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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67화 (67/225)

[67화]

꾸준히 악마를 사냥하고 다닌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 정문에서 대량의 악마를 토벌한 강소하는 꿈에 그리던 2레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소하의 입장에서는 대량으로 출몰한 임프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 많은 생존자들이 임프에 의해 상해를 입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자신의 강함뿐이었으니까.

이곳저곳에서 곡소리를 높이는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서야 했다.

시현은 민서라를 흔들어 깨웠다.

“민서라 씨, 일어나세요.”

“아으…….”

숨만 색색대던 입이 벌어지며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표정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시현 씨,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아무래도 2차 아포칼립스가 예정보다 빨리 발생한 거 같습니다.”

“말도 안 돼!”

그녀의 불신은 배후의 참극을 선보이자 금세 잠잠해졌다.

함께 호텔로 향하던 생존자들은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고, 균열이 발생한 대지에서 솟구친 수많은 임프들은 일제히 시현을 노리고 있었다.

“어째서 안 좋은 일은 이렇게 겹쳐 발생하는 걸까요.”

“그보다 나연이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2차 아포칼립스는 발생 당시 구원자들의 정신에 큰 충격을 가한다.

그리고 그 충격의 크기는 구원자마다 천차만별이다.

시현처럼 금방 깨어나 무리 없이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고, 이나연처럼 상당한 기간 동안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급해 억지로 깨우기는 했지만 민서라 역시 전투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민서라는 같이 싸우겠느니 어쩌겠느니 하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전부 호텔까지 달려 주세요!”

민서라가 앞장서서 호텔로 향하자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호텔이고 나발이고 당장 살아남는 데 급급해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이도 있었다.

그리해 봤자 오래 살지 못할 텐데 말이다.

[키아아아아!]

임프는 세 개의 무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강소하에게 달려들었고, 하나는 시현에게 달려들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생존자들을 사냥했다.

시현은 덤벼드는 임프를 핏빛 칼날로 베어 죽였다.

임프들은 어설프게나마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으나 투구를 쓴 놈은 없었다.

덕분에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를 노리면 쉽게 임프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임프라 해서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쭉쭉 나아가던 칼날이 임프의 방패에 막혔다. 비열하게 웃는 임프의 뒤에서 다른 개체가 뛰어올랐다.

손에는 긴 창이 들려 있었다.

시현은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창대를 왼손으로 잡았다.

그것을 뒤로 잡아당김과 동시에 가까워지는 임프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얼굴이 짓뭉개져 쓰러진 임프의 가슴을 짓밟으며 정면에 있는 임프의 머리를 쳐 냈다.

퍼억!

뒤통수에 충격이 가해졌다.

외피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까닭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런……!”

정신을 잃을 뻔했다.

비틀거리며 겨우 제자리에 선 시현의 발치에 피 묻은 돌멩이가 구르고 있었다.

돌을 던진 임프가 좋다고 춤을 춰 댔다.

어느새 시현은 임프 무리에 포위되어 있었다.

몇몇 임프가 시현에게서 흥미를 잃었는지 다른 생존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최악이네. 이래서 높은 지능을 가진 악마가 까다롭다는 거였구나.’

이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은 없으리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쿵.

커다란 소음과 함께 거대한 균열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 * *

첫 번째 아포칼립스.

흔히 말하는 최후의 날에 인류는 최악의 적과 마주하게 된다.

인류를 사냥해 배를 채우는 끔찍한 짐승들을 통틀어 인류는 악마라 칭했다.

그리고 두 번째 아포칼립스에서 인류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고지능의 악마와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두 번째 아포칼립스 날.

그날은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형 악마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날이다.

갈라진 균열에서 솟구친 것의 정체는 거대한 손이었다.

푸른 비늘과 세 개로 갈라진 손톱에서 보랏빛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손톱의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만 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땅을 짚어 몸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땅이 갈라지고 내려앉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키익?!]

[캬아아!]

미쳐 날뛰던 임프들도 당황하며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균열로부터 두 번째 손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손이 등장한 후 놈의 머리가 등장했다.

거대한 손만큼이나 거대한 머리는 흡사 상어를 닮았다.

비정상적으로 작은 눈과 커다란 입이 부조화를 이룬다.

허리는 굽었으며 칼날과도 같은 지느러미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복부를 가진 그것은 다른 악마들처럼 포효하는 일 없이 담담히 주변을 훑었다.

“……대형. 콜로서스인가.”

눈이 마주치자 아무리 시현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시현에게 대형 악마는 그저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하늘과 천운이 그를 적극 돕는다 해도 승리는커녕 동수를 이루기도 어렵다.

천만다행히 콜로서스는 시현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놈은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처럼 그저 남쪽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나온 게 콜로서스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한동안 한강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군.”

만약 물이 없으면 호흡할 수 없는 콜로서스가 아니라 다른 대형 악마였다면 이런 행운은 없었을 것이다.

짓밟혀 쥐포처럼 납작해졌겠지.

눈을 덮은 피를 소매로 훔친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그 많던 임프들이 대형 악마의 등장에 놀라 혼비백산하며 달아나 자취를 감췄다.

남아 있는 것은 부상을 입고 신음하는 생존자들뿐이었다.

사망자들의 시신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은 임프들이 달아나는 와중에도 시신들을 챙겼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현은 사망자들을 애도하기보다 생존자들을 추슬러 호텔로 향했다.

이런 일에 하나하나 슬퍼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 * *

자체 치유력과 치료제를 이용해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시킨 시현은 방을 나와 1층의 메인 홀로 향했다.

