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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76화 (76/225)

[76화]

인간이 무언가를 행동할 때 그 원리는 대개 욕망이 원인이다.

식욕, 성욕 등의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 외에도 권력, 안전, 애정, 소속감, 자아실현 등의 이유로 인간은 행동한다.

시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교회에서 정점이 되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정답은 권력이다.

모든 생존자가 우러르며 남들을 손짓 하나, 말 한마디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압도적인 권력을 악마교의 교주는 손에 넣게 된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는 전지운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전지운은 그저 네크로맨서에게 조종당하는 시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네크로맨서가 원하는 게 권력이 아니었다면, 뭘 원해서 교회를 잠식한 거지?’

원하는 게 있으니 시체들을 이용해 자신의 병사를 만들고, 교회를 장악하고, 새로운 시체를 계속해서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걸 알아야 범인을 잡을 수 있다.

‘성욕……은 아닌 거 같고. 식욕인가?’

혼자서 한참이나 고민하던 시현은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은 늘 음식이 부족했다.

식재료를 생산해 내는 농장, 식품을 가공하는 공장, 그것을 도심까지 운송해 주는 운송업 등 사회 기반 전부가 가동을 멈췄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존에 있어 물과 식량은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인간끼리 싸우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식량이나 식수가 원인이 되고는 한다.

자연히 떠오르는 이는 장동건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조금 살이 많이 찐 사람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만났을 때, 천수민이 내뱉은 한마디에 시현은 자그마한 의심을 품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먹을 것을 구하는 건 쉽지 않고, 악마를 피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활동량은 말도 안 되게 늘어났다.

살이 붙으려야 붙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건만.

장동건은 하루에 고작 비스킷 5~6개 정도만 먹고 어떻게 저 체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의심은 있었지만, 악마교의 교주 전지운이라는 명확한 빌런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의심은 자연히 묻혔다.

기껏해야 살이 잘 안 빠지는 체질이구나 생각한 정도일까.

그러나 교주 전지운이 사실은 네크로맨서에게 조종당하는 시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자연히 의심의 화살은 장동건에게 향했다.

물론 단순하게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시현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혹시 자그마한 피라미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낚시터를 맴돌던 시현은 굉장히 지친 얼굴을 한 낚시꾼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우리가 머맨들로부터 목숨 걸고 물고기를 낚으면 뭐 해. 어차피 그것들은 1등 시민들의 배 속으로 들어갈 건데.”

“그러게 말이야. 왜 고생은 내가 하는데 배 불리는 놈은 따로 있어?”

“그놈의 1등 시민이 뭐라고…….”

당사자가 없다면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듯, 그들은 신명나게 1등 시민들과 교주 전지운을 씹어 댔다.

그를 통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개한 꽃도 부끄러워할 만큼 화사하게 웃으며, 밝은 미소를 짓는 남자.

커다란 바구니를 품에 안고 있는 장동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를 반겨 주었다.

“요리사 양반 오셨는가.”

“네, 오전 치 생선 받으러 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낚시가 아니라 요리를 배울걸 그랬어. 그러면 적어도 간을 본다는 핑계로 맛은 볼 수 있을 거 아니야.”

실없는 농담을 던진 낚시꾼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전부 장동건에게 넘겨주었다.

입맛을 다신 장동건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더니 교회로 향했다.

그런 장동건의 뒷모습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현을 향해 낚시꾼이 말했다.

“저 친구가 1등 시민들을 위해 요리하는 요리사라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엔 제법 실력이 좋았다고 하던데……. 에휴, 내가 잡은 생선인데 맛도 못 보는 내 팔자야…….”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하지 않은가.

교주 전지운을 필두로 1등 시민 전원은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체 군단이다.

그렇다면 낚시꾼들이 잡은 식량은 어디로 갔으며, 눈앞에 텅 비어 버린 창고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현시점에서 가장 의심되는 인물은 당연히 요리사 장동건이었다.

그는 2등 시민이다.

때문에 시현은 2등 시민이 있는 건물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끝내 장동건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도망간 거 같네요.”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일 수도 있잖아요.”

사실상 장동건이 네크로맨서라 확신하는 시현과 달리, 임태연은 아직 그를 믿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전지운에 의해 교회에 대한 모든 권리를 빼앗긴 후 곁에 남아 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그의 기대는 철저하게 배신당했다.

“장동건? 그 양반 조금 전에 밖으로 나갔는데?”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그러고 보니 뭔가에 크게 당황한 거 같던데……. 나야 잘 모르지.”

어깨를 으쓱하는 생존자의 증언에 결국 임태연도 인정하고 말았다.

믿었던 장동건에게 지금까지 철저하게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껏 풀 죽은 임태연의 어깨가 축 쳐졌다.

그러나 임태연은 고작 그 정도로 무너지거나 좌절할 인물이 아니었다.

“장동건이 갈 만한 장소가 한군데 있습니다. 가 보실래요?”

그새 회복한 임태연의 두 눈동자가 타오르고 있었다.

* * *

교주 전지운의 정체와 1등 시민들이 사실은 시체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교회는 난리가 났다.

일반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걸어 다니는 주변에 시체가 즐비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소름이 끼친다며 질색했다.

그 중에는 땅을 치며 통곡하는 이들도 있었다.

1등 시민을 가족으로 둔 자들이다.

“드디어 1등 시민이 됐다고,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하던 게 눈에 이리도 훤한데. 그 애가 죽었다니……. 크흑!”

“아이고,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이것들아, 내 남편 돌려내!”

눈물이 강을 이룰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천수민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크허어엉!”

마치 짐승처럼 오열하는 남자가 누구인지 천수민은 알고 있었다.

천수민의 부모를 죽인 부부 중에서도 남편 쪽이다.

