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공을 쌓아서 1등 시민이 되는 것.
사실상 교주인 전지운과 독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었다.
때문에 시현은 해당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가하게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단번에 눈에 띌 수 있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을 세우기 위해 시현은 이른 아침부터 한강으로 나왔다.
“흐아암.”
어젯밤을 꼬박 새웠기에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금방 눈이 감겼다.
“스무 살 때는 이틀을 꼬박 새워도 쌩쌩했는데.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누가 들으면 한 삼사십은 먹은 줄 알겠어요. 아, 저기 보이네요.”
앞서 걷던 임태연이 밝게 웃었다.
한강 둔치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 중 열다섯 정도가 한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낚시꾼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왔다!”
타이밍 좋게 한 낚시꾼이 낚싯대를 잡아챘다.
제법 고급품으로 보이는 낚싯대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크게 휘어 있었다.
낚시터에 긴장감이 맴돌았고, 호위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한강을 겨눴다.
“젠장……. 이거 월척 아니면 악마인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일단 낚아. 악마면 우리가 해결할 테니까.”
“진짜 부탁한다. 지난번처럼 비명 지르면서 도망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우람한 체구에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낚시꾼이 열심히 줄을 감았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쓰던 낚시꾼은 결국 미끼를 문 무언가를 수면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천만다행히 미끼를 물고 있는 것은 커다란 잉어였다.
“됐다! 잉어다!”
“뜰채 가져와!”
낚시꾼들은 하나가 되어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렇게 낚아 올린 잉어를 품에 안은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입가에 침이 고였다.
“쓰읍!”
시현은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오랜만에 고기를 봤더니 순간적인 식욕에 오감을 지배당하고 말았다.
“낚시터라니……. 한강이 주변에 있으니 이런 장점이 있군요.”
“후후, 비록 민물고기밖에 잡을 수 없지만요. 나중에는 양계장도 만들고 돼지도 기를 생각이었습니다. ……네, 그럴 생각이었죠.”
으스대며 웃던 임태연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제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해도 그걸 이룰 수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허울뿐인 리더 임태연에게 계획을 현실로 옮길 능력은 없었다.
“생선 말고도 치킨이나 돼지고기……. 꼭 먹고 싶었는데.”
“그런 것보다 저 잉어, 오늘 점심 식단에 올라오는 겁니까?”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그래 봤자 저희는 못 먹겠지만. 보나 마나 1등 시민들 접시에나 올라가겠죠. 고기가 많이 잡히는 날이면 2등 시민 중 일부한테도 돌아가려나?”
시현은 세상이 붕괴하는 충격을 받았다.
저리 살 오르고, 토실토실한 잉어를 눈앞에 두고도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낚싯대 하나만 빌려 주시죠.”
“시현 님, 저희의 역할은 낚시터를 둘러보고 주변에 악마의 무리 등 위험 요소가 있으면 제거하는 겁니다. 낚시는 낚시꾼들의 역할이고요.”
결국은 노동에 비해 얻는 건 없는, 열정 페이란 소리다.
이마를 탁 친 시현은 더 이상 떠들어 봐야 입만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임태연과 함께 한강 둔치를 돌아다녔다.
심심찮게 머맨이 등장하는 한강 둔치에서도 그나마 안전한 장소에 설치된 낚시터는 총 다섯 개.
정찰을 하며 발견한 위협이라고는 낚시터를 공격하려 준비 중이던 소규모 머맨의 무리가 전부였다.
시현은 힘없는 머맨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
[꺄아아아!]
일부러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물고기 입에서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울리도록 주먹으로 두드려 팼다.
그렇게 다섯 마리째 머맨의 전신을 으깨놓았을 때.
“시현 님!”
다급하게 소리치는 임태연의 손끝이 한강으로 향했다.
어두운 한강물 아래에서부터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육지를 향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다리를 가진 거대한 문어였다.
피부는 보랏빛이며, 혐오감을 일으키는 줄무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했다.
촉수 끝에 달린 두 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대지를 길게 찢어발겼다.
처음 보는 형태의 악마였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임태연이 해당 악마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형 악마인 칼날 고리 문어입니다. 촉수를 이용한 무차별 공격에 주의하세요! 분노하면 붉게 변하며 폭발하니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시현은 땅을 박찼다.
길게 드리운 그의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유령들이 칼날 고리 문어를 향해 진격했다.
그 기세가 사뭇 대단하다.
칼날 고리 문어는 마구잡이로 촉수를 휘둘렀다.
그러나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유령들은 공격을 무시한 채 마음껏 적을 희롱했다.
시현도 그 사이에 참가해 촉수를 마구 베었다.
