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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92화 (92/225)

[92화]

기어코 현무가 영역의 경계를 넘었다.

시현은 반사적으로 부평역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이그니스의 흉포한 울음소리도, 하늘을 뚫고 솟구치는 불기둥도 없다.

자신의 영역에 다른 대형 악마가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그니스는 잠잠했다.

“신현수 씨가 성공했구나.”

부평역 인근에는 이그니스가 만든 검은 재로 인해 다른 악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조차 못 할 만큼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 신현수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지 않는 한 실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호위로 스컬의 리더 강서원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원작의 강서원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신현수의 추종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을 정도일까.

그러한 이유로 사실상 신현수가 실패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으며, 시현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라 할 수 있다.

‘신현수 씨가 그리 오랫동안 이그니스를 재워 두지는 못해. 물리적인 외부 자극이 없는 한 반나절. 깨어나기 전에 한 번 더 사용한다면 최장 9시간 정도인가?’

즉,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시현 씨, 5분 후 현무가 작전 지점에 진입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전에서 들리는 정은수의 음성에 답한 시현은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경계를 완전히 넘은 현무는 두 눈에 요새를 담고 있었다.

이번 작전 지점에서 끝을 내지 않으면 현무는 요새에 진입하게 된다.

‘그래도 현무의 외피를 많이 깎았어. 내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에 현무의 외피는 깨진다.’

콰앙!

굉음과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본격적인 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처음의 폭발을 시작으로 구원자들은 권능을 쏟아 냈다.

특히, 민수혁을 포함해 요새에서 차출된 구원자들은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구원자들의 공격은 현무가 두른 외피에 가로막혀 자그마한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기왕이면 일방통행을 사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현무의 공격력은 막강하다.

일방통행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 무리로 나누어진 구원자 중 하나가 전멸할 것은 자명하다.

강한 권능은 그만큼 소모도 큰 법.

일방통행은 다른 이들보다 압도적인 정신력을 가진 시현조차 두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만약 현무의 공격을 막기 위해 권능을 사용한다면 시현은 이번 싸움에 참전할 수 없게 된다.

무려 3레벨 구원자.

실제로는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시현의 공격력이 빠진다면 현무 토벌 작전은 현무 쫓아내기로 수정되고 말 것이다.

“제발…….”

시현은 간절함을 담아 현무를 응시했다.

쏟아지는 권능의 세례에도 현무는 끄떡하지 않았다.

목표가 코앞에 있는데도 귀찮은 파리 떼 때문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게 그저 귀찮을 따름이었다.

귀찮은 것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현무는 입을 벌렸다.

입안에 모여드는 아름다운 빛깔의 기운을 확인한 시현은 혀를 찼다.

“쳇.”

아쉽지만 별수 없었다.

언제라도 일방통행을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던 시현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착됐다.

부서진 외피의 파편이다.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근접 계열 권능을 가진 구원자들도 전투에 합세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이는 다른 세력의 리더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며 존중받고 있는 노년의 구원자 이백희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우람하고 정정한 신체를 가진 그는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가장 선두를 달렸다.

팔 근육에 힘줄이 돋아나도록 힘을 준 그는 통나무 베듯 도끼로 현무의 다리를 찍었다.

토끼로 내려찍은 장소에 강한 전류가 발생했다.

와장창!

순백색의 전류가 현무의 다리를 뒤덮은 순간, 현무의 외피가 깨졌다.

산산조각 난 외피의 파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도로 위에, 건물 위에, 구원자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돼, 됐다! 외피가 깨졌다!”

누군가가 외쳤다.

기쁨에 벅찬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이곳에 모인 모두가 같은 감정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시현 또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외피를 깼을 뿐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다.

현무는 여전히 건재했고, 외피가 깨졌다 해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우어어어!]

거대한 물줄기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했다.

수비에 쓸 정신력을 공격에 사용하기 위해 시현은 일방통행 대신 처형의 권능을 검은 가시에 둘렀다.

그리고 검은 가시를 있는 힘껏 던졌다.

벌처럼 쏘아진 검은 가시는 현무의 턱에 꽂혔다.

콰앙!

경이롭기까지 한 시현의 신체 능력에 권능으로 인해 강해진 일격.

현무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젖혔다.

쏘아진 물줄기는 목표 지점보다 한참 위로 솟구쳤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몇 배는 더 빽빽해졌다.

