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시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그것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의 정체를 두 눈에 담는 순간 회피 대신 두 손으로 받아 드는 것을 선택했다.
“왕!”
습격자의 정체는 흰색 털을 가진 진돗개였다.
이제 막 어미젖을 뗀 것인지 몸집이 굉장히 작고 앙증맞았다.
“웬 강아지?”
시현에게 붙잡힌 강아지는 으르렁대기 바빴다.
놓아주길 바라는 건지, 시현의 옷자락을 열심히 물어뜯기까지 한다.
그것마저도 애교로 느껴질 만큼 치명적인 매력이다.
하지만 강아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다.
시현은 날뛰는 강아지를 안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이유는 안방에 있었다.
“…….”
내부를 확인한 시현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겼다.
쌍둥이로 추정되는 두 아이가 서로에게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10세 안팎으로 추정됐다.
키포인트인 밝은 금발을 확인한 시현은 아이들의 정체를 간파해 냈다.
“아스로이아 쌍둥이? 이 애들이 왜 여기에…….”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시현은 다급히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아직 호흡이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한껏 일그러져 있던 시현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어디 외상을 입어 기절한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띄는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아이들은 정신을 잃은 것일까.
다행히도 원인을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쩍 마른 몸과 갈라진 입술.
오랫동안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전형적인 증상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약과 붕대가 아니라 물과 음식이었던 것이다.
시현은 먼저 아이들의 입에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왕!”
“뭐야. 너도 달라고?”
악마가 가득한 도시를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시현은 상대적으로 물자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물도 아낌없이 제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것만으로는 대화를 할 여건이 안 됐기에 제대로 된 먹을 것을 제공했다.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을 아이들의 위가 놀라지 않도록 물에 건빵을 불려 죽처럼 만든 끔찍한 음식이었지만, 이들은 그조차 맛있다는 듯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아이들은 기운차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김세연이에요.”
“김세찬입니다!”
예상했던 이름이었기에 시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다는 건 분명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김세연과 김세찬.
천연 금발을 가진 이 혼혈 쌍둥이는 아주 특이한 축복을 하사하는 아스로이아의 사도로 유명하다.
자신이 가진 구원자로서의 모든 능력을 배로 증폭시켜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는 기사 임명.
자신의 신체를 전투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며 강화시키는 기사 서약.
서약을 가진 구원자가 임명을 받을 경우, 그 효과는 크게 증폭된다.
즉, 한 명이 싸우고 한 명이 어마어마한 버프를 넘겨주는, 둘이서 하나이자 둘이서 3~4인분은 족히 해내는 구원자가 바로 이들 쌍둥이다.
이들을 이곳에서 만난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행운이다.
‘당연히 다른 참가자가 진즉에 영입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거지?’
어쩌면 요새의 생존자들이 101동과 103동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유가 이들 쌍둥이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보다 자세한 이유를 알기 위해 시현은 그나마 똑 부러지게 말을 잘 하는 김세연을 불렀다.
“세연아.”
“왜요?”
“저기 101동이랑 103동에 나뉘어져 있는 사람들. 왜 싸우고 있는지 알고 있어?”
창 너머로 보이는 생존자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총을 겨눈 채였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를 굴려 요새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전부, 사이가 좋았어요. 민주혁이랑 현우 아저씨만 빼고요. 왜 그렇게 서로를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혹시 그 주혁이라는 사람이 201호에 살았어?”
“네!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감이 조금 좋거든.”
대충이나마 정보가 모이니 얼추 그림이 그려졌다.
참가자 민주혁.
그는 원작에서도 중요한 내용을 따로 노트에 기록해 놓을 만큼 철저하게 원작을 연구했다.
그런 사람이 요새를 몰락시키는 장본인인 안현우를 고깝게 여겼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201호의 참가자는 아직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성숙한 중학생이다.
의도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분명 안현우에게 싫어하는 티를 냈을 것이다.
그 결과, 안현우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을 테고.