의외로 강도가 있는 편이었지만 무기에 권능을 두르니 두꺼운 촉수가 두부처럼 쉽게 갈라졌다.
[무우우우!]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분노한 칼날 고리 문어의 신체가 촉수 끝부분부터 빠르게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물러나!”
사전에 언질을 받은 시현은 빠르게 거리를 벌렸지만, 유령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캬하하하하!]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느라 여념이 없던 유령들은 시현의 명령조차 듣지 않았다.
콰앙!
결국 굉음과 함께 칼날 고리 문어를 중심으로 화염이 솟구쳤고, 유령들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소멸했다.
반면, 대량의 불길을 내뿜은 칼날 고리 문어는 다소 힘이 약해졌을 뿐 싸우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와……. 유령궁주 유설이 악마랑 싸울 때 비실거렸던 이유가 다 있구나.”
인간을 상대로 싸울 때 유령 군대는 모든 걸 압도하는 정복자처럼 사기적인 성능을 선보였다.
그러나 악마가 상대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리 세공품처럼 나약한 면모를 보였다.
더군다나 가지고 있는 연기자 또한 악마를 상대로는 별반 효율을 못 보는 권능이었다.
따라서 시현이 쓸 수 있는 권능은 사실상 처형 하나라 봐도 무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연이의 권능을 베껴 둘걸 그랬어.”
물론 다소의 페널티가 있다 해서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크게 휘두른 검이 칼날 고리 악마의 얼굴에 큰 상처를 만들었다.
시현이 가진 권능으로 인해 상처로부터 대량의 피가 솟구쳤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상처와 흘린 피는 누적되었고, 어느덧 칼날 고리 문어는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을 때.
[크아아아아!]
웬 잿빛의 섬광이 시현을 스쳐 지나가더니 칼날 고리 문어의 머리통을 물었다.
교회의 수호신인 울프 드래곤이었다.
울프 드래곤은 칼날 고리 문어를 입에 문 채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고, 빈사 상태였던 칼날 고리 문어는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아오오오오!]
울프 드래곤이 고개를 치켜들며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오오오!”
“역시 우리의 수호신님!”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본 낚시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울프 드래곤을 찬양했다.
반면, 시현은 이를 갈며 울프 드래곤을 노려봤다.
“막타는 선 넘는데.”
슬쩍 시현을 흘긴 울프 드래곤은 꼬리로 바닥을 거칠게 내려치더니 교회로 되돌아갔다.
털이 풍성한 꼬리가 시현의 코끝을 살짝 스쳤다.
“……윽!”
그 순간 시현은 얼굴을 확 구기며 코를 틀어막았다.
순간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한 20년은 된 하수구를 청소할 때나 풍기는 냄새 같았다.
멀어지는 울프 드래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현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저 망할 놈! 파충류인지 포유류인지도 모를 잡종이 감히 시현 님의 사냥감을 가로채다니!”
곁으로 다가온 임태연이 시현의 몫까지 화를 냈다.
언성을 높이며 방방 뛰던 임태연은 시현이 웃고 있음을 깨닫고는 분노를 멈췄다.
아주 찐득하고 섬뜩한 미소였다.
“저……. 시현 님? 왜 웃고 계세요?”
“태연 씨, 저 울프 드래곤 엄청 냄새 나네요. 음식물 쓰레기장에서 뒹굴다 온 것 같은 냄새였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네? 뭐가요?”
“드래곤 종 악마는 고양이처럼 자신의 청결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물에 자주 들어가 목욕을 즐기며 털이 있는 놈의 경우 그루밍을 하는 모습도 자주 관측되고. 그런데도 몸에서 썩은 내가 난다라……. 심지어 그놈이 인간의 명령을 순순히 따른다?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아!”
밥상을 차려 주고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어 주고 나니 임태연도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하던 임태연이 비로소 시현이 생각하는 정답을 내놓았다.
“네크로맨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작에서도 뜬소문으로만 존재했던 불사의 권능.
그울라의 축복을 받은 구원자를 두고 사람들은 네크로맨서라 불렀다.
만약 네크로맨서가 존재한다면 악마가 인간을 따르는, 말도 안 되는 일조차 설명이 가능하다.
아까 맡은 시궁창 냄새가 사실은 시체 썩는 냄새였을 거라 시현은 반쯤 확신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요? 그 냄새가 명확한 증거 아닌가요?”
“2레벨 구원자인 저조차 접촉하고 나서야 그 냄새를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임태연 씨를 비롯해 다른 구원자나 생존자는 냄새를 맡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굉장히 실력이 좋은 네크로맨서인가 보네요.”
