온전히 깨어나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안 되네.”

원작에서도 그랬다.

평범한 구원자는 옛것의 강력한 지배력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구원자로서 누리던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한 생존자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그들은 옛것들의 정신지배 앞에 너무도 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주인공인 정훈만큼은 달랐다.

그는 외신들의 지배력 아래에서도 권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가 소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주인공이기에 손에 넣을 수 있던 아르하의 권능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준비성이 철저해야 해.”

시현은 권능을 발현시켰다.

주변에서 짙은 어둠이 몰려오며 시현의 몸을 휘감았다.

사망한 이채연의 눈을 감겨 주며 모방한 단죄의 권능이다.

단죄의 권능이라 하면, 어둠 속에서 사용자의 몸을 숨겨 줄 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준다.

권능을 발현한 시현은 몸을 채우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르하의 권능은 여타 권능과 다르다.

특별하고 유일하다.

모방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여러 개의 권능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점만 해도 알 수 있다.

압도적인 권위.

그것이 있기에 아르하의 권능은 외신들의 앞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촉수가 휘둘러졌다.

콰앙!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검을 떨어뜨릴 것 같다거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여유가 생겼다.

시현은 날아드는 촉수들을 막아 내며 앞을 향해 내달렸다.

그것에게 가까워질수록 날아드는 촉수의 양이 많아졌다.

가끔씩 막지 못한 촉수가 외피를 뭉텅이로 덜어 가는 게 느껴졌다.

‘스쳤는데도 이 정도라니. 정통으로 맞으면 한 방에 외피가 날아가겠어.’

남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시현은 속도를 줄이는 대신, 안전을 중시하며 한 걸음씩 착실하게 나아갔다.

그리고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동시에 날아오는 세 개의 촉수를 쳐낸 순간, 분명히 보였다.

아까보다 한참은 가까워져 있는 놈의 머리를.

…….

쭉 감겨 있던 아기의 머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기이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눈동자였다.

하나의 눈동자 안에 새 개의 눈동자가 있어, 그것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여덟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시현에게 향했다.

고고고고.

또다시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거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이런 느낌은 꼭 맞아 떨어지던데…….”

외신과의 전투는 원작에도 그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상 토벌하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니 그럴 수밖에.

원작에서도 인류가 외신들을 대처하는 방법은 쥐새끼처럼 몰래 살금살금 움직여 목에 방울을 달거나 조금 형편이 된다 싶으면 발목에 족쇄를 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외신들이 어떤 식으로 전투를 행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원작의 주인공 정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작에는 뮤턴트의 김해철처럼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 세상을 종말로 잡아끄는, 체계적이고 악의적인 빌런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검은 수해의 외신을 묶고 있는 봉인은 건재했고, 정훈은 이렇다 할 전투 없이 봉인을 보다 견고하게 하는 것으로 눈앞의 존재를 잠재웠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이 미지.

그러다 보니 간만에 긴장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