“나왔다!”

목이 빠지도록 시현을 기다리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소리쳤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다.

그의 외침에 홀에 있던 생존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현에게 향했다.

호의적인 시선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불평불만 일색이었다.

“이봐요, 시현 씨. 당신 덕에 많은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어. 그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해.”

처음 소리를 높였던 남성이 시현의 앞에 서서 말했다.

뭘 믿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태도가 몹시 거만하다.

무감정한 눈으로 남자를 응시하던 시현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왠지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더니, 강소하가 데리고 온 다섯 명의 극혐 중 아직까지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는 남자였다.

“하실 말씀이라도?”

“시현 씨, 보다시피 지금 우리는 부상자가 많아. 한시바삐 방을 배정하고 상처를 치료해도 모자랄 판에 왜 좁아터진 홀에 사람들을 모아 놓은 거야?”

“맞아요!”

“제발 우리 아이 좀 치료해 주세요! 이러다 죽겠어!”

남자의 말에 따라 생존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현은 먼저 구원자들의 상황을 살폈다.

세력을 이끌 생각이 전혀 없는 이나연은 구석진 곳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한편, 리더십과 인연이 없는 신호석은 어쩌면 좋을지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간만에 여유를 얻은 강소하는 구석진 곳에 드러누운 채 게으름을 부리는 중이다.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 줘야 할 민서라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눈이 죽어 있었다.

‘동태 눈깔도 저보다는 생생하겠네.’

생존자들을 안전한 곳까지 대피시킨다는 책임을 완수한 이후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멘탈을 놓아 버린 것이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으며, 보호를 위해 데리고 온 아이들이 실험체로서 희생되었다.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린 민서라로선 버티기 힘든 충격이었으리라.

지금의 민서라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인 것이다.

‘적어도 민서라가 정신적으로 회복될 때까지는 내가 지휘를 해야겠지.’

그 많던 인원이 이제는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물자도 내팽개치고 도망쳤기 때문에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면 눈앞에 있는 생존자들은 전멸한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현이 안장을 차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불만이 있으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이 세력의 리더가 되겠노라 선언한 거나 다름없었다.

“없습니다!”

이나연이 냉큼 손을 들며 소리쳤다.

“나도. 리더 같은 거 귀찮기만 하고.”

강소하도 기다렸다는 듯 찬성표를 던졌다.

시현은 학교 정문에서 단신으로 악마들을 막고, 임프들을 상대로 활약을 보였다.

붕괴한 세상에서 무력은 곧 재산이 되고 권력이 된다.

웅성거림은 있었으나 이렇다 할 반대 의견은 없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말이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리더는 공평한 방법으로 선출해야지. 연장자라거나, 경험이 있거나, 힘만 가지고는 사람들을 이끌 수가 없어요.”

시현의 코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남성이 이번에도 자기주장을 펼쳤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주장이지만 시현은 점잖을 떠는 그의 표정에서 권력을 향한 욕망을 읽어 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 욕심 채우느라 급급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아니요. 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뭘 하든 반드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민서라 씨나 저기 두 학생이라면 모를까. 당신은 안 됩니다.”

“…….”

설마 이렇게까지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애초에 세력의 리더는 반드시 구원자여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소속 구원자들은 제단을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시현은 남자의 손을 들어 올렸다.

찢어진 소맷자락 위로 낙인이 보였다.

“당신에게 리더로서의 자질, 앞장서서 악마와 싸우는 용기가 있었다면 진즉에 이 낙인이 각성했을 겁니다. 하지만 각성은커녕 낙인에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이, 이건 그러니까…….”

“하다못해 이 낙인을 각성시키고 나서 다시 오시죠. 그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쳇.”

거칠게 시현의 손을 쳐 낸 남자는 씩씩거리며 호텔 바깥으로 향했다.

지금이야 수치심과 분노로 저리 행동하는 거지만 얼마 못 가 돌아올 것이다.

악마가 활개 치는 거리를 홀로 돌아다닐 배짱이 있었다면 그는 진즉에 구원자로 각성했을 것이다.

“더 이상 불만이 있으신 분은 안 계신 듯하니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우선은 부상자를 분리하겠습니다.”

“분리라 하시면…….”

“타박상, 칼에 베인 상처 등을 가진 부상자는 2층으로 올려 치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빨이나 발톱에 의한 상처가 하나라도 존재하면 1층에 남기도록 하세요.”

“저……. 1층에 남은 부상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젊은 여성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옆에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노년의 남성이 가쁘게 숨을 헐떡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노인의 팔에는 몇 개인가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와 같은 표정을 한 사람들의 시선이 여럿 시현에게 꽂혀 들었다.

시현은 묵묵히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상처를 조금 입었다 해서 우리 아버지를 죽일 셈이야?”

“웃기지 마! 내 딸을 손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 봐!”

“아직 남편은 살 수 있어요. 살짝 손톱에 긁혔을 뿐이니까…….”

그들은 아우성치며 시현을 비난했다. 귀가 다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철저하게 정보를 주입시켰다.

“지금까지 악마에게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상처의 크기와 무관하게 전원 감염됐습니다. 좀비 영화 보면 흔히 나오잖아요. 좀비에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되어 다른 생존자들을 습격하는……. 비슷한 맥락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시현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무의미한 헛수고란 것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 봐야 그의 말을 들어먹는 이는 없을 것이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가족, 연인, 친구 등 소중한 사람이다.

그들이 감염된다 해서 ‘아, 그렇구나’하고 내버릴 수 있을 만큼 매정한 이가 세상천지 몇이나 있을까.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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