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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73화 (73/225)

[73화]

임태연의 방은 나름대로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침대와 솜이불이 있고 옷장에는 몇 벌의 옷이 갖추어져 있으며 인테리어를 위한 가구들이 몇 개 놓여 있다.

현대인의 시점에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아포칼립스 이후 문명과 직결된 물자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방이라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려, 작은 사이즈의 개인 냉장고도 있었다.

차가운 콜라 한 캔을 받은 천수민은 간만에 나이에 맞는 미소를 지었다.

반면, 시현은 캔의 뚜껑조차 따지 않은 채 맞은편에 앉은 임태연을 응시할 뿐이었다.

아까 본 광경이 도저히 눈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음……. 이게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는 한데. 사실 아까 봤던 그 무표정한 남자가 바로 전지운입니다. 시현 님이 예상하신 대로 제가 그 남자를 구했어요.”

“이유가 뭡니까?”

“시현 님이 최강의 빌런이었던 이나연, 그리고 나태의 군주인 강소하를 고쳐 쓰신 것처럼 저 역시 전지운을 고쳐 써 보려 했죠. 하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성대하게 실패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더군요.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 다리 찢어진 꼴이 됐어요.”

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뱉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깊은 애환이 묻어났다.

“저는 전지운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지운도 저를 잘 따라 줬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변하더군요.”

들고 있던 음료를 한 모금 삼킨 임태연은 천천히 자신이 겪은 일들을 설명했다.

비록 등장과 동시에 퇴장 당하는 빌런이었으나 능력만 놓고 보면 전지운은 꽤나 우수한 인재였다.

그가 가진 권능은 일반 생존자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회복형 권능이었으며, 전투 센스 또한 나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였던 정신 오염이 해결되었으니 남은 건 꽃길을 걷는 것뿐이라고, 임태연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지운은 자신의 은인이던 임태연을 배신하고 신흥 종교를 창립, 자신은 교주가 되어 생존자들을 지배하에 두기 시작했다.

“악마교라고 하는데……. 아까 보셨다시피 돌연변이 중형인 울프 드래곤을 신이랍시고 받들고 있어요. 그뿐이라면 그냥 미친놈 취급을 받았겠지만 문제는 어떻게 된 건지 울프 드래곤이 전지운의 통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그는 멀쩡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솔직히 저희는 알잖아요.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악마는 결코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는 불변의 법칙이다.

“솔직히 저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덕분에 생존자들은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전지운한테 충성하고 있어요. 명목상 놈은 악마교의 교주고 저는 교회의 리더이지만, 사실상의 권력은 전지운이 쥐고 있는 셈이죠.”

다시 말해 임태연은 이 세력을 제 손으로 일궜지만 결국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허울뿐인 리더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 시현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악마를 지배하에 둘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전지운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려면 1등 시민이 되어야 해요. 하지만…….”

시현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직 뭔가가 있다는 것을.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전지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저를 믿고 따라 주는 동료 하나를 잠입시킨 적이 있습니다. 3등 시민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높이던 그 친구는 결국 1등 시민이 됐고. 그대로 전지운의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그 사람이 임태연 씨를 배신한 거 아닙니까?”

“그 친구는 참가자였습니다. 저와는 달리 착실하게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었고요.”

“그것 참 수상하군요.”

착실하게 승리를 노리던 참가자가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에 진심으로 심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주기적으로 세력의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고 있어요. 그들 모두가 악마교에 심취해 있던 사람들이니, 분명 악마교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

임태연은 간절하게 시현을 응시했다.

마치 시현이 마지막 희망이자 구세주라도 되는 것처럼.

처형장에서 그랬듯 자신을 도와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선뜻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설 수 없었다.

시현은 결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노려야 할 것은 승리. 그리고 생존이다.

그를 위해 당장이라도 인천에 가야 하는데, 여기서 발목을 붙잡혀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죄송합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렇군요. 괜히 시현 님에게 부담을 드린 거 같아 죄송합니다.”

한껏 고개 숙인 임태연이 안타까웠지만 별수가 없었다.

작별을 고한 시현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방을 나왔다.

그러곤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가다 누군가를 스쳐 지나갔다.

두건을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복장으로 보아 악마교의 1등 시민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돌연 천수민의 걸음이 멈췄다.

멀어지는 남성의 뒷모습을 쫓는 천수민의 눈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현은 그런 천수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는 사람이야?”

“네, 우리 엄마 아빠를 죽인 사람이에요.”

