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랭킹 6위 : 윤시현의 Re write.>
“…….”
정유환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아직 윤시현의 소설이 랭킹에 실려 있다는 것은, 곧 윤시현이 살아 있다는 말이 된다.
“살아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육신이 강철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이채연의 공격을 받고 현무가 만든 소용돌이에 휩쓸리기까지 했는데도 살아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정유환은 자신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왜 그래?”
온몸으로 불안을 표출하는 정유환에게 이채연이 이유를 물었다.
“윤시현이 살아 있습니다.”
“찾아서 죽이고 올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만큼 윤시현은 교단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며칠 전 그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대기하던 남지후가 역으로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함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유환은 감정보다 이성으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요. 그만한 부상을 입은 채 물에 떠내려갔는데, 아마 조만간 숨이 끊어질 겁니다.”
“그래도 돼?”
“조금 불안이 남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지금부터 이채연 씨는 더 중요한 일을 해 주셔야 하니까요.”
정유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뮤턴트로 하여금 인천연합을 손에 넣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래에는 손에 뮤턴트를 통째로 교단이 흡수하는 것.
그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아, 지금 막 현무의 토벌이 끝났네요. 이제 정은수를 처리하러 가도록 하죠.”
시청의 존재 의의라 할 수 있는 신현수와 그를 받쳐 주는 든든한 기둥인 정은수.
두 사람이 사라진 시청은 그저 먹기 좋은 커다란 파이일 뿐이다.
* * *
신혈을 가진 어느 참가자로 인해 발생한 재앙, 현무.
물과 바람을 다루는 대형 악마의 토벌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는 이는 없었으며,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 같은 것도 없었다.
며칠 내리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걷혔으며, 간만에 대지에 빛이 떨어졌다.
하지만 시청의 생존자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고목이자 정신적 지주로 존재했던 신현수가 사망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신현수는 이번 작전에 가장 방해가 되는 이그니스를 잠재우기 위해 단 한 명의 호위만 대동한 채 떠났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신현수의 호위로 동행했던 스컬의 리더 강서원뿐이었다.
당연하지만 강서원에게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다.
“미안하다. 나도 나름 노력했지만 적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었어. 설마 신현수가 실수를 할 줄은 몰랐지. 잠깐이지만 이그니스가 눈을 떴다고. 윤시현의 계산이 틀린 게 원인이겠지만……. 그래, 내 잘못도 있음을 인정할게.”
한순간에 대역 죄인이 된 강서원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정은수는 손을 떨었다.
‘역시 내가 갔어야 했어.’
원래라면 신현수의 호위는 정은수가 했어야 한다.
하지만 시청의 리더인 신현수에 이어 그다음 가는 정은수까지 최전방에서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현장에서 시청을 지휘할 사람이 없어진다.
그런 이유로 적당한 호위를 선별하는 가운데 강서원이 자원을 했다.
강서원은 인천의 구원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정은수는 안심하고 자신이 했어야 할 호위 역할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이그니스가 깨어나서 현수를 불태우고 다시 잠들었다고? 같잖은 개소리는 집어치워!”
정은수는 분노했다.
생각 같아서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었다.
정은수는 후회했다.
많은 이들의 비난을 사더라도 신현수를 따라나섰어야 했다.
그리고 정은수는 의심했다.
새까맣게 탄 신현수의 시신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반면,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강서원에게는 그을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너무도 수상했다.
“만약 이그니스가 깨어났으면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현무를 치러 왔겠지! 그리고 너 또한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고!”
“진정해. 그래도 스컬의 리더인데, 증거도 없이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니야?”
잔뜩 흥분한 정은수를 김해철이 만류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잔뜩 먹인 풀을 던져 넣은 꼴이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강서원 편을 들어!”
정은수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김해철의 손을 거칠게 쳐 냈다.
분노가 머리 끝가지 치밀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네가 시현 씨를 공격한 거, 내가 잊었을 거 같아? 아아, 그러고 보니 시현 씨에게 결정타를 먹인 것도 스컬이었지? 멍청한 짓을 저지른 사람끼리 편이라도 들어 주는 거야, 뭐야?”
“야.”
김해철이 자신을 밀어내는 정은수의 손을 붙잡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부어 주기 위해 고개를 든 정은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을 응시하는 김해철의 표정에서 죄악감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내가 거기에서 신현수와 함께 죽었어야 속이 후련했을 거 같아?”
서서히 고개를 드는 강서원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구원자들이 그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정은수 씨, 거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닌데, 일단은 진정합시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김해철과 스컬이 나서지 않았으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겁니다.”
“그래, 살인이 아니고 희생이었다고. 지금 정은수 씨가 이러는 건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두 사람을 욕보이는 거야.”
하나둘 거리를 좁혀 오는 구원자들을 보며 정은수는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
누가 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데, 저들은 어째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밀며 가해자의 편을 들고 있단 말인가.
비록 전체에 비하면 그 수는 1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계획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군중 심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거기에 연합의 몇몇 리더들이 김해철을 지지하고 나섰다.
살인이라는 중죄가 순식간에 어쩔 수 없던 선택으로 미화되고 있었다.
‘설마…….’
떨리는 정은수의 눈에 보인 것은 강서원의 마스크에 그려진 해골 마크와 김해철의 옷에 달려 있는 해골 모양의 촌스러운 장신구였다.
