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시현을 태운 차량이 요새의 정문을 벗어났다.
조수석에는 신현수, 뒷좌석에는 정은수가 함께하고 있었다.
턱을 괸 신현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나, 유리창을 통해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이 감자 샐러드처럼 한데 으깨져 어설프게 섞여 있는 표정.
그가 어째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시현은 알지 못했다.
반면, 그와 상당히 긴 세월을 친구로 지내온 정은수는 단번에 신현수의 감정을 알아맞혔다.
“시청에 두고 온 사람들이 그렇게 걱정이야?”
“이렇게 예정에도 없이 장시간 시청을 비운 건 처음 있는 일이니까. 게다가 요즘 조금 신경 쓰이는 일도 있고 해서…….”
“무슨 일?”
“좋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아직 확신할 단계도 아니라서.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네. 어디서 그런 게 기어들어 와 가지고.”
실제 두통이라도 있는 건지 신현수는 미간을 한껏 찡그린 채 이마를 짚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커다란 세력의 리더라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시현의 시선을 느낀 신현수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간만에 외출을 해서 그런지 기분 전환은 되네요.”
“신현수 씨도 구원자이니, 밖으로 나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하하, 저도 최전방에서 싸우고 싶은데 저희 세력원들이 도통 저를 내보내 주지 않네요.”
신현수는 시청에서 존경받는 리더다.
무력 면에서가 아니라 훌륭한 리더십과 뛰어난 판단력을 통해 몇 번이고 시청을 위기에서 구했다.
인천연합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신현수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시청의 생존자들은 그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 나라의 공주님을 보호하듯, 시청에서 나가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바깥이 위험하다지만 그런 생활이 답답하지 않을 리 없었다.
“간만의 외출이니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면 인천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기분 전환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네요.”
멋쩍게 웃으며 내뱉은 신현수의 말을 끝으로 차량은 속도를 더욱 높였다.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폐차와 정체 모를 고깃덩이들, 그리고 괴상망측한 신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달린 결과, 일행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흐음…….”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곳과 비교해 도로의 상태가 확연히 이상했다.
고깃덩어리 대신 까만 재와 검게 탄 무언가가 눌어붙어 있었다. 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존재하는 식물이라고는 희미하게 적색을 띠는 가시넝쿨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설마 배기음 때문에 그런가요?”
“그런 것보다는 이거 때문이죠.”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라고, 시현은 검은 지대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푸확!
바닥에 쌓여 있던 가벼운 재가 무릎 높이까지 솟구쳤다.
“소량이라면 괜찮지만, 대량의 가루를 한 번에 마시게 되면 호흡기를 못 쓰게 될 겁니다. 차를 이용하면 가루가 상당히 높은 곳까지 치솟을 테고…….”
말을 흐린 시현은 차량의 뒤편에 깨진 유리 언저리를 손등으로 툭툭 때리며 웃었다.
만약 생각 없이 차로 흑색 지대에 진입하게 되면, 괴물 쥐가 뚫어 놓은 저 구멍을 통해 검은 가루가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울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걸어가야겠군요. 그런데 시현 씨는 어떻게 이런 정보를 다 알고 계신 건가요?”
“생존자 하나가 그렇게 죽는 걸 봤거든요.”
뭔가 요즘 들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느낌이다.
아무리 Re write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니 그걸 무마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래서 옛 선인들이 거짓말을 죄악으로 꼽았구나 싶었다.
이럴 때는 진실을 고할 수 없는 Re write의 시스템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꼭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검은 지대로 들어갔다.
가루가 너무 높게 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시현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평역.
한때는 어마어마한 유동 인구를 자랑하던 역사였지만, 두 번의 아포칼립스를 거친 결과 초라한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던 시현의 눈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 아래쪽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마치 심연으로 향하는 통로 같았다.
시현은 손전등을 켰다.
마찬가지로 손전등을 준비한 신현수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길 내려가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침을 넘기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두 번째 대형 악마, 이그니스가 있는 거죠?”
타이밍 좋게 내부로부터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 모인 세 사람으로 하여금 뜬금없이 외출을 하게 만든 원인이 바로 이그니스였다.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 자연히 신현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씀하신 권한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연합의 리더들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 표와 지지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이그니스. 시현 씨가 말씀하신 두 번째 대형 악마를 제 눈으로 확인해야겠습니다.”
신현수의 조건은 타당한 것이었다.
아무리 민주혁의 지지가 있었다지만, 신현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현은 신원 불명의 구원자.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무조건 믿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필요한 법이다.
때문에 시현은 이그니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확인에 나서겠다는 신현수의 미친 행동력으로 인해 일행은 당일에 바로 이그니스의 영역 중심부인 부평역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나마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정은수와 달리, 첫 번째 대형 악마인 현무조차 사진으로만 봤던 신현수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중간에 뚝 끊겨 있었다.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춰 봤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죠?”
