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나연아, 나머지 사람들을 2층으로 피난시켜. 방 배정은 적당히 너한테 맡길게.”
“네, 그런데 오빠.”
가까이 다가온 이나연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염이 발생하기 전에 전부 죽일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할게요.”
“…….”
어째서 이나연이 그런 말을 하는지 아는 시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감염이 발생해 하수인이 되고 나서 대처하는 게 베스트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올라간다.
즉, 인간인 상태에서 목을 치는 것이 하수인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수단이다.
문제는 그렇게 죽으면 시체가 인간인 채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살인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즉, 이나연은 자신이 악역을 대신하겠노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어.”
“정말요?”
“내가 100번 말로 해 봤자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눈에 보여 주는 수밖에.”
그제야 시현의 생각을 간파한 이나연은 나머지 사람들을 2층으로 올렸다.
남겨진 이는 악마에 의해 상처를 입은 자, 그리고 차마 그들을 혼자 두지 못해 남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이다.
당연하지만 시현을 응시하는 그들의 표정에 적개심이 가득했다.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시현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지금쯤 이나연의 지시에 다른 계단들은 철저하게 봉쇄를 시작했을 것이다.
‘임프의 감염 속도로 따져 보면 앞으로 5분 정도면 첫 번째 감염자가 나오겠지.’
무의식적으로 흑도를 매만지고 있는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지배하는 5분이 흘렀다.
“허억……. 허억…….”
몇몇 부상자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단순히 상처가 악화되었기에 그런 거라 생각한 건지 생존자들은 약품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약품은 식량보다 몇 배는 더 귀중한 물건이다.
살아남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때문에 시현은 그들의 호소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드디어 첫 번째 하수인이 탄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던 남자가 성대가 뚝 끊긴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의 눈동자는 붉었으며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렀다.
“……여보?”
옆에서 그를 간병하던 여성이 손목을 붙잡혔다.
하수인은 자신의 부인이었던 여성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시현은 굳이 움직이지 않았다.
본보기가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저 여성 역시 임프에게 당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저들 부부는 남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줄 것이다.
“꺄아아아아!”
여성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경악하며 남편이 아내를 잡아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내의 살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하수인이 다른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제가 돼서야 시현이 움직였다.
빛처럼 바르게 휘둘러진 검이 하수인의 머리를 으깼다.
뇌수가 섞인 피를 털어 낸 시현은 재차 계단에 앉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올라가실 분은 언제든 올라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믿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됐지만 우리 아들은, 남편은, 아버지 어머니는 다를 거라고.
그렇게 근거 없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귀찮음을 무릅쓴 시현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두 번째 하수인이 발생했다.
가까이에 있던 딸의 팔을 잡고 물어뜯으려는 남성의 머리를 검이 꿰뚫었다.
딸은 졸도했다.
“나, 나는 더 이상 못 해!”
첫 번째 이탈자가 나왔다.
여자 친구를 간호하던 남성이 비명을 지르며 2층으로 올라간 것이다.
남겨진 여성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하수인이 동시에 탄생했다.
이번에도 시현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간발의 차였다. 하마터면 늦을 뻔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남아 있는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의심이 피어났다.
두 명의 생존자가 감염된 가족에게 등을 떠밀려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인 채로 죽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피를 많이 흘려 창백한 얼굴의 남성이 시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겠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시현은 남성의 심장을 찔렀다.
다섯 번째 하수인이 탄생했다.
검이 하수인의 목을 베었다.
손자를 있는 힘껏 안아 준 노인이 2층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1층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모든 하수인을 처리한 시현은 2층으로 올라갔다.
이나연과 신호석이 열심히 일을 해 준 덕분에 얼추 정리가 되어 있었다.
생존자들은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다.
남아 있는 몇몇 호실에는 학교에서 가져온 물자를 보관해 두는 창고 따위로 사용됐다.
부상이 없거나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생존자들은 호텔 내부의 가구들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거나 하고 있었다.
“조금 쉴게.”
빈방으로 들어간 시현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피로가 누적된 까닭일까,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수마가 덮쳐 왔다.
그날 시현은 악몽을 꿨다.
오늘만 특별한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서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그날 이후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매일 밤 시현의 손에 의해 죽은 이들이 꿈에 나왔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잠든 시현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
결국 깊이 잠들지 못하고 눈을 떠야 했다.
그제야 시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머리맡에 앉은 이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현은 이서윤을 죽였다.
이서윤이 머리지네에게 감염되어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수인이 된 어린아이는 위태로워 보이는 외형 탓에 많은 이들의 방심을 부르고, 그만큼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시현은 아파트에서 정해수를 죽였다.
그는 이미 감염되었고, 놔두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마보다 더한 구원자가 되었을 테니까.
시현은 마트에서 정수혁을 끔찍한 방식으로 죽였다. 그가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시현은 임진아를 죽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시현은 남지후를 죽였다.
