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미쳤다, 미쳤어……. 결국 그걸 도망 안 가고 잡아 버리네. 인정한다. 이놈 물건이야.
―다른 생존자들은 세력 부풀리기에 바쁜데, 윤시현은 착실하게 위험한 악마들을 처리하고 있군요.
―다섯 명이다. 저 쥐새끼와 조우하고 그냥 지나친 생존자의 수.
―그날이 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봤다. 그거면 충분하다.
독자들은 시현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의 칭찬 세례보다 더욱 시현을 기쁘게 만드는 것은 랭킹이 상승했다는 문구였다.
7위를 뛰어넘어 6위.
무언가 큰 이변이 없는 한 안전권이라 봐도 무방한 순위다.
기쁜 일은 연달아 발생한다더니, 덕분에 도로를 달리는 시현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인천에 도달하기 전에 3레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네.”
흥겨움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심지어 도로까지 뻥 뚫려 있었다.
오랜만에 속도감 있는 주행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신 나는 드라이브 끝에 시현은 인천 계양구에 접어들게 되었다.
여기부터는 정차되어 있는 차가 제법 많았다.
한참을 헤매던 끝에 시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계양동에 위치해 있으며 제법 규모가 있는 아파트 단지.
여기가 인천연합으로 향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
여러 강대한 세력이 모여 만든 인천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세력이 거주하는 장소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버스를 통째로 이용해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으어어어어.]
몇몇 악마들이 두 주먹으로 바리케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일단 저기를 넘어가야 할 거 같은데……. 귀찮은 것부터 정리해 둘까.”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시현은 팔을 돌리며 오랜 시간 운전하느라 굳은 몸을 풀었다.
이제 시현에게 소형 악마는 식후 운동거리 정도에 불과했다.
“……응?”
가까이 접근하던 시현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좀비 무리 사이에 변종인 구울이 하나 섞여 있었다.
자연히 약탈자들의 처형장에서 싸웠던 구울이 떠올랐다.
제법 고생했던 기억이다.
그러나 예전이라면 모를까, 3레벨에 도달한 지금의 시현에게 구울은 그저 경험치를 많이 주는 악마 중 하나일 뿐이다.
이자프의 낙인은 3레벨에 도달한데 반해, 아르하의 낙인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두 개의 낙인을 키워야 하는 시현은 탐욕적으로 경험치를 갈구했다.
* * *
“오오오오오! 야, 너 저거 봤어?”
“봤겠냐? 망원경은 네가 가지고 있는데. 이 멍청이.”
“아, 맞네.”
멋쩍게 웃은 김세영이 들고 있던 장난감 망원경을 옆에 있는 김세찬에게 넘겼다.
망원경을 넘겨받은 김세찬은 김세영 이상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오오오오!”
사용하는 단어의 다양성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장소를 고르기 위해 뛰어다니는 김세찬에게서 간만에 활력이 느껴졌다.
활짝 웃은 김세영이 창가로 다가갔다.
저 멀리, 어른들이 버스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누군가가 악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토록 두려운 악마를 일격에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병이라도 든 심장처럼 마구 뛰었다.
‘어쩌면 저 사람이 우리를 구해 줄지도 몰라.’
잊어버리고 있던 희망이 싹텄다.
“있잖아…….”
뒤를 돌아본 김세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방방 뛰던 김세찬이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잠깐만, 죽지 마!”
다급히 어깨를 잡고 흔들었더니, 미약하게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파…….”
“……나도.”
김세영은 김세찬의 옆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꼬르륵 소리가 좀처럼 사라지지를 않는다.
뭐라도 넣으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이 건물에 먹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서히 감기기 시작한 김세영의 눈에 거울이 보였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삐쩍 마른 모습까지 똑같았다.
이윽고 김세영은 완전히 눈을 감았다.
“왕!”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따뜻한 무언가가 김세영의 뺨을 핥았다.
* * *
3레벨 구원자의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현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구울을 토벌하는데 성공했다.
저번처럼 드롭 아이템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구울을 포함해 주변의 악마들을 깔끔하게 청소한 시현은 단지 내부로 들어섰다.
그곳 상황은 처참했다.
두 번의 아포칼립스를 버티지 못하고 죄다 무너져 내려, 멀쩡한 건물을 찾는 게 힘들 정도다.
그나마 멀쩡한 아파트 건물은 세 채뿐이다.
101동과 103동.
두 개는 반 정도가 날아갔지만, 102동 건물은 그나마 멀쩡한 축에 속했다.
뿐만이 아니다. 갈라진 대지의 틈이 성의 해자 역할을 하면서 마치 요새 같은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 장소는 실제로 생존자들 사이에서 요새라 불리기도 했다.
생존자가 상대라면 난공불락이라 봐도 무방하며, 악마라 해도 대형이 존재하지 않으면 결코 뚫리지 않는다.
방어율 100%.
요새의 생존자들은 늘 이 점을 자신들의 자랑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한 사람에 의해 요새는 몰락하고 만다.
안현우.
시현은 그 이름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뒀다.
안현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전까지 요새의 생존자들은 외부인을 경계할지언정 무작정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요새와 하나뿐인 입구를 막는 바리케이드를 믿고 있는 그들의 마음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존자들을 설득하거나 거래를 통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까지가 시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일까.
응당 있어야 할 입구의 바리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
입구는 훤히 열려 있었다.
아무리 요새라 해도 입구를 틀어막지 않으면 요새로써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설사 참가자의 개입이 있다 하더라도 요새가 열려 있는 건 이상하다.
요새의 가치를 아는 참가자라면 먼저 요새를 손에 넣은 후, 그 방비를 더욱 견고하게 하면 했지,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세한 건 부딪쳐 보면 알게 되겠지.”