“이럴 줄 알고 챙겨 왔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웃은 시현은 비장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등반용 밧줄이었다.
칼로도 잘 끊어질 것 같지 않은 튼튼한 밧줄을 본 신현수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건 또 어디서 챙겨 오신 겁니까?”
“이런 일도 있을까 싶어서, 요새의 창고에서 슬쩍해 왔습니다.”
“요새에서는 별걸 다 수집하는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처음 요새에 방문했을 때도…….”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삐져나온 철근에 밧줄을 단단히 감았다.
하강용 장비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창고에 있던 건 밧줄이 다였다.
안전성을 확인한 시현은 밧줄을 반대쪽의 저 어둠 밑으로 던졌다.
다행히도 밧줄의 길이가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희미하게나마 밧줄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거 막 내려가면 손바닥 가죽이 죄다 벗겨질 텐데요.”
“괜찮습니다.”
신현수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현은 입에 손전등을 물고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밧줄을 잡은 손바닥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마찰 때문에 손바닥이 다 벗겨졌을 테지만, 시현에게는 외피가 있었다.
손바닥과 밧줄이 맞닿은 곳에서 마찰에 의한 불똥과 함께 떨어져 나간 외피의 파편이 부서졌다.
“와……. 외피 개사기네. 오늘만큼 2레벨 구원자가 부러웠던 적이 없어.”
정은수가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어쩌지?”
“어쩌긴. 두 팔에 힘 꽉 주고 조금씩 내려가야지.”
남겨진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한숨을 토했다.
먼저 바닥에 도착한 시현은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췄다.
좌우로 길게 커다란 통로가 뻗어 있었다.
왼쪽 길은 얼마 못 가 무너진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다.
발밑에 깔린 두꺼운 철로가 이동을 방해했다.
예전에는 지하철이 다니는 길이었으나 이제 이곳을 찾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신현수와 정은수가 바닥에 도착했다.
“후우……. 팔 떨어지는 줄 알았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신현수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옆에서 정은수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부르르 팔을 떨어 댔다.
“내려오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올라갈 때가 걱정입니다.”
벌써부터 그 순간을 떠올린 건지 정은수의 얼굴색이 새까맸다.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이동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외길이기 때문에 시현의 걸음은 거칠 게 없었다.
세 남자는 우측으로 길게 뻗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또다시 길이 뚝 끊겼다.
보이는 건 끝을 모르는 낭떠러지와 넓은 동공이었다.
“설마 또 여기를 내려가야 하는 건…….”
후욱!
“……아니겠군요.”
정면에서 덮쳐 온 어마어마한 규모의 열풍이 신현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시현은 낭떠러지 아래로 손전등을 내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빛을 반사하는 파충류의 비늘이었다.
색은 불꽃을 닮은 주홍색이며, 크기가 사람의 머리통만 했다.
손전등을 조금 이동시키면 세 갈래로 뻗은 황금빛의 갈기털이 보인다.
날카로운 손톱과 어떻게 저 거구를 지탱하는 걸까 싶을 만큼 가늘고 긴 뒷다리.
길게 뻗은 꼬리는 온몸을 감싸고 있으며, 머리의 뒤쪽에 기형적으로 생긴 네 개의 뿔이 돋아 있었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이 넓은 동공이 협소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몸체는 주기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열기를 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았다.
“저게 이그니스……. 엄청난 박력이 있군요.”
신현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지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가 당장이라도 힘이 풀려 쓰러질 듯 떨리고 있었다.
긴장한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설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 봤자 덩치가 클 뿐인 도마뱀.
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덩치에서 만들어지는 위용에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을 웅크리고 있음에도 콜로서스보다 1.5배는 큰 것 같았다.
“현무도 비슷한 수준의 위용을 자랑하겠죠? 은수, 네가 봤을 때는 어때?”
“둘이 비슷하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무보다 저놈이 더 무섭다.”
덩치는 비슷하지만 다소 둔해 보이는 현무와 달리, 날렵한 외관의 이그니스는 깊이 잠들어 있음에도 강력한 위압감을 발하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3레벨 구원자인 시현조차 거구의 이그니스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데, 이제 겨우 1레벨 구원자인 두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숨조차 제대로 쉬는 게 버거웠는지 두 사람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게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래서야 실전에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지독한 두려움을 잊어 보겠다는 듯 신현수가 필사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건…….”
차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을 수 없었다.
구원자라 해도 근본은 인간이었다.
저런 거구의 괴물을 앞에 두고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현무는 이그니스처럼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공포를 자아낼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못하겠어도 해내야죠.”
