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약속대로 한 시간이 조금 안 돼서 요새에 두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성과, 사람을 지적으로 보이게 해 주는 도수 낮은 안경을 쓰고 있는, 유한 인상의 남성.
두 사람 모두 2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두 손을 자유롭게 두기 위해서인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우산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음……. 이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엄청 위급한 상황이라 해서 달려왔는데, 되게 평화로워.”
살짝 비뚤어진 야구 모자를 고쳐 쓴 남자, 정은수가 말했다.
안경에 묻은 빗물을 옷자락으로 닦아 내던 남자는 이내 옷도 흠뻑 젖어 굉장히 무의미한 짓임을 깨닫고 멋쩍게 웃으며 안경을 안쪽 셔츠의 윗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알고 있는 요새는 이렇게 평화롭지 않아. 외부인의 방문에는 굉장히 민감하고.”
전에 왔을 때 다짜고짜 총구부터 들이밀던 101동의 생존자를 떠올린 남자는 쓰게 웃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세력이 언제든 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는 전쟁터.
그게 요새에 대한 두 남자의 인식이었다.
“아니, 어쩌면 상황이 끝난 걸지도?”
“만약 그렇다면……. 제발 103동이 이겨 줬으면 좋겠는데. 101동의 안현우라고 했나? 그 인간이 리더가 된다면 요새는 연합에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아, 은수야. 저기에 사람 있다.”
남자가 정은수의 등을 두드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은 요새.
그 중에서도 2층 창문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야?”
남자의 질문에 정은수는 미간을 한껏 구기며 안력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것을 사용했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정은수가 활짝 웃었다.
“주혁이다.”
“민주혁? 그렇다는 건 요새의 세력 다툼이 103동의 승리로 끝났다 봐도 되겠지?”
“그러지 않을까? 주혁이가 이겼으니 요새는 지금까지처럼 연합에 남아 주겠네. 다행이야.”
“그렇다면 이 쪽지 내용은 대체 뭐였을까.”
남자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곳에는 아이의 엉성하고 다급한 필체로 도와 달라는 짧은 내용이 기입되어 있었다.
“나야 모르지.”
어깨를 으쓱하는 정은수와 달리 남자는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설마 나를 불러내려고 한 건가?”
만약 평범하게 만남을 요청했다면 요새에는 정은수 혼자 방문했을 것이다.
남자의 엉덩이는 무겁다. 어지간한 일로는 시청을 떠날 수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시청의 리더 신현수, 그게 남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돼. 주혁이라면 시청에 방문하는 것만으로 나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이런 거짓말로 신용을 떨어뜨리면서까지 나를 호출한다고?”
“이거 또 이러네.”
걸음을 멈추고 입가를 매만지며 고민에 빠진 신현수를 보고 정은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잖아.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만나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무언가 함정이라고 생각된다면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네 권능을 사용하면 되고.”
“그러게. 내가 잔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고개를 끄덕인 신현수가 앞장서 걷는 정은수의 뒤를 따라갔다.
도중에 하늘을 향해 치솟는 핏빛 기둥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생겨 발이 묶이는 사고가 있었지만, 그 역시 민주혁에게 질문하면 될 일이라는 정은수의 핀잔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남자는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라도 권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신현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 신현수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저씨들!”
교복을 입은 민주혁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반갑게 웃으며 달려와 두 사람을 반겼다.
여기서 신현수는 또 하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누구지?’
민주혁의 옆에 초면의 남성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한 세력을 이끄는 리더가 된 민주혁이다.
아무리 민주혁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지식과 성인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을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다.
자연히 민주혁에게는 도움을 줄 보호자가 따라붙어야 했고, 그 역할은 늘 신민아가 담당했다.
즉, 민주혁이 가는 곳에는 자연히 신민아도 함께하는, 이른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신민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난생처음 보는 20대 초중반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역시 요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시현이라고 합니다.”
“신현수입니다.”
상대가 누군지 몰라 직급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우지 않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괜히 속이 불편했다.
“이분이 저희 103동을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요.”
반면, 민주혁은 윤시현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주혁이를 내가 도왔어야 했는데.’
연합에 속한 세력 전체에 연락망을 형성하느라 인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요새에 시청의 병력을 들이는 건 명백하게 선을 넘는 행위라서.
요새가 시청의 산하 세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어서.
그런 이유로 민주혁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음?’
하나 의문이 생겼다.
요새를 양분하고 있던 안현우의 세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신현수는 최소 스무 명의 전투원을 파견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민주혁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집단을 끌어들이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끌어들인 군대에게 세력 전체가 먹힐 수도 있으니까.
‘그 민주혁이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이 남자는 뭐야? 세력이 아니라면……. 개인?’
“아저씨.”