이서윤의 복수를 위해서였지만, 생각만큼 통쾌하다거나 스트레스가 확 해소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악몽만 더욱 지독해졌을 뿐이다.
시현은 이재현을 죽였다. 2단계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구종환을 죽였고, 이나연에게 지시해 왕근식을 죽였다.
그리고 이제는 악마에게 감염된 수많은 생존자들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럴싸한 핑계가 있다 해서 그간 있었던 일들이 없던 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차곡차곡 시현의 내부에 쌓이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안에 공기를 한계까지 가득 채운 풍선처럼.
쿡 찌르면 터질 것처럼 시현의 내부는 위태로웠다.
만약 자신이 Re write의 주인공이었다면.
언제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정훈이라면.
이미 수많은 죽음을 딛고 일어서 정신적으로 견고해진 정훈이라면 얼마든지 버텨 낼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윤시현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인외의 존재에게 속아 이 세계에 끌려온, 평범한 20대 청년에 불과하다.
부스럭.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구겨진 복권이었다.
본래는 60억의 가치가 있었지만, 이제는 반 토막이 나 버린 시현의 희망이다.
‘일단 돌아가면 집부터 사자. 부모님이랑 같이 살 수 있게 방도 여럿 딸린 걸로. 그리고 가게를 하나 차려야지. 시간은 넉넉하니까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엔 충분해. 그러니까…….’
살자.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고개를 든 시현의 눈에 거울이 보였다.
거울에 비친 시현이 물었다.
두 손에 이토록 피를 묻혔으면서 현실로 돌아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 * *
<당신은 세력의 리더로 도약할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제단의 설치가 필요합니다.>
조금 전부터 청색의 반투명한 문자가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시스템이 인정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내 명의로 된 제단은 진짜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절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어째 학교와 관련된 이후 쭉 손해만 보는 것 같았다.
성장을 위해 제단은 필요불가결하다. 제단이 있어야만 토큰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토큰을 이용해 몸을 지킬 장비를 살 수도 있고, 신체 능력을 높여 주는 영약을 살 수도 있고, 거점을 지키거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나 건축물을 구매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제단이 있으면 가능해진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제단일 필요는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제단을 소지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페널티가 존재하는 행위다.
‘제단을 설치하면 그때부턴 진짜 돌이킬 수 없어.’
언젠가 리더 자리를 민서라에게 넘겨 줄 생각이었던 시현으로서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민서라의 정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배정된 방의 침대에 쭈그려 앉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하루를 보낸다.
그런 민서라에게 리더 역할을 맡길 수가 없다.
‘민서라 씨의 멘탈을 회복시킬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시현은 쓰게 웃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지금은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한 번 붕괴한 세력을 다시 세워야 하며, 현재 봉기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높아진 세력원의 불만 또한 잠재워야 한다.
학교를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챙긴 물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마저도 반 이상은 오는 길에 버려두기까지 했다.
생존자들을 굶어 죽게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식량의 보급도 생각해야 한다.
‘일단은 중요한 것부터 순서대로 처리하자.’
가장 중요한 항목은 물이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3일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비축된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 급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때문에 원정이 있을 때마다 물의 확보는 뒷전이 되었다.
“일단 물을 구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구하는 건 어렵겠지.”
시현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2차 아포칼립스가 터지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악마의 수가 늘었다.
특히 임프처럼 도구를 사용할 만큼 지능을 가진 악마들과 더불어 드물게 대형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처럼 생존자들끼리 먹을 것을 구하겠다고 밖에 나갔다가는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 것이다.
“제가 다녀올까요?”
무의식적으로 흘린 중얼거림을 주워들은 이나연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아니.”
“왜요. 나 잘할 수 있는데. 그리고 물은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제단을 만들 생각이야.”
여전히 청색의 문자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결정을 내린 시현은 가장 하단에 위치한 수락 버튼을 눌렀다.
문자가 사라지고 시현의 손 위에 작은 묘목이 하나 나타났다.
“Re write는 묘목을 참 좋아한다니까.”
묘목의 표면에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시현의 어깨에 새겨진 낙인과 동일한 문양이다.
‘제단은 안전한 곳에 설치하는 게 정석이지만, 안전한 곳도 달리 없으니…….’
어지간히 꼭꼭 숨겨 두지 않는 이상 어디에 설치해도 마찬가지다.
시현은 묘목을 방구석으로 던졌다.
묘목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은 방구석에 모여들어 제단을 만들어 냈다.
“오오!”
그 과정이 퍽 신기했는지 이나연이 눈을 빛냈다.
<이자프의 제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빠, 저도 제단을 이용해도 될까요? 요즘 토큰이 많이 모여서 쇼핑을 조금 하고 싶어요.”
제단이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이나연이 권리를 요구했다.
“얼마든지 내킬 때마다 사용해. 강소하나 다른 구원자들에게도 전해 주고.”