“……그래?”

시현이 굳이 여기까지 천수민을 데려온 이유는 단순히 천수민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근방은 강소하가 천수민을 구출한 장소였다.

즉, 천수민이 뭔가의 계기로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천운이 따랐는지 원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임태연이 이 근방에 있는 생존자들을 모아 세력을 형성한 것일 테니, 어쩌면 천운이 아니라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천수민은 복수를 대신해 주는 것도, 복수를 도와주는 것도 싫다고 했었지.’

시현은 천수민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웃었다.

자신의 양친을 죽인 원수가 천벌을 받기는커녕 교회의 1등 시민이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천수민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시현은 임태연이 있는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는 임태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전지운 문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보수 없는 친절은 베풀지 않는다.

하지만 얻을 것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대상이 에르가의 사도 천수민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야 전혀 아깝지 않았다.

* * *

결정을 내렸다면 다음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가서 울프 드래곤을 죽이고 오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시현 니이이임!”

시현은 그렇게 말했고, 임태연은 그의 다리에 매달리기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결국 임태연의 적극적인 공세를 버티지 못한 시현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한발 물러났다 뿐이지 불만은 남아 있었다.

“이유가 뭡니까?”

“생존자 중 악마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진심으로 울프 드래곤을 악마가 아닌 수호신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무작정 울프 드래곤을 토벌하면 틀림없이 그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될 겁니다. 아니, 그저 원성만 사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고요.”

최악의 결말을 상상한 임태연이 한차례 몸부림을 쳤다.

이 세력을 Re write의 완결 이후까지 사진의 생존지로 생각하고 있는 임태연에게 생존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답답한 건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공포로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따르게 만든다고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대앵―!

돌연 묵직한 종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울렸다.

“이 종소리는……! 악마입니다. 악마가 쳐들어왔을 때 울리는 종소리예요!”

임태연은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달리던 시현은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교회는 따로 전투원을 두는 것 같지도 않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지도 않았어. 그러면 악마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하는 거야?”

교회를 공격해 온 소형 악마의 정체는 머맨이었다.

콜로서스의 등장으로 인해 생겨난 소형 악마다.

상체는 물고기, 하체는 인간의 것을 갖고 있으며 피부색은 식욕이 떨어지게 만드는 지저분한 갈색이다.

특징이라면 조악하나마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강에 주로 서식하는 놈들은 늘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에 임프 못지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놈들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머맨이라도 울프 드래곤 앞에서는 한낱 고양이 앞 생쥐에 불과했다.

[캬아아아아!]

우렁찬 포효를 토해 내며 울프 드래곤이 날뛰었다.

중형 악마, 심지어 변종인 울프 드래곤의 힘 앞에서 교회를 공격해 온 머맨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다.

머맨의 창은 울프 드래곤의 가죽을 뚫지 못했고, 그들이 토하는 물대포는 울프 드래곤의 털을 적셔 몸을 조금 무겁게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뒤집을 만한 역량이 없었던 머맨의 군세는 빠르게 수가 줄었다.

성가대 복장에 두건을 쓴 생존자들, 이른바 1등 시민들도 울프 드래곤과 함께 싸웠다.

그 중에는 구원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평범한 생존자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수의 머맨을 상대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현이 말했다.

“상식적으로 저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악마와 인간이 같은 편이 돼서 싸울 수가 있죠?”

악마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악마와 싸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들도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다.

자신이 굉장히 생동감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임태연 씨, 저거 설명 가능하십니까?”

“저 악마는 전지운이 데리고 왔어요. 사실 전지운이 갑자기 변하게 된 이유도 저 악마의 능력이 아닐까 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울프 드래곤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요.”

“아종 드래곤은 하나같이 지성이 없고 힘밖에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 리더!”

배후에서 둔한 목소리가 임태연을 불렀다.

뒤를 돌아본 시현은 다시 한번 제 눈을 의심했다.

“와……. 뭔 살덩어리가 굴러오네.”

필터링이란 게 없는 천수민이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입에 담았다.

말이 거칠고 예의가 없어서 그렇지, 천수민이 한 말은 사실 틀린 부분이 하나 없었다.

150㎏이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의 남성이 손을 흔들며 아주 힘겹게 뛰어오고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는 착시마저 발생했다.

반면, 임태연은 반갑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아, 동건 씨! 어서 와요. 시현 님에게도 소개해 드릴게요. 교회에서도 제 편을 들어 주는 몇 안 되는 분 중 하나이신 장동건 씨입니다.”

