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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77화 (77/225)

[77화]

콜로서스.

한강에 둥지를 튼 대형 악마.

중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덩치를 자랑한다.

힘은 질량에서 비롯된다는 원리에 맞게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 습기가 충분할 경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까지 자랑하는 괴물이다.

주력은 톱니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입을 이용한 물리 공격이며, 궁지에 몰릴 경우 강력한 파괴 광선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지간한 고 레벨 구원자가 아닌 이상 단신으로 상대하는 것은 어불성설.

물량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레벨 구원자가 백 가까이 동원되어야 한다.

물론 그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테고.

바꿔 말하자면, 현시점에서 시현이 콜로서스를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은 0에 수렴한다.

“어쩌죠?”

마른침을 삼킨 임태연이 말했다.

세이렌의 피는 신혈과는 엄연히 성질이 다르다.

콜로서스의 식욕은 돋우지만 정신을 미치게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콜로서스는 세이렌의 피가 흩뿌려진 장소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현과 임태연을 목표로 삼았다.

가장 살집이 많은 장동건은 이미 도망치기 시작한 후였다.

“어쩌긴 뭘 어쩝니까.”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린 시현은 소매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악물고 튀어야지.”

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교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동건이 달아나는 방향과 같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으아아악!”

배후에서 임태연의 비명과 함께 굉음이 울렸다.

콰앙!

자그마한 돌 부스러기들이 시현의 뒤통수를 사납게 때려 댔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뒤를 돌아본 시현은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콜로서스가 두 사람이 있던 장소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고, 그곳으로 한강물이 흘러들어 와 자그마한 호수를 만들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주변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존재, 실로 대형다운 위력이었다.

[캬하하학!]

성대를 통한 게 아닌, 보통의 생물에게는 없는 특이한 기관을 이용해 소리를 흘리며 콜로서스가 뭍으로 걸어 나왔다.

콜로서스가 내는 소리는 대기의 흐름을 교란시켰다.

쿵! 쿵!

걸음을 뗄 때마다 굉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흐억!”

“괴, 괴무우우울!”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온 교회의 생존자들이 콜로서스를 보고 기겁하며 교회 내부로 달아났다.

콜로서스는 육중한 걸음을 내딛으며 일행의 뒤를 쫓았다.

가장 후미에 있는 임태연은 사색이 되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냈다.

“우아! 우아아아아!”

콧물과 눈물까지 동원하며 쥐어짜 낸 힘은 효과가 있었다.

조금씩 거리를 좁히던 임태연은 이내 시현을 추월했다.

“……이런.”

배후에서 느껴지는 콜로서스의 숨결이 아까보다 더욱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시현은 속도를 높였다.

전력으로 달린 시현은 발악하는 임태연을, 나아가서는 그의 앞에서 달리던 장동건까지 추월하는데 성공했다.

몸이 평소보다 한참은 더 가벼웠다.

“현질 템의 효과인가?”

이런 상황인데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은 시현은 더욱 강하게 땅을 박찼다.

“어? 어어어? 이, 이러면 안 되는데.”

한참 먼저 달리기 시작했음에도 따라잡힌 장동건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는 거의 구르다시피 하며 전력을 다했으나 애초에 그의 육중한 몸은 민첩함과 거리가 멀었다.

시현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으며, 임태연에게도 금방 추월당하고 말았다.

배후에서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리는 점점 느려질 뿐이었다.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장동건은 절규했다.

그러나 그의 절규는 두 남자의 동정심을 사지도 못했고, 세이렌의 피로 한껏 높아진 콜로서스의 식욕도 감퇴시키지 못했다.

[캬하하하학!]

콜로서스가 크게 손을 휘둘러 장동건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장동건을 머리 위로 높이 던졌다.

족히 수십 미터를 허공으로 날아오른 장동건은 중력에 의해 지상으로 추락했고, 그 장소에는 쩍 벌어진 콜로서스의 커다란 입이 있었다.

콰직!

강하게 입을 다문 콜로서스의 울대가 한 번 크게 꿀렁였다.

교회를 손에 쥐고 흔들던 참가자의 말로치고는 굉장히 허무했다.

입맛을 다신 콜로서스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그새 먼 곳까지 달아나 있는 두 남자의 뒤를 쫓았다.

* * *

시현은 눈앞에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콜로서스가 건물을 부수는 사이, 그 눈을 속여 달아날 심산이었다.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선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뭐야?”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시체들이었다.