“그렇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어색한 미소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표정에 본심을 드러낸 신현수는 혹여 이그니스가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현 씨,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 연합의 대표들을 소집하겠습니다.”
* * *
이그니스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신현수는 처음 말했던 대로 시현을 향한 지지를 약속했다.
아무리 신현수가 앞으로 탄생할 인천연합의 총수가 될 인물이라지만, 인천연합은 말 그대로 다수의 세력이 모여 만든 연합이다.
한 사람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신현수라 해도 연합에 속한 구원자들에게 멋대로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다.
하지만 현무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각 세력의 구원자들을 한곳에 모아야 하는 상황.
당연히 연합 총사령관이 필요하고, 그 직함은 인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세력을 이끌고 있으며 사실상 인천연합을 만든 장본인인 신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현수가 감투를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시현을 지지해 준다면?
인천연합의 총사령관 감투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합니다.”
운전석에서 신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의 외출이니 운전을 해 보고 싶다는 신현수의 요청에 따라 운전대를 넘겨 준 것이다.
드라이브가 끝나 아쉽다는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푼 신현수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간밤에 잠을 못 자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시현도 그를 따라 졸린 눈을 비비며 차에서 내렸다.
정면의 도로에 폐차를 이용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너머로 쭉 뻗은 도로 끝에 시청의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도로 곳곳에서 무장한 전투원들을 보고 있자니, 그나마 남아 있던 졸음도 싹 달아났다.
“시청 주변을 아주 통째로 폐쇄해 버렸군요.”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세력이 만들어지고, 시청은 한 번도 악마의 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게 다 우리 리더의 현명함 덕분이죠.”
마치 자신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정은수가 으스댔다.
대놓고 비행기를 태우자 민망했는지 신현수는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첫 번째 바리케이드로부터 시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인천 최대 규모의 세력답게 건물 주변에 울타리와 함정 등이 설치되어 있어 악마의 침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오오…….”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역시라고 해야 할까.
시현이 여태껏 봐 왔던 그 어떤 세력보다 거대할 뿐 아니라 덩치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체계적이기까지 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마치 도시에 갓 상경한 시골 청년이 된 것 같았다.
시현이 리더로 있는 호텔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호텔이 학교의 잔존 인원을 모아 급하게 만든 세력이라고 하지만…… 차이가 너무 심하네.’
돌연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이 두 개의 낙인, 누구보다 앞서는 레벨 등을 가졌음에도 Re write의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부실한 세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합리적인 의심 말이다.
“가실까요? 간단하게 설명도 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시면 사양 말고 말씀해 주세요.”
제 영역에 들어온 후부터 정은수는 유독 활기가 넘쳤다.
마침 시현의 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저 사람들은 왜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요?”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공터에 다수의 텐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생존자들은 서로 몸을 맞대며 온기의 손실을 방지하고 있었다.
정은수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하게 시현의 호기심을 해결해 줬다.
“저 사람들은 테스트를 받는 중입니다.”
“테스트요?”
“아무래도 사람들을 막 받다 보면 범죄자나 감염자를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자는 시스템이죠. 아포칼립스 이전에 일용직 노동자였건, 국회의원이었건, 연예인이었건 관계없이 전부 평등하게 조사를 받는 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신현수가 시현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가 말하는 예외가 누구인지는 그의 눈동자에 확실히 비춰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저들은 정식으로 시청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시청에서는 부족한 전투원을 파견해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전투원의 무장 상태도 상당히 양호했다.
‘본래라면 나도 저기에서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겠지.’
그건 굉장히 귀찮고 비생산적인 행위다.
그렇기에 요새에서 신현수와 직통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예의 종이를 습득한 것이다.
다소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엄청난 수의 대기열을 보니,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가장 앞서 걷는 신현수의 뒤를 따라 텐트촌을 지났다.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현을 지켜보는 생존자들의 눈에 불만이 가득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왜 저자에게만 특혜를 주는가!’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들의 불만 어린 시선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텐트촌을 지나니, 드디어 시청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구원자 정도나 되는 고급 인력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긴 창을 품에 안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젊은 남성은 신현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리더, 이제 돌아오십니까?”
“경태 씨,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하하, 일인데 수고는요. 그런데 그분은 누구시죠? 일단 문지기로서 알아 두기는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이분은…….”
신현수가 막 시현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려던 찰나였다.
왜애애앵!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시청을 가득 채웠다.
조용하던 시청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혼란스러워졌다.
바리케이드를 점검하거나 주변을 경계하던 생존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텐트촌에 머무르던 생존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창을 든 젊은 남성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신현수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제길!”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이 사이렌은 악마. 그 중에서도 바리케이드로 막을 수 없는 비행형 악마가 침공했을 때만 울립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