힘을 쏟아부은 우측의 머리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처형의 효과로 인해 턱에 난 상처에서 과도하게 피가 쏘아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득! 콰드득!

현무의 두꺼운 피부 층을 뚫고 검은 가시가 삐져나왔다.

그로 인해 발생한 출혈은 처형의 권능에 의해 현무에게 2차 피해를 입혔다.

시현이 전혀 기대하지 않던 시너지였다.

“공격이 통한다! 외피만 없으면 대형 악마도 결국은 덩치 큰 짐승일 뿐이야!”

“머리를 공격해!”

“저게 다 경험치 덩어리다. 우리도 2레벨 한 번 가 보자고!”

결단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였던 현무는 구원자들의 공격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측 머리에 상처가 생기고 녹색의 피가 흘렀다.

구원자들은 희망을 봤다.

그들은 더욱 신이 나서 현무를 몰아쳤다.

우측 머리가 무자비하게 당하는 것을 확인한 좌측 머리는 섣불리 광범위 폭풍을 토해 내지 못했다.

거대한 입이 구원자들을 집어삼키려 다가왔다.

하지만 느렸다. 구원자들이 재빠르게 현무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콰가가가각!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현무의 거대한 머리가 바닥을 긁었다.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헌납해야 할 경이로운 위력이었다.

“다 같이 오른쪽 앞다리를 노리세요!”

시현은 무전기에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이런 혼전 속에서도 구원자들은 시현의 지시를 놓치지 않았다.

인천 공항 세력의 사건은 제대로 된 반면교사가 되어 주었다.

“들었지? 오른쪽 다리다!”

“달려!”

그들은 우르르 몰려가 현무의 오른쪽 다리를 공격했다.

그러나 개미가 아무리 모여도 코끼리에게 치명상을 남길 수 없는 법.

구원자들의 공격 대부분은 현무의 두꺼운 가죽조차 뚫지 못했다.

가끔 보이는 2레벨 구원자만이 생채기 정도를 낼 뿐이었다.

결국 기대의 시선은 3레벨 구원자인 시현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 시현 씨? 지금 뭐 하고 계신가요?]

무전기를 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딩의 옥상에 있는 정은수의 위치에서는 전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다른 이들이 죽어라 무기를 휘두르는 가운데 혼자 편히 쉬고 있는 시현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시현은 당당했다.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타이밍이요?]

“현무가 슬슬 화가 날 때가 된 거 같아서요. 아, 잠시 무전 끊겠습니다.”

[……네? 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정은수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무전기를 허리춤에 매단 시현은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현무의 안광이 핏빛으로 번뜩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어어어어!]

양쪽 머리가 동시에 울부짖었다.

현무의 신체로부터 검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강한 가시성을 띠는 아지랑이는 허공에서 뭉쳐 들며 무언가의 형상을 만들었다.

머리가 하나 달린 소형 사이즈의 거북이었다.

하나둘씩 늘어나던 거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불과 10여 초 사이에 100이 넘도록 불어났다.

완성된 아지랑이 거북들은 몸을 던져 구원자들을 들이받았다.

“어어어? 저놈이 소형 악마를 만들어 냈어!”

“젠장! 현무 하나만 해도 벅찬데, 소형 악마까지 상대해야 하다니…….”

“그냥 무시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아.”

아지랑이 거북을 견제하느라 구원자들의 공격에 빈틈이 생겼다.

그 틈을 노려 현무가 공세로 전환했다.

콰아아아!

쩍 벌어진 현무의 입에서 물줄기가 쏘아졌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에너지를 집중한 공격은 아니다.

연사력은 높아졌으나 공격 범위도 현저하게 좁고, 파괴력도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1레벨 구원자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다.

그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사력을 다해 도주했다.

좌측 머리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사이즈를 줄인 폭풍을 토해 내며 구원자들의 이동을 방해했다.

부지불식간에 수세에 몰린 연합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사람,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던 시현을 제외하고.

핏빛 칼날을 뽑아 든 시현은 권능을 발했다.

콰아아!

그를 중심으로 뻗어져 나간 검은 기운이 하늘을 날던 소형 거북을 대거 추락시켰다.

이자프의 권능에 담긴 지독한 공포.