그중에는 악마의 시체도 있었으며, 바닥과 벽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허억……. 허억……. 이, 이건…….”

시현의 뒤를 따라 국회의사당에 도달한 임태연이 입을 열었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인지 연신 입을 달싹였으나 숨이 찬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다.

“네크로……맨서…….”

“여기가 네크로맨서 장동건의 두 번째 작업장인 거 같다고요?”

끄덕끄덕.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시현에게 무한한 감사의 시선을 보내며, 임태연은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시현도 알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내부는 조금 전 봤던 예배당의 지하와 몹시 흡사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으니까.

임태연의 말에 따르면 악마교의 교주 전지운은 외부에서 울프 드래곤을 데려왔다고 한다.

아마 울프 드래곤의 고향은 이곳일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요. 응당 있어야 할 게 없는 느낌인데…….”

“네? 뭐가…… 이상하다는……. 헉헉, 그보다 빨리 도망가야죠!”

쿵!

굉음과 함께 국회의사당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유리문 너머로 바오바브나무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만큼 굵고 튼튼한 콜로서스의 다리가 보였다.

콜로서스가 두 팔을 이용해 국회의사당 건물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의문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돌가루가 머리 위로 쉼 없이 떨어졌다.

다급한 얼굴의 임태연이 시현의 팔을 잡고 흔들었을 때, 시현은 비로소 기묘한 의아함의 정체를 떠올렸다.

“……피가 없어.”

시체를 보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것들이 다수 보였다.

그러나 하나같이 피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빨아 낸 것처럼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를 않다.

그리고 시현이 아는 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피를 다루는 권능은 단 하나뿐이며, 그 권능을 가진 이는 한 사람뿐이었다.

시현은 단검으로 자신의 손끝에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

떨어진 피는 바닥에 닿는 순간, 철가루가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멋대로 흐르는 피를 따라 움직인 시현이 마주한 것은 새빨간 피의 웅덩이 중심부에서 눈을 감고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 강소하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강소하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시현은 건물이 한차례 흔들리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강소하, 너 여기서 뭐 해?”

“어?”

시현이 말을 걸자 강소하가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강소하의 눈이 피처럼 붉었다.

“이런……. 잠깐 눈을 감은 거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

한숨을 내쉰 강소하가 손을 휘젓자 주변에 가득하던 피가 한곳에 모여 응축되더니 사람의 머리통만 한 구체를 이뤘다.

강소하의 눈동자에서도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눈이 마주치자 강소하는 어색하게 웃으며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게 말이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여기에 오게 됐는데, 이게 웬걸! 네크로맨서의 흔적이 있는 거야. 딱 보고 아, 그 배불뚝이 자식이 뭔 일을 벌이겠구나 싶었지. 그래서 선수를 칠 겸 그놈의 시체를 못 쓰게 만드는 중이었어. 겸사겸사 내 힘도 늘리고.”

“너 네크로맨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

“어, 꼬맹이 때문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거든.”

“…….”

어째서 이곳에 강소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강소하와 만났다면 사건을 조금 더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다.

“시현 님.”

분함에 이를 갈고 있으려니, 임태연이 시현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그가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건물의 흔들림이 멎었어요.”

그제야 시현은 주변이 굉장히 조용해졌음을 깨달았다.

콜로서스가 포기한 걸까 싶어 창문으로 바깥의 상황을 확인한 시현은 기겁하고 말았다.

콜로서스가 국회의사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만 두고 보면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문제는 콜로서스가 향하는 방향이었다.

군침을 흘리는 콜로서스는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강소하, 어떻게 된 일인지 보고 와 줘.”

“그 정도야 쉽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눈치로 알아차린 강소하는 평소와 달리 군말하지 않고 시현의 지시를 따랐다.

온몸이 핏빛 안개로 변한 강소하는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강소하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교회의 정문 앞 공터에 여러 사람이 모여 콜로서스를 향해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던데?”

“그 멍청이들이!”

임태연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고, 시현은 분노했다.

보나마나 울프 드래곤을 진정한 수호신이라 믿고 있던 멍청한 몇몇 인간들이 새로운 수호신으로 압도적 무력을 자랑하는 콜로서스를 꼽은 것이다.

진실은 하나도 모른 채, 그저 원하면 이루어질 줄 아는 멍청한 족속들이다.

