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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09화 (109/225)

[109화]

파지직!

그녀를 보호해 주던 외피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파괴되었고, 검은 그대로 이나연을 관통했다.

푸확!

뜨거운 피가 이나연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시현의 얼굴에 튀었다.

“…….”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는지라 사고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머리가 멍했다.

이나연이 놓친 손전등이 바닥에 떨어지며 그녀를 찌른 인물을 비추었다.

검게 물든 피부에 붉은 눈,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존재.

하수인이었다.

[으하하하하!]

하수인은 폭소를 터뜨렸다.

“아아아아악!”

동시에 내지른 이나연의 비명 소리가 시현의 의식을 현실로 잡아챘다.

“빌어먹을!”

어째서 하수인이 이곳에 있는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검을 뽑은 시현은 하수인의 머리를 내려쳤고, 하수인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으로 갈라져 목숨을 잃었다.

“한소현 씨!”

허물어지는 이나연을 품에 안은 시현은 다급하게 한소현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다행히도 시현의 외침이 있기 전에 한소현은 행동하고 있었다.

“치유.”

회복의 권능이 이나연의 상처를 감쌌다.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거칠던 이나연의 호흡이 점차 가라앉았다.

한껏 찡그러졌던 이나연의 표정이 조금씩 펴지는 것을 확인한 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소하, 주변 경계를 부탁할게.”

“알았어.”

게으를 뿐이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강소하는 두말하지 않고 시현의 지시를 따랐다.

시현이 이나연의 식은땀을 닦아 주는 동안, 한소현은 하수인이 떨어뜨린 무기를 가지고 왔다.

“이거 저주받은 장비야?”

“그렇겠죠. 그게 아니라면 고작 1단계 하수인이 나연이의 외피를 뚫지는 못했을 테니.”

“너도 알다시피 저주받은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건 인간뿐이야. 어쩌면 뮤턴트의 전투원을 사냥하고 장비를 노획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낮은 단계의 하수인은 인간 시절에 비해 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간단한 도구조차 사용하지 못해서 바로 옆에 칼이나 총이 있다 해도 그들은 손과 입으로 공격을 시도할 뿐이다.

그런 놈들이 도구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누군가가 이놈을 교육시켰군요.”

시현은 이를 갈았다.

하수인이라 해도 과거에는 인간이었던 존재.

악마에게 감염되어 본의 아니게 인간을 사냥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가엾은 자들이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마주치면 깔끔하게 목을 베어 주는 게 그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 하수인들을 가지고 이런 장난질을 하다니.

불길과도 같은 분노로 인해 온몸이 뜨거워졌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아무래도 뮤턴트의 짓이겠지?”

“그렇겠죠. 현재 수해 안에 생존해 있는 놈들은 전부 뮤턴트 소속의 생존자들이니까요. 잔당까지는 손대지 않으려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잠시라도 뮤턴트 아래에 소속해 있던 생존자라면 남김없이…….”

“으아아악!”

돌연 들려온 강소하의 비명이 시현의 말을 끊었다.

또다시 하수인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철저하게 감각을 곤두세우고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예기치 못한 공격에도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소하는 뺨에 기다란 상처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자신을 습격한 하수인을 끝장낼 수 있었다.

“미치겠네…….”

강소하는 머리가 잘린 시신을 걷어차며 씩씩거렸다.

“이놈들 피부색도 그렇고, 무기 색도 그렇고. 온통 까만색이라 보이지를 않아!”

햇빛이 쨍쨍한 장소라면 모를까, 단 한 줄기의 햇살도 파고들지 못하는 검은 수해 안에서 하수인들이 가진 검은 피부와 검은색 칼은 완벽한 보호색이 되어 주었다.

먼저 발견할 수만 있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대건만, 그게 안 되기 때문에 하수인들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전멸할 거야.’

방법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던 시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강소하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하수인의 팔이었다.

그 순간, 시현은 가느다란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 * *

이후로도 일행은 수도 없이 하수인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어찌나 그 횟수가 많은지 30회를 넘어간 이후부터는 수를 세는 것조차 포기했다.

“망할! 이 새끼들 대체 얼마나 저주받은 장비를 만들어 놓은 거야?”

오른팔에 깊은 상처를 입은 강소하가 이를 갈았다.

