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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88화 (88/225)

[88화]

이른 아침.

규칙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현은 잠에서 깼다.

졸린 눈을 비비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으려니,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간밤의 휴식은 굉장히 달콤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침대와 이불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기껏 잡아 놓은 약속을 게으름 때문에 뒤로 미룰 수도 없는 노릇.

시현은 몸을 짓누르는 게으름을 이겨 내며 몸을 일으켰다.

“네, 나가요.”

잠금을 풀고 문을 여니 낯선 여성이 시현을 반겨 주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일까.

긴 머리카락에 단아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대기업 회장의 비서처럼 허리춤에 손을 얹고 완벽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신현수 리더가 소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준비가 다 끝나시는 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놀랄 만큼 사무적인 음성이었다.

왠지 그녀가 누구인지 얼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죄송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신현수 리더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이은아라고 합니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시청의 리더인 신현수나 그 오른팔인 정은수 만큼은 아니어도 이은아 역시 유명한 축에 속했다.

비록 가지고 있는 낙인을 각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신현수의 비서로서 다양한 일들을 해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인천연합은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 작전의 성공을 위해 시현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안면을 트게 된 것은 시현에게도 기쁜 일이다.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하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인상을 남겨 주기 위해 시현은 얼굴 가득 영업용 미소를 만들었다.

화장실에서 대충 정돈을 마친 시현은 이은아를 따라갔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시현은 많은 수의 생존자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나중에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물론 건빵에 미지근한 물밖에 없지만요.”

“하루라도 좋으니까, 시현 씨가 우리 시청의 전투 교관으로 일해 주셨으면 소원이 없겠다.”

분명 초면일 텐데, 그들은 부담이 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네크로 비 무리를 단신으로 토벌한 덕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시현의 노림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먹혀들었다.

“저희 리더도 이 정도로 인기가 있지는 않은데. 대단하시네요.”

“소문이 참 빠르네요.”

“그만큼 큰 사건이기도 했고. 이런 세상이잖아요. 다들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으니 소문이 빨리 퍼지는 편이랍니다.”

앞으로도 많은 생존자들이 그를 칭송할 거라 말하며 이은아는 밝게 웃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구원자는 생존자 사이에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구원자 몇 명을 합한 것보다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인 시현의 이름이 널리 퍼지는 건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한 이치였다.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인 4층에 있는 소회의실의 문 앞.

그곳에 처음 보는 구원자 몇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청에 속한 구원자들은 최대한 검은색 계통으로 복장을 통일하고 있는데 반해, 이들의 복장은 제각각으로 개성이 살아 있었다.

즉, 이들은 시청 소속의 구원자가 아니다.

그들을 뒤로한 시현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만진 후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시현에게 꽂혀 들었다.

호기심, 질투, 불신, 경외, 탐욕 등등.

온갖 감정을 담은 시선들 10여 개가 시현의 전신을 훑었다.

그 중에는 자리가 불편한지 쭈뼛거리고 있는 민주혁, 디귿 자 형태로 놓여 있는 테이블의 중앙에 자리한 신현수 등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이들이 인천연합을 구성하는 주요 세력들의 리더라 이거지?’

드디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조금은 감개무량한 기분이다.

솟구치는 감동을 억지로 누른 시현은 마침 딱 자신을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시현은 대충 회의장 내부를 살펴보았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이 몇 보였다.

그만큼 원작에서의 묘사가 섬세했기 때문이다.

시현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신현수가 본격적으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 다들 소집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소집한 이유는 어제저녁에 사전 설명을 드렸지만, 다시 한번…….”

“신현수, 우리 시간도 넉넉하지 않은 마당에 피차 알고 있는 귀찮은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자고. 우리가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으니까.”

어지간히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커다란 체구에 적당히 살집이 있으며, 웃는 얼굴로도 숨길 수 없는 험악한 인상과 걷어 올린 팔에 엿보이는 문신까지.

열에 아홉은 그의 전직을 건달이나 조폭 정도로 유추할 만한 외형이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이제 막 시작된 신현수의 말을 도중에 차단하며 발언권을 확보했다.

“그 현무인지 뭔지 하는 악마로부터 인천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남자의 시선이 시현에게 향했다.

“저 남자가 3레벨 구원자라는 말이 사실인지. 우리는 그게 알고 싶다고.”

시현은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저 남자가 김시욱인가…….’

불량한 외형이나 폭력적인 말투와 달리, 굶주리는 이를 위해 자신의 식량을 나눠 주거나 추위를 느끼는 동료가 있으면 옷을 벗어 주는 등 의외로 의협심 있고 선량한 사람이다.

자신을 향한 흉흉한 시선에도 신현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시현 씨로 말할 것 같으면 시청을 향해 날아오는 백여 마리의 악마를 단신으로 사냥한 구원자십니다. 심지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죠. 이 자리를 빌려 꼭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거짓을 말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도통 믿기 어렵군.”