민주혁이 신현수의 손을 잡고 흔들며 자세를 낮춰 줄 것을 요구했다.
나이 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제 손으로 무덤까지 만들어 준 동생이 떠올라 괜히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게끔 웃는 얼굴을 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민주혁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놀라지 마세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무게를 잡아요?”
“시현이 형은요.”
“네.”
“3레벨 구원자예요.”
“……네?”
* * *
신현수와 만나는데 성공한 시현은 굉장히 들떠 있었다.
‘만약 참가자로 인해 시청의 상황까지 변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은 신현수가 아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시청의 리더로서 군림하고 있는 경우였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허사가 돼 버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굉장히 가벼운 마음인 시현과 달리, 어째서인지 신현수는 극도로 시현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만큼 3레벨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대형 악마에 관한 건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한참 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신현수가 입을 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 시현과 만났을 때만 해도 쪽지의 내용으로 자신을 속인 것을 트집 잡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형 악마에 관해서는 신현수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
어쩌면 최초일지도 모를 3레벨 구원자와 이야기를 나눌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
그 두 가지 이유가 신현수를 협상 테이블에 앉게 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시급을 다투는 내용이다 보니, 인천에서 가장 큰 세력의 리더이신 신현수 씨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듣기로는 인천의 세력을 모아 연합을 만드셨다고……. 그래서 더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했죠.”
시현은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거짓말을 했다.
아무래도 원작에 관한 내용을 등장인물들에게 발설할 수 없어 거짓말을 늘어놓다 보니 조금은 실력이 는 모양이었다.
옆에는 같은 참가자인 민주혁도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적절한 눈치를 갖춘 민주혁은 능숙하게 시현의 거짓말을 보조해 주었다.
꽉 말아 쥔 민주혁의 손에는 얼마 전 시현에게 받은 토큰 몇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먼저 저 대형 악마가 무슨 이유로 활동을 시작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조금 거슬러 올라가자면…….”
시현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시현이 요새에 방문했던 것부터 시작해 요새에서의 다툼, 현무가 발생하게 된 원인, 신혈에 관한 것까지.
신현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지만 그리 관심은 없어 보였다.
그가 관심 있는 쪽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 원인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다.
그걸 알고 있는 시현은 과거에 관한 건 짧게 끝마치고 현재를 꺼내 들었다.
“현재 신혈의 기둥으로 인해 대형 악마가 요새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속도를 생각해 보면 아마 열흘 정도면 요새에 진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무가 외형처럼 굉장히 느린 악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게 손을 쓸 겨를조차 없었을 테니까.
“요새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신현수는 시현이 아니라 요새의 리더인 민주혁에게 질문했다.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미성년자에게도 착실하게 존칭을 사용하는 점에서 그의 인격을 느낄 수 있었다.
민주혁은 슬쩍 시현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요새를 버리고 새로운 생존지를 탐색해 볼 생각이었어요. 시현이 형도 도와주시겠다고 했고요. 하지만 큰 문제가 생겨서 무산됐어요.”
거기까지 말한 민주혁은 시현에게 바통을 넘겼다.
대충 내용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통을 넘겨받은 시현은 사전에 준비해 둔 두 장의 종이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하나는 사전에 준비해 둔 인천의 지도였으며, 다른 하나는 시현이 밤을 새워 가며 그린 그림이었다.
“이게 뭡니까?”
“오오……. 겁나 잘 그렸어.”
신현수는 지도에, 그의 호위라도 되는 양 뒤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정은수는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먼저 지도를 확인해 주세요.”
시현이 꺼낸 인천의 지도에는 청색과 적색으로 영역이 양분되어 있었다.
시현은 손끝으로 청색 부분을 가리켰다.
“이 청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현재 요새로 향하고 있는 대형 악마의 영역입니다. 보통이라면 이 바깥으로는 나오려 들지 않죠. 하지만 며칠 전, 요새에 신혈이라는 예외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신혈에 혹한 대형 악마는 이러한 경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연필을 꺼낸 시현이 현무를 의미하는 별표를 시작으로, 동쪽을 향해 천천히 선을 그었다.
청색의 영역을 지나던 연필선은 경계를 지나 적색의 영역에 진입, 요새에 골인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이틀 내로 대형 악마가 적색 영역에 진입하게 될 겁니다.”
“잠시만요.”
정은수가 시현의 말을 끊었다.
“악마에게 영역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정확한 자료는 어떻게 구한 거죠?”
“정보 수집에 유용한 권능을 가진 구원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보의 출처는 보통의 등장인물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Re write에 담겨 있다.
시현이 가지고 있는 지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후 인천연합의 주도하에 발생할 인천 정화 작전에서 사용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다.
그러나 시현은 이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 장소에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포장해 줄 아군이 있었으니까.