한소현은 말없이 그의 팔에 천을 찢어 만든 붕대를 감아 주었다.

권능을 사용하면 금방 치료할 수 있는 상처지만, 한소현은 권능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정신력의 고갈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권능을 행사하다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녀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처가 아니라면 권능을 아꼈다.

“오, 오른쪽! 30도 방향에 하수인!”

또다시 습격이 있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이나연이 들고 있던 손전등에 막 습격하려던 하수인이 얻어걸린 것이다.

[캬아아아!]

하수인이 괴성을 내지르며 이나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앞으로 뛰어나온 시현이 하수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저주받은 장비를 떨어뜨린 채 허물어지는 하수인.

시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수인의 신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오빠, 아까부터 대체 뭘 하시는 거예요? 이쁘지도 않은 시체는 왜 자꾸 살펴보신담?”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이나연이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부터 하수인을 쓰러뜨릴 때마다 그 시체를 뒤적이는 시현의 태도에 의구심을 느낀 것이다.

“그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려던 시현의 손이 멈췄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하수인의 날갯죽지 아래에서 그토록 필요로 했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방.”

하수인에게 손을 댄 시현은 권능을 사용했다.

말을 하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기에 착각하기 쉽지만, 하수인은 살아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다.

따라서 권능을 모방하는데 상대방의 허가는 필요치 않았다.

<허가 완료. 천의 권능 ― 광휘를 모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폭풍의 모방을 해제합니다.>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폭풍을 지우고 얻은 권능의 이름은 광휘.

말 그대로 빛을 뿜어내는 게 전부이기에 쓸모없는 권능으로 늘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나마 야전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 외의 사용처는 전무하다.

그런 주제에 구원자 스무 명을 만나면, 그중 하나는 광휘를 가지고 있다 말해질 만큼 흔하기까지 하다.

오죽했으면 원작에서는 광휘의 권능을 가진 구원자를 두고 가챠 실패라 부르며 조롱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광휘의 권능이 이 순간만큼은 이나연이 가진 폭풍보다도 값지게 느껴졌다.

시현은 모방이 끝남과 동시에 권능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강하고 소모가 큰 권능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인지, 무려 네 배의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의 소모가 굉장히 적게 느껴졌다.

화악!

강렬한 빛이 시현의 손 위에서 피어났다.

“으아아악! 내 눈!”

갑작스레 터져 나온 빛에 강소하가 두 눈을 손으로 감싸며 주저앉았다.

다른 일행도 황급히 등을 돌려 빛을 피했다.

시현은 머리 위로 빛을 던졌다.

일정 수준까지 위로 올라간 빛의 구체는 주변을 밝게 비췄다.

[캬아아악!]

[키이이이!]

곳곳에서 사람의 것이 아닌 괴성이 들려왔다.

검은 수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들의 것이었다.

1년 365일 빛이 들지 않는 검은 수해에 살아가고 있는 악마들에게 빛은 굉장히 낯설고 치명적인 것이다.

동물형 악마들은 꼬리를 만 채 달아났고, 식물형 악마들은 머리를 돌리거나 잎을 돌돌 마는 등 처절하게 발악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빛을 향해 뛰어드는 존재들이 있었다.

[크아아아아!]

온몸이 검게 물든 하수인이다.

환한 빛 속에서 흑색 일통의 하수인은 눈에 너무 잘 띄었다.

“어딜!”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나연이 앞으로 뛰어나가 일격에 하수인을 제압했다.

하수인의 기습이 까다롭고 치명적인 건 어둠 속에서의 일이다.

낮처럼 밝은 빛 아래에서 더 이상 하수인의 습격은 위협적이지 않다.

한소현도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하수인 하나를 간단하게 처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까다로웠는데, 주변을 밝히니까 굉장히 간단하네.”

그러더니 시현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기서 광휘를 모방할 생각을 하다니. 역시 아르하의 구원자다워.”

“…….”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역시 한소현은 시현이 아르하의 낙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변에 위협이 될 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한소현은 은근슬쩍 시현에게 다가왔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30억이라는 거금은 어떻게 구한 거야? 게임이 시작할 당시 소지하고 있는 물건만 그쪽 세계의 물건으로 취급하잖아. 뭐 엄청 비싼 명품 시계라도 가지고 있었어?”