여기 서서 고민하고 있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시현은 요새의 입구로 접근했다.
갈라진 대지 사이를 가로지르듯 넘어진 건물 잔해가 만든 아슬아슬한 다리, 그게 요새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다.
요새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팅.
얄팍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살짝 우측으로 꺾였다.
바닥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이 찌그러진 탄두라는 것을 알아차린 시현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쐈다고? 심지어 경고도 없이?”
정확하게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다.
외피가 없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관통당해 즉사했을 것이다.
요새를 장악한 생존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 선택이다.
이내 총탄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탄두가 외피를 두드리는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미, 미친. 저거 뭐야?”
“총알을 튕겨 내는데? 저거 2레벨 구원자예요!”
“와, 씨. 2레벨이라고? 갑자기 그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총알이 날아오는 좌측 방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돌아보니 101동의 3층에서 소총을 겨누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총이 통하지 않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현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들은 왜 요새인 102동을 내버려 두고 101동에 있는 거야?”
설마 싶어 시현은 103동 건물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103동 건물에서도 두 명의 생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을 통해 상황을 살피고 있던 그들 역시 총알을 튕겨 내는 시현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 외부인인가?”
“빌어먹을 새끼들, 외부에서 2레벨 구원자를 고용한 건가? 일단 쏴! 요새에 들어가게 두면 안 돼!”
“아씨, 신원 파악도 안 됐는데 무조건 쏜다고? 난 몰라! 리더한테 보고하러 간다!”
여성이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남성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로써 시현은 양쪽에서 쏟아지는 총알을 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그러나 3레벨 구원자가 되며 더욱 견고해진 외피는 최소한의 소모만으로 총탄을 막아 냈다.
수많은 총알이 외피에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거슬리게 느껴지는 게 전부였다.
총알이 거의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시현은 총알 세례 속에서 태연하게 생각에 잠겨 들었다.
‘요새는 텅 비어 있고, 양쪽 건물에 나눠진 생존자들은 요새에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
머릿속으로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일단 참가자가 개입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참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작의 지식을 적극 활용해 요새를 장악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원인은 두 가지로 유추되었다.
하나는 참가자의 능력 부족.
제아무리 사기라 말해도 좋을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참가자가 하나가 아닐 경우다.
Re write라는 이름의 게임은 참가자끼리 협력하기 어려운 규칙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요새에 눈독을 들인 참가자가 둘이었고, 그들이 서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면?
그렇게 가정하면 세력이 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것도 다 설명이 가능하다.
‘난감하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시현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도 못할 것이요, 인천연합과의 동맹 관계를 구축한다는 장원한 계획은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라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101동에도, 103동에도 총탄이 쏟아지고 있다.
다짜고짜 방아쇠부터 당기고 보는 저들이 순순히 대화 요청에 응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시현은 결정을 내렸다.
그의 선택은 101동도, 103동도 아니었다.
제3의 선택인, 요새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떠밀리듯 선택했다가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어어? 저, 저놈 요새로 들어가고 있는데?”
“막아! 막아야 해!”
“무슨 수로 막으라는 거야! 나가는 순간 벌집이 될 텐데!”
요란한 소음을 뒤로한 시현이 요새의 문을 열었다.
그가 요새 내부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총소리가 그쳤다.
예상했던 대로 요새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대충 내부를 살펴보던 시현은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에는 탄피와 부러진 무기들. 오래되어 보이는 핏자국과 피탄 흔적.’
다른 건 몰라도 이곳에서 집단 전투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1층의 탐색을 마친 시현은 2층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문이 잠겨 있었기에 강제로 비틀어 얼어야 했다.
‘이제는 철문도 힘으로 부술 수 있게 됐구나.’
어느덧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 버린 자신의 신체 능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201호 안에서 시현은 거실의 한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식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라면 족히 몇 개월은 버틸 수 있는 분량으로, 대부분 유통 기한이 긴 음식들이다.
시현은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민서라의 집에도 이 이상의 식량이 쌓여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에 이 정도로 식량을 쌓아 두지는 않아. 아마 생존자의 흔적인 것 같네.”
흔적은 방 안에도 존재했다.
최근까지 사용하고 있었는지 내부는 청결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침대의 사이즈와 디자인이다.
어떻게 봐도 성인이 사용할 만한 침대가 아니었다.
책장에는 중학교 교재들이 꽂혀 있었다.
“설마 참가자가 중학생?”
목숨을 건 게임의 참가자가 고작 중학생이라니, 주최자를 향한 불쾌함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공책에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원작의 내용 중에서도 중요한 것만 추려서 요약해 놓은 공책이다.
친절하게도 공책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1―3 민주혁.
“…….”
이로써 확실해졌다.
요새의 에피소드를 틀어놓은 참가자는 이제 겨우 14세에 불과한 미성년자였다.
* * *
Re write를 연재하는 참가자들은 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한 기회를 얻으려 자신의 목숨을 배팅할 정도로 간절하고, 절절한 사연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민주혁이라는 애는 뭐가 문제가 돼서 게임에 참가하게 된 걸까?”
혼잣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101동이나 103동, 둘 중 한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왕!”
고민에 빠져 있던 시현의 귓가에 개 짓는 소리가 꽂혀 들었다.
시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해졌다.
소리는 상층에서 들려왔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6층 정도에서 들려온 것으로 추정됐다.
“위쪽에 생존자가 남아 있는 건가?”
어쩌면 요새의 세력이 두 개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호의 탐색을 뒤로 미뤄 둔 시현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수록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연달아 들리는 외침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건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에 시현은 속도를 높였다.
소리는 정확하게 602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혀를 찬 시현은 강하게 힘을 줬다.
우직!
견고함을 자랑하던 문짝이 시현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문을 완전히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간 시현을 향해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