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집회는 교회의 지하에서 진행되었다.
쿵. 쿵.
무거운 북소리가 분위기를 띄우고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낮고 섬뜩한 웅얼거림이 지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백열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횃불로 어둠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형성한 게 분명했다.
방의 좌우 벽에 1등 시민들이 나열해 있으며, 중앙에는 몸을 웅크린 울프 드래곤이 있었다.
2등 시민들은 당연한 듯 울프 드래곤을 중심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1등 시민을 제외하고 무릎을 꿇지 않은 이는 시현과 울프 드래곤의 옆에 자리한 교주 전지운뿐이었다.
시현은 서울에 갓 상경한 촌사람처럼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두리번거렸다.
‘여기였구나. 네크로맨서의 작업장!’
여전히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무표정을 한 전지운은 시현에게 잠깐 시선을 줄 뿐, 그의 태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모두 지난 한 주간 잘해 주었다. 우리의 수호신은 너희의 신앙을 기쁘게 받으셨다. 누구보다 교단에 헌신적인 너희는 그렇지 않은 자들의 위에 군림할 자격이 있다.”
무릎을 꿇은 자들의 표정이 교주의 말 한마디에 시시각각 달라졌다.
기대, 그리고 흥분.
2등 시민들은 자신이 권력의 상위권에 서는 그 순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1등 시민을 뽑도록 하겠다.”
교주의 지시가 있자 죽은 사람처럼 미동조차 없던 1등 시민들 중 몇몇이 움직였다.
그들은 소수의 2등 시민들에게 자그마한 그릇을 건넸다.
그릇에 담긴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고 끈적이는 액체였다.
“마셔라. 그를 통해 너희는 우리의 수호신에게 보다 가까운 존재가 될 것이다.”
선택된 자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 감사합니다!”
환호를 내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게 훤히 보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시현에게도 액체가 담긴 그릇이 건네졌다.
시현은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이건……. 그렇게 된 거였나.’
시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났다.
시현의 발밑에 깨진 접시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검은 액체 또한 어지러이 흩어졌다.
집회의 장에 끼어든 예정에 없던 소음은 이곳에 모인 생존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떨어뜨린 그릇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시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네가 부리는 건 울프 드래곤만이 아니었어.”
“……그 무력을 높이 사 귀하게 쓰려 했거늘. 역시 신앙심이 검증되지 않은 자를 1등 시민으로 올리는 건 무리였나. 쫓아내라.”
교주 전지운의 명령에 다섯의 1등 시민들이 시현을 둘러쌌다.
시현의 허리춤은 비어 있었다.
집회에 참가하기 전에 무기를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반면, 1등 시민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몸을 일으킨 울프 드래곤이 시현을 향해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아무리 시현이라도 맨손으로 변종 중형 악마인 울프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시현이 적진의 한복판에 대책 없이 무작정 기어들어 온 건 아니었다.
“아이고……. 수호신께서 노하셨다!”
“부디 저 어리석은 이를 벌하소서!”
이미 악마교에 한껏 심취해 있는 2등 시민들 역시 시현을 적대했다.
쏟아지는 시선은 경멸과 증오뿐이지만, 시현은 태연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저기요.”
“……저, 저요?”
시현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법한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크게 당황한 여성의 손에는 검은 액체가 담긴 그릇이 들려 있었다.
“거기 담긴 액체는 이빌 보아라는 악마의 독을 뽑아내 물에 희석시킨 액체입니다.”
“어, 네? 그게 무슨…….”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걸 마시고 나면 당신은 1시간 이내에 죽는다, 이 말입니다.”
검은 액체에서 나던 익숙한 냄새의 정체.
그건 바로 시현이 메탈 웜을 사냥하기 위해 제조한 독약에서 맡았던 그 냄새였다.
농축시키면 엄청난 덩치와 체력을 자랑하는 메탈 웜조차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다.
아무리 물에 희석시켰다고 하지만 사람이 버틸 만한 것이 아니다.
여성은 동요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헛소리하고 있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성이 시현을 조롱하며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대부분은 남자와 같은 선택을 했다.
