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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66화 (66/225)

[66화]

흑도의 주인은 이은철의 처리를 끝마치고 합류한 이나연이었다.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권능을 사용했고, 휘몰아친 폭풍이 주변의 악마들을 단번에 정리했다.

물론 남아 있는 악마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잠깐 숨 돌릴 틈은 벌 수 있었다.

“오빠, 일단 이거부터 받아요.”

이나연은 보물단지처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보따리를 넘겨주었다.

매듭을 당기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풀린 보따리 안에는 시현이 이나연에게 맡겨 놓은 장비들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맨손 전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마워.”

“별말씀을. 그나저나 무슨 악마가 이렇게 많아요? 이 정도면 서울 일대에 있는 악마가 죄다 몰려든 거 아니에요?”

“적어도 근방에 있는 놈들은 싹 몰려왔을 거야. 그보다 왕근식은?”

“네? 왕근식?”

그녀는 어째서 그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제야 시현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

“아니. 이은철 말이야.”

“이은철이라면 깔끔하게 처리했어요.”

“잘했어.”

별거 아닌 칭찬에도 이나연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녀가 합류했다 해서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악마의 수는 많고, 그것들을 처리하기에는 손이 모자랐다.

퇴각해야 한다.

“여긴 내가 맡고 있을 테니까 대피 상황을 알아봐 줘.”

“그거라면 진즉에 보고 왔어요.”

“어떻게 됐어?”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후문 쪽으로 빠져나갔어요. 이제 오빠도 도망치면 돼요.”

“다행이네.”

그녀가 가지고 온 기쁜 소식에 조금은 팔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강소하!”

시현의 외침에 죽을 기세로 몸을 혹사시키던 강소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부르냐고 따지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현의 말에 그는 생일날 커다란 선물을 받은 아이보다 더욱 화사하게 웃었다.

“튀어!”

“와, 살았다!”

강소하는 그야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후문을 향해 달렸다.

“이제 저희가 도망갈 시간을 벌게요.”

호흡을 길게 끊은 이나연이 흑도를 내질렀다.

흑도 끝에서 쏟아져 나온 질풍이 정면에 있는 악마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새 성장한 건지 이나연은 전력을 다한 권능을 두 번 연달아 사용했음에도 멀쩡해 보였다.

“잘 했어. 이 틈에 튀자.”

“네!”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지금이야 시현이 앞에서 알짱거리며 날뛰었기에 악마들의 분노가 그에게 꽂혔을 뿐이다. 본디 악마들의 목적은 인간이 아니라 상담실에 칠해져 있는 신혈이다.

어느 정도 도망가다 보면 그들은 원래의 목적이었던 신혈을 쫓아 학교로 향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악마의 경우, 벌써 몇 마리가 신혈이 칠해져 있는 상담실에 침입해 있었다.

저 멀리, 잠시 열어 뒀던 후문의 바리케이드를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 민서라가 보였다.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다들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이 도착하자 민서라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시현은 후문과 연결된 공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생존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생존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어디로 갈 건지 결정은 내리셨나요?”

“아니요. 아직……. 기존의 세력에게 의탁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기존의 세력이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트의 한기훈이었다.

‘한기훈이라면 이들을 받아 줄까?’

시현에게 감사를 느끼고 있는 한기훈이라면 손해를 감안하고 이들을 받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판단은 아니야.’

문제는 거리다.

강남에 있는 마트까지 내려가기에는 집단의 규모가 너무 크다.

도중에 악마들에게 습격당해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고작 다섯의 구원자로는 모든 이들을 지켜 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마트는 무려 100명이 넘는 생존자들을 받아들이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 정도 인원을 수용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세력이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만한 규모의 세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만 찾아보면 교단과 약탈자들 정도.

그나마도 교단은 적대 세력이며 약탈자들은 시현의 손에 의해 붕괴했다.

다른 세력의 의탁한다는 수단은 논외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무래도 기존의 세력에 의탁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할 것 같군요.”

“그렇다면 D마트로 가는 게 어때요?”

민서라가 괜찮은 제안을 해 왔다.

여기서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 리퍼의 둥지였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정화되어 악마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단순하게 악마만 놓고 본다면 서울에서 D마트 이상으로 안전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시현은 생각을 바꿨다.