김시욱의 의견에 동조하는 몇몇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현수 리더가 거짓말로 이 인원을 소집했겠어요? 시간도 없는데 생각 좀 하고 발언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소집 인원 중 유일한 여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이 같은 눈매에 길게 기른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20대 후반의 미인이었다.

반박하려던 김시욱은 혀를 차며 조용해졌다.

‘저 여자는……. 크라이시스의 리더 박여래인가.’

생존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세력의 경우, 건물의 이름이나 특징을 세력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반대로 구원자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생존자를 모아 만들어진 세력은 리더의 취향에 따라 독창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박여래의 크라이시스가 후자에 속했다.

원작에 나왔던 묘사만 가지고 상대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일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러면 박여래, 너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다고?”

“그럼 못 믿을 이유가 있나요? 애초에 악마라는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인 마당에. 솔직히 저는 이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해도 믿을 수 있어요.”

“……쳇.”

혀를 찬 김시욱이 입을 다물었다.

박여래가 싱긋 웃으며 신호를 주자 신현수도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현수는 사전에 준비한 화이트보드에 일회용 사진기로 찍은 사진 한 장을 걸었다.

멀리서 촬영한 현무의 사진이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현무가 얼마나 거대한지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되어 주고 있었다.

사진의 크기는 작았으나 이곳에 모인 전원은 구원자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사진을 확인한 이들은 신음을 흘렸다.

“김시욱 씨가 질문하신 대로, 대형 악마의 이동은 확인된 상태입니다. 생김새를 토대로 현무라 이름 지었습니다. 현재 현무는 계양구에 위치한 세력 요새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신현수가 두 번째 사진을 화이트보드에 걸었다.

거대한 동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붉은 용의 모습에 리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침음을 삼켰다.

“두 번째 대형 악마, 이그니스의 경우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현무와 이그니스의 충돌을 막아 인천에 닥쳐올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연합군을 창설해야 합니다.”

좌중에 침묵이 깔렸다.

여기 모인 세력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한곳에 모였다.

그것은 바로 생존.

악마가 들끓는 세상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서로 협동을 약속하고 뭉친 것이다.

하나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 법이니까.

“난 찬성하겠어.”

스타트를 끊은 이는 상당히 예상외의 인물로, 설득하는데 가장 고생이 예상되던 김시욱이다.

그는 연합군 창설에 동조하되, 영 떨떠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세력은 인천을 떠나면 틀림없이 전멸한다. 얼마 전 머무를 장소를 이전하느라 물자와 인력을 대거 소모했거든. 그렇다면 싸우는 수밖에 없지.”

그의 뒤를 이어 박여래도 힘을 실어 주었다.

“나도 찬성. 누가 우리 쪽 물자와 인력을 대거 빼돌린 까닭에 여유가 없거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전부 죽을 거야. 그렇다면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지.”

그리 말한 박여래는 은은한 살기를 담아 누군가를 노려봤다.

캡 모자를 눌러쓰고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젊은 남성이었다.

마스크에 매직으로 손수 그려 넣은 해골 마크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앞의 두 사람 못지않게 이름을 알린 스컬의 리더 강서원이다.

강서원은 그녀를 약 올리듯 눈웃음을 지었다.

가려진 마스크 밑에는 미소가 걸려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현 인천에서 시청 다음 가는 세력 둘이 작전의 참여를 결정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다른 세력도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대세는 기울었지만 아직 전부가 찬성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스컬의 강서원과 근육질을 가진 노년의 남성은 아직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 중 노년의 남성이 손을 들었다.

“질문이 하나 있네.”

“말씀하시죠, 선생님.”

“창설된 연합군의 지휘관은 누가 맡는 거지? 역시 자네가 맡는 건가?”

예리한 시선이 신현수를 꿰뚫었다.

모두가 쉬쉬했으나 가장 궁금해하던 질문이었다.

여러 색깔을 가진 전투원들이 한곳에 모인다면 당연히 그들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이 지휘관이라는 자리는 결코 가볍게 볼 자리가 아니다.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연합군에 속한 전투원의 생사 여부가 갈리기 마련이기에.

유능한 이가 지휘권을 잡는다면 적은 피해로 승리할 것이요, 무능한 이가 지휘권을 잡는다면 이길 싸움도 패배로 끝날 수 있다.

만약 애써 일궈 놓은 세력의 전투원들이 다른 누군가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전멸이라도 한다면 그보다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들은 유능한 지휘관을 원한다. 그 대상이 신현수였고.

그러나 신현수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시현과의 약속을 지켰다.

“저는 그 전쟁에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때문에 지휘권을 잡을 수가 없죠. 대신 저의 대리인으로서 시현 씨를 지휘관으로 추천할 생각입니다.”

회의장의 시선이 일제히 시현에게 향했다.

당황할 법도 하건만 시현은 태연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윤시현, 3레벨 구원자인가……. 자네가 보인 활약은 귀가 아플 정도로 전해 들었네. 정말 경이롭더군.”