“그렇죠? 민주혁 리더.”
“아, 네! 맞아요!”
민주혁의 보증이 있자 이번에도 두 남자는 순순히 시현의 거짓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 적색 영역은 뭐죠?”
당연히 나와야 했을 질문이 이어졌다.
시현은 지도와 함께 펼쳐 놓은 그림을 가리켰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시현의 스케치는 뛰어나고 섬세했다.
어두운 배경에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날개 없는 용.
스케치만으로도 그 위용이 전해져 오는 듯했다.
시현은 답을 공개했다.
“제게 정보를 전해 준 구원자는 이 악마를 땅속의 잠자는 용 이그니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적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영역으로 삼고 있는 대형 악마입니다.”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2차 아포칼립스 이후 인천에는 총 세 마리의 대형 악마가 등장했다.
첫 번째가 서부와 바다를 지배하는 현무.
두 번째가 강화도를 영역으로 삼고 있는 헤카톤케일.
마지막이 땅속의 잠자는 화염용 이그니스다.
헤카톤케일의 경우 거리가 너무 멀고, 이그니스의 경우 잠들어 있기에 신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형 악마는 자신의 영역에 굉장히 민감하다.
현무가 이그니스의 영역에 침공한 순간, 이그니스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뜰 것이다.
그때 이그니스가 신혈의 향을 맡는다면?
뒤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경악을 담는 걸 시현은 놓치지 않았다.
예상대로의 반응이다.
그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때 더욱 몰아붙여야 한다.
“지금은 지하에 숨어 잠자고 있지만, 영역에 굉장히 민감한 놈입니다. 만약 다른 대형 악마가 제 영역에 침입한 걸 알면 몰아내기 위해 눈을 뜨고 영격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요새와 그 인근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겠군요.”
“아니요.”
시현은 고개를 저어 신현수의 주장을 부정했다.
그는 굉장히 의아하다는 얼굴로 계속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혹시 대형 악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두 남자는 딱 잘라 부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천에 대형 악마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무, 이그니스, 헤카톤케일.
전부가 다른 대형과 달리 비교적 얌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놈들이니까.
반면, 시현은 아주 화려하게 자신의 등장을 알린 대형 악마에 대해 알고 있다.
“저는 본 적 있습니다.”
콜로서스.
교회에서 마주친 대형 악마는 아직까지도 시현의 뇌리에 남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낳고 있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본 대형 악마는 단 일격으로 전방 수 킬로미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현무와 이그니스도 동일한 힘을 가졌다 가정하면…….”
말을 하는 도중 시현은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쭉 의식해서 대형 악마라 칭하고 있었는데, 설명에 열을 올린 나머지 아직 명명되지 않았을 현무라는 이름을 꺼내 들고 만 것이다.
그러나 신현수는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받아들였다.
“현무라……. 막 생각해 내신 이름인가요?”
“……그렇습니다.”
“딱 맞는 이름이네요.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도록 하죠. 언제까지고 이놈저놈 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두 대형 악마는 몇 날 며칠을 싸울 테고, 아마 결론은 나지 않을 겁니다. 둘 다 지쳐서 제 영역으로 돌아가겠죠. 그사이에 신혈은 사라져 있을 테고. 하지만 그 전투의 여파를 받아 내야 하는 건 인천의 생존자들입니다.”
콜로서스는 그 커다란 국회의사당을 손짓 몇 번으로 붕괴에 가까운 타격을 입혔다.
분노를 담은 일격에 전방 수 킬로미터가 지옥도로 변모한 것은 아마 평생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특수 능력이 개인의 신체 능력 증폭에 집중되어 있어 비교적 파괴의 범위가 좁다고 알려져 있는 콜로서스조차 잠깐의 활동으로 그만한 결과를 냈다.
반면, 이그니스나 현무는 신체 능력보다는 특수 능력 쪽으로 발달된 대형 악마.
그 둘이 어느 정도로 도시를 파괴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천을 뜨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천을 떠난 생존자들이 안착할 토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생존자들을 몰아내고 그 장소를 차지해야 하는데……. 아마 많은 피가 흐를 겁니다.”
“…….”
신현수는 침묵했다.
현무와 싸우는 것과 다른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것.
무엇이 더 이득인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인격자이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다소 악랄한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기도 했다.
신현수가 전쟁을 떠올리기 전에 시현은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제게 현무를 몰아낼 수단이 있습니다. 현무를 토벌……까지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현무와 이그니스가 충돌하는 일은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가능합니다. 단…….”
한껏 단이라는 마지막 말에 신현수는 한껏 긴장했다.
사실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전부 이 한마디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 봐도 무방했다.
“제게 시청, 나아가서는 인천연합의 모든 구원자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연합군의 지휘관 자리요.”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