“안 됩니다.”

“네? 어째서요?”

설마 거절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민서라가 크게 당황했다.

시현은 흐르는 피와 땀을 닦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둥지가 정화될 때 발현되는 정화의 빛이요. 가시거리는 200미터 안팎이지만 교단에 있던 천리안이 정화의 빛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무력 면에서 한참이나 뒷전에 있는 학교가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의 리더였던 왕근식과 교단의 이한울이 뒤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더러운 연구가 동반되어야 하는 레벨 서포터의 연구를 교단이 아닌 학교에서 하고 있었기에.

이한울은 학교를 무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다른 일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왕근식과 구종환이라는 연결 고리를 잃은 교단에서 방해만 되는 학교를 방치해 둘 리가 없다.

만약 D마트에 터를 잡는다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습격당하고 말 것이다.

“D마트가 안 된다면 호텔로 가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도 민서라의 제안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제안이다.

며칠 전에 내부를 완전히 소탕한 호텔이라면 안전도 보장되거니와 생존자 전원을 수용하는 게 가능하다.

“조금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감내해야 할 부분이겠죠. 갑시다.”

목적지를 정한 시현은 민서라를 도와 생존자들을 인도했다.

다행히도 신혈의 냄새에 취해 죄다 학교로 몰려들었는지 거리에는 한산함마저 느껴졌다.

덕분에 목적지까지 전원 무사히 도착하는 것도 꿈은 아닐 거라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이다.

키잉―!

“허억!”

갑작스레 시작된 이명과 두통에 시현은 주저앉고 말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선명해지는 것을 반복했다.

쓰러진 것은 비단 시현뿐만이 아니다. 구원자 전원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이나연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

“오, 오빠……. 살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바닥에 축 늘어져 눈물을 쏟으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들 이래?”

“언니! 괜찮아요? 누가 언니 좀 살려 줘!”

당황한 생존자들이 쓰러진 구원자들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두통으로 인해 사고가 버거운 와중에도 시현은 기억을 되짚었다.

‘이건 설마…….’

하나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시스템을 확인했다.

<알림>

모래시계가 뒤집혔습니다.

다가올 종말에 대비하세요.

남은 시간 : 0시간 21분 13초.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다 떨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메시지를 응시하는 시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분명 3주 정도가 남았을 텐데, 어째서……. 설마 참가자가 그걸 건드린 건가?’

시현은 이를 갈았다.

어찌 되었건 사건은 벌어졌고, 이 장소는 너무도 위험하다.

“빨리……. 호텔로…….”

필사적으로 입을 열어 생존자들을 지휘했다.

그제야 몇몇 리더십 있는 생존자들이 앞장서서 호텔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슬슬 통증이 한계에 도달했다.

견디다 못한 시현은 눈을 감고 겨우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벌써 2차 아포칼립스라니…….”

―이렇게 되면 시나리오가 너무 틀어지는 거 아니야? 이래서 내가 이 계획에 반대한다고 했잖아. 멍청한 설계자 같으니.

―리메이크잖아요. 꼭 원작 시나리오와 같은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법은 없죠. 안 그런가요?

* * *

“꺄아아아아!”

여성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에 시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잃기 전과 비교해 어지럼증이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시야가 흔들렸다.

그제야 자신이 강소하의 등에 업혀 있음을 깨달은 시현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시현, 드디어 일어났냐? 힘들어 죽을 거 같으니까 이제 네 발로 걸어.”

“넌 언제 일어난 거야?”

“나도 얼마 안 됐어. 이제 한 3분 됐나?”

시현을 바닥에 내려놓은 강소하가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시현은 발밑을 응시했다.

딛고 있는 대지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게 잠결에 들린 비명의 원인일 것이다.

“조심해. 조금 전에 상당히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어.”

‘그렇다는 건 벌써 2차 아포칼립스가 시작됐다는 건데.’

고고고고.

미세하게 계속되던 진동이 급격하게 커졌다.

마치 처음 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던 그날처럼 격렬한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도 시현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호텔까지는 어느 정도 남았어?”

“거의 다 왔어.”