긴 시간 동안 교회에서 군림했던 교주 전지운과 고작 며칠 전에 손님의 신분으로 합류한 시현.
사람들은 당연히 전지운을 신뢰했다.
“우리 교주님을 모욕하지 마라!”
“나가라! 당장 교회에서 나가!”
“증거도 없이 교주님을 모함하다니, 너 같은 건 우리 수호신께서 너를 벌하실 거다!”
시현을 향해 온갖 저주의 말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현은 태연한 얼굴로 그들이 주는 모욕을 받아 냈다.
어리석고 불쌍한 이들의 눈물겨운 발악이라 생각하니 화가 나기는커녕 그들이 가엾게만 느껴졌다.
“증거라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는데. 아까부터 썩은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거든요.”
시현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는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1등 시민 중 하나를 제압한 후 두건을 벗겼다.
“꺄, 꺄아아아아!”
“으아아악! 뭐야. 저게 대체 뭐야!”
집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1등 시민이 눈두덩이만 뻥 뚫어 놓은 두건을 이용해 철저하게 감추고 있던 것.
그것은 썩어 문드러진 얼굴이었다.
피부가 벗겨져 붉은 근육 조직과 잇몸이 훤히 드러나 있었으며, 머리 부분에는 두개골까지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의 외형이 아니었다.
“독약을 이용해 생존자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다시 일으켜 자신을 따르는 충실한 수족을 만든다. 그게 당신들이 되고자 했던 1등 시민의 진실입니다. 이 정도면 증거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그러면 아까 내가 먹은 건…….”
시현을 조롱했던 중년 남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독을 마신 몇몇 이들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큰 충격을 받은 생존자들이 교주를 향해 진실을 요구했다.
몇몇 폭력적인 이들은 근처에 있던 1등 시민 하나를 붙잡고 두건을 벗겼다.
그러자 드러난 건 머리의 반쪽이 날아간 여성의 얼굴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교주 전지운의 표정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죽여라. 여기 있는 전부를.”
지시가 떨어지자 1등 시민들은, 정확하게 말하면 움직이는 시체들이 지하실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울프 드래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제 어쩔 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교주님을 욕하지 말라며 시현에게 삿대질하던 이들이 이제는 시현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우스운 광경이었다.
생존자들을 뒤로 물린 시현은 울프 드래곤 앞에 섰다.
정의감이라거나 책임감 같은 같잖은 감정을 토대로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참가자만의 특권인 블랙마켓을 호출했다.
<참가자 윤시현의 소지 금액 : 3,004,632,200>
“이런 식으로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임태연 씨한테 언젠가 꼭 받아 내고야 만다.”
시현은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가진 돈의 절반을 소모해 아르하의 낙인을 구매한 후, 다시는 수중의 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다짐은 위기 앞에서 하등 소용없는 것이었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돈을 아껴서 뭐 하겠는가. 죽어서 저세상에 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찾던 물건을 발견한 시현은 구매를 확정 지었다.
<이끄는 태초의 빛 구매 완료.>
<참가자 윤시현의 소지 금액 : 2,650,032,500>
콰아아아!
횃불 따위로는 밝힐 수 없던 예배당의 지하를 강한 백색의 빛이 가득 채웠다.
[캬아아악!]
바로 지척에 있던 울프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으어어어어!”
“키아아아악!”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시체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진 채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크어어어…….]
빛에 노출된 울프 드래곤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살점이 흘러내리고 거기에 들러붙어 있던 털들도 함께 이탈했다.
드러난 뼈 사이로 녹은 내장이 흘러나왔다.
“효과 좋네. 역시 2억 5천만.”
쓰라린 지출만큼 쓴웃음을 지은 시현은 빛 속으로 손을 뻗었다.
긴 막대가 손에 잡혔다.
<이끄는 태초의 빛.>
태초에 어둠을 밝힌 빛을 모아 만든, 구슬로 장식한 지팡이.
가장 순수한 빛은 그 어떤 어둠도 밝힐 수 있으며, 빛을 따르는 이들에게 강한 축복을 부여한다.
