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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60화 (60/225)

[60화]

아이템 제작자로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수민의 영입을 노리던 시현에게 그의 실종 소식은 청천벽력 같았다.

시현은 그 길로 강소하를 찾아갔고, 강소하는 대강당에서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게으름의 화신과도 같은 강소하답지 않은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강소하.”

“윤시…… 아니, 이재현.”

시현을 알아본 강소하가 다가왔다.

“여긴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긴. 네가 불렀잖아. 천수민이 안 보인다고.”

“아…… 그랬나? 정신이 없어서.”

거칠게 뒷머리를 긁어 대는 강소하에게서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시현은 대강당 안쪽을 쭉 훑어봤다.

거의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규칙성 없이 생활하는 대강당에서 중학생 하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시현이 발견한 중학생은 총 넷인데, 그 중에서 천수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골치가 아팠다.

“강소하, 내가 중요한 애니까 잘 보살펴 달라고 했잖아.”

“잘 보살폈어.”

“어떻게?”

“하루에 한 번 꼴로 잘 살아 있나 확인했지.”

“그게 잘 보살핀 거냐? 미치겠네.”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인선 미스를 저지른 게 분명했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강소하를 붙여 두는 게 낫겠다 싶어, 그에게 천수민의 보살핌을 부탁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게으른 인간인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넌 절대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지 마라. 학대로 애 잡기 싫으면.”

“결혼? 그 귀찮은 걸 내가 할 리가 없잖아.”

“거참, 다행이네.”

혀를 찬 시현은 대강당 입구에 앉아 있는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다소 살집이 있고 안경을 쓰고 있던 여학생이 시현을 보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출입 명단 좀 보여 줘.”

학교는 생존자들을 속박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것도 자유이고, 학교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 발로 걸어 나가도 괜찮다.

그러나 물자 관리를 위해 출입 명단은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그 출입 명단을 관리하는 게 눈앞에 있는 여학생 윤혜영이었다.

“그건 왜?”

“여기 이 아저씨가 보살피던 애가 어제저녁부터 안 보여서 찾는 중이야. 혹시 학교에서 나간 건 아닌가 싶어서.”

“그래? 잠시만 기다려 봐.”

그녀는 의자 뒤쪽 상자 위에 놓인 파일을 펼쳤다.

정갈한 필체로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은 시간별로 출입자의 이름, 성별, 연령 등이 기입되어 있었다.

“이름이 뭐야?”

“천수민, 남자애고 중학생이야.”

“천수민……. 천수민……. 아, 찾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명단에 적혀 있는 천수민이라는 이름을 가리켰다.

“어제 오후 5시에 대강당에서 나간 기록은 있는데, 들어온 기록이 없어. 이런 경우는 딱 하나뿐이야.”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학교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가는 경우.”

“…….”

시현은 말없이 명단을 훑었다.

정확하게 오후 5시에 천수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전후 세 시간 내외에 다른 사람이 출입했다는 기록은 없다.

“진짜 나간 거 아니야? 요 며칠 지켜봤을 때 주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닐 거야.”

시현이 본 천수민은 무언가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매달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수동적이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의사가 없으며 자신이 겪은 부조리에 분노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려들기보다는 포기한 채 속으로 분개만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간이 학교의 시스템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또 뭐.”

독서 시간을 방해받아서 그런지 윤혜영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 묻어났다. 그래도 알아봐야 할 것은 알아봐야 한다.

“혼자였어?”

“뭐?”

“천수민, 나갈 때 혼자 나갔냐고.”

“그야 장부에 적혀 있는……. 아.”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윤혜영의 가느다란 눈이 크게 뜨였지만, 그 표정 변화는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를 놓칠 시현이 아니었다.

“뭐 생각나는 거 있어?”

“……없어.”

그녀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야, 바른대로 불어.”

옆에 있던 강소하도 그것을 감지하고는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몸에 유약해 보이는 외형을 한 강소하의 으름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냥 혼자서 제 발로 기어나갔어!”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시현의 등을 떠밀었다.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 그녀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시현은 못 이기는 척 대강당에서 멀어졌다.

함께 쫓겨난 강소하는 시현 이상으로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윤시현, 저건 누가 봐도 뭔 일 있는 분위기잖아. 왜 그냥 물러난 거야?”

“이재현이라고 불러라.”

“이름이 중요해?”

“중요하지. 누가 훔쳐 듣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따지자면 네 반말도 문제 아니야?”

“어차피 너한테 존댓말 쓰는 학생도 거의 없잖아.”

“하여간 요즘 것들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 나 때는 말이야…….”

두 사람은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며 학교 건물을 벗어났다.

“으헉!”

시현은 지독한 추위에 비명을 지르며 옷자락을 여몄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눈은 어느덧 발목이 잠길 정도로 쌓여 있었다.

늘 최적의 온도를 제공해 주는 외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 한반도 특유의 한파가 유난히 매섭게 느껴졌다.

한 걸음을 내딛으니 뽀드득 소리를 내며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이 찍혔다.

“어디 가려고?”

그렇게 묻는 강소하는 시현을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문 너머에서 행여나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게 두 손으로 문고리를 꽉 잡고 있었으니까.

“확인해 볼 게 있어.”

“무슨 확인?”

“학교에서 출입자의 명단을 체크하는 장소는 두 군데야. 하나는 대강당의 입구, 다른 하나는 정문.”

시현의 시선이 눈 쌓인 학교의 정문으로 향했다.

바리케이드가 쳐진 정문에서 손난로 하나 없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름 모를 남학생의 손에는 정문 전용의 출입 명단이 들려 있었다.

* * *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정문의 출입 명단에 천수민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즉, 학교 어딘가에 아직 천수민이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정문의 기록이 조작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시현은 강소하, 민서라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학교 내부를 조사했다.