그것이 소형 거북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현무가 애써 만들어 놓은 소형 거북 중 여전히 하늘을 누비는 이는 운 좋게 범위 밖으로 벗어난 10여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무전기에 불이 들어오며 정은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그건 전에 옥상에서 봤던 그 기술이군요!]

“정은수 씨, 지금부터 저는 좌측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겠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살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자세한 지시는 부탁드립니다.”

[맡겨만 주세요!]

확답을 받은 시현은 무전의 채널을 바꿨다.

그리고 외쳤다.

“세연아!”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의 외침이 있은 후 배후에 있던 빌딩의 옥상에서부터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내렸으니까.

그 빛은 시현을 부드럽게 감쌌다.

<아스로이아의 권능에 의해 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아스로이아의 뜻을 따르는 사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조건만 충족시키면 구원자의 능력을 대폭 증가시켜 주는 기사 임명.

더군다나 아스로이아의 사도인 김세연이 사용한 권능이기에 능력의 상승폭은 상당했다.

그러나 시현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

시현은 일방통행에 이어 자신이 모방한 두 번째 권능을 사용했다.

“기사 서약.”

<아스로이아의 권능에 의해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기사 임명을 받고 있습니다. 두 권능이 보다 더 상승의 효과를 이뤄 냅니다.>

연기자와 유령 군대.

둘 다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권능이다.

그러나 두 권능은 하나같이 인간을 상대로 효율을 보이는 것이며, 악마가 상대라면 그리 유용하지 않다.

그리고 현무는 어설픈 준비로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적이 아니다.

때문에 시현은 두 개의 권능을 모두 포기함으로써 현무를 토벌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를 끝마친 것이다.

암습이라는 음험함을 버렸고, 군대라는 단체를 버렸다.

그 대가로 오로지 개인의 강함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거기에 더해 커다란 섬광이 일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잠시 김세연에게 빌려 준 이끄는 태초의 빛이 발동하며 구원자들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혈액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체내를 휘젓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색다르게 느껴졌고, 숨을 내뱉는 행위조차 낯설었다.

“하아…….”

자신의 육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감각.

마치 슈퍼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육체를 빌려 사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현은 땅을 박찼다.

콰앙!

아스팔트 위로 발자국 모양의 자국이 깊게 파였다.

그로기 상태인 우측 머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미, 미친!”

“뭐야? 뭐가 지나간 거야?”

현무의 우측 다리를 향해 달리던 구원자들은 경악했다.

구원자들의 경외가 담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시현은 그로기 상태의 우측 머리를 타고 현무의 머리 위에 올랐다.

그리고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다.

쾅! 콰앙!

검과 생물의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굉음이 몇 차례나 반복해서 울렸다.

자그마한 충격파가 연거푸 발생했다.

“더럽게 단단하네.”

연이은 공격으로도 재미를 보지 못한 시현이 혀를 찼다.

피부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천연 투구가 시현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우우우우!]

물론 투구가 완전히 충격을 흡수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울리는 강한 공격에 현무는 정신을 못 차리고 울부짖었다.

어떻게든 시현을 떨쳐 내려 머리를 흔들어 댔으나 곱게 떨어져 줄 시현이 아니다.

시현은 악착같이 매달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견디지 못한 좌측 머리가 옆에 있던 상가 건물을 들이받았다.

“크윽!”

시현은 외피를 믿고 억지로 버텼다.

이미 현무는 시현을 가장 위험한 적으로 지정했다.

만약 떨어진다면 현무는 두 번 다시 시현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오르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퍼억!

시현은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현무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튀어 오른 자그마한 파편이 시현의 귓불을 스쳤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현무의 투구에 미세하게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것만 깨뜨리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아.’

코앞까지 다가온 승리를 손에 넣기 위해 시현은 다시 한번 무기를 휘둘렀다.

콰앙!

전보다 더욱 큰 소리가 나며 현무의 투구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

[우어어어!]

머리가 깨져 나가는 고통에 현무가 울부짖으며 세차게 머리를 털었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현무의 울부짖음이 바로 옆에서 들려오니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시현 씨!]

귀가 먹먹한 가운데 정은수가 애타게 시현을 부르짖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옆에! 옆에 보세요, 옆에!]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의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옆에?’

정은수의 말대로 옆을 확인한 시현은 헛숨을 삼켰다.

다른 구원자들과 싸우고 있을 우측 머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쩍 벌어진 입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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