시현의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크게 다퉜어요. 처음에는 분명 두 사람의 싸움이었는데, 어느새 현우 아저씨를 따르는 사람들이랑 주혁이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아파트 사람들 전체가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어요.”
김세연은 손짓 발짓을 죄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현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나이가 어려 그런지 핵심만 짚어 내는 요령은 떨어졌지만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말싸움은 주먹싸움이 되고, 누군가가 각목을 가져온 걸 시작으로 무기까지 동원됐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당시를 떠올린 김세연은 눈에 띄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온갖 욕설과 폭력,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공간은 아직 어린 쌍둥이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다.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울먹이기 시작하는 김세연으로 인해 시현은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김세연의 상처를 후벼 파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할짝.
어느새 김세연의 옆에 자리한 강아지가 떨고 있는 손등을 핥았다.
“두부야!”
김세연이 강아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강아지의 온기에 침착함을 되찾은 김세연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사람이 엄청 죽고 나서야 싸움이 멈췄어요. 가운데에 위치한 102동은 비워 두기로 약속하고 101동이랑 103동. 양쪽으로 사람들이 흩어졌어요.”
김세연의 설명 덕에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너희들은 왜 같이 안 나가고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저희도 나가고 싶었어요. 현우 아저씨는 무섭고, 주혁이랑 많이 친해졌으니까 주혁이가 있는 101동으로 가려 했는데.”
“했는데?”
“현우 아저씨가 저희들은 절대 101동으로 보낼 수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럴 거라면 차라리 죽이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희는 102동에 남아 있게 됐어요.”
“……안현우가 그랬다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쌍둥이가 안현우를 따라가려 했고, 그걸 민주혁이 길길이 날뛰며 막았다고 하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민주혁은 참가자이고, 쌍둥이 본인들조차 모르고 있는 쌍둥이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참가자가 아닌 일반 등장인물.
그것도 고작 몇 페이지에 걸쳐 퇴장한 엑스트라 악역일 뿐인 안현우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의심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안현우를 꼭두각시로 세워 두고 암막 뒤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있는 참가자가 있을지도.’
사실 말이 의심이지, 확신에 가까웠다.
이미 학교, 교회의 사건을 통해 참가자가 등장인물을 꼭두각시로 내세우는 경우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지 않았는가.
“세현아, 혹시 안현우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사람 있어? 뭔가 수상하다거나,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본 적이 없다거나 하는. 그런 사람.”
“혹시 그 아줌마 말하는 거예요?”
그럼 그렇지.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에 기분이 막 들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파트에서 본 적 없는 아줌마였지?”
“응.”
김세연이 동의를 구하자 김세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 두부를 몰래 납치하기까지 했어.”
“그래 놓고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그랬다느니 하면서 우리한테 막 친한 척하고. 이름도 가르쳐 준 적 없는데 이름까지 알고 있었어. 완전 스토커야!”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지 쌍둥이는 씩씩거리며 분개했다.
보아하니 원작의 지식을 사용해 쌍둥이를 사전에 꾀어내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방법이 좋지 않아 실패했고.
결국 아파트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데 실패한 두 명의 참가자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했고, 그들을 따라 아파트의 세력도 양분되었다.
그러다 발발한 내전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일시 휴전을 체결,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는 102동을 비워 두고 101동과 103동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세력의 힘이 팽팽한 지금 요새를 손에 넣는 쪽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
때문에 서로가 요새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를 지키고 서서 들어서는 사람을 족족 쏴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까스로 맞춘 균형을 기울게 만들 수 있는 쌍둥이가 상대방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요새에 남겨 둔 것이고.
‘아무리 이유가 있었다지만, 이 어린애들을 쫄쫄 굶겨서까지 방치를 해?’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아동 학대나 다름없는 만행을 저지른 두 참가자에게 분노 스택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들 쌍둥이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현의 옷자락을 김세연이 잡아당겼다.
내려다본 김세연의 표정은 몹시도 불안해 보였다.
“왜 그래?”
“밖에서 당장이라도 싸움이 날 거 같아요.”
