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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07화 (107/225)

[107화]

랭킹 584위.

처참하기 그지없는 성적표를 받아 든 김해철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실패자들만 모아 놓은 인생 역전 게임에서 최하위권이라고?”

Re write가 시작되고 벌써 보름이 지났다.

어떻게든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좀처럼 순위가 오르지를 않는다.

그뿐이랴.

인천연합의 중심이 되는 시청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목표로 했던 것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김해철은 절망에 휩싸였다.

“모르겠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왜 난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거야?”

“괜찮아?”

옆에서 이채연이 안경을 들어 올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김해철은 그녀에게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방법이 필요해, 방법이. 무슨 수를 짜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이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 평생 감금되어 살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악마에게 목숨을 잃고 죽거나.

살고 싶었다.

살아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 뒤틀린 인생을 바로잡고 인생의 승자로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리더.”

누군가가 김해철의 방에 들어왔다.

평소 그가 아끼고 신뢰하는 참가자 주도환이었다.

이번에도 김해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깊이 한숨을 토한 주도환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금 전 시청의 구원자가 생존자 한 명을 구출했는데, 듣자 하니 수해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거 같아.”

“…….”

“그런데 그 생존자가 말하기를…… 수해 안에 이상한 건물이 있었다고 하더라. 마치 뿔처럼 생겼는데 붉은 핏줄 같은 게 도드라져 있다고……. 이걸 듣고 뭐 생각나는 거 없어?”

그제야 김해철이 반응을 보였다.

“설마 봉인된 탑?”

“아마 그런 거 같아.”

심장이 마구 뛰었다.

드디어 찾았다. 지금의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타개책을.

며칠 전부터 김해철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순위를 끌어 올릴 수 있을까 쭉 고민해 봤다.

그 결과 내놓은 것이 다른 참가자의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스토리였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배신하는 것.

남들이 인류를 구할 영웅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과는 반대로, 악당이 되어 남들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면, 독자들도 흥미를 갖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 필요한 마지막 조각, 봉인된 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원작에서도 수해 어딘가에 있다고만 묘사될 뿐이다.

그렇다고 면적이 40㎢에 육박하는 검은 수해를 전부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때문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낭보가 도달한 것이다.

“……가자. 애들 모아.”

이미 각오는 끝마친 지 오래였다.

생존자로부터 봉인된 탑의 자세한 위치를 전해 들은 김해철은 뮤턴트를 이끌고 검은 수해로 향했다.

검은 수해의 어둠과 그 어둠을 이용하는 악마들에 의해 많은 동료가 죽어 나갔다.

그러나 김해철은 끝내 봉인된 탑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 내 마지막 희망.”

김해철은 눈물을 흘리며 봉인된 탑에 발을 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네 욕망을 말하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며 자그마한 두통이 발생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 같았다.

본능이 속삭였다.

이 목소리에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크게 심호흡을 한 김해철은 입을 열었다.

“내 욕망은……. 한소현을 끌어내리고 랭킹 1위가 되는 거다!”

그에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게로 오라. 너를 귀하게 쓰리라.

작은 진동과 함께 봉인된 탑의 문이 열렸다.

마른침을 삼킨 김해철이 발을 떼는 순간, 희고 가녀린 손이 그를 붙잡았다.

이채연이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조금 전에 들려온 목소리도 그렇고…….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될 거 같아.”

생존 전문가답게 그녀는 본능적으로 봉인된 탑이 굉장히 위험한 장소라는 걸 직감했다.

그러나 김해철은 그녀의 호소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김해철을 포함해 뮤턴트의 멤버들은 봉인된 탑 안으로 들어갔고, 망설이던 이채연은 끝내 탑 밖에 남았다.

탑 안은 아무것도 없이 횅하기만 했다.

일행은 자그마한 통로를 따라 지하로, 지하로 내려갔다.

그럴수록 들려오는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내게 오라. 깊이, 더 깊이…….

그리고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그 불꽃 속에서,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외관에 김해철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런 김해철의 뺨을 무언가가 훑었다.

하등한 자들아, 나를 숭배하라. 나는 위대한 존재이니, 너희를 구원으로 이끌 자라.

김해철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그를 강제로 무릎 꿇렸다.

“크윽…….”

“아아악!”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김해철이라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가 가진 낙인이 얼어붙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 * *

뮤턴트의 리더 김해철은 사망했다.

끝까지 그를 따르던 뮤턴트 또한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요새가 완전히 붕괴한 까닭에, 기존 요새의 생존자들은 갈 곳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채연의 학살극으로 인해 요새의 생존자들은 수가 크게 줄었다.

이 정도라면 시청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

이들은 요새가 아닌 시청 소속의 생존자가 되어 살아갈 것이다.

남은 건 뮤턴트의 잔당을 처리하는 것뿐이다.

“제길.”

큰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시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현 상황에 불만이 있는 건 시현뿐만이 아니었다.

한소현이나 정은수를 포함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뮤턴트의 수뇌부 중 사망이 확인된 이는 시현이 직접 처리한 김해철뿐.

나머지 두 사람은 사망자 혹은 포로 명단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언에 등장한 라미아가 건물의 붕괴로 사망했다는 것일까.

혹시 두 사람의 행방이 표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망한 김해철의 Re write를 확인해 봤으나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갑작스레 요새가 붕괴한 후.

김해철은 두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뮤턴트의 복수를 위해 몸을 던졌다―라고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다른 두 사람은 건물이 붕괴하면서 대량의 흙먼지가 발생했을 때를 노려 달아난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작전을 제안한 이는 시현이다.