강소하가 멀리 보이는 호텔을 가리켰다.

걸어가면 5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거리다.

“속도를 높여야겠어.”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지만 지금 무리하게 이동하다가는 부상자가 생길 수도 있어.”

“부상자와 사망자, 어느 쪽이 좋을 거 같아?”

“……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기 때문일까.

강소하는 이렇다 할 대답도 못 하고 멍하니 시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애초에 대답을 들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열에 아홉은 전자를 택할 테니까.

나머지 하나도 둘 다 회피할 방법을 찾겠다는 이상론자일 것이다.

“속도를 높이세요!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들의 등을 떠밀기 위해 시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위험하다고요!”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움직임을 강요하다니, 몰상식한 요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그들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 : 0시간 1분 36초.>

머지않아 그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생존 경쟁은 사실상 튜토리얼이라 봐도 무방했다.

악마는 두렵지만 충분히 사냥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노력한다면 생존자들만으로도 뭉쳐서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니다.

남아 있는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은 진짜 지옥으로 변모할 것이다.

구원자의 도움이 없다면 평범한 생존자는 살아가는 것조차 허락받을 수 없는, 그런 지옥 말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구원자라도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서 이 정도 규모의 생존자들을 무사히 지켜 내는 건 불가능하다.

생존자들의 불만을 하나하나 들어 줄 여유도 없었다.

시현은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업고 있는 이나연과 민서라를 빼앗아 양쪽 어깨에 짐짝처럼 짊어졌다.

강소하에게 업혀 편히 쉰 덕분인지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 근방에서 무덤을 세우고 싶지 않다면 속도를 높이세요. 필요하다면 짐은 버리고 가도 좋습니다. 나중에 찾으러 오면 되니까요.”

그리 말한 시현은 앞장서서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아직 어지럼증이 완전히 가신 게 아니어서 속도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구원자이다.

그의 속도는 다른 누구보다 월등했다.

“따, 따라가야 하나?”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처음 악마가 등장하기 전에도 지진이 발생했었지?”

생존자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며 시현의 뒤를 쫓았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마당에 앞으로 걷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시현을 향한 불만도 커져 갔다.

고고고고!

진동은 더욱 격해졌다.

<남은 시간 : 0시간 0분 0초.>

<2차 아포칼립스가 시작됩니다.>

<거대한 자들이 눈을 뜹니다.>

<위대한 자들이 눈을 뜹니다.>

그 순간이 도래했다.

콰아아아!

거리 곳곳의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 틈으로부터 불길한 보랏빛의 불길이 솟구쳤다.

“으아아악!”

불길에 닿은 사람은 10초도 되지 않아 재가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죽을 기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쓰러져 다치는 편이 불에 타 죽는 것보다 백배는 나으니까.

그러나 도로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균열과 불길로 인해 코앞에 있는 호텔까지 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키이이이!]

서서히 진동이 잦아들더니 갈라진 틈새로부터 하나둘 악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적 없는 신종 악마다.

덩치는 어린아이만 하지만 흉측한 외관과 긴 귀와 꼬리를 가진 악마는 특이하게도 조악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임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악마는 다른 어떤 악마보다 많은 사망자를 낳은 최악의 악마다.

놈들은 어린아이 수준의 지혜가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으아아악!”

시현의 바로 뒤에서 걷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남자의 등 뒤에는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임프가 있었다.

녹슨 칼이 남자의 목덜미에 박혀 있었다.

[쿠아아악!]

보통의 악마였다면 바로 사냥한 사냥감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악마의 태반은 결국 짐승이니까.

비열한 수단이지만 그 틈을 노린다면 나머지 생존자들은 무사히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프는 다르다.

놈들은 목숨을 잃은 남자를 내버려 두고 다른 생존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하기 전에 시현은 임프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진 임프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키익?]

[키엑!]

동료의 죽음을 감지한 임프의 시선이 일제히 시현에게 향했다.

이대로라면 수많은 임프들의 샌드백이 되고 말 것이다.

“강소하!”

“너 요즘 나 너무 막 다루는 거 아니야?”

이름을 불린 강소하는 툴툴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섰다.

평소처럼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그런 강소하의 낙인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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