사용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기에 시현은 기꺼이 요구를 수락했다.
제단을 작동시키자 호텔 방의 벽이 예의 상품 목록으로 도배됐다.
시현은 가장 먼저 남아 있는 토큰의 개수를 확인했다.
“총 443개인가. 민서라 씨를 따라다니면서 반강제로 선행을 하기도 했고, 둥지를 공략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엄청 많네.”
제단을 만드는 데도 토큰이 사용됨을 감안하면, 아마 500개는 넘게 소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적색 카탈로그에 손을 대기에는 한참 부족한 수치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윤시현의 Re write를 연재하며 얻은 토큰의 양도 상당할 것이다.
그 증거로 이나연이 가진 토큰은 200개 남짓에 불과했다.
“헤헤. 뭘 살까~ 저번에는 돈이 모자라서 아무것도 못 샀으니까 이번에는 왕창 사야지.”
쇼핑에 한껏 들뜬 이나연과 달리, 시현은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그것만 찾아 헤맸다.
다행히도 물건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중급 수도 공급 큐브 : 토큰 100개.>
큐브를 설치하면 일정 공간 내에 물을 공급해 준다.
<중급 전력 공급 큐브 : 토큰 100개.>
큐브를 설치하면 일정 공간 내에 전력을 공급해 준다.
“비싸…….”
꼭 필요한 물건들의 가격을 확인한 시현은 눈을 의심하게 되는 가격에 치를 떨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비쌌다. 그냥 비싼 게 아니라 더럽게 비쌌다.
그동안 목숨 걸고 뛰어다니며 아등바등 긁어모은 토큰이 아닌가.
그런데 겨우 필수 물건 두 개 구매했다고 200개나 소모해야 하다니.
술을 마신 적도 없는데 속이 쓰렸다. 심지어 자신에게는 그리 쓸모가 있지 않은 것들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더욱 컸다.
“게다가 회복제랑 축복이 담긴 총알도 구매해 둬야 하고. 겨울을 나려면 온도 조절 기능이 붙은 의복도 필요해. 난로가 없으니까 이대로 두면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속출할 거야. 그러려면 필요한 토큰이…….”
원하던 형태는 아니지만 시현은 한 세력의 리더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앞길만 잘 가리면 됐지만, 이제는 다른 생존자들도 보살펴야 한다.
돈이 아깝다고 투자를 망설인다면 시현만 믿고 여기까지 온 생존자 중 태반이 이번 겨울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래, 토큰이야 뭐 또 벌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시현은 가진 토큰을 전부 털어서 물건들을 구매했다.
제단 위에는 세 개의 큐브와 몇 벌의 의복, 총알이나 회복제가 담긴 상자 따위가 놓였다.
그리고 남은 토큰으로 생존자들의 복지를 위한 물건을 찾던 도중, 시현은 눈을 의심하게 하는 물건을 발견했다.
<수호나무 묘목 : 토큰 250개.>
“이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수호나무의 묘목이라니.
아이템 등급은 낮은 축에 속하지만 세상에 단 세 개만이 존재하는 한정품이다.
당연히 일찌감치 매진되어 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포기하고 있었건만, 기대조차 하지 않던 행운이다.
시현은 남아 있는 토큰을 확인했다.
정확하게 251개.
만약 다른 물건을 하나만 더 구매했다면 돈이 모자라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쳐 두고 다른 구원자들에게 굽실거리며 토큰을 빌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반드시 사야 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현은 곧장 구매를 확정 지었다.
제단 위에 놓인 대량의 토큰이 자그마한 화분에 담긴 묘목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아직까지도 이나연은 쇼핑을 끝마치지 못했다.
물건의 목록이 워낙 많은 데다 참가자가 아닌 그녀는 물건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하나하나 설명을 읽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두루뭉술한 설명만 가지고 물건의 정확한 성능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머리를 굴리는 수밖에 없다.
현명한 소비를 하고 싶다면 말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사하는 이나연을 뒤로한 시현은 자신이 구매한 물건들을 가지고 옆방으로 향했다.
현재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텅 빈 방의 구석에 먼저 수도 공급 큐브를 올려 두고 중심부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큐브로부터 청색 빛이 뿜어지며 호텔 건물을 한차례 훑었다.
복도에서 학생의 것으로 추정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학교에서의 경험을 통해 조금 전의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 내지른 함성이었다.
확인을 위해 화장실로 간 시현은 물을 틀었다.
맑고 투명한 물이 세면대로 세차게 쏟아졌다.
“이거 원리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단언컨대, 인간의 지식으로는 1%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판타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우스운 행위다.
이렇게 식수를 해결했으니 다음은 전력 차례였다.
큐브를 설치하고 나니 이번에는 황색 빛이 호텔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환성이 터져 나왔다.
벽의 스위치를 올려 보니 방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는 묘목을 길러 줄 부모를 찾는 일이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