전쟁이라니, 이건 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당황해서 창밖을 확인한 시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놀랍게도 김세연이 해 준 말에는 거짓 한 점 없었다.
101동과 103동.
두 그룹의 생존자들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듯 대치하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두세 명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무기를 겨누고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전투 가능한 전 병력이 동원된 것인지 머릿수가 상당했다.
“이 빌어먹게 약삭빠른 꼬맹이 새끼야! 쌍둥이 때도 그러더니 약속은 어쨌냐?”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거든? 아저씨네 사람인 거, 모를 줄 알아?”
“개소리 집어 치워! 이제 약속은 파기다! 요새는 우리가 차지하겠어.”
“좋아. 우리도 이참에 네놈들을 정리하고 쌍둥이를 데리고 나올 거야!”
양쪽 진영에서 젊은 남성과 어린 꼬마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각 세력의 대표인 안현우와 민주혁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못지않게 생존자들도 서로를 향해 증오심을 토해 내고 있었다.
지난 싸움에서 많은 수의 생존자가 사망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잃은 사람의 원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되어 크기를 부풀렸을 것이다.
저대로 두면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솔직한 심정을 고하자면, 시현으로서는 저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 죽어 나가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시현이 원하는 건 저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죽더라도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애초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 겨울날 차디찬 곳에서 쌍둥이를 굶주리게 만든 놈들이다.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얼마나 죽어 나가건 시현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쌍둥이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미 쌍둥이는 눈물을 쏟고 있었다.
“또 싸우려나 봐. 어떻게 해…….”
“우리 아빠처럼 주혁이도 죽는 거 아니야?”
학대에 가까운 방치를 당했으면서도 잠깐 친해진 참가자 민주혁의 안전을 걱정할 만큼 쌍둥이는 심성이 고왔다.
아이에 약한 건 민서라뿐이라 생각했건만.
아직까지도 그날 지키지 못한 이서윤을 떨쳐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현은 땅이 꺼지도록 숨을 뱉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에 불을 놓은 건 나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책임은 있겠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준비했다.
쌍둥이가 원하는 것은 민주혁이 죽지 않는 것.
나아가서 두 세력 간에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전쟁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101동 생존자들의 구심점인 안현우와 그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참가자를 처리하면 된다.
그리된다면 나머지 생존자들은 자연히 민주혁의 세력으로 흡수될 것이다.
설사 새로운 지도자를 세운다 하더라도 이미 힘의 균형이 깨어진 이상, 요새는 민주혁의 차지가 될 것이다.
“얘들아, 내가 이 싸움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줄까?”
“정말요?”
이미 악마와 싸우는 시현의 모습을 통해 그의 무력을 알고 있는 쌍둥이는 시현의 선택을 반겼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뭔데요?”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똑같은 자세에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볼일을 마치면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세력으로 돌아갈 거야. 그때 너희도 같이 가자.”
“…….”
쌍둥이는 대답 대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잠시 가족회의 시간을 좀 가질게요.”
“가질게요.”
“……그래.”
방구석으로 향한 쌍둥이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형은 왜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혹시 우리의 장기를 노리는 건가!”
“그냥 순수한 호의 아니야? 우리는 나이에 비해 되게 어려 보이잖아. 어쩌면 우리가 애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그런가?”
“게다가 배고픈 우리한테 먹을 걸 나눠 줬잖아.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두부도 같이 데리고 가 달라고 해 볼까?”
“그럴까?”
나름 속삭인다고 한 거 같지만, 3레벨 구원자인 시현의 청력으로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소리까지도 전부 들렸다.
의견 교환을 마친 쌍둥이가 다가오자 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두부도 데려갈 생각이었어.”
“헉!”
“다 들렸나 봐!”
“그러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화들짝 놀라 호들갑을 떠는 쌍둥이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준 시현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향했다.
창에서 내려다봤을 때보다 분위기가 몇 배는 더 흉흉해져 있었다.
누구 하나가 화를 참지 못해 방아쇠를 당겨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말이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