시현은 점점 멀어지는 콜로서스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콜로서스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상대는 대형 악마.

아무리 두 개의 권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고작 2레벨 구원자에 불과한 시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네크로맨서 뚱땡이는 어떻게 됐어?”

시현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강소하가 물었다.

“그거 중요한 질문이야?”

“조금?”

“죽었어. 멍청하게도 본인이 호출한 콜로서스한테 잡아먹혔어.”

“그래? 그렇다면…….”

강소하는 웃었다. 마치 자신이 가진 무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어린아이처럼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미소였다.

그에 맞춰 강소하의 주변을 떠돌던 피의 구슬이 움찔거렸다.

‘어쩌면…….’

시현은 한 줄기 희망을 봤다.

강소하는 어느 의미에서 보면 빌런에 굉장히 가까운 인물이다.

원작에서의 강소하는 구조파, 흔히들 말하는 기생충에 해당하는 생존자를 보면 가차 없이 목을 그어 버리는 과격한 인물이었다.

어찌 보면 미치광이 살인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브리언트의 권능 선혈의 맹세.

강소하가 가진 권능의 이름이다.

몸을 피의 안개로 바꾸거나 피를 이용한 공격을 하는 등 다채로운 사용처가 있다.

하지만 브리언트의 권능이 진정으로 무서운 점은, 평소에 피를 쌓아 두었다가 전투에서 모아 둔 피를 한 번에 터뜨려 일시적으로 레벨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작에서의 강소하는 인류의 미래에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인물은 즉결 처형하고, 그 피를 모아 저장해 두는 기행을 저질렀다.

물론 시현과 만난 후 강소하는 시현과의 약속을 깨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대량의 피가 흐르는 네크로맨서의 시체 안치소를 발견한 강소하는 그 피를 모조리 빨아들여 자신의 힘으로 치환한 것이다.

그 강소하라면, 콜로서스를 처치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힘을 소진시켜 잠재우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강소하.”

“왜?”

“지금부터 너랑 나랑 콜로서스를 친다.”

“좋아.”

고작해야 외피도 갖지 않은 1레벨 구원자이건만, 강소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캬하하하학!]

어느덧 교회 인근에 도달한 콜로서스가 오른팔을 크게 치켜들었다.

시현의 눈에도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기도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향해 콜로서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붉은 사슬이 콜로서스의 오른팔로 향했다.

[캬학?]

콜로서스가 사슬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나 회피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붉은 사슬은 콜로서스의 오른팔을 동여맸다.

“우선 하나!”

소리치는 강소하는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붉은 사슬은 태양만큼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린 붉은 구체로부터 시작되었다.

촤르르륵!

경쾌한 쇳소리를 내며 두 번째 사슬이 뻗어 나가 콜로서스의 목을 휘감았다.

[크아아아!]

콜로서스가 가볍게 몸부림치자 놈을 묶고 있던 사슬이 비명을 질렀다.

이내 사슬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러나 뒤를 이어 세 번째, 네 번째 사슬이 뻗어 나가 콜로서스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그제야 콜로서스는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호신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교회 안으로 달아났다.

“젠장……. 소모가 생각보다 크네.”

콜로서스가 사슬을 힘으로 부술 때마다 핏빛의 태양이 작아졌다.

무의미한 소모전을 해 봤자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건 강소하다. 때문에 강소하는 큰 한 방을 준비했다.

핏빛 태양이 반으로 갈라지며 커다란 창이 솟아나왔다.

콰앙!

폭음과 함께 쏘아진 창이 콜로서스의 가슴 한복판에 적중했다.

그러나 콜로서스의 외피는 건재했다.

아무리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를 빨아들였다 해도 겨우 1레벨 구원자가 어찌하기엔 대형 악마의 존재가 너무 컸다.

“아직 멀었어!”

강소하가 크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창이 드릴처럼 한 방향으로 맹렬하게 회전을 시작했다.

서서히 외피가 깎여 나감을 확인한 콜로서스가 온 힘을 다해 오른쪽 손의 사슬을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꿰뚫으려 용을 쓰는 창을 쳐내려 했다.

[이히히히히!]

하지만 수많은 유령들이 일제히 솟아오르며 콜로서스의 시야를 가렸다.

살짝 힘을 가하는 것만으로 맥없이 사라지는 유령들이었으나, 콜로서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갔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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