“무엇보다 Re write의 네크로맨서는 권능을 다루기 굉장히 까다로워요. 시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재료와 사전 작업, 준비 기간이 필요하죠.”
Re write의 네크로맨서는 여타 판타지 소설처럼 ‘일어나라’라고 명령하면 시체가 ‘넵!’ 하고 일어서는 것과 다소 형편이 다르다.
네크로맨서는 시체에 장시간 권능을 부여하고 재물을 소모해 가까스로 하나의 움직이는 시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과정은 굉장히 잔혹하며 넓은 장소를 요구한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즉, 네크로맨서를 몰아세우기 위해서는 네크로맨서의 작업실을 찾아야 한다.
“임태연 씨, 교회에는 네크로맨서가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음…….”
한참을 고민하던 임태연은 가까스로 대답을 내놓았다.
“엄청 많죠.”
교회는 넓다.
굳이 이렇게까지 넓은 부지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네크로맨서의 작업실로 사용될 만한 넓은 장소 또한 다수 존재한다.
의심되는 장소가 너무 많아 어디부터 조사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하아.”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 예상대로 오전, 그리고 오후 시간을 꼬박 투자했음에도 네크로맨서의 작업실을 찾는 작업은 그리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 * *
“……너무 적어.”
식사를 하던 임태연이 불만을 터뜨렸다.
여느 세력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식량을 공정하게 배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교회는 세력의 인원이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그 이상으로 물자도 풍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급되는 식사량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이건 정말 너무하네요. 식량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애초에 리더는 난데, 왜 식량은 전지운 그 자식이 통제하는 건지…….”
임태연은 제 손에 놓인 비스킷 세 조각을 보며 몇 번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그랬다.
물 없이 먹으면 목이 막혀 죽을지 모르는 퍽퍽한 비스킷 세 조각이 오늘 저녁 식사의 전부였다.
심지어 교회는 하루에 두 끼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잡은 물고기들은 다 누구 배 속으로 들어간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사실 아닌 척해도 내심 기대했는데……. 그나저나 수민이 넌 뭘 그렇게 봐?”
시현의 질문에 천수민은 대답 대신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제 만났던 거구의 생존자, 장동건이 비스킷을 씹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씹는다는 표현보다 삼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잘 먹기는 하네. 그런데 그게 왜?”
“고작 저거 먹고 어떻게 저런 거구를 유지할 수 있나 싶어서요. 인간이란 참 신기한 생물이네요.”
“……그러게.”
천수민의 말대로였다.
겨우 이 정도 식사로 장동건 수준의 거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체질을 가지고 있던가. 식량을 빼돌리고 있던가. 정답은 둘 중 하나이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임태연이나 교주인 전지운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왜 방치해 두는 거지?’
문득 생긴 의문에 깊이 생각에 잠겨들려던 찰나.
“교주님으로부터 전달 사항이 있다! 귀를 기울여라!”
돌연 들려온 누군가의 외침에 떠들썩하던 식당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교회에 속한 생존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엎드렸고, 그 중앙에는 1등 시민 하나가 서 있었다.
흐트러진 두건을 고쳐 쓴 그는 식당을 한 번 쭉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 시간 후, 집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2등 시민은 준비하도록.”
“오오오!”
“드디어…….”
몇몇 생존자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두 손을 맞잡으며 기도하거나, 야심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거나, 간절함을 담아 1등 시민을 응시하거나 등등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대체 집회가 뭐기에 저러는 겁니까?”
“2등 시민 중에서 새로운 1등 시민을 뽑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해 신분 상승의 기회죠.”
생존자들이 내는 소음이 컸기 때문에 임태연은 시현의 귀를 빌려 속삭였다.
결국 자신들은 참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기에 시현은 뚱한 표정으로 남은 비스킷을 마저 씹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보통이라면 할 말을 마침과 동시에 퇴장하는 작자들인데, 왜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임태연의 시선은 줄곧 1등 시민에게 못 박혀 있었다.
그의 말대로 1등 시민은 할 말을 전달한 후에도 퇴장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껏 떠들어 대던 생존자들도 하나둘 이상함을 깨닫고 1등 시민에게 시선을 줬다.
식당에 다시 한번 고요함이 찾아왔다.
모두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한 1등 시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집회에는 특례가 있습니다.”
그 순간.
시현은 두건을 쓰고 있음에도 1등 시민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음을 깨달았다.
“윤시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전투에서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인 당신은 특례로써 집회에 참여하세요.”
권유가 아닌 지시임에도 시현은 미소를 그렸다.
언제 물어뜯을지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목덜미를 들이미는 사냥감이라니.
‘오히려 좋아.’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