“그, 그렇군요.”

거친 숨을 토하며 흐르는 땀을 아주 힘겹게 닦아 내는 그가 양심 없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분들은?”

“전에 저를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세요.”

“윤시현이라고 합니다.”

“멋진 이름이네요! 저는 장동건이라고 합니다. 하하!”

그는 악수를 청하자, 정체 모를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시현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두툼함에 내색하지 않도록 시현은 필사적으로 웃었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이런 곳에서 뭐 하고 계셨나요? 악마가 쳐들어와 굉장히 위험할 텐데.”

“교회를 지켜 주는 수호신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러는 동건 씨는 왜 여기에?”

“아, 멀리서 태연 씨를 발견해서요. 드릴 말씀이 생각나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별거 아닌 일상적인 대화였기에 시현은 울프 드래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방적인 학살극을 벌이던 울프 드래곤은 머맨의 시체 위에서 길게 포효하고 있었다.

사실상 정리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더 이상 지켜볼 이유가 없었기에 시현이 등을 돌리려던 찰나, 눈에 거슬리는 게 포착됐다.

1등 시민들이 머맨의 시체 중에서도 그나마 온전한 것을 골라 어딘가로 옮기고 있었다.

가만두면 재가 되어 사라질 악마의 시체를 도대체 뭣에 쓰려고 옮기는 걸까.

“…….”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머리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인간의 편을 든 악마, 분명 원작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 * *

임태연의 방으로 돌아온 시현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작을 확인했다.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 싶어 꼼꼼하게 살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밤이 찾아왔음에도 시현의 집중력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시현 님,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건가요?”

“먼저 주무세요. 천수민, 너도.”

두 사람이 잠자리에 눕고 난 후에도 시현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독서에 몰두했다.

그 결과, 악마가 인간의 편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악마가 인간의 편에 선 특이한 케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다 정신 조작 계열의 권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

시현이 본 울프 드래곤은 정신 조작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정신 조작 자체가 어느 정도 지성이 있어야 함을 감안하면, 울프 드래곤은 정신 조작의 대상으로써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가능성을 점치던 시현은 딱 하나 가능성이 있음을 떠올렸다.

“울프 드래곤을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울프 드래곤은 시현이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현재 시현의 위치는 그저 허울만 남은 리더의 손님이며, 울프 드래곤은 교회의 수호신이었으니까.

“하아, 골치 아프네…….”

시현이 골머리를 싸매는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악!”

“와, 씨! 깜짝이야!”

돌연 우렁찬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비명의 주인은 천수민이었다.

임태연이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며 바닥에 코를 박는 참사가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시현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사태의 원흉인 천수민은 닭똥 같은 눈물로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꿨어?”

“…….”

천수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에 묻은 눈물 자국을 문대는 천수민은 굉장히 지쳐 보였다.

사실 천수민이 거의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시현은 알고 있었다.

“아저씨.”

“왜?”

“낮에 봤던 그 사람에게 복수하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천수민의 젖은 눈에 분노가 엿보였다.

천수민의 부모님은 믿었던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

시현은 천수민에게 선택할 기회를 줬고, 천수민은 복수 대신 포기를 선택했다.

제 부모의 복수조차 무의미하다 생각했을 정도로 삶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깊은 감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석되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슬픔이 희석되고 나니, 거기에 묻혀 있던 분노가 서서히 드러난 것이리라.

“그건 나도 모르지.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는 저마다 제각각이니까.”

복수에 성공했다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감정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확실한 답을 해 줄 순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말해 줄 수 있었다.

“그래도 아무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야 뭐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어?”

“…….”

무엇을 생각하는지 천수민은 늘어지게 하품을 한 강소하와 임태연이 다시 잠자리에 든 후에도 한참이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천수민은 답을 내놓았다.

“그 사람들이 너무 미운데, 그렇다고 제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천수민을 보며 시현은 슬쩍 웃었다.

“도와달라고?”

“……네.”

“알겠어.”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현을 보자, 아주 조금이지만 천수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후에야 천수민은 꽤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반면, 밤을 새우고도 눈이 말똥말똥했던 시현은 가볍게 운동이라도 할 겸 방을 나섰다.

“……?”

그때, 구원자의 강화된 시력이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를 포착해 냈다.

방문 앞에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떨어져 있었다.

굉장히 소량임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또 하나.

흙발자국이 문의 바로 앞에서, 문을 바라보는 형태로 찍혀 있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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