그는 아내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남자를 보고 있자 가슴속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입가에 절로 초승달을 닮은 미소가 걸렸다.

복수 같은 건 하등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삶에 의욕 자체가 생기지를 않는데, 복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남자의 슬퍼하는 모습을 통해 환희를 느끼는 자신을 본 천수민은 깨달았다.

‘죽기 싫어.’

이 절망뿐인 세상에서 유일한 빛이 되어 주던 가족을 모두 잃었음에도 자신의 안에 살고자 하는 욕심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천수민은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살고 싶다. 그렇기에 무의미하다 느꼈던 모든 일에 의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천수민은 남자의 절망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그린 채 말이다.

* * *

“……저게 뭐야.”

시현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굉장히 추하고 슬픈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있기가 안타깝네요.”

시현과 같은 감정을 느낀 임태연은 헛웃음을 흘렸다.

임태연은 국회의사당에 장동건이 있을 거라 말했다.

처음 장동건과 만난 장소가 국회의사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 10분 거리에 있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두 남자는 보고야 말았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거친 숨을 토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장동건을.

“헉……. 허억……. 수, 숨차 죽겠다.”

비대한 몸에 심각한 수준의 운동 부족.

덕분에 장동건은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목적지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 결과, 한참이나 늦게 출발한 시현과 임태연에게 따라잡히고 마는 비참한 결과가 발생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넙죽 엎드렸다.

두툼한 살집 때문에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았다.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거야? 이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너밖에 없는 줄 알아?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사람을 죽이고 시체로 만들어?!”

되지도 않는 변명에 임태연의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들어 사정없이 장동건의 거구를 걷어찼다.

그러나 두툼한 지방층이 충격을 완화시켜 준 덕에 장동건은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리더, 잘 생각해 보세요! 생존자들을 시체로 만들면 입은 줄어드는데 노동력은 늘어나요. 엄청난 창조 경제잖아요! 물론 시체를 만드는 과정이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죽여 놓고 그게 할 소리야?”

“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장동건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임태연을 응시했다.

“고작 소설 속 등장인물일 뿐이잖아요. 저희랑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과몰입하시는 거 아니에요?”

“…….”

“…….”

그 순간 무거운 침묵이 일대에 감돌았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한참의 침묵을 깨뜨린 건 임태연이었다.

“너, 너 참가자였어?”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어? 몰랐어요?”

장동건도 크게 당황했다.

시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고.

―푸하하하하!

―가관이네, 아주 가관이야!

댓글창도 난리가 났다.

“망할…….”

욕이 절로 나왔다.

만약 장동건이 참가자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빙빙 돌아오는 일 없이 바로 그를 네크로맨서로 의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시현이 임태연에게 물었다.

시현의 방식대로라면 자비 없이 장동건의 목을 쳐야 한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면 그 죗값은 응당 그 피로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식욕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이를 학살한 사람이라면, 결코 그 죄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하지만 명목상이라 할지라도 임태연은 교회의 리더였다.

그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라도 결정권은 임태연이 가져야 한다.

“리더의 권리를 빼앗아 간 것은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장동건은 필사적으로 사죄했다.

문제는 사죄의 방향성이 너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고민할 것도 없죠. 제가 뭘 잘못한 줄도 모르는 놈을 무슨 용서입니까? 네 잘못은 내 권리를 빼앗아 간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거다! 그러니까 넌 사형이다!”

“그건 너무하잖아요! 고작 등장인물 좀 죽였다고 사형이라니요. 같은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죠!”

“넌 사람도 아니야!”

이미 임태연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더 이상 들어 줄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건지 임태연은 칼을 뽑았다.

일절의 흔들림도 없는 싸늘한 시선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장동건 역시 무기를 뽑았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동건의 검은 둔했다.

스걱.

느려 터진 장동건의 검을 가볍게 회피한 임태연이 단검으로 그의 복부를 그었다. 피부의 겉 부분만 찢은 가벼운 상처였다.

그러나 장동건은 심장이라도 꿰뚫린 것처럼 비명을 질러 댔다.

“으어어어어!”

전의를 상실한 것인지, 무기를 내던지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굉장히 꼴불견이다.

“저런 놈 때문에 내가 며칠이나 시간을 버렸다니.”

시현이 이마를 탁 쳤다.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쉰 임태연이 마무리를 위해 장동건에게 다가갔다.

발버둥 치던 장동건은 눈을 질끈 감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니까. 리더한테는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다 리더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한 장동건이 손에 든 물건을 힘껏 던졌다.

물건의 정체는 유리병 안에 든 붉은 액체였다.

‘설마…….’

시현은 경악했다.

지금까지 당한 게 많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신혈이 떠올랐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은 산산조각이 났다.

당연히 안에 들어 있던 붉은 액체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만다행이도 액체에서 신혈 특유의 달콤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신혈이 아니라면……. 이건 대체 뭐지?”

“뭐긴 뭐야.”

복부에 난 상처를 틀어막은 장동건이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아주 힘들게 구한 세이렌의 피다.”

시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짜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전부터 느낀 건데 참가자는 가진 정보가 많다 보니 빌런 짓도 규모가 다르게 저지르네.”

그건 그나마 양호한 반응이었다.

임태연의 경우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으니까.

“세, 세이렌의 피라면 설마……!”

“그래, 원작을 성실하게 읽었으면 너희도 알겠지. 세이렌은 콜로서스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여기는 한강이고, 콜로서스의 둥지이기도 하지. 지금이야 배가 고프지 않아 얌전히 있다지만, 가장 좋아하는 먹이의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으스대는 장동건의 말을 시작으로, 한강물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솟구친 물줄기는 비가 되어 떨어졌고, 그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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