빛에 노출된 악한 자를 취약하게 하며, 불사자는 죽음으로 되돌린다.
재사용 대기 시간 ― 5 : 23 : 59 : 32
눈부신 빛이 완전히 갈무리되고 나서야 시현은 새로이 구매한 보물의 외형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길게 뻗은 은의 막대 끝에 달린 날개 모양의 장식 세 개가 구슬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구슬의 색은 회색빛이며, 가장 중심부에서 순수한 백색의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천천히 덩치를 부풀리고 있었다.
“와, 역시 현질이 최고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시현의 미소가 향하는 곳에는 뼈밖에 남지 않은 울프 드래곤이 있었다.
그 뼈마저도 빠른 속도로 풍화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구원자들의 힘을 끌어 올려줄 뿐 아니라 악마를 약화시키고, 대상이 언데드일 경우 즉시 무력화시키는 가히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보물.
이끄는 태초의 빛은 확실하게 제값을 했다.
한껏 으스댄 시현은 교주 전지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
시현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아아아…….”
놀랍게도 교주 전지운의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두개골이 드러나더니 그마저도 뼛가루가 되어 버렸다.
전지운이 입고 있던 의복을 들어 올린 시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뼛가루에 섞인 살점의 양이 다른 시체에 비해 확연하게 적었다.
“아하, 그러니까 이놈도 애초에 머리만 멀쩡했지 몸 아래는 뼈밖에 없는 시체였다 이거지?”
당연히 네크로맨서의 정체는 교주 전지운이라 생각했다.
울프 드래곤은 늘 전지운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으며, 사실상 교주인 전지운 외에 악마교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없었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전지운 또한 네크로맨서에 의해 조종되는 시체에 불과했다.
얼마 전 임태연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전지운이라는 사람이 변했다고.
“그게 아니었어. 애당초 그 시점에서 전지운은 이미 죽었던 거야.”
사건의 원흉인 네크로맨서를 잡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린 시현은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2등 시민들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뭡니까?”
“저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의 사자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신의 사자께서 강림하신 거야!”
“악한 자의 말에 속아 눈이 멀어 있던 저희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당신이 진짜 저희의 수호신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자세를 낮추는 그들을 보며 시현은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괜히 뒤통수가 가려웠다.
“이런 전개는 생각 못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조금 전 시현이 보여 준 강렬한 빛은 그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한 시각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이랴.
시현은 이들을 구했고, 이들은 악마교라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종교 집단에 심취할 정도로 의지할 곳이 필요한 자들이다.
악마교의 정체가 사실은 걸어 다니는 시체들의 소굴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새로이 기댈 곳으로 시현을 선택했다.
그러나 시현은 이들을 위한 신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는 당신들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차가운 음성으로 한마디를 남긴 시현은 지상으로 올라왔다.
가장 먼저 시현을 반겨 준 이는 임태연과 천수민이었다.
“시현 님! 무사하셨군요. 갑자기 지하가 소란스러워서 걱정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걸으면서 이야기하시죠.”
시현은 빠른 걸음으로 교회를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예배당의 옆에 붙어 있는 부속 건물이다.
시현으로부터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임태연의 두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확장됐다.
“그게 전부 사실인가요? 1등 시민들이 전부 되살아난 시체였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살해해 새로운 시체를 만들고, 교주인 전지운마저 시체에 불과했다니…….”
그는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다 제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에요. 전지운이 희생자였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노력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겠습니까. 그런 것보다 저희가 할 일은 네크로맨서를 잡는 겁니다.”
시현은 부속 건물의 현관을 열었다.
예배당의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을 알지 못하는 2등 시민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현은 그들을 지나쳐 부속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예배당의 지하가 네크로맨서의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다면, 부속 건물의 지하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출입 권한을 가진 이는 1등 시민뿐이며 평소에는 몇 명의 1등 시민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다.
그러나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1등 시민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갔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임태연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반대로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시현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역시…… 네크로맨서는 그 인간이었구나.”
눈앞에 보이는 창고는, 굶주린 돼지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준으로 텅 비어 있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