회의는 약 한 시간 전에 시작되었으나 각 세력의 대표들이 집결한 것은 어제저녁이다.

시현의 노림수대로 그들은 네크로 비의 무리를 상대로 시현이 선보인 무용에 대해 전해 들었고, 3레벨 구원자의 존재에 경악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힘은 곧 권력이다.

그 증거로 몇몇 리더들이 찬동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사고가 똑바로 박힌 대다수의 리더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네의 강함은 인정하네. 하지만 내 입장도 이해해 주게. 내가 보기에 자네는 어느 날 갑자기 연합의 중심부에 나타나 권리를 주장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자네는 인천 사람도 아니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말해 주게. 서울에 소속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천의 위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네가 적극적으로 인천의 문제에 끼어들려 하는 이유를 말일세.”

노인은 철저하게 시현을 견제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시현에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회의에서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가진 김시욱과 박여래도 시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시현이 아니었다.

“먼저 선생님의 말씀에 오류가 있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과 서울에 있는 제 세력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관계는 충분합니다.”

“말씀해 보시게.”

“현무와 이그니스의 전투로 인한 여파가 인천에 퍼지면, 인천의 생존자들은 자연히 인천을 빠져나가 새로운 생존지를 모색하겠죠. 하지만 쓸 만한 생존지에는 이미 집주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천의 세력이 새로운 터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뿐입니다. 그리고 서울은 경기와 함께 인천의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죠.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뭔가?”

“제가 인천연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죠.”

“흐음?”

“먼저 설명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호텔은 서울에서 교단이라는 세력과 적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현은 차근차근 자신이 겪은 일들을 설명했다.

이한울과 맺어진 악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가 신혈과 레벨 서포터를 이용해 벌여 온 짓들을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짚어 설명했다.

사실 진심을 말하자면 인천연합과 손을 잡으려는 진정한 목적은 앞으로 있을 3차 아포칼립스 이후의 시대다.

그러나 미래의 일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기에, 견제도 할 겸 겸사겸사 이한울과 교단을 꺼내 든 것이다.

처음에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리더들도 어느덧 심취해서 같이 욕을 하며 시현의 말을 경청했다.

“하여 살아남은 학교의 생존자들과 함께 세력을 만들었지만 무장이나 물자, 인력 등이 교단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 때문에 인천에 있는 세력과 동맹 관계를 구축하려 했는데, 정작 그 인천의 세력들이 사라지면 저로서는 굉장히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게 제가 이번 일에 개입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흐음…….”

노인은 시현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마치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딱히 지은 죄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시현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싸움 끝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계획은 있나?”

“저는 겁쟁이라 지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노인은 면도를 하지 못해 입 주변에 자란 하얀 수염을 만지며 슬그머니 웃었다.

“그런 이유라면 믿을 만하지. 나는 찬성하겠네.”

“하지만 선생님, 저자의 무력은 검증되었지만 그게 뛰어난 지휘 실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무력이 아닌 집단을 통솔할 수 있는 지휘 능력 아닙니까?”

노인의 말에 반박한 이는 스컬의 리더 강서원이었다.

그의 논리적인 반박에 노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네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보는군. 항상 예, 아니오 정도로만 답하기에 굉장히 과묵한 친구인 줄 알았다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음, 자네 말도 맞네. 하지만 저 친구도 한 세력의 리더 아닌가. 경험이야 충분하겠지. 게다가 생각해 보게. 이 안에서 연합군 정도 되는 병력을 지휘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군의 간부, 그것도 최소한 중대장 정도는 돼야 경험이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반 전투원까지 계산한다면 대대장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안에 군의 장교로 복역한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휘관은 누가 되어도 무관하다는 뜻이겠죠.”

강서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잡아당겨 턱까지 내렸다.

입술의 좌측 부분에 턱까지 이어지는 크고 흉측한 상처가 보였다.

그가 1차 아포칼립스 당시에 입은 상처이며, 스컬의 리더 강서원이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휘권은 제가 갖고 싶습니다. 굴러온 돌보다는 인천연합을 함께 만들며 신뢰를 쌓은 제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찬성.”

가만히 논쟁을 지켜보던 김시욱이 강서원의 편을 들어 주는 걸 시작으로 리더들의 표가 갈리기 시작했다.

신현수와 노인을 포함해, 아무래도 3레벨 구원자이며 작전이 있다고 호언장담한 시현을 지지하는 표가 넷.

김시욱을 포함해, 신뢰할 수 없는 외지인보다는 연합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강서원을 지지하는 표가 넷.

그리고 기권표가 하나.

자연히 시선은 마지막 표를 가지고 있는 크라이시스의 리더 박여래에게 향했다.

“어라, 이거 혹시 내 손에 모든 게 달린 거야? 두 남자가 나 하나를 두고 싸우는 거 오랜 꿈이었는데.”

그녀는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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