조사라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대강당의 생존자들, 그리고 학교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고집 세 보이는 남학생을 본 적 있냐고 묻고 다니는 게 전부였다.

조사를 시작하고 수 시간, 기다리던 성과가 나왔다.

“아……. 혹시 수민이를 말하는 건가?”

별로 기대조차 하지 않았건만, 대강당의 구석에서 늘 잠만 자던 노인이 천수민의 이름을 꺼냈다.

시현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수민이를 알고 계세요?”

“알지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밥도 잘 못 먹고 종일 우울해하기에 가끔 말도 걸고 그랬어.”

“수민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나야 모르지. 궁금하면 왕근식 그 양반한테 물어보지 그래? 그 양반이 수민이를 데리고 갔으니까.”

“……네?”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했다.

왕근식.

시현이 권수학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던 참가자다.

그러나 어째서 권수학과 관련이 없는 지금 그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어지럼증이 느껴질 만큼 충격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지저분한 수염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폭탄 하나를 더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 이따금씩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단 말이지. 서라, 그 참한 아가씨가 구해 온 애들 말이야. 더 좋은 대우를 해 준다 하니, 나야 그 이상 관심 갖지 않았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시현은 본격적으로 대강당 내부를 살폈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요 며칠 시현은 민서라와 함께 주변을 정찰하며 제법 많은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그 중에는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도 상당수 존재했으며, 부모를 잃고 기댈 곳이 없는 불쌍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없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시현의 옷자락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던 아이도, 잔뜩 겁에 질려 떨고만 있던 아이도, 귀여운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상당히 사랑받았던 아이도, 아무리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를 갈던 시현은 대강당 입구로 향했다.

“야, 누구 담그러 가냐? 그럴 거면 미리 말해라. 무기 가져와야 하니까.”

옆으로 따라붙은 강소하가 작게 속삭였다.

그 정도로 시현은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왜 또 온 거야?”

대강당 입구에서 마주친 윤혜영이 얼굴 가득 짜증을 담아 냈다.

시현은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입출 명단 내놔.”

“아까 봤잖아.”

“달라고.”

“……아, 알았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윤혜영이 쭈뼛거리며 명단을 건넸다.

그것을 쭉 훑던 시현은 참지 못하고 명단을 반으로 찢었다.

“야.”

서슬 퍼런 음성과 살기등등한 시선이 향한 곳은 윤혜영이었다.

“왜 명단을 허위로 작성한 거야?”

“……뭐가?”

“10세 미만의 어린애들. 명단에는 분명 대강당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복귀했다고 적혀 있어. 그런데 왜 없냐고.”

“네가 착각했겠지. 난 모르는 일이야.”

“그러면 이건 뭔데.”

시현은 찢어진 명단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가리켰다.

<오후 19시 12분. 천수민 입.>

“지금 시간이 19시 22분이야. 불과 10분 전에 수민이가 귀환했다고 적혀 있네. 그런데 왜 안에 수민이는 없는 건데?”

“…….”

“너 도대체 누구랑 짜고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고문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녀에게서 이 이상의 정보를 얻어 낼 순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현은 계단을 올랐다.

대강당은 5층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건 옥상으로 연결되는 두꺼운 철문뿐이다.

아이들이 정문 밖으로 나갔다는 기록은 없었다.

대강당에도 없고, 학교 건물 어디에서도 아이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면,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연히 시선은 출입 금지 구역인 옥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 가져올까?”

“필요 없어.”

시현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그런데 폭음과 함께 강한 폭발이 시현의 몸을 집어삼켰다.

외피 덕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평범한 생존자였다면, 외피가 없는 1레벨의 구원자였다면 지금 폭발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미친……. 결계까지 만들어 뒀다고?”

철문에는 빛을 발하는 기묘한 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평소에는 숨겨져 있다가 충격을 감지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다.

현재 힘으로 부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천장을 통과해 유령을 올려 보내려 시도해 봤으나, 옥상 전체에 결계를 펼쳐 놓은 것인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대비가 철저해.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건 어렵겠어.”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어쩌긴.”

미간을 한껏 찌푸린 시현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공법으로 가야지.”

* *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민서라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협력을 구한 시현은 학교의 리더인 이은철을 다그쳤다.

“이런 일이 있었군요. 대체 그 사람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고 계셨던 건가요? 선생님은 이 학교의 리더잖아요!”

민서라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며 외쳤다.

사실 민서라에게는 협력을 요청할 것도 없었다.

정보를 전달한 순간 그녀는 시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으니까.

그녀가 느끼는 분노 게이지는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조금만 자극한다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보아하니 이은철이 방해하거나 조금이라도 왕근식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면 선생이고 뭐고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을 기세였다.

그러나 이은철 역시 민서라 이상으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저도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일단 왕근식 씨에게 연락을 취해서…….”

“옥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왜 아이들을 데려간 겁니까?”

이은철의 말을 도중에 차단한 시현이 질문했다.

사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무엇을 하려 하는가.

아이들은 무사한가.

며칠 전 면담실에서 침대에 묶여 있는 하수인을 본 시현으로서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질문에도 이은철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미안하다, 재현아. 나도 그냥 하수인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실험을 한다고만 알고 있지 자세한 건…….”

“선생님의 친구 분이시잖아요.”

“사실 친구라 해도 아포칼립스가 터진 당시 서로 의지해서 위험을 타파했을 뿐인 관계라, 그 전에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시현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은철은 아는 게 없었다.

여기서 이은철을 다그쳐 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선생님, 옥상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 결계를 통과할 수 있는 건 왕근식 씨와 그 조수인 수학이뿐이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현재 옥상에 있고.”

즉, 두 사람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시현은 필사적으로 방법을 구상하려 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목소리에 시현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권수학입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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