그 두 개는 몹시도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쯤 되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건 이들이 꾸민 일이라는 것을.
본인만 몰랐을 뿐이지, 일련의 과정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대로는 전부 먹혀 버릴 거야. 대책을 세워야 해. 이제 현수도 없으니, 내가 해야…….’
불끈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시청에 더 이상 신현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을 믿고 의지해 주는 생존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신현수가 없는 시청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든 미련을 버린 정은수는 다음 날 홀연히 시청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망할.”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시현은 눈을 떴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성한 구석이 없으리란 건 안 봐도 뻔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시현은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용케 살아 있었구나 싶을 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골백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팔은 부러진 거 같고, 왼쪽 눈이 잘 안 보여, 속도 완전히 망가진 거 같고. 오래는 못 살겠네. 홀딱 젖었는데 피까지 많이 흘려서 몸도 떨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연이에게 줬던 생명의 부적을 받아 오는 건데.’
시현은 덤덤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그에게 무슨 의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목숨이 머지않았다고.
“여긴 어디야?”
마지막에 현무가 사용한 소용돌이 덕에 시현은 전투 구역에서 상당히 먼 곳까지 떠내려오고 말았다.
무전기를 이용해 구조 요청을 하려 했지만 물을 먹어서 그런지,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연히 치료 계열 구원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은 힘들어. 내가 진짜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그런 우연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망상에 가까웠기에 시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말이 좋아 주인공이지 시현은 Re write를 쓰는 수많은 참가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물론 인천연합에도 치유 계열 구원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방치되었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탐색에 실패했거나, 탐색을 하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거나, 아니만 그가 죽었으리라고 이미 결론지었거나.
항상 구비해 두었던 회복약도 죄다 떠내려갔다.
뛰어난 자연 회복력도 목숨이 위중한 정도의 중상은 회복시켜 주지 못한다.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외통수다.
‘망했군.’
몸이 제 것 같지 않았기에 시현은 드러누웠다. 그리고 얌전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렸다.
이미 운명은 정해졌다. 발버둥 쳐 봐야 추함만 더해질 뿐이다.
‘……그래도 죽고 싶지 않아.’
추해도 좋다. 똥밭에 구르더라도 이승에 남아 있고 싶었다.
살아서 하고 싶은 게 산처럼 남지 않았는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효도도 하고 싶고, 소원해진 친구들과의 우정도 다시 쌓고 싶고, 한동안 담 쌓고 살았던 연애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더불어 돈 때문에 포기했던 꿈도 다시 쫓고 싶었다.
60억.
이제는 반토막 나 30억도 안 되기는 하지만, 돈이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행복이 수두룩하고 시현에게는 그 돈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죽어야 하다니.
억울한 나머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뮤턴트의 리더 김해철과 스컬의 리더 강서원이었다.
‘그래, 그 망할 자식들한테 복수도 해야 하잖아.’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분노가 시현으로 하여금 고통을 이기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김해철……. 강서원……!”
자신을 이런 몰골로 만든 증오스러운 이름을 씹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현무 때문에 지형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이 주변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나 시현은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가만히 앉아 죽느니, 뭐라도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고역이었으나 시현은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30분이 흘렀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지독한 부상 탓에 시현이 이동한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마저도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제는 한 발자국을 내딛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현무가 만들어 놓은 황무지를 달리던 지프차 한 대가 그의 앞에서 멈춰 섰다.
운전석의 문이 열리더니 20대 중반의 여성이 내렸다.
모델처럼 시원시원한 각선미가 돋보이며, 상당히 오래 길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긴 머리는 물들인 듯 감색이었다.
그녀는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함인지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끝이 흙탕물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희미하게 샴푸 냄새가 났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리더, 인사는 나중에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차량의 조수석에서 들려온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여성의 말을 끊었다.
조수석에서 내린 인물은 더벅머리에 둥근 테의 안경을 쓰고 있는, 굉장히 지적인 이미지의 남성이었다.
시현에게 한 번 시선을 준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여성을 쏘아봤다.
“딱 봐도 죽기 직전이잖아요. 한가하게 인사나 나누고 있다가는 숨이 끊어질걸요?”
“그런가? 그 정도로 약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서서히 시야가 흐려지고 남녀의 모습이 멀어져, 들려오는 음성조차 희미해져 갔다.
“어? 어어어? 지, 진짜 죽겠다! 윤시현 죽으면 우리도 다 같이 죽는 거야!”
“알았어. 보채지 마.”
팔짝 뛰며 호들갑을 떠는 남성에 비해 한없이 무사태평한 여성은 시현의 뺨에 손을 얹었다.
몸이 차가워서 그런가, 적당히 따스한 온기가 굉장히 기분 좋게 느껴졌다.
저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시현은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당신은 나한테 빚을 진 거야. 알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을 아직 말 안 했구나.”
번쩍이는 빛과 함께 무언가 포근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여성이 속삭였다.
“한소현, 내 이름이야.”
―한소현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예언자! 저 예언자 놈이 범인이야!
―저놈은 대체 뭘 본 거야? 저놈의 예언 능력은 개인 특성이라 베일에 싸여 있단 말이지. 나도 한소현 소설을 구독해야 하나…….
―왜 안 함?
―우리 시현이를 1등으로 올려야 하니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댓글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 채, 시현은 의식을 잃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