때문에 시현은 이번 결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한소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원래 작전대로 해 봤자 두 사람은 살아서 달아났을 거라며. 오히려 김해철이라도 잡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맞습니다. 사실 흙먼지가 없었다 해도 이채연의 권능이라면 충분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을 겁니다.”

한소현에 이어 정은수까지 시현의 편을 들어 주었다.

김영운도 말만 안 했다 뿐이지, 뭐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반응에 시현은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곧장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죠.”

폭풍은 정신력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는 권능이다.

그걸 전력으로 토해 낸 뒤에 후폭풍으로 찾아오는 피로감은 상당하다.

당장이라도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인 채 쉬고 싶을 정도.

그러나 요새를 무너뜨리고 뮤턴트의 리더인 김해철이 사망했다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이제 남은 건 수해의 봉인을 해결하는 것뿐이지? 난 준비 끝났어.”

한소현은 의욕을 보였다.

사실상 등대가 인천까지 올라오고, 아무런 대가 없이 시청을 도운 것도 다 시현의 도움을 받아 수해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녀가 잔뜩 흥분해 있는 건 굉장히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김영운이라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며칠이나 타지에서 건빵만 씹으며 지내다 보니 집이 그립네요. 빨리 끝내고 돌아가도록 하죠. 먼저 인원 편성부터 어떻게 할까요?”

“인원 편성이라면 이미 끝나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요새의 공략부터 수해의 문제 해결까지, 시현은 두 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때문에 요새의 공략을 끝낸 후 수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전에 이미 협의하고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다.

즉, 이제 와서 인원을 편성하니 뭐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게 말이죠……. 거참,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면목 없다는 듯 김영운이 고개를 숙였다.

“요새가 붕괴할 때 사고가 조금 있었거든요. 함께하기로 한 저희 측 바보 둘이 그 사고에 휘말리는 바람에 정신력을 죄다 소모해 버렸지 뭡니까.”

“누가 바보라는 거임! 막말하는 김영운은 반성하셈!”

“옳소!”

김영운의 말에 등대 소속의 남녀가 크게 반발했다.

그중 한 명은 커다란 방패를 등에 지고 있는 김영운의 숙적, 유서인이었다.

기존에 수해를 공략하기로 한 인원은 총 다섯이다.

시현과 한소현, 거기에 김영운은 당연하다는 듯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소현의 호위라는 명목으로 유서인을 포함해 등대의 간부 두 명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아쉽지만 현장을 수습해야 할 책임자가 필요했기에 가장 전투력이 떨어지는 정은수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도 몇 번이나 언급됐지만, 수해는 굉장히 위험한 장소다.

약한 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때문에 대규모 인원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소수 정예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고민 끝에 추린 결과가 위에서 언급한 다섯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구원자라도 남아 있는 정신력이 없다면 도움은커녕 짐만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요새의 공략에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이나연과 강소하가 두 사람을 대신할 인재로 추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떻게 할래?”

시현이 의견을 물었다.

“가는 길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건가요?”

“당연하지.”

“그러면 갈래요.”

시현의 안부가 걱정돼 인천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이나연이다.

그녀의 선택은 어찌 보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거라 봐도 무방했다.

반면, 강소하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슬금슬금 도망치려 했다.

“귀찮은데……. 서울에서 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많고. 네가 무사한 것도 확인했으니 슬슬 돌아가 봐야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런 반응을 보며 시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한결같을 수 있단 말인가.

시현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를 본 강소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안한데, 넌 강제 참가야.”

“야. 나에 대한 취급이 너무한 거 아니야?”

“수해에는 악마가 굉장히 많거든.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 아니었어?”

“아니, 그건……. 분명 그렇기는 한데……. 에휴.”

결국 강소하는 저항을 포기했다.

애초에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그렇지, 더 많은 악마를 토벌해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다른 구원자보다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은 인물이 강소하였으니까.

그렇게 인원 재편성이 끝나고, 선발된 다섯은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수해가 있는 장소.

계양산이다.

* * *

아포칼립스가 발생한 후.

하룻밤 사이 인천의 한복판에 대뜸 수해가 생겨났다.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계양산을 둘러싸듯 빼곡하게 자라 생겨난 나무의 숲은 그 면적만 족히 40㎢에 육박한다고 말해진다.

계양구의 절반을 덮고도 모자라 서구까지 집어삼킨 수해를 검은 수해라 불렀다.

수해에 자리한 나무의 이파리가 죄다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새까만 무언가가 대지를 덮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초기에 금지로 지정되었을 만큼,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인천의 검은 수해다.

“이게 수해…….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숲의 초입에 선 시현은 침을 삼켰다.

생각보다 수해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설마 목적지가 여기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이나연이 한소현에게 질문했다.

뛰어난 친화력을 가진 두 여성은 놀랍게도, 요새에서 수해까지 오는 그 짧은 사이에 마치 십년지기처럼 친해지는데 성공한 것이다.

“맞아. 분위기가 조금……. 그렇기는 하네.”

검은 수해는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이 마구잡이로 뻗은 가지가 엉키고 엉켜 있었다.

이파리의 사이즈도 상당히 커다랗다 보니, 수해 내부는 그야말로 빛 한 점 들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습하고 음침하기까지 하니, 공포 영화의 무대가 되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여기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힘들겠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겠네요.”

“으엑.”

걸어가야 한다는 말에 강소하가 가장 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걷는 게 싫은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기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대로는 몇 시간이고 수해 앞에서만 서성일 것 같았기에 시현이 앞장서며 수해에 발을 들였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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