“글쎄요. 맞혀 보실래요?”

시현이 두 손을 펴 보이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시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당연하지만 수십억의 가치를 가진 명품으로 의심되는 물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전혀 모르겠어.”

그녀는 빠르게 포기를 선언했다.

“뭔지는 몰라도 대단하네. 솔직히 난 특전인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참가자가 최소 1~2년 정도는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보다 김영운 씨가 뭔가를 발견한 거 같습니다.”

빛이 아슬아슬하게 영향을 미치는 장소.

거기에서 김영운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가까이 다가간 시현이 묻자 고개를 든 김영운이 씨익 웃었다.

“이것 좀 보세요.”

김영운은 발밑을 가리켰다.

질척질척한 진흙 위로 여러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발자국들의 사이즈로 보아 적어도 한두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맨발로 찍은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지간히 지성이 없는 게 아니고서야 발밑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맨발로 검은 수해를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다.

“하수인의 발자국이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시현 씨, 뭔가 이상한 점 못 느끼시겠습니까?”

뭔가가 더 있는 듯한 김영운의 말에 시현은 조금 더 발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뭐가 이상하다는……. 아!”

시현은 저도 모르게 손뼉을 마주쳤다.

“발자국이 전부 같은 방향에서 오고 있군요.”

“맞습니다. 전에 실험해 봤는데 하수인은 수백 미터 밖에서도 생존자를 감지하고 추격해 오더군요.”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추기 시작한 높은 단계의 하수인이라면 모를까, 낮은 단계의 하수인에게는 본능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본능이란 사냥감을 감지한다.

추격한다.

잡아먹는다.

이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뮤턴트가 하수인에게 한 교육이라고는 장비를 사용하게끔 하는 게 전부다.

나머지는 하수인의 본능에 맡기기만 하면 놀랍게도 뛰어난 암살자 집단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발자국을 따라가 보도록 하죠. 분명 뭔가가 나올 겁니다.”

일행은 하수인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머리 위에 띄워 놓은 빛의 구슬도 시현을 따라 움직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하수인의 습격이 있었으나, 전부 무사히 막아 냈다.

오히려 하수인이 같은 방향에서 달려온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 발자국이 만든 길 끝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확신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나저나 하수인이 굉장히 많네요.”

이나연이 별 의미 없이 중얼거린 말이 시현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네. 너무 많아.”

인간이 하수인이 되는 과정은 의외로 까다롭다.

하수인이 되기 위해서는 감염에 의해 숨이 끊어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악마는 사냥감의 숨통을 그 자리에서 끊어 놓기 때문이다.

설사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이 세상의 규칙에 익숙해진 생존자라면 누구나가 감염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감염자는 같은 생존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요인들로 인해 이처럼 대량의 하수인이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의심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뿐이다.

“의도적으로 하수인을 만들고 있는 건가…….”

자신이 정의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인간이 아닐 것이다.

시현은 타오르는 불길을 품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찾았다!”

몇 발자국 앞서 걷던 한소현의 외침에 일행은 너 나 할 것 없이 정면으로 달렸다.

빼곡하게 나무가 자라난 수해의 한복판에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누가 봐도 현대의 것이 아닌 기괴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건물 전체를 불그스름한 넝쿨이 뒤덮고 있었는데, 넝쿨은 마치 혈액을 운반하는 핏줄처럼 간헐적으로 맥동했다.

“으아……. 끔찍하게 생겼어.”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광경에 이나연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캬아아아아!]

활짝 열린 문에서 무장한 하수인이 튀어나오며, 목적지에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려 주었다.

손쉽게 하수인을 처리한 시현은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주변을 살폈다.

건물 주변에는 버려진 상자와 밧줄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용 트럭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으며, 건물의 배후에는 인위적으로 뚫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좁은 길이 보였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시현이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에 전기가 공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벽면에 가득 박힌 돌에서 뿜어지는 빛 덕에 건물 내부는 굉장히 밝았다.

덕분에 시현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건물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구석에 판자를 이용한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벽 너머에서 간헐적으로 기괴한 웃음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벽 아래에, 웃고 있는 이채